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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소울 아카데미의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하나 같이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입학시험이 진행되는 도중에 일어난 사고 때문에 시험이 중단된 것이 문제였다.

   

   그 날부터 아카데미의 모든 교수들은 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거의 이 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밤낮을 지새웠다.

   

   문장으로 서술하자면 소설 한 권 분량은 가뿐히 채울 여러 고생의 끝에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이주 만에 시험을 끝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특별입학자로 선정될 사람만 가리면 모든 일이 끝나는 상황.

   

   회의실에서 누가 누가 더 다크서클의 길이가 긴 가를 자랑하고 있는 교수들은 하나 같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아카데미의 교장인 주디 알버가 헛기침과 함께 죽어가듯 힘없는 목소리를 냈다.

   

   “다음으로 논의를 나눌 후보는 알른 가문의 영애인 루시 알른입니다. 이번 사고에 휘말린 피해자 중 한 명이고, 워낙에 유명한 분인지라 다들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루카 교수. 추천을 해 준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예. 물론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루카는 잔뜩 충혈이 된 나머지 붉어 보이는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고서 말을 꺼냈다.

   

   “제가 루시 알른 영애를 특별입학자로 추천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가 하는 말은 모두가 예상한 이야기였다.

   

   베인즈 가문의 메릴 영애를 압도한 일.

   

   입학시험의 던전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리더쉽을 보인 일.

   

   아그라의 저주로 인해 생긴 돌발 상황 속에서 모든 파티원들을 살린 일.

   

   “이만한 업적을 보인 사람이 특별입학자가 되지 않는다면 누가 특별입학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쉬어버린 목으로 열변을 내뱉는 루카의 말에 다른 교수들은 반박하지 않았다.

   

   모두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루시 알른이 여태까지 많은 패악질을 벌여온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

   

   그녀가 지금 보인 것들은 그녀를 대륙의 신성 반열에 들여 놓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알른 영애가 특별입학자가 되기에 충분한 성과를 보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허나 거기에 딴지를 거는 이가 있었다.

   

   소울 아카데미의 교감인 몰리였다.

   

   그녀는 루카의 날 선 시선을 받아내면서도 별 것 아니라는 듯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알아두셔야 하는 것은 특별입학자 전형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으나 실기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인 이를 합격시키는 제도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교감님. 그러니 더더욱 알른 영애가 이에 어울리지 않습니까?”

   

   루시 알른이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과거 그녀의 가정교사를 맡았던 이의 말에 따르면 공부를 하고자하는 의지 자체가 없다고 할 수준이었으니까.

   

   그녀가 아무리 개과천선을 하였다 한들 겨우 일 년을 공부해서 소울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잘 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전투학 교수들은 루카의 의견에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이론 쪽을 다루는 교수들이 하나 같이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아뇨. 알른 영애는 특별 입학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합격할 만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전투학 교수들 사이에 스멀스멀 차오르는 의문을 몰리가 해결해 주었다.

   

   루시 알른이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예?”

   

   루카가 눈을 끔뻑이자 회의장에 있던 교수 중 국문학을 담당하는 이가 손을 들었다.

   

   “알른 영애께서 국어에서 낸 성적은 87점입니다. 충분히 상위권에 들 수 있는 성적이죠,”

   

   그리고 그 말을 잇듯 역사학 교수가 목소리를 냈다.

   

   “역사의 경우엔 98점입니다. 맞추라고 낸 문제인 현대의 사건에서 실수를 하셨어요.”

   “마법학은 비교적 저조합니다. 68점이죠. 평균에 간신히 미치는 수준입니다.”

   

   마지막으로 던전학 교수가 한숨과 함께 말을 꺼냈다.

   

   “던전학 같은 경우엔 점수를 어떻게 줘야 할지 교수들끼리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왜죠?”

   “100점 가지고는 모자랄 것 같아서요.”

   

   던전학 교수는 그리 말을 하곤 루시가 시험에서 적어낸 답변 중 하나를 사람들에게 들려줬다.

   

   “먼저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이건 언데드 무리를 상대할 때의 방법에 대한 서술형 문제입니다.”

   

   ‘뇌가 썩어버린 좆밥 언데드들은 상대할 때 주의해야 하는 건 그 놈들은 허접하지만 벌레마냥 끈질기다는 것이다.’

