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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청송관의 훈련장.

   그곳에서 크라슈는 홀로 선 채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다.

     

   단펠리온에서 돌아온 뒤로 부쩍 훈련 시간을 늘린 크라슈는 지금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러의 총량이 늘어난 덕분에 오러를 다루는 데 더더욱 능숙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엑스퍼트 상급이면 이제야 벨로킨 수준이야.’

     

   발하임에서는 딱 중간 정도 수준인 셈이다.

   크라슈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 최소한 마스터 초입까지는 도달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러의 훈련은 필수적이었다.

     

   “크라슈 님.”

     

   하지만 그런 집중은 얼마안가 멈춰야만 했다.

   왜냐하면 알리오드가 훈련장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라슈는 그가 자신의 훈련까지 멈추며 나타난 이유를 잘 알았다.

     

   “총집사장이 오셨나.”

   “예, 그렇습니다.”

     

   크라슈를 다시금 시험 치르기 위해 총집사장이 온 것이었다.

     

   총집사장의 시험.

   발하임의 직계에게는 사실상 미래 처우가 달라지는 시험과 같았다.

     

   그리고 크라슈는 이번 시험을 제대로 치러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모셔 와라.”

   “예, 모셔 오겠습니다.”

     

   알리오드가 고개를 숙인 뒤 떠나갔다.

   그사이 오러를 마저 점검한 크라슈가 시선을 돌리자 훈련장 입구에 두 사람이 보였다.

     

   백발의 머리카락과 주름진 얼굴.

   분명 한참 나이 든 노인이었으나 그녀의 진한 푸른색 눈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나이와 무관할 정도로 강렬히 불탔다.

     

   그런 그의 눈 색은 크라슈와 똑닮아 있었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다름 아닌 크라슈의 작은 할머니.

   케셀린 발하임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구나. 크라슈.”

     

   케셀린이 자상한 웃음을 머금은 채 크라슈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크라슈는 그녀의 자상함이 거짓이란 걸 잘 알았다.

     

   저 웃음 뒤에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가격을 매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알리오드를 통해 들었겠지.”

   “예, 재시험을 치르시러 오신 거겠죠.”

   “알고 있으니 다행이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지팡이를 찍으며 크라슈 앞으로 다가왔다.

     

   “네 최근 행보는 들었다. 제국에서 문제를 일으킨 도살견을 쓰러트렸다지.”

   “요행이었을 뿐입니다.”

   “요행 또한 곧 실력이다. 그건 네가 가장 잘 알지 않느냐.”

     

   그 말 그대로다.

   그 요행 한끗이 모자라 반푼이로 태어난 게 크라슈였으니까.

     

   그녀는 여전히 사람 아픈 곳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였다.

     

   “긴 말은 하지 않으마.”

     

   그녀는 지팡이를 비스듬히 든 채 크라슈를 직시했다.

   그 눈 앞에서는 발하임의 직계들은 무심코 움츠러 들고 만다.

     

   하지만 크라슈는 오히려 그녀의 눈을 똑바로 직시할 뿐이었다.

     

   “샬롯과 같은 선상에 설 수 없다면 가주 자리는 포기 하거라.”

     

   그리고 이어진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곧 크라슈는 어쩐지 천천히 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웃음을 보고, 케셀린은 그가 실성했나 싶었다.

     

   “발하임의 가주 자리가 무슨 대수라고, 포기까지 합니까.”

     

   하지만 돌아온 말을 들은 순간 케셀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리는 강해지면 저절로 따라 오는 겁니다.”

     

   아서가 황실의 핏줄이 아님에도 기어코 황제 자리까지 추대 받았던 말도 안되는 상황처럼.

   결국 힘이 곧 자리인 세상이다.

     

   “그걸 논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시기가 아닙니까?”

     

   크라슈가 여유로운 웃음을 머금었다.

   그것을 보고 케셀린은 깨달았다.

     

   ‘보고가 거짓이 아니었군.’

     

   크라슈는 바뀌었다.

   1년 전에 봤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말이다.

     

   무엇이 그를 바꾸었는지는 잘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발하임의 직계 계급에 새로운 파란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험 치르시죠.”

     

   언제든 준비되어 있다는 오만한 반응이었다.

   케셀린은 한차례 코웃음을 치곤 지팡이를 빙글 돌렸다.

     

   “딱 한 걸음이다.”

     

   그 순간 그녀의 지팡이에서 검 한 자루가 천천히 뽑아 나왔다.

     

   “내가 딱 한 걸음, 물러날 수 있게 해보거라.”

     

   그 말을 듣고 크라슈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걸로 괜찮습니까?”

   “이제와서 겁이라도 나느냐?”

