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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

        “장 대인께 말인가?”

        ​

        “지금 단서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 아닙니까. 어차피 보물을 훔쳐 간 자의 위치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최대한 빠르게 장 대인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는 편이 이득입니다.”

        ​

        “흠…”

        ​

        그도 내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난감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

        “그것밖에 없겠군.”

        ​

        “그렇습니다.”

        ​

        그는 어딘가 찝찝한 얼굴로 일어섰다. 

        ​

        아무래도 장 대인이라 불릴 정도면 신분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닐 테니 증언을 듣기 껄끄럽다고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

        보물의 입수 경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다소 껄끄러운 경로로 입수했다면 치부를 들추는 일이 되니까. 그런 상황이 되면 우리 둘 다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될 확률이 높았다.

        ​

        원래 켕기는 게 많은 인간은 비밀을 숨기기 위해 더러운 짓도 서슴지 않고 하는 법이니까.

        ​

        “후…가능하면 장 대인과 접촉하고 싶지 않았지만…상황이 상황이니 장 대인도 이해해주시겠지. 장 대인께는 내일 가보도록 하겠네. 지금 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

        “아 예.”

        ​

        “그럼 좋은 밤 보내게나.”

        ​

        그는 피곤에 절은 얼굴로 등을 돌려 객잔을 나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 주방 쪽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객잔 주인에게 목례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

        가능하면 빨리빨리 해결하고 다시 무림맹으로 가든지 해야지.

        ​

        ————————–

        ​

        “아, 왔는가 자네.”

        ​

        “좋은 아침이군요.”

        ​

        “별로 좋진 않다네. 성과가 없다고 열심히 까이고 왔으니 말일세.”

        ​

        상사가 조인트 까는 것만큼 짜증 나는 게 없지. 나는 유독 깐깐하게 굴었던 부단장을 떠올렸다. 그 인간도 진짜 깐깐하게 굴었었는데. 

        ​

        그 깐깐함으로 보급을 알뜰하게 챙겨서 배 곯지 않게 해주긴 했지만…나름 이것저것 많이 배웠었는데.

        ​

        “이보게.”

        ​

        “…아. 죄송합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

        “가끔 향수를 떠올릴 때도 있는 법이지. 그럼 장 대인을 만나러 가겠네.”

        ​

        우리는 단서를 얻기 위해 장 대인이 사는 저택으로 향했다. 듣기로는 이 도시에서 가장 커다란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던가.

        ​

        “밤사이에 발견된 단서가 있습니까?”

        ​

        “일단 도시 바깥으로 나간 것 같지는 않다네. 도시를 샅샅이 뒤졌지만 추종향의 흔적이 나오질 않았으니. 수상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아서 사건이 오리무중에 빠져버렸다네.”

        ​

        “도시 바깥으로 나가지는 않았다라…”

        ​

        왜?

        ​

        그냥 나가서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도둑이 뭐가 있다고 이 도시에 남아? 뭐 결계 같은 게 있어서 도망 못 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몰래 쓱 나가면 될 텐데?

        ​

        “의문이 너무 많군요. 절대 평범한 도둑은 아닙니다. 경공을 쓰는 시점부터 평범한 도둑이라 하기엔 뭔가 이상하지만…”

        ​

        “세상에 무공 배운 무뢰배들이 넘치는 세상이니 그런 놈도 있겠지.”

        ​

        “…무인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

        “미안하네.”

        ​

        “됐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이 문을 넘어서 장 대인을 만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듣자 하니 수십 년 전 홀연히 나타나 상단을 창단하고 순식간에 키워냈다던가. 여러모로 이 도시에서 입지전적한 사람이라는 모양이었다. 

        ​

        그가 야시장이 열릴 때마다 공개하는 그의 수집품은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값이라고 했던가. 

        ​

        나는 궁궐인지 저택인지 모를 저택의 대문을 올려다보았다.

        ​

        아주 그냥 경복궁을 지어놨네. 이 정도면 정원 한 바퀴만 돌아도 한 시간 정도는 필요할 기세였다. 당장 우리가 저택의 대문에 도착하는 동안 기나긴 벽을 지나서 와야 했으니까. 

        ​

        이 정도면 한 구역 전체를 저택으로 뒤덮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

        “몽 포두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

        “장 대인께 여쭤볼 것이 있어서 왔다네. 장 대인님은 지금 안에 계시는가?”

        ​

        “예, 계십니다.”

        ​

        “기별을 넣어주게.”

        ​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

        문 앞을 지키던 무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얌전하게 무사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무사가 돌아온 것은 대략 일다경(15분)이 지난 후였다.

        ​

        “따라오십시오.”

        ​

        무사들이 문을 활짝 열으며 말했다. 우리는 무사를 따라 문을 넘어 저택 내부로 들어섰다. 

        ​

        “…이 도시 최고 부자의 집은 달라도 이렇게 다른 건가.”

        ​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인 분이시라네.”

        ​

        딱 봐도 그래 보이네.

        ​

        그런데 이렇게 돈 많은 부자가 경비를 그렇게 허술하게 잡아놨다고?

        ​

        이것도 좀 석연치 않은데.

        ​

        어쩌면…처음부터 누군가 보물을 훔쳐 가리란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

        아니다, 지금은 모든 게 억측에 불과하다. 빗자루로 한 번 쓸면 전부 쓸려나갈 빈약한 단서들로 뭘 추측을 한단 말인가. 일단은 장 대인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가장 중요헀다.

        ​

        “장 대인! 몽 포두가 왔습니다!”

        ​

        “들어오라 전하게.”