   

   “잠깐. 잠깐만요.”

   

   답안의 첫 문장을 내뱉은 순간 전투학 교수 중 하나가 말을 끊었다.

   

   “그게 정말 알른 영애가 적은 내용입니까?”

   “네. 그대로 읽어드리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가 왜 좆밥이니 허접이니 하는 소리를 입에 담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계속 하시죠.”

   

   교수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답안은 과할 정도로 비속어가 많기는 했지만 그걸 빼고 나면 상당히 괜찮은 답안지였다.

   

   언데드를 상대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변수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에 대해서.

   

   언데드 위주로 구성된 던전을 공략하기 위한 최선의 조합은 무엇인지.

   

   루시 알른이 적어 낸 답변은 최전선에서 던전을 공략하는 사람이 내 놓은 대답이라 해도 믿길 정도로 정확했으니 백점짜리 답안 그 자체라 할 만 했다.

   

   허나 그 뿐이었다.

   

   거기까지는 그리 특이한 부분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부분입니다.”

   

   ‘언데드들은 그 지능이 너무도 허접해서 지휘 개체가 없다면 메두기떼마냥 몰려 다녀도 좆밥일 뿐이다. 아무리 멍청한 던전의 주인이라도 이 사실을 알기에 보통은 언데드 무리 사이에 지휘 개체를 둔다.

   …지휘 개체인 고위 언데드는 자신의 눈으로만 보고 지휘를 하지 않는다. 아래에 있는 좆밥 중에서 전장의 상황을 전해 둘 녀석 몇을 두고 그를 통해 정보를 전달 받고 이를 기반으로 지휘를 내린다.

   바꾸어 말해 정보를 전달해주는 좆밥들을 먼저 처리하면 지휘 개체를 전황도 모르는 멍청이로 만들 수 있단 소리다. 이를 찾아내려면…’

   

   던전학 교수의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에 회의장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은 그들이 본래 알던 상식을 부수는 이야기였으니까.

   

   “이게 진짜 알른 영애가 내놓은 발상입니까?”

   

   루카의 충혈된 눈에 힘이 실린다.

   

   이는 한 명의 학생이 내놓은 발상치고는 너무 획기적이었던 것이다.

   

   “네. 믿기 힘들겠지만 맞아요.”

   “놀랍군요. 알른 영애가 적어 놓은 게 사실이라면 언데드를 상대하는 게 훨씬 더 수월해질 겁니다.”

   

   언데드 무리를 상대할 때 지휘 개체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나 마찬가지다.

   

   지휘가 없어지는 순간 언데드 무리는 오합지졸이 되니까.

   

   허나 이 상식을 지키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고위 언데드쯤 되면 어지간한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지닌다.

   

   자신이 죽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는 소리다.

   

   그 때문에 고위 언데드는 결코 전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언데드 무리의 뒤편에 숨은 지휘 개체를 공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 지휘 개체를 처리하는 전략은 이론적으로만 옳은 전략이었다.

   

   그렇지만 루시가 제시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휘 개체를 사냥하지 않고도 지휘를 방해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는 것이다.

   

   “이외에도 알른 영애가 시험지에 적어둔 것에는 던전 공략 한 번 안 해본 귀족 영애가 떠올린 발상치곤 너무도 과격한 게 많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요?!”

   “네. 그러니까 백점도 모자라다는 소리를 한 겁니다.”

   

   고요하던 회의실이 점차 소란스러워 지는 것을 몰리가 헛기침으로 자제시켰다.

   

   “이쯤 되면 알겠죠? 루카 교수. 알른 영애는 특별 입학 대상자가 아닙니다.”

   “이해했습니다.”

   

   필기에서도 충분히 상위에 속하는 성적을 거둔데다 실기에선 최상위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인 루시 알른이다.

   

   이미 그녀는 소울 아카데미에 합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쯤 되면 합격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에서 몇 등일지를 궁금해 해야 할 수준이군요.”

   

   루카는 그리 이야기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가씨.”

   

   ‘준비 됐어요.’

   “덤벼. 허접.”

   

   내가 자세를 잡는 것과 동시에 칼이 검을 휘둘렀다.

   

   그 속도는 이미 내가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괜찮다.

   

   내겐 철벽 스킬이 있으니까.

