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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수묵화로 그린 폭포수와도 같은 검은색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날 바라보고 있는 푸른 눈빛은 절대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백연영.

         

        나의 스승이 나타났다.

         

        “게게겍!”

        “그 기묘한 울음소리는 바뀌지 않는구나.”

         

        게다가, 내가 그때 그 도마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덩치가 수십 배나 차이가 나는데,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아노돈토의 꼬리를 백연영이 잡고 있다는 거다.

         

        놈의 꼬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반항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 테지만, 놈은 진정제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이 기회다.

         

        고모도류.

         

        아니.

         

        그린 바실리스크류, 최종오의.

         

        “게겍….”

         

        스승님.

         

        쟤가 나 때렸어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앞다리를 내밀었다.

         

        백연영은 살짝 웃었다.

         

        “영악한 놈이고. 지금 본녀보고 이 곡룡을 상대하라는 말이더냐.”

         

        아뇨, 아뇨.

         

        상대고 뭐고 할 것도 없을 거 같긴 해요.

         

        “뭐, 좋다. 저 곡룡이 여기까지 온 것에 본녀의 탓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을 테니까.”

         

        응?

         

        잠깐만, 분명 아노돈토의 상태 중 공포가 있었지.

         

        유타랍토르가 혼비백산하고 도망친 이유.

         

        그리고 저 곡룡이 겁에 질렸음에도 나와 사생결단을 내려는 이유.

         

        뒤에서 더 무서운 존재가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아노돈토는 야생의 백연영사우루스를 만난 불쌍한 피해자였다.

         

        햇볕을 쬐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가 백연영을 만난 거겠지.

         

        산책하다 곰을 만난 격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니 좀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무기라면 모를까, 용을 죽이고 싶진 않구나.”

         

        다행이다.

         

        하긴, 공룡도 어찌 보면 용이긴 하지.

         

        그런데 백연영은 대체 왜 이 공룡을 쫓아온 거지?

         

        막말로 잡으려고 마음먹었으면 꼬리를 질질 잡고 끌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도 본녀의 제자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벌은 줘야겠지.”

         

        그 말을 마친 백연영은 순식간에 아노돈토를 동굴의 벽으로 던져버렸다.

         

        쩌어어어어엉!

         

        용은 죽이기 싫다면서!

         

        그렇게도 용살자라는 칭호가 탐났던 거니.

         

        …명복이나 빌어줘야지.

         

        미안하다, 말리지 못해서.

         

        그러니까 그냥 갈 길 가지.

         

        괜히 덤벼서.

         

        “꾸어엉!”

         

        내 예상과 달리 아노돈토는 살아 있었다.

         

        몸을 비척거리면서 곧바로 일어나는 아노돈토사우루스.

         

        …쟤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남았었구나.

         

        “칠칠치 못하게 넘어지고나 말이야. 그래도 덕분에 제자를 만났으니, 이제 가봐도 좋다.”

        “꾸어엉!”

         

        방금 쩌어어어엉 소리가 나지 않았어?

         

        죽이려던 게 아니라 그냥 일으켜 세우려고 그랬던 거야?

         

        아노돈토사우루스는 곧바로 동굴 바깥으로 살며시 기어갔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느냐. 작은 도마뱀아, 본녀가 너를 일으켜주기를 바라는 게냐.”

         

        아뇨.

         

        전 아직 죽기 싫어요.

         

        “게겍!”

         

        곧바로 자세를 바로 했다.

         

        앞다리를 흐느적거리면서 아프다는 걸 어필하고.

         

        “그래. 가까이서 보자꾸나.”

         

        뚜벅뚜벅.

         

        백연영이 점점 내게 가까워졌다.

         

        부상당한 내 손을 한 번 쓱 살피더니, 아주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직 단련이 부족하구나. 용조수는 제법 그럴듯하다만, 구음백골조는 형편없다고 볼 수준이었다. 물론 본녀의 기준에서는 말이다.”

        “겍….”

         

        심기가 불편하다는 겍소리를 내었다.

         

        “생긴 건 또 왜 이렇게 변했느냐. 비늘도 흑으로 물들고. 꼭 화산에 있는 그 여자를 보는 거 같구나.”

         

        화산에 있는 그 여자?

         

        거기도 고모도가 있는 거야?