     

   케셀린이 도발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녀는 마스터급의 강자다.

     

   비록, 나이가 들어 이제는 세계 침식에 직접 맞서기에는 힘이 부치긴 하나 그렇다 해서 그녀의 실력이 어디 가지 않는다.

   케셀린의 눈에 보이는 크라슈는 이제야 겨우 엑스퍼트 상급.

     

   겁먹을 만도 했다.

     

   ‘나한테 시간을 허용해주면 안 될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크라슈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겁먹어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딱 한 번의 일격이야말로 크라슈의 특기 분야였으니 말이다.

   크라슈가 뒷목을 잠시 매만졌다.

     

   “정말 괜찮을 걸로 알겠습니다.”

     

   상대가 케셀린이다.

   문제 없이 막겠지.

     

   그게 과연 한 걸음 수준으로 마무리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크라슈는 검을 허리춤으로 당겼다.

   그러곤 천천히 뒷발을 뒤로 빼고, 앞발을 내밀었다.

     

   검집에 검을 넣은 상태로 잡은 자세.

   그것을 보고 케셀린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거합술?’

     

   거합술은 언제든 검을 신속하게 뽑을 수 있도록 배우는 기술이다.

   굳이 여기서 거합술을 시행할 이유가 없었다.

     

   ‘눈속임이라도 할 작정인가.’

     

   케셀린의 눈에 흥미가 깃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과거에 거합술의 달인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영감은 진작 관속으로 갔지만.’

     

   그의 거합술은 케셀린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목 왼편에 새겨진 흉터는 다름 아닌 그 자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디 눈요기라도 되는지 볼까.’

     

   그녀는 지팡이 검을 빙글 돌린 채 크라슈의 공격을 기다렸다.

   그러나 왜인지 크라슈는 검을 뽑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서있었다.

     

   어느샌가 눈까지 감은 그는 기다랗게 호흡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케셀린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대체 뭘하려는 거지?

     

   그 순간이었다.

     

   쿵!

     

   케셀린의 눈이 홱하니 크라슈의 검쪽으로 향했다.

     

   검집에 우뚝 박혀 있는 검.

   그곳에서 울려온 오러의 진동이 그녀에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쿵!

   

   

   

   

     

   크라슈의 검집 속, 대량의 오러가 폭풍처럼 몰려 들고 있었다.

   검집 내부를 마구잡이로 두드려 나가며 몸집을 부풀려 나가는 오러는 순간 케셀린도 오싹한 기분을 느낄 정도였다.

     

   문제는 그러한 오러의 흐름을 케셀린이 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허?”

     

   순간 그녀의 입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에 비하면 분명 느리다.

     

   그는 한순간에 저 과정을 마치고, 발검 했었으니까.

   하지만 느리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 방식은 완전히 같았다.

     

   ‘검귀의 거합술?’

     

   그녀의 왼쪽 목에 상처를 새긴 주인.

   검귀의 거합술이었다.

     

   케셀린의 눈이 무심코 흔들렸다.

   설마하니 검귀의 거합술을 크라슈가 사용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저걸 어디서.’

     

   그녀가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사이 크라슈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정신이 극한의 집중력을 이끌어내며 어느샌가 호수를 그렸다.

     

   검귀의 거합술은 뽑아지는 그 순간 폭발적인 파괴력을 낸다.

   그리고 이 과정은 사실 신검합일과 그리 다르지 않다.

     

   거합술 또한 결국 검이 곧 나이고, 내가 곧 검이여야만 펼칠 수 있는 기술이었으니까.

   그러니 크라슈는 검귀의 거합술 속 한 가지 비술을 더 더했다.

     

   크라슈가 지닌 가장 강한 파괴력을 지닌 검술.

     

   일검(一劍)

     

   토옥!

     

   떨어진 물방울이 크라슈의 머릿속에 선명히 울려 퍼진 순간이었다.

   치솟아 오른 용오름과 함께 크라슈의 검집 내부에 일검의 오러가 휘몰아쳤다.

     

   그것을 알아차린 케셀린의 눈이 뒤늦게 부릅 떠졌다.

   일대의 공기가 크라슈를 중점으로 역류하듯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득!

     

   그 순간 크라슈의 이가 맞부딪쳤다.

     

   무겁다.

     

   일검과 거합술.

   두 가지가 합쳐진 순간 크라슈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묵직해진 검의 무게를 느꼈다.

     

   뽑기조차 버거울 만큼 무거운 검속.

   크라슈의 눈 속에 일순간 붉은색이 스쳐 갔다.

     

   깨물어진 크라슈의 이 사이로 옅은 증기가 흘러나온 순간.