   

   스킬이 알려주는 것에 따라 방패를 치켜 들자 곧바로 검이 방패에 부딪혔다.

   

   검을 막아낸 팔이 저려오는 게 느껴진다.

   

   얘 요즘 너무 사정을 안 봐준 다니까.

   

   이러다 자기가 모시는 주인의 얼굴에 상처가 나면 어떡하려고 이러는 거야?!

   

   <여아야. 지금이다!>

   

   이를 악 문 채 칼이 쏘아내는 공격을 받아내던 중 할배가 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마음 속으로 기도문을 외웠다.

   

   ‘에리엇을 어여삐 여긴 주신께서 기적을 내리니 악마의 공격이 그에 닿지 못하더라.’

   

   그러자 내 안에서 새어 나온 마력이 나의 앞에 신성으로 방벽을 형성했다.

   

   칼은 그를 보고서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미 휘둘러진 검은 되돌릴 수 없었다.

   

   방벽에 막혀버린 검이 튕겨 나가며 틈이 생겨났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벽 너머로 내달리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검을 되돌리기엔 늦었다 생각을 한 걸까.

   

   칼은 내 공격을 맞받아치는 대신에 움직임으로 흘리는 것을 택했다.

   

   그의 눈이 내 움직임을 노려보는 것이 보인다.

   

   <지금이다. 빛을 내라!>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차려던 때에 모든 신들이 모여 빛을 부르짖으니 하늘에서 한 줄기 광명이 쏟아지더라.’

   

   속으로 기도문을 외움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닫히기 무섭게 피부 너머로도 전해지는 밝은 빛이 터져 나왔고 다시금 눈을 뜨자 섬광에 당한 칼이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게 보였다.

   

   좋았어!

   

   칼이 섬광에 당한 걸 확인한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발을 움직였다.

   

   아무리 칼이 혼란에 빠진 상황이라 할지라도 기척을 느낄 수 있도록.

   

   너무나도 확실해서 칼이 함정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내 의도는 정확히 먹혀들었다.

   

   내가 메이스를 치켜들었음에도 칼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건 기회야.

   

   드디어 주제도 모르고 주인을 괴롭히던 기사한테 한 방을 먹일 기회라고!

   

   전력을 다해 메이스를 내리친 순간 칼이 손을 움직였다.

   

   채앵!

   

   분명 휘둘렀다 생각한 메이스가 튕겨남과 동시에 철벽 스킬이 내게 위험을 경고했다.

   

   하지만 이미 대응을 하기엔 늦은 상황.

   

   나는 눈을 부릅뜬 채 공격이 다가오는 걸 기다렸다.

   

   허나 칼의 검은 내게 닿지 않았다.

   

   나의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춘 검을 바라보고 있자니 칼이 검을 거두었다.

   

   “훌륭하셨습니다. 아가씨. 이번엔 정말 위험하다 생각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허접. 내가 입 발린 말에 속아넘어가는 멍청이로 보여?”

   

   “저는 진심입니다 아가씨!”

   

   내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는 기사의 의견은 믿을 만한 게 못 됐다.

   

   <이 녀석아. 기회일수록 침착하라 누차 말을 했거늘.>

   ‘죄송해요.’

   <다시 한 번 해보자꾸나.>

   ‘넵!’

   

   할배에게 다그침을 들으며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반대편에 서 있던 칼도 검을 치켜 들었다.

   

   “아가씨!”

   

   그 때였다. 저 멀리에서 시녀가 달려오며 내 이름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무기를 내리고 기다렸더니 시녀가 내게 편지를 건넸다.

   

   ‘이게 뭔가요?’

   “허접 시녀. 이게 뭐야?”

   

   “소울 아카데미에서 온 편지입니다!”

   

   소울 아카데미?

   

   거기서 보낼 편지라면 하나 뿐이잖아.

   

   합격 유무가 담긴 통지서.

   

   그러니까 이 편지 하나로 내 운명이 결정된다는 소리지?

   

   나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나서 편지지를 뜯어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읽은 나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가씨. 안에 뭐가 적혀 있기에 그러십니까?”

   

   ‘어. 그게 합격하긴 했는데요…’

   “합격을 하긴 했는데… 이 허접 아카데미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입학생 대표 연설을 맡으라고 하는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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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시험의 점수가 필기 400점에 실기 200점 총합 600점으로 수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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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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