         

        아니면 다른 파충류라도 있나.

         

        백연영의 하얀 손이 내 주둥이를 잡았다.

         

        “게엑…?”

         

        쩌억.

         

        나는 강제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입을 벌린 백연영은 한참이나 내 이빨을 살펴보았다.

         

        “호. 확실히 이빨이 날카로워졌구나.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구나.”

         

        제대로 된 길?

         

        고모도 정도면 제대로 된 길이 맞지.

         

        디메트로돈 같은 사도로 빠지지 않았다고.

         

        …그런데 언제까지 내 입을 보고 있는 거야.

         

        조금 부끄러운데.

         

        “조금 더 벌려보거라.”

         

        백연영은 내 입에 머리를 넣을 기세였다.

         

        “게에엑!”

         

        대체 뭘 보려고 그래!

         

        우리가 이런 사이는 아니잖아!

         

        “호오. 공청석유를 가져간 게 누군가 했더니, 너였구나.”

         

        딸꾹.

         

        “…겍겍.”

         

        아닌데?

         

        내가 가져간 적 없는데?

         

        시치미 떼는 겍겍소리를 내었다.

         

        일단 얌전히 있자.

         

        “동충하초는 몰라도 공청석유까지 탐하다니.”

         

        비상이다.

         

        네가 먹은 영약만큼 몸으로 갚아라!

         

        이런 전개가 나올 거 같다.

         

        물론 몸으로 갚는다는 건 내가 도마뱀 꼬치구이로 변한다는 뜻이었고.

         

        이대로 입을 살며시 다물어볼까?

         

        “작은 도마뱀아. 본녀가 아직 입 안에 있는데, 어찌 힘을 주는 것이냐.”

         

        오해야, 오해.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어.

         

        …실패했다.

         

        꼼짝도 안 한다.

         

        쑥.

       

        백연영이 내 입에서 머리를 뺐다.

         

        드디어 입을 다물 수 있게 됐다.

         

        텁.

         

        꿀꺽.

         

        꿀꺽?

         

        뭔가 목구멍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빨이라도 빠졌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백연영이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게 중요한 거다.

         

        뭘까, 저 표정의 의미는.

         

        화가 난 거 같기도 하고, 약간 웃는 거 같기도 하고.

         

        “봉인까지 해두었는데 거길 기필코 들어가다니.”

         

        웃는 게 아니었구나.

         

        끝났다.

         

        도마뱀 꼬치구이 행이다.

         

        아니, 육회가 될 수도 있을 거다.

         

        백연영의 하얀 손이 움직인다.

         

        다섯 손가락이 내 머리를 노린다.

         

        저게 진짜 구음백골조일터.

         

        “잘했다.”

         

        백연영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지 본녀의 제자라고 칭할 수 있지.”

         

        꼬리가 가볍게 살랑거린다.

         

        내공이 강해서 그런가, 쓰다듬는 것도 잘하네.

         

        “흐음, 그런데 저들은….”

         

        백연영은 저기 멀리 있는 당가 네 자매를 슬쩍 쳐다봤다.

         

        “게겍!”

         

        고개를 돌려 당소영을 불렀다.

         

        싸움도 끝났는데 가까이 오지?

         

        처음 봐서 경계하는 건 알겠는데 나름 착한 사람이야.

         

        “참 이상한 조합이구나.”

         

        내 생각도 그래.

         

        말하자면 시간이 좀 걸려.

         

        …어차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겍.”

         

        아, 그러고 보니까 당소영.

         

        거미들이랑 같이 있다 보니 가끔 망각하는 건데 얘는 인간이었지.

         

        게다가 사천당가의 인간.

         

        오랜만에 인간을 만나는 거니까 당소영도 좋아하겠지?

         

        “겍겍!”

         

        당소영을 계속 불렀지만, 그녀는 내 쪽으로 오지 않았다.

         

        얘가 왜 이러지?

         

        당소영은 명문가 출신.

         

        백연영은 어디 출신인지는 모르지만, 매우 강대한 내공의 소유자.

         

        연을 맺는다면 서로에게 득이 될 확률이 높을 텐데….

         

        이따가 다리를 깨물어서라도 끌고 와야지.

         

        일단 백연영의 이 심후한 내공을 조금 더 느낀 후에.

