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대인께 말인가?”
“지금 단서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 아닙니까. 어차피 보물을 훔쳐 간 자의 위치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최대한 빠르게 장 대인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는 편이 이득입니다.”
“흠…”
그도 내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난감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것밖에 없겠군.”
“그렇습니다.”
그는 어딘가 찝찝한 얼굴로 일어섰다.
아무래도 장 대인이라 불릴 정도면 신분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닐 테니 증언을 듣기 껄끄럽다고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보물의 입수 경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다소 껄끄러운 경로로 입수했다면 치부를 들추는 일이 되니까. 그런 상황이 되면 우리 둘 다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될 확률이 높았다.
원래 켕기는 게 많은 인간은 비밀을 숨기기 위해 더러운 짓도 서슴지 않고 하는 법이니까.
“후…가능하면 장 대인과 접촉하고 싶지 않았지만…상황이 상황이니 장 대인도 이해해주시겠지. 장 대인께는 내일 가보도록 하겠네. 지금 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아 예.”
“그럼 좋은 밤 보내게나.”
그는 피곤에 절은 얼굴로 등을 돌려 객잔을 나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 주방 쪽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객잔 주인에게 목례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가능하면 빨리빨리 해결하고 다시 무림맹으로 가든지 해야지.
————————–
“아, 왔는가 자네.”
“좋은 아침이군요.”
“별로 좋진 않다네. 성과가 없다고 열심히 까이고 왔으니 말일세.”
상사가 조인트 까는 것만큼 짜증 나는 게 없지. 나는 유독 깐깐하게 굴었던 부단장을 떠올렸다. 그 인간도 진짜 깐깐하게 굴었었는데.
그 깐깐함으로 보급을 알뜰하게 챙겨서 배 곯지 않게 해주긴 했지만…나름 이것저것 많이 배웠었는데.
“이보게.”
“…아. 죄송합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가끔 향수를 떠올릴 때도 있는 법이지. 그럼 장 대인을 만나러 가겠네.”
우리는 단서를 얻기 위해 장 대인이 사는 저택으로 향했다. 듣기로는 이 도시에서 가장 커다란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던가.
“밤사이에 발견된 단서가 있습니까?”
“일단 도시 바깥으로 나간 것 같지는 않다네. 도시를 샅샅이 뒤졌지만 추종향의 흔적이 나오질 않았으니. 수상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아서 사건이 오리무중에 빠져버렸다네.”
“도시 바깥으로 나가지는 않았다라…”
왜?
그냥 나가서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도둑이 뭐가 있다고 이 도시에 남아? 뭐 결계 같은 게 있어서 도망 못 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몰래 쓱 나가면 될 텐데?
“의문이 너무 많군요. 절대 평범한 도둑은 아닙니다. 경공을 쓰는 시점부터 평범한 도둑이라 하기엔 뭔가 이상하지만…”
“세상에 무공 배운 무뢰배들이 넘치는 세상이니 그런 놈도 있겠지.”
“…무인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미안하네.”
“됐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이 문을 넘어서 장 대인을 만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듣자 하니 수십 년 전 홀연히 나타나 상단을 창단하고 순식간에 키워냈다던가. 여러모로 이 도시에서 입지전적한 사람이라는 모양이었다.
그가 야시장이 열릴 때마다 공개하는 그의 수집품은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값이라고 했던가.
나는 궁궐인지 저택인지 모를 저택의 대문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그냥 경복궁을 지어놨네. 이 정도면 정원 한 바퀴만 돌아도 한 시간 정도는 필요할 기세였다. 당장 우리가 저택의 대문에 도착하는 동안 기나긴 벽을 지나서 와야 했으니까.
이 정도면 한 구역 전체를 저택으로 뒤덮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몽 포두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장 대인께 여쭤볼 것이 있어서 왔다네. 장 대인님은 지금 안에 계시는가?”
“예, 계십니다.”
“기별을 넣어주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문 앞을 지키던 무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얌전하게 무사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무사가 돌아온 것은 대략 일다경(15분)이 지난 후였다.
“따라오십시오.”
무사들이 문을 활짝 열으며 말했다. 우리는 무사를 따라 문을 넘어 저택 내부로 들어섰다.
“…이 도시 최고 부자의 집은 달라도 이렇게 다른 건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인 분이시라네.”
딱 봐도 그래 보이네.
그런데 이렇게 돈 많은 부자가 경비를 그렇게 허술하게 잡아놨다고?
이것도 좀 석연치 않은데.
어쩌면…처음부터 누군가 보물을 훔쳐 가리란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다, 지금은 모든 게 억측에 불과하다. 빗자루로 한 번 쓸면 전부 쓸려나갈 빈약한 단서들로 뭘 추측을 한단 말인가. 일단은 장 대인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가장 중요헀다.
