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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EP. 50

     

   탑의 3층에 도착한 우리는 도우미에게 숙소를 배정받았다.

     

   3층의 주제는 다른 좌표와의 경쟁.

   플레이어들의 컨디션은 각 좌표의 승리와도 연관이 있었기에 도우미들은 그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도우미가 의심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우미들끼리 눈에 쌍심지를 켜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니 완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조용히 안내를 따르기로 했다.

     

   – 3층에서는 다른 좌표의 플레이어들과 경쟁을 할 거예요! 뭐… 쉽게 설명하자면 지구에 있던 체육대회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숙소를 배정받은 이후, 우리는 안내에 따라 곧바로 수련관으로 추정되는 집결지에 모였다.

   토끼가 앞에 서서 조잘대고, 앉아서 설명을 듣고 있자니 하교를 하고 태권도장에 옹기종기 모여 관장님의 지시를 기다리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다.

     

   – 그나저나 여러분들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다들 2층은 어떠셨나요?

   “……”

   “……”

     

   하지만 토끼의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애초에 세상이 멸망하고 탑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는데 그 원흉일지도 모르는 토끼가 궁금한 걸 굳이 조잘거릴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 아휴, 제가 좀 미운 건 알겠는데. 우리 소통을 좀 합시다! 3층에서는 우리 같은 편이라니까요? 나! 너! 우리! 오케이?

     

   토끼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통통 치며 소리친다.

     

   사실 녀석의 의도를 명확히 알 수는 없다 해도 놈과 이렇게 척을 지고 있어 봐야 우리에게 좋을 것은 없었다.

   목숨이 오락가락한 죽음의 게임에서 저 토끼는 ‘도우미’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도와주던 안내원이었으니까.

     

   “오랜만이긴 하네.”

   – 오오! 드디어 말을 하시네! 답답해서 죽는 줄!

     

   나의 대꾸에 토끼가 반색하며 박수를 친다.

   정말 오랜만이긴 했다. 물론 토끼 말고.

     

   “다들 한 달 만인가요?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닌데 다들 몰라볼 뻔했네요.”

     

   나의 인사에 옆에 있던 박조철이 씨익 웃었고 한가민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색을 드러낸다.

     

   “변한 건 시인 씨가 제일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요! 아저씨 이 옷은 뭐예요? 아까 보니까 원단이 장난이 아닌 것 같던데.”

     

   박조철의 말에 격하게 동의하며 은근슬쩍 내 옷을 만지는 한가민이 눈에 들어왔다.

   2층에서 경험한 배경이 중세 판타지였던지 승마복과 흡사한 옷을 입은 그녀. 옆구리에는 작은 레이피어까지 걸친 것을 보니 나름대로 전투 수련을 받은 모양이었다.

     

   “선물 받았어. 가민이 너는 2층에서 검술 배웠어?”

   “오!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아까 내 옷 잡는데 손이 꺼끌꺼끌하더라.”

   “이야, 아저씨가 농담을 다 하시네요. 제 칼 보고 때려 맞힌 거면서.”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생각해 보니 어떻게 알았나 싶기도 하다. 굳은살, 그냥 느껴지던데.

     

   “시인 씨는 2층 어떠셨어요?”

   “저도 궁금하군요. 아까부터 들고 계시던 그 무공서 냄새가 풀풀나는 책들도 궁금하고요.”

     

   박조철과 한가민에 이어서 서세영과 남궁천호까지 합세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에 사람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자 앞에 있던 토끼가 손을 휘적이며 우리들을 진정시켰다.

     

   – 어…… 다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건 알겠는데 저 한 번만 봐주실래요? 진짜 중요한 이야기거든요?

     

   토끼의 물음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처음 튜토리얼을 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

   하지만 우리가 달라졌기에 토끼에 대한 공포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 사실 이번 3층 주제가 경쟁이라 말했지만 우리 좌표는 조금 상황이 달라요.

     

   “그게 무슨 말이야?”

     

   – 혹시 여러분 스스로 지금 얼마나 강하다고 생각하세요?

