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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야말로 언더독의 반란.

       그 정도로 마법사와 전사들의 워 게임이 이토록 허무하게, 또한 신속하게 끝난 경우도 드물며.

       전사들이 압도한 경우도 정말 드문 판이니.

       허나 누구도 전사들의 승리에 감히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완전히 뻗었군.’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 모르겠네.’

         

       한없이 멀쩡한 마법사들에 반해 전사들은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상태였고, 하나같이 창백하기 그지없다.

       전력을 쏟아 부었다는 증명이자, 그들이 이 싸움에 어느 정도로 심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증거였다.

       즉, 누가 더 절박했고 최선을 다 했는지가 승부를 가른 결정적인 차이였을 터.

       그렇기에 관객들은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날렸다.

         

       파바바밧!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고.

       저 사진이 내일 아침 신문 일면을 차지하리란 것을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그 정도로 재밌는 역전극이었으니.

         

       “힘을 폭발시키는 발상인가?”

         

       “흐음, 그보단 기세의 집중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잠재력을 증폭시키는 계열일지도 모르겠군.”

         

       “특이한 투기법이야. 재밌군, 저 기사가 가르친 것인가? 이거 제법, 아, 아니군, 결점이 더 많은가…?”

         

       눈썰미가 있는 귀족의 경우 근본적으로 투기법과 다르지만, 순간적인 폭발력과 위력은 인정해 줄만한 새로운 기법에 관심을 보였다.

       허나 관심을 줄 뿐, 탐욕을 드러내진 않았다.

       마법사들이 눈치챈 것처럼, 저 기법은 치명적인 단점이 즐비해 보였으니까.

       시간제한이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육체의 무리가 가는 수법이다.

         

       저러한 수법은 ‘귀족적’이지 않다.

         

       새로운 기법이 분명 흥미로운 것은 맞으나, 투기법을 대체할 정도로 대단하다 보진 않았으며,

       무엇보다 품위가 없는 바였다.

         

       물론.

         

       “-눈을 장식으로 달고 사는 녀석들이 많군. 안 그런가, 라크.”

         

       진정으로 가치를 보는 눈이 있는 자들은 감탄과 경악을 아끼지 않았지만.

         

       “저가 가진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지 않습니까. 허나 저 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상위 기법을 익힌 이들에겐 저러한 ‘기술’은 그다지 큰 매력이 없을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

       “저 기술을 완성하는 자가 있다면 필시 위협적일 겁니다. 감히 어떠한 기사들도 무시 못 할 정도로.”

       “호오, 편협한 평가를 내릴 줄 알았더니, 의외로구나.”

       “주, 주군….”

         

       단숨에 경이 가진 가치를 짚어낸 어느 공작가의 기사와 그를 놀리는 군주였다.

         

       공작.

       블레이크 비비안 드 갈라하드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저 젊은이는 여전히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군. 마냥 실력만 좋을 뿐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재능도 있었던가? 재밌어.”

       “가치를 둘 만한 자가 아닙니다.”

       “그런 녀석이 계속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더냐? 어지간히도 안달이 났기에 사랑이라도 빠진 줄 알았거늘.”

       “!!?”

       “하하!”

         

       블레이크 공작은 호쾌하게 웃었다.

       그나마 제자라 할 수 있는 녀석이다.

       매사 진지하고 냉정하여 놀리는 맛이 없었거늘, 저 기사와 엮인 이후로 사람 냄새가 난다.

       목각인형이 드디어 사람처럼 굴기 시작했다고 할까.

         

       뭐, 사람이 되어 갈수록 훈련 시간이 늘어나고, 훈련 상대가 되는 녀석들은 울상을 짓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블레이크 공작이 상관할 사항은 아니었다.

         

       “탐이 나는군. 조카의 사람만 아니었다면 내 쪽으로 데려왔을 것을.”

       “…….”

       “그러나 네 녀석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적으로 놔두는 게 이득일지도 모를 테지. 큰 자극이 되어줄 터이니.”

       “그, 그런 거 아닙니다. 저런 천한 놈이 무어라고.”

       “쯧쯧, 솔직하지 못하긴.”

       “…….”

         

       하여튼 기사란 놈들은 자존심과 호승심이 지나쳐서 문제다.

