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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50 – 교수들의 이야기>

     

    오크노디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하고 싶은 명호스님에게도 피치 못할 시련이 찾아왔다.

     

    “강의시간 동안은 강의를 해야 하니 감시를 이어갈 수 없겠구나!”

     

    오크노디가 어떤 강의를 들으며 무슨 사고를 칠까.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조마조마했다.

    어린 스님인 동자승들이라면 따끔하게 혼을 내기라도 할 텐데, 오크노디는 동자승도 아니다.

    그저 엇나가지 않기를 기도할 뿐.

    강의가 끝나자마자 명호스님은 곧바로 교수용 마법시계와 연동된 수강신청 내역을 검색했다.

     

    <오크노디의 수강신청 내역>

    <①월요일 2교시 – 안목키우기(모험학부, 브론즈 디 이스트라다)>

     

    “허어어.”

     

    굉장한 일이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도둑놈으로 눈도장이 단단히 찍힌 오크노디가 제국 제일의 도둑놈 강의를 듣다니.

    운명의 만남이 이러할까.

    안 그래도 날아다니던 아이의 등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꼴이 이러할까.

    의적 이스트라다 교수의 신들린 기술까지 더해지면 오크노디가 얼마나 도둑에 더 가까워질지 벌써부터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눠보아야겠구나.”

     

    오크노디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건 막아야 한다.

     

    ‘이스트라다 교수는 학생욕심이 크게 없는 분이니 잘 말하면 이해해주시겠지.’

     

    강의를 마칠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는 뻔하다.

    제국출신 교수들에게 단단히 눈독이 찍혔을 그녀가 다른 교수들과 교분을 나눌 일은 없다.

    십중팔구 자신에게 배정된 교수용 개인연구실에 틀어박혀있을 터.

     

    “이스트라다 교수님. 계십니까?”

     

    그윽한 향수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제국의 도도한 여교수들과 달리, 이스트라다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여교수 특유의 향수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무색무취.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신출귀몰한 의적답게 사람도 없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척이 없었다.

     

    “문이 열려있지 않았습니까. 안에 계신 건 알고 있으니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시지요. 학생에 대한 건으로 상담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귀찮게 구시는군. 중앙의 교수가 아니니 봐드리는 겁니다.”

     

    딸칵.

    드르르르륵.

    구구궁!

     

    연구실의 벽과 바닥, 천장에서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이 사람.

    연구실에 무슨 짓을 해놓은 걸까.

    마법사의 공방에서 말싸움을 하지 말라는 격언처럼 의적의 연구실에는 함부로 발을 들이지 말라는 격언이 생겨야 하지 않나 걱정될 수준이다.

     

    “혹시 도둑 대비용으로 기관장치를 설치하셨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 제국의 녹봉을 받는 제국출신 교수들이라는 도둑놈들이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설치한 대 제국교수 요격장치이니.”

    “…사이가 너무 나쁘지 않습니까?”

     

    바닥이 좌우로 갈라지며 지하계단이 나타났다.

     

    “공사다망하신 동방의 교수께서 제 교우관계를 염려하러 오신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학생의 상담을 위해 찾아온 겁니다.”

    “손버릇 나쁜 학생이라도 있나? 미리 말해두지만 흔한 소매치기나 잡범 따위는 관심 없습니다.”

     

    분명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데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여교수.

    그녀의 손에 들렸던 무언가가 슈슉 하고 사라졌다.

     

    ‘…암기?’

     

    와이셔츠 너머로도 자기주장이 강한 볼륨감 넘치는 가슴 때문에 눈치 채는 것이 늦었다.

    어쩌면 훌륭한 의적이 되려면 매력적인 가슴을 지니는 것은 필수조건이지 않을까.

     

    ‘헛. 소승도 참. 이 무슨 실례되는 생각인지.’

     

    스님답지 않은 추태에 얼굴을 붉히는 그의 앞에 어느덧 계단을 모두 오른 이스트라다 교수가 삐딱하니 서서는 그를 쳐다보았다.

     

    “역시 스님답게 매료에서 벗어나는 속도가 빠르십니다. 널리고 널린 땡중들과는 다르시군요.”

    “그런 짓을 동료교수한테 했단 말입니까?”

    “<명상으로 배우는 마나연공법의 기초> 강의의 효과가 궁금했습니다. 효과는 확실하군요.”

     

    싱긋 웃는 얼굴이 미녀의 웃는 얼굴 하나만 세상에 풀리지 않을 화가 없다는 말처럼 대자대비大慈大悲스러운 인자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의적에게 아름다운 외모는 필수조건이다.

    이야기가 길어져봤자 자신만 추한 꼴을 보겠다는 생각에 명호스님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전에 강의를 신청했던 오크노디양을 기억하십니까?”

    “우등생이었지.”

    “오크노디양은 재단이 파견한 장학생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장학생의 정체를 철저하게 비밀로 부쳤던 재단이 이번만큼은 대놓고 지원 사실을 드러내었죠.”

    “기이한 일이군요.”

     

    재단을 모르는 교수는 없다.

    그들의 악명에 당한 교수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브론즈 디 이스트라다.

    신성중앙제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희대의 의적은 그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제자도둑놈들이 대놓고 함정카드를 공개하다니.”