“장 대인! 몽 포두가 왔습니다!”
“들어오라 전하게.”
말 사이에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들어오시랍니다.”
방도 넓군. 신발을 벗고 들어선 방안은 거실에 가까운 넓이를 자랑했다. 이렇게 큰 집에 사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가.
이런 데서 살면…아니다.
그렇게 땡기진 않네.
너무 넓으면 청소하기도 귀찮은데.
“몽 포두. 이틀 만이군. 그런데 자네 뒤에 있는 삿갓을 쓴 놈은 누군가?”
아, 삿갓을 안 벗었구나. 나는 이제 너무 한 몸이 되다시피 한 삿갓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곤 포권을 했다.
“윌리엄 마셜이라고 합니다. 위 모라고 불러주시지요.”
“색목인이라…”
장 대인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어째서인지 경계심 섞인 눈길로 나를 흘겨보았다.
“색목인을 데리고 다니는 줄은 몰랐네. 몽 포두.”
“저도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법 총명하여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데려왔습니다.”
“흠…”
조금 얍삽하게 생긴 인상의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나를 훑어보는 느낌은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깽판을 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가 탐색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흠. 그래. 쓸만하면 상관없겠지…”
참 찝찝하게 구시네.
그가 탐색을 끝낸 것을 눈치챈 몽 포두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혹시 보물에 대해서 들을 수 있나 싶어 찾아왔습니다.”
…흠.
미간을 찌푸리는데…
“우연한 기회에 구입한 비급일세. 낡은 서책이라 호기심에 사 보았네만, 내 호위무사에게 확인시켜보니 무영신투의 비급이라더군. 그래서 자랑도 할 겸 야시장에 전시해둔 것뿐이네.”
우연한 기회라.
구린 냄새가 나는데.
정상적인 경로로 얻은 게 아닌 건가?
대놓고 물어볼까? 아니면…
“그것뿐입니까?”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겐가?”
“아닙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더 정보가 있나 하여…”
“몽 포두. 분명 서책에 추종향을 뿌렸음에도 추적을 못한겐가?”
“그건…”
“허. 내 몽 포두를 믿었거늘.”
…아무리봐도 우릴 빨리 쫒아내려는 것 같은데.
나는 시선을 움직여 노인의 몸을 몰래 살폈다. 어쩌면 노인의 몸에 내가 찾지 못한 증거가 있을 지도 몰랐으니까.
태양혈은 납작하고, 근육은 거의 없고…아니지. 이런 걸로는 확신할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모험을 해보는 게 답인가.
“자네에겐 실망했네. 이 일은 다른 포두에게 맡길 테니 자네는 이만…”
“어르신.”
“음? 자네는 뭔가?”
“무영신투의 비급을 알아보았던 호위무사를 불러주실 수 있습니까?”
“…그 무사는 얼마 전에 일을 그만두었네.”
…거짓말 같은데.
유명한 물건도 아니고, 고작 호위무사가 낡은 서책을 읽고 무영신투의 비급인 걸 어떻게 알아보는데?
물론 무영신투가 대놓고 자기 별호를 집어넣고 썼을 수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장 대인의 반응은 그런 원인에서 비롯된 반응이 아니었다.
딱 보아도 나를 쳐다보는 눈에서 쏟아지는 경계심이 한층 더 강해졌으니까.
“비급을 읽었다는 건…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런데도 보내주셨던 겁니까?”
상인이? 막말로 그놈이 기억한 내용을 다시 책으로 만들어서 팔면 가치가 떨어지는데? 물론 그런 미친 짓을 할 놈이 어디 있겠냐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잖아.
“지금 나를 심문하는 겐가?”
“무영신투의 비급을 찾으시는 건 대인이십니다.”
장 대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적을 보는 듯한 눈빛.
“…불쾌하군.”
당혹스러움과 노기가 섞인 그의 얼굴을 관찰하며 기회를 노린다.
단서를 얻을 기회를.
“장 대인께서 숨기는 것이 있는 이상, 무영신투의 비급을 찾을 방법은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야 꼬우면 그냥 안 한다 하고 나가면 그만이지. 관과 어느 정도 인맥을 트는 건 수포로 돌아가겠지만 어차피 난 무림인이나 다름없는 몸.
없어도 적당히 무림 쪽 인맥을 만들어서 먹고살면 그만이다.
“몽 포두. 이것 또한 자네의 의지인가?”
“아, 아닙니다. 이보게, 자네 갑자기 왜 그러나?”
몽 포두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말렸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아직 하나 찔러볼 게 남았거든.
나는 입속에 숨긴 비수를 내뱉었다.
강철보다 단단할 수도, 풀잎보다 연약할 수도 있는.
“…장 대인께서는 무영신투와 인연이 있는 것 아닙니까?”
노인의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50화…
벌써…
시간이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