   크라슈의 근육과 신경 말단 하나하나가 멸화침식을 흡수하며 폭발적인 기세를 드러냈다.

     

   일순간 케셀린조차 숨을 삼킬 기세가 터져 나온 그 순간.

     

   이윽고.

     

   그의 검이 벼락같이 발검했다.

     

   파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오러를 집어삼키며 뽑혀 나간 검에서 시작된 흑염의 폭풍이 대기를 찢어 발기며 케셀린에게 그 이빨을 드러내었다.

     

   구곡용화단을 통해 샬롯 때보다도 훨씬 강해진 일격 앞.

   케셀린의 전신에서 오러가 피어 올랐다.

     

   마스터급의 오러에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 쌓아온 심상이 담겨진다.

   그렇기 때문일까, 크라슈의 일격 앞에 있는 케셀린은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해진 느낌이 들었다.

     

   검을 틀어쥔 그녀의 눈이 선명하게 빛났다.

     

   고작해야 14살밖에 안 된 소년의 앞에서 보일 것은 아니었지만.

   저 공격은 그냥 막을 수는 없을 듯싶었다.

     

   “어디서 기연을 잡아 먹고 왔는지 몰라도.”

     

   당겨진 숨과 함께 케셀린의 검 사이로 마치 꽃잎이 흩날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그 푸른색 꽃잎은 순식간에 케셀린의 검을 뒤덮었고, 이윽고 코앞까지 다가온 크라슈의 검을 향해 뻗어졌다.

     

   일순간 케셀린의 입에 걸린 웃음과 함께 그녀의 검과 크라슈의 공격이 맞부딪쳤다.

     

   “용이 되려고 아주 작정했다는 건 잘 알겠구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말을 끝으로 엄청난 폭음이 거세게 울려 퍼졌다.

   피어오른 연기와 함께 시각과 청각이 일순간 동시에 먹먹해졌다.

     

   그 사이로 크라슈는 간신히 선 채로 숨을 몰아 쉬었다.

   이윽고, 천천히 연기가 사라졌을 때.

     

   처음 자리와 한참 밀려난 케셀린이 있었다.

   동시에 크라슈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낸 그녀의 검이 떨리고 있었다.

     

   충격을 온전히 받아내지 못한 탓이었다.

     

   뚜둑!

     

   그 순간 그녀의 검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땡그랑!

     

   그리고 그걸 마지막으로 그녀의 검날이 부러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케셀린은 손을 뻗어 부서진 검날을 들어 올렸다.

     

   ‘오래된 검이고, 내가 놀라 반응이 좀 느리긴 했다지만 부서질 줄이야.’

     

   그녀의 입에서 일순간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가진 오러는 아직 마스터 급이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아무래도 이 일격만큼은 마스터 급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시험은.”

     

   케셀린은 자신이 서있던 장소를 힐끗 보았다.

   최소 열 걸음은 넘게 멀어졌다.

     

   결과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통과다.”

     

   자신이 총집사장이 된 이후 이 시험에서 성인이 되기 전 이 정도로 물러서게 한 직계가 있던가?

   아쉽지만 그 샬롯마저 일곱 걸음이 최대였다.

     

   크라슈는 그것을 세 걸음이나 더 물러서게 한 것이다.

     

   케셀린은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방금 일격은 분명 그의 전력을 다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일격이었다.

     

   솔직하게 따진다면 그야말로 자폭과 같은 수준이긴 하다만.

   결과는 결과였다.

     

   “편히 쉬도록 하거라.”

   “잠시, 만요.”

     

   케셀린이 보고를 위해 떠나려 하자 숨을 몰아쉬던 크라슈가 힘겹게 그녀를 불렀다.

     

   “붉은 마탑 쪽을 지원하고 있는 발하임의 청해 기사단에 소속 되고 싶, 습니다.”

     

   총집사장인 그녀는 발하임 기사단 총괄에게 직접 말을 전할 수 있다.

     

   “……굳이 청해 기사단에 말이더냐?”

     

   청해 기사단은 발하임에서도 고작해야 중간 정도 수준의 기사단이었다.

   후에 가주에 오를 때 지지를 얻고자 상위 기사단에 들어가 인망을 쌓으려는 거면 모를까, 청해 기사단은 케셀린도 의아스러웠다.

     

   “예, 굳이.”

     

   본인이 그렇다하니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집사장의 역할은 직계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도 있으니까.

     

   “알았다. 말해놓으마.”

   “감, 사합니다.”

     

   그것을 끝으로 크라슈가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두 다리로 서있는 것이 한계였기 때문이었다.

     

   ‘나원.’

     

   이번 직계 중 막내는 어지간히 특이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케셀린은 그렇게 청송관을 떠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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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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