    “명백히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쪽의 장학생은 성장가능성이 막힌 인재만이 정체를 드러냈을 텐데. 재단이 그 아이의 진가를 모르는 겁니까?”

    “재단의 방침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오크노디 신입생 개인의 뛰어남도 예사롭지 않고 말입니다.”

    “그래서 특별감독을 하고 계셨군.”

    “맞습니다.”

    “그래서, 예의 상담이라는 건은?”

    “아이의 장래가 불안정해지면 재단의 영향력이 강화됩니다. 저와 교장님은 아이를 재단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이끌어갈 생각입니다.”

    “그게 본 교수와 무슨 상관인지?”

    “오크노디양의 수강신청을 취소해주십시오.”

     

    이스트라다 교수가 재미있다는 듯 가슴팍 아래로 팔짱을 꼈다.

    팔짱을 끼며 모여진 가슴이 와이셔츠 아래로도 자기주장을 했지만 이미 단단히 정신무장을 한 명호스님은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그 아이가 의적인 제 강의를 들어서 마음에 안 듭니까?”

    “안 그래도 위험성이 높은 아이입니다. 입학준비기간 동안 경비초소와 기숙사 사감의 방, 기숙사 외벽 등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몰래 지켜보던 절 제외하면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일입니다.”

    “호오.”

    “기술을 배우지 않고도 그 정도인 아이가 전문적인 기술을 강의에서 배우거든 무럭무럭 성장하겠죠.”

    “그렇겠죠. 이미 첫 강의에서부터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그것이 문제입니다.”

     

    명호스님은 미래가 걱정되었다.

     

    “의적의 기술을 완벽하게 연마하고 제 2의 의적이 된 아이가 드나들어서는 안 될 곳을 드나들거든, 그 아이의 사회적 평판이 어찌 되겠습니까.”

    “멋지다? 언니 나 죽어?”

    “…제국의 공적이 됩니다. 교수님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순진무구한 아이에게 자신과 같은 길을 걷도록 만들 셈입니까?”

    “말을 섭섭하게 하시는군.”

    “이해해주십시오. 갈 곳이 사라진 아이에게 재단이 손을 내민다면 이를 어찌 뿌리치겠습니까. 평판의 불안정화는 아이의 장래에 치명적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해했다.

    참 올곧은 사람이네.

    이스트라다 교수는 동방출신 교수는 과연 제국의 썩어빠진 교수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을 대충 속여 돌려보낸다면 뒷맛이 나쁘다.

    그녀는 말했다.

     

    “경비초소와 기숙사 사감의 방에는 허가받지 않은 인물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마력감지기가 있습니다. 잡히지 않았다면 본능적으로 피한 것이죠.”

    “?”

    “그런 재능을 지닌 아이가 제 교육을 받지 않는다고 도둑질을 그만두겠습니까?”

    “그 부분은 소승이 따끔하게 교육을…”

    “강의. 바쁘시죠?”

    “…그건.”

    “24시간 그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할 수는 없습니다. 아카데미 교수로서 바람직한 행동도 아니죠. 교장께서도 그것까지 바라진 않았을 겁니다.”

     

    실크햇을 벗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크게 쓸어 뒤로 넘긴다.

    그 당당한 동작 너머로 호박색 눈동자에 ‘이걸 어떻게 잡아먹을까’ 하는 고양잇과 맹수 특유의 사냥본능처럼 장난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매혹 하나 없이도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명호스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교장이 저와 나눈 약속도 있고.”

    “약속…말입니까?”

    “제국을 훔칠 대도의 그릇이 나온다면 그 학생을 수제자로 삼게 해주겠다. 그 아이의 출신과 신분이 어떻든. 당사자의 동의만 얻는다면 반드시.”

    “허어. 교장님께서 황당한 약속을 하나 해버렸군요. 언약입니까?”

    “물론.”

     

    언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맹세.

    약속을 깨는 순간, 존재의 격이 하락하게 된다.

    초월종인 드래곤은 <아카데미 교장노릇을 방해하는 국가는 지도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언약을 했고, 구백 년 전에 실제로 국가 하나가 소멸했다.

    이것은 드래곤의 유희의 연장선상.

    대륙의 수많은 기관과 조직들이 미온적인 방법으로 아카데미를 대하는 이유였다.

     

    “도둑이 될 운명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의적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이의 장래를 위한 길입니다. 의적이 그렇게 나쁜 직업도 아니고요.”

    “평범한 도적이 아닌 의적이라서 인의를 배우기 때문입니까?”

    “연수입이 좋습니다.”

    “…….”

    “장래에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죠.“

    “교수님.”

    “농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진지하게 한 말입니다. 세상 대부분의 문제는 돈이 부족해서 생기죠. 돈이 있다면 그 아이도 재단에 의지하지 않을 겁니다.”

     

    명호스님은 부디 이 여자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기를 바랬지만, 아무리 봐도 진심으로만 보였다.

     

    “오크노디양은 제가 책임지고 대륙 제일의 의적으로 키워드리죠.”

     

    혹 떼러 왔다가 혹만 더 붙인 것처럼 수강신청을 취소하러 왔다가 제국 제일의 의적 이스트라다 교수의 의욕에 불만 붙인 꼴이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녁시간대 업로드가 탐이 났던 거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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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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