     

   토끼의 물음에 사람들의 얼굴에 의문이 피어오른다.

   강함이라는 말은 상대적이다.

   그 비교 대상이 생판 남이 될 수도 있고 옆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과거의 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를 묻는 것이라면.

     

   “저희도 나름 강해지지 않았을까요?”

     

   토끼의 물음에 옆에 있던 이름 모를 여성이 조심스레 대답한다.

     

   2층에서 각자 수련을 하고 시간을 보내며 사람들은 각자의 기량을 갈고 닦았다.

   검을 배운 사람도 있었고 함정을 설치하는 방법, 부족하나마 마법을 배운 사람도 간간이 있었으니 충분히 성장했다 말할 수 있었다.

     

   싸움이라고는 미디어 매체로만 접하던 현대인들이 초인적인 육체로 검을 휘두르고 맨손으로 불덩이를 쏜다는데 과거와 비교를 한다는 건 불가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 그쵸, 강해지긴 했겠죠. 물론 지구 좌표의 인간 기준으로는 아주 그냥 초인이긴 하죠.

     

   여성의 말에 토끼가 수긍한 듯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토끼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긍정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것이었다.

     

   – 근데 그거 알아요? 여기 모인 모든 좌표 중에 ‘지구’가 제일 약하다는 거? 물론 과거에 비해서 다들 강해지긴 했어요. 지금쯤 그 튜토리얼 더미를 만나면 맨손으로 찢을 수 있는 사람도 여기 없진 않을걸요?

     

   그렇게 말한 토끼가 나를 힐끗 곁눈질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토끼는 서서히 표정이 굳어가는 사람들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 근데 그래도 약해요. 다른 좌표 플레이어들하고 비교하면 아주 처참하죠.

     

   녀석이 설명한 바에 따르면 3층의 경쟁은 약육강식의 야생에 가까웠다.

   플레이어들의 경쟁에 페어플레이 따위는 없었다. 서로를 이기기 위해 살을 뜯고 목숨을 취하는 것이 기본.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죽이고 승리한다.

   말은 체육대회 같은 것이라 떠들어댄 토끼였지만 녀석도 3층의 싸움이 그렇게 가볍게 넘길만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쁜 일이 있으면 그 안에 좋은 일도 있는 법.

     

   – 그런데…… 사실 그게 우리한테 좋은 일일 수도 있기는 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 까놓고 말해서 우리는 진짜진짜 약한 파티거든요? 진짜 어지간하게 약한 느낌이면 다른 좌표에서 먼저 노릴 수도 있을 텐데 우리는 진짜진짜진짜진짜 약해서 안 건드릴 가능성이 높아요.

     

   과한 허접들이라 경쟁상대로 취급도 안 해준다는 말.

     

   – 혹시 늑대가 나비 잡아먹는 거 봤어요? 본 사람 있으면 손 한 번만 들어봅시다. 궁금해서.

     

   어처구니없는 우리에 대한 판결에 사람들의 얼굴이 멍해졌다.

   로비에서 뭔 괴물 같은 놈들이 수두룩 있기에 우리가 약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나비는…… 너무 무해한 느낌이지 않은가.

     

   “우리가 그 정도라는 거야?”

     

   – 사실 나비 급은 아니에요. 딴 놈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뭐, 굳이 비유하자면…… 꿀벌 정도는 되겠네요. 음, 늑대가 꿀벌도 안 잡아먹기는 하는데…

     

   “젠장, 이걸 좋아해야 돼?”

     

   어물쩡거리는 토끼의 설명에 인지부조화가 온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약해서 안 건드릴 거라니… 그래서 안전하니 썩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니…

     

   하지만 나는 토끼의 말을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약해서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놈들이 우리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머릿속으로 생각이 정리되자 나는 토끼가 우리에게 던진 말의 저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잘만하면 급소에 독침 한 방 정도는 먹일 수 있다는 말이지?”

     

   목숨이 걸린 싸움.

   나는 2층 무림을 겪으며 무공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서를 제대로 머릿속에 때려 박을 수 있었다.