         

       “…그래도, 음흉한 고양이 놈들보다 호승심이 높은 것이 좋을 테지.”

         

       허나 유쾌함도 잠시.

       그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거슬리기 짝이 없다.

         

       마검의 마성(魔性) 탓인가, 사자들이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살심’이 들끓는다.

       허나 마냥 마검 때문이 아니더라도, 갈라하드와 라이오넬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였음이다.

         

       사실상 원수!

         

       필히 없애야 할 자들이었다.

         

       다만.

         

       “지금이라도 명령만 내리신다면 기사단을 움직이겠습니다.”

       “되었다. 북부의 고양이 때문에 너희를 잃는다면 그게 더 손해다.”

       “주군! 저희는 지지 않습니다!”

       “지지야 않겠지. 다만 희생이 따를 뿐.”

       “으음-!”

         

       저들을 확실히 없앨 수 있다 장담하지 못하니, 지금은 참아야만 했음이다.

         

       공작의 기사, 라크 드 듀론도 차마 모시는 군주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였다.

       저 말대로 상대의 실력은 그들의 아래가 아니었으니까.

       상대의 실력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는 모자라지 않았다.

         

       “이제 일어서자꾸나. 간만에 조카와 대화나 하러 가야겠지.”

       “…아가씨는 만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멈칫.

         

       그 말에 처음으로.

         

       “……그 아이는, 날 만나기 싫어하는 것 같더구나.”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으음.”

       “…하아.”

         

       항상 오연한 군주의 품격을 잃지 않던 블레이크 공작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친해지고 싶어도 제멋대로이고, 기분마저 하늘의 날씨마냥 예측 불가한 요정 같은 제 수양딸을 떠올리자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흠, 경, 내가 그리 비호감인가? 그 아이는 나를 볼 때마다 항상 눈을 찌푸리더군. 나름 얼굴에는 자신이 있었거늘, 나도 늙은 것인지….”

       “…….”

         

       차마, 이 대목에서 할 말이 궁하여 침묵했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 건 많은데, 라크는 말을 아꼈고. 대신 시선을 돌려 주변을 보았다.

         

       꽃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처녀들이 그의 주군을 향해 힐끔거리며 얼굴을 붉히고 있으니, 이게 참.

         

       ‘주군, 남들 앞에서 그리 말하시면 돌 맞습니다.’

         

       특히 사내놈들한테.

         

       라크는 경외하는 주군에게 감히 불경한 발언을 내뱉지 못하며,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

       *

       *

         

       생도들, 아니 훌륭한 경기를 치른 투사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축하의 박수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승리를 축하하지.”

       “훌륭했다.”

       “자랑스러웠어요, 폴트 영애.”

         

       이 승리는 검술학부의 승리가 아니었다.

       오로지 그들의 노력이 일구어낸 성과였지.

       하여 이 공은 오로지 그들만의 것이었고, 승자에 대한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만큼은 신분을 건너뛴 훈훈함이 연출되었고, 영애들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어여쁜 귀족 영애들에게 받는 꽃다발.

       이를 그들은 감격스럽게 받았다.

         

       “이, 이런 걸 다….”

       “받으세요. 당신들은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으니.”

       “하하….”

       “…멋있었어요.”

       “!!”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데 필요한 시간은 0.3초.

       이미 아이의 이름까지 생각하게 된 새싹 5호였다.

       허나 이러한 착각과 설렘을 느끼는 건 마냥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러했다.

       딱히 검술학부가 아니더라도 꽃을 건네는 영애들이 있었다.

         

       그들이 언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으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쏟아지는 인기는 찰나에 불과했고, 가장 많은 꽃을 받으며, 동시에 귀족 영애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어느 소녀였다.

         

       “포, 폴트 영애, 아, 앞으로도 응원할게요.”

       “호, 혹시 제 손수건을 받아주실 수 있나요?”

       “…마지막에 너무 멋있으셨어요.”

         

       “가, 감사합니다.”

         

       용맹한 여전사.

       역전의 주역.

       오늘의 베스트 플레이어.

         

       이 모든 것이 레비 폴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 내가 한 것은 그다지 없는데.’

         

       실상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노력했을 뿐이고, 운이 좋아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에 불과했기에 당사자 입장에서 떨떠름하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멋졌어, 정말.’

       ‘감동이었죠.’