         

        머리를 살살 긁는 손길이 기분 좋았다.

         

        절로 눈이 감긴다고 해야 할까.

         

        다리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렇게 그 감촉을 느끼던 중, 어느 순간 백연영의 손이 멈췄다.

         

        살며시 눈을 뜬 후 그녀를 바라봤다.

         

        손의 위치가 바뀌었다.

         

        내 머리가 아닌, 내 입 바로 앞에 있었다.

         

        그녀는 그 상태에서 날 빤히 쳐다봤다.

         

        뭔데.

         

        무슨 뜻이야.

         

        “도마뱀아.”

         

        약간 얼굴이 불그스레해진 거 같다고 생각하는 건 내 착각이겠지.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사람이니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걸 거다.

         

        그게 아니면 조명 탓일 테고.

         

        “뭔가 잊은 거 없느냐.”

         

        백연영은 손가락을 쭉 뻗어 내 주둥이를 콕콕 찔렀다.

         

        …설마 깨물어달라고 그러는 거야?

         

         

        *

         

         

        당소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전설 속에나 나온다는 신수, 고모도.

         

        그 고모도를 막아 세운 건 또 다른 영물이었다.

         

        안길로.

         

        산을 부수고 땅을 울린다는 괴수.

         

        물론 안길로가 아닌 그와 유사하게 생긴 다른 생명체였지만,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섬기는 고모도는 그 모습을 취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비록 덩치는 크지만, 묘사된 고모도의 성체와 비교하면 아직도 작은 수준이었다.

         

        어찌 보면 유년기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였다.

         

        신묘한 전법으로 안길로와 닮은 괴수를 쓰러트리나 했더니, 마지막 순간에 예상치 못한 일격이 날아왔다.

         

        당소영은 그 순간,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질 뻔했다.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녀만의 독.

         

        그걸 사용하기 위해 품 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림자와 같은 움직임을 보게 됐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추측할 수도 없었다.

         

        마교주가 나타났다.

         

        십만대산에 입성한 후 우연히 마주친 그 괴물 같은 여자였다.

         

        그자는 괴수를 한 손으로 집어 던진 후, 고모도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당소영은 두려웠다.

         

        그녀의 손짓 하나에 여기 있는 모두의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몸이 덜덜 떨린다.

         

        숨소리 내면 안 된다.

         

        본능적인 공포가 그녀의 몸을 지배했다.

         

        그리고 그때, 너무나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겍겍!”

         

        고모도는 마교주를 단신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아무리 고모도라고 하지만 마교주를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녀는 천하 십대 고수의 일석을 차지하고 있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고모도는 비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달로포 때도 그랬다.

         

        곡룡 때도 그랬다.

         

        이번에도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 하고 있었다.

         

        무엇이 신수란 말인가.

         

        무엇이 신도란 말인가.

         

        어째서 이번에도 지켜지기만 해야 하는가.

         

        당소영은 공포를 떨쳐냈다.

         

        비록 이류 무인이라지만, 그녀만이 다룰 수 있는 특유의 독은 당가의 장로들도 막기 힘든 것이었다.

         

        미혼독.

         

        독이지만, 어째 심후한 내공을 가진 고수들도 이 독을 막지 못한다.

         

        특히 여고수들에게는 효과가 더 뛰어났다.

         

        반로환동을 거친 전설적인 여검객, 검후조차 이 독에 당해 고작해야 일류에 다다른 사내와 동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혼독에 대한 유명한 일화였다. 혹자는 검후가 일부러 당한 척을 했다고 하지만, 세상에 독에 일부러 당하는 인간이 어디 있겠나.

         

        당소영은 미혼독이 얼마나 위험한 독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다룰 수 있는 미혼독은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위험한 것이다.

         

        사용한다면 자신조차 위험해질 거다.

         

        하지만 고모도를 탈출시킬 수는 있을 터.

         

        당소영은 굳세게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녀가 미혼독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툭.

         

        너무나 충격적인 광경에 그녀의 손에서 힘이 빠지고 말았다.

         

        우물우물.

         

        고모도가 마교주의 손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

         

        와앙.

         

        텁.

         

        [【당소영】의 신앙심이 매우 크게 올라갑니다.]

         

        …얜 또 왜 이래.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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