     

   진검승부에서 방심하면 황천길은 하이패스다.

   상대를 전력을 파악하지 못하면 반드시 대가리가 깨진다.

     

   – 후후… 역시 김시인 플레이어. 화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셨군요.

     

   그리고 방심한 상대를 황천길로 보내주고 대가리를 후려칠 방법을 깨닫는 것은 바로 본인의 몫이었다.

     

   –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전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2층에서 뭘 했는지 먼저 자랑해볼 사람?

     

   반짝이는 눈동자로 좌중을 돌아본 토끼.

   그리고 나는 가장 먼저 손을 들어 무림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리고 다음 날.

     

   띠링.

     

   [3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새로운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

   『3층 – 경쟁전』

     

   주제 : 경쟁

   난이도 : ?

     

   설명 : 3층은 당신의 힘을 뽐낼 아주 좋은 무대입니다. 도우미의 안내에 따라 개인전과 단체전, 좌표전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십시오. 능력을 십분 활용해 좋은 성적을 거두십시오. 모든 점수는 개인, 팀별로 계산되며 경쟁전이 끝날 시, 보상을 정산합니다.

     

   임무 : 최소 1개 이상의 경쟁전에 참가하기.

   제한 : 5개를 초과하는 경쟁전에 참가할 수 없음.

     

   보상 : ???

   실패 페널티 : 사망

   —

     

   3층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친 우리는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떠오른 임무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설명만 보면 정말 체육대회 같네요.”

     

   당황스러운 기색이 물씬 드는 서세영의 말.

   토끼의 비유를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뻔뻔하게 떠오르는 알림을 보니 딱히 추억은 사내 체육대회가 떠오른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망’이라는 소름 돋는 단어만 빼면 확실히 그렇군요. 게다가 정보가 너무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개인전이니 단체전이니 뭔가 거창하긴 한데 말이죠.”

     

   그녀의 말에 남궁천호가 운을 뗐다.

   평소에 말이 그렇게 많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이제 보니 긴장을 할 때마다 말을 많이 하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

     

   남궁천호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일. 도우미 토끼도 경쟁전의 내용을 발설하면 성좌에게 페널티를 받는다고 하니 어떻게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뭐…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다른 참가자들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 일 테니까요.”

     

   조건은 똑같다.

   물론 상대는 시작 라인을 앞서간 이세계의 초인들이긴 했지만, 정보의 싸움이나 자존심 싸움에 한국인을 넘을 자는 없을 거라는 게 나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그때.

     

   웅성웅성-

     

   우리가 경쟁전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사이, 멀지 않은 장소에서 작은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잖아…!

   …네놈들이 먼저……!

     

   폭동이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얌전하고 사소한 다툼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큼지막한 느낌.

   그리고 그 소리를 다른 네 사람도 들었던지, 우리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한 번 가봅시다.”

     

   나는 네 사람을 이끌고 곧장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소음, 옅은 비린내와 함께 올라오는 찌릿한 혈향.

     

   그리고 코너를 돌아 로비를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꽤 많은 인파가 모여 작은 원형 경기장을 이루고 있었다.

     

   크르르…!

   그라아…!

     

   순백색의 창백한 피부와 귀 뒤로 아가미가 길게 늘어져 있는 어인들.

   그리고 그들의 맞은편에는 광택이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긴장된 얼굴로 어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게 뭔 일이래요?”

     

   한가민의 말에 나는 내력을 귀로 끌어올려 주변인의 모든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분위기를 봐서 싸우는 것은 분명한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들이 대치하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가……했다지?

   ……쳤네, 미쳤어.

     

   내력을 집중할수록 선명해지는 구경꾼들의 대화.

     

   “고작 살짝 부딪쳤다고 사람을 공격하다니…”

   “저 꼬마 어인이 왕이라잖아.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사람을 죽여?”

     

   자세히 보니 창백한 어인들 사이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떨고 있는 작은 꼬마가 보였다.

   머리 위에 왕관을 연상시키는 금띠를 두른 어린 어인.

     

   당장이라도 서로를 죽일 것 같은 분위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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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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