         

       왜소한 몸으로 보인 용맹함.

       악단의 지휘자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온몸으로 보인 판단력.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달려 나가 레이피어를 휘둘렀던 것까지.

         

       레비 폴트는 이미 여성들의 워너비가 되고도 남았다.

         

       어느 시대건, 진취적이고 강인한 여성은 동경의 대상이 되는 법이니.

         

       무엇보다 그녀는 귀족이다.

       이게 중요하다.

       자수를 놓지 않고 검을 든 귀족 영애.

         

       ‘여기사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여기사란 직종.

       바늘구멍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그 어려운 길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오로지 귀족영애에게만 주어지며, 여성의 몸으로도 충분히 다른 기사들과 대적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 레비 폴트는 여기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여기사 서임이 40년 전이었다는 걸 감안했을 때, 소녀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바.

         

       마냥 선의로 다가오는 게 아니란 뜻이리라.

         

       그러나 지금은.

         

       “감사해요….”

         

       이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물론 모두가 다 축하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그래! 기, 깃발을 뺏어야지! 부러트렸다고 승리하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추하다, 노예야.”

       “아, 아니란 말이다! 우린 지지 않았어…!”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아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오드왈 버나드.

         

       저가 바락바락 악을 쓰며 워 게임을 신청해놓고, 도리어 패배하고 만 패배자의 이름이었다.

         

       그는 당장 변호사라도 불러와야 한다며 주장할 셈이었다.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

         

       “-아니, 이 게임의 승자는 전사들이 맞느니라. 왕을 지켜야 할 자들이 왕을 지키지 못하고, 왕의 목숨을 빼앗겼으니, 어찌 패배자가 아닐 수 있을까.”

         

       “!!”

         

       일순 오드왈은 숨이 멈춘 사람처럼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목이 뻣뻣한 그일지라도 감히 대항하지 못할 최상위 포식자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왕녀가,

       왕국의 차기 후계자가 차가운 시선과 함께 그를 쏘아붙였다.

         

       “혹여, 여가 내린 판결을 믿지 못하여 그리 막무가내로 구는 것이라면 지금 말하거라. 들어줄 터이니.”

       “…….”

       “어서.”

       “…아, 아닙니다.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더 반항하겠는가.

         

       왕녀의 위압감 앞에 오드왈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수긍해야만 했고, 결과에 승복했다.

         

       “흥.”

         

       한차례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며 왕녀는 생도들을 치하했다.

         

       “훌륭했노라.”

         

       -추, 추웅!

         

       어느새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아이시스의 등장 앞에 자동적으로 고개가 조아려지니.

       그녀가 만족스럽게 생도들을 훑었다.

         

       “왕국에 이토록 인재가 많았다니, 여는 감탄했다.”

         

       …숨소리조차 잠시 사라진 듯했다.

         

       “무수한 장미를 보았노라. 아름답고도 아름다웠지. 허나 들에서 피어난 장미는 또 다른 감동을 주더구나. 아름답고도 찬연하니, 그리고 너희가 그러했노라.”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감미로웠고, 뇌가 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상의 소프라노를 들었을지라도 이토록 감미로울까.

       어느 순간 백성들은 흐느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가, 가문의 영광이옵니다.”

       “흐윽….”

       “왕녀시여, 당신을 경애 하옵니다.”

         

       이상한 마법이나 세뇌가 아닌, 타고난 카리스마와 매력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현상.

       허나 어찌 보면 세뇌보다 무섭다.

       단지 한 사람이 타고난 매력과 카리스마가 이만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니.

         

       “여는 오늘 기분이 좋으니라. 그런 뜻에서 연회를 열도록 하겠노라. 그대들이 주인공이다. 필히 참가할 수 있도록.”

         

       -추 추우우웅!!

         

       누구의 말이라고 거역할까.

         

       갑작스러운 연회일지언정 무조건 참가해야 하리라.

         

       결코 불경을 저지를 수 없으니…!!

         

         

         

         

       “-난 빼줘요. 나 다른 볼일 있어요.”

       “……이런 못돼먹은 녀석.”

         

       따악!

         

       왕녀의 부채가 불을 뿜었다.

         

       세뇌보다 강력한 매력을 가볍게 튕겨내는 ‘(본의 아닌)동자공’의 절세고수였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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