        ​

        말 사이에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

        “들어오시랍니다.”

        ​

        방도 넓군. 신발을 벗고 들어선 방안은 거실에 가까운 넓이를 자랑했다. 이렇게 큰 집에 사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가. 

        ​

        이런 데서 살면…아니다.

        ​

        그렇게 땡기진 않네.

        ​

        너무 넓으면 청소하기도 귀찮은데.

        ​

        “몽 포두. 이틀 만이군. 그런데 자네 뒤에 있는 삿갓을 쓴 놈은 누군가?”

        ​

        아, 삿갓을 안 벗었구나. 나는 이제 너무 한 몸이 되다시피 한 삿갓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곤 포권을 했다.

        ​

        “윌리엄 마셜이라고 합니다. 위 모라고 불러주시지요.”

        ​

        “색목인이라…”

        ​

        장 대인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어째서인지 경계심 섞인 눈길로 나를 흘겨보았다.

        ​

        “색목인을 데리고 다니는 줄은 몰랐네. 몽 포두.”

        ​

        “저도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법 총명하여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데려왔습니다.”

        ​

        “흠…”

        ​

        조금 얍삽하게 생긴 인상의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나를 훑어보는 느낌은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깽판을 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가 탐색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

        “흠. 그래. 쓸만하면 상관없겠지…”

        ​

        참 찝찝하게 구시네.

        ​

        그가 탐색을 끝낸 것을 눈치챈 몽 포두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

        “혹시 보물에 대해서 들을 수 있나 싶어 찾아왔습니다.”

        ​

        …흠.

        ​

        미간을 찌푸리는데…

        ​

        “우연한 기회에 구입한 비급일세. 낡은 서책이라 호기심에 사 보았네만, 내 호위무사에게 확인시켜보니 무영신투의 비급이라더군. 그래서 자랑도 할 겸 야시장에 전시해둔 것뿐이네.”

        ​

        우연한 기회라.

        ​

        구린 냄새가 나는데.

        ​

        정상적인 경로로 얻은 게 아닌 건가?

        ​

        대놓고 물어볼까? 아니면…

        ​

        “그것뿐입니까?”

        ​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겐가?”

        ​

        “아닙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더 정보가 있나 하여…”

        ​

        “몽 포두. 분명 서책에 추종향을 뿌렸음에도 추적을 못한겐가?”

        ​

        “그건…”

        ​

        “허. 내 몽 포두를 믿었거늘.”

        ​

        …아무리봐도 우릴 빨리 쫒아내려는 것 같은데.

        ​

        나는 시선을 움직여 노인의 몸을 몰래 살폈다. 어쩌면 노인의 몸에 내가 찾지 못한 증거가 있을 지도 몰랐으니까. 

        ​

        태양혈은 납작하고, 근육은 거의 없고…아니지. 이런 걸로는 확신할 수 없다.

        ​

        이렇게 된 이상 모험을 해보는 게 답인가.

        ​

        “자네에겐 실망했네. 이 일은 다른 포두에게 맡길 테니 자네는 이만…”

        ​

        “어르신.”

        ​

        “음? 자네는 뭔가?”

        ​

        “무영신투의 비급을 알아보았던 호위무사를 불러주실 수 있습니까?”

        ​

        “…그 무사는 얼마 전에 일을 그만두었네.”

        ​

        …거짓말 같은데.

        ​

        유명한 물건도 아니고, 고작 호위무사가 낡은 서책을 읽고 무영신투의 비급인 걸 어떻게 알아보는데?

        ​

        물론 무영신투가 대놓고 자기 별호를 집어넣고 썼을 수도 있기는 했다.

        ​

        하지만 장 대인의 반응은 그런 원인에서 비롯된 반응이 아니었다.

        ​

         딱 보아도 나를 쳐다보는 눈에서 쏟아지는 경계심이 한층 더 강해졌으니까.

        ​

        “비급을 읽었다는 건…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런데도 보내주셨던 겁니까?”

        ​

        상인이? 막말로 그놈이 기억한 내용을 다시 책으로 만들어서 팔면 가치가 떨어지는데? 물론 그런 미친 짓을 할 놈이 어디 있겠냐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잖아.

        ​

        “지금 나를 심문하는 겐가?”

        ​

        “무영신투의 비급을 찾으시는 건 대인이십니다.”

        ​

        장 대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적을 보는 듯한 눈빛. 

        ​

        “…불쾌하군.”

        ​

        당혹스러움과 노기가 섞인 그의 얼굴을 관찰하며 기회를 노린다.

        ​

        단서를 얻을 기회를.

        ​

        “장 대인께서 숨기는 것이 있는 이상, 무영신투의 비급을 찾을 방법은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

        나야 꼬우면 그냥 안 한다 하고 나가면 그만이지. 관과 어느 정도 인맥을 트는 건 수포로 돌아가겠지만 어차피 난 무림인이나 다름없는 몸.

        ​

        없어도 적당히 무림 쪽 인맥을 만들어서 먹고살면 그만이다.

        ​

        “몽 포두. 이것 또한 자네의 의지인가?”

        ​

        “아, 아닙니다. 이보게, 자네 갑자기 왜 그러나?”

        ​

        몽 포두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말렸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

        아직 하나 찔러볼 게 남았거든.

        ​

        나는 입속에 숨긴 비수를 내뱉었다.

       

       강철보다 단단할 수도, 풀잎보다 연약할 수도 있는.

        ​

        “…장 대인께서는 무영신투와 인연이 있는 것 아닙니까?”

        ​

        노인의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50화…

    벌써…

    시간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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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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