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0

       천장을 무너뜨릴 것만 같은 고성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그로도 이런 어그로가 따로없었다. 내 뺨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다.

        

       하스펠트 교수가 사람 끌어모으는 능력 하나만큼은 탁월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지금 하스펠트는 눈이 뒤집힌 상태였다.

        

       “당신 금안족이잖아요…! 어떻게 마력량도 부족한 금안족이 최상급 마도인 플레어를 연구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침착함이라고는 온데간데없는 모습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던 그 하스펠트 교수로는 안 보인다.

        

       마치 장난감을 사 달라고 억지를 부리며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보여서, 반박하려던 생각도 사라졌다. 나는 평탄한 어조로 사실만을 담백하게 전했다.

        

       “친구들이 도와줬습니다.”

        

       로테 살리에르, 그리고 프레이 셸커니.

        

       비록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훌륭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 이들이었다. 난 이런 부류를 친구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러면 돈은 어떡하고요? 플레어를 연구하려면 돈이 엄청 깨져요! 못해도 금화 수천 장은 들어야 할 텐데……!!”

        

       그거야 마전지를 잔뜩 가져다가 쓰는 정공법을 사용했을 때나 그렇지. 3차원의 입방 스크롤을 개발한 뒤로는 개발하는 비용이 크게 감축됐다.

        

       즉, 간단히 말해서….

        

       “원가를 절감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재료비는 학술 동아리에서 무료로 가져다 썼고요.”

        

       변명도 아니다. 플레어를 개발하는 데 들인 사비는 땡전 몇 푼으로 수렴했다.

        

       이런 논문 디펜스는 또 처음이다. 무언가 깔 게 있으면 논문 자체를 까야지, 논문을 쓴 사람을 공격하는 건 인신공격의 오류에 해당한다는 걸 모르는 건가? 테뉴어씩이나 받은 하스펠트 교수가 그런 기본적인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아, 그래. 나 같아도 논문 스쿱당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질 것 같긴 하다. 학계 사람들은 ‘스쿠핑’의 ‘스’ 자만 들어도 쌍소리를 내뱉을 정도라고 하는데, 그걸 직접 겪어본 본인은 얼마나 참담할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하스펠트 교수의 이성은 거의 다 날아간 상태였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다.

        

       “기껏 해 봐야 아카데미 1학년생이잖아요. 어떻게 학부생 실력으로 황립 학회 저널에 플레어 연구를 투고해서 승인받을 수 있었던 거죠? 뭔가, 뭔가 있었죠?! 아니, 지금까지 했던 말 모두 거짓말에 불과한 거죠…? 아하…! 오늘, 오늘이 만우절이었나…?”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짐짓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한계에 봉착하면 본성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는 그것만큼 적절한 말이 없었다. 한계까지 밀린 사람은 당연히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발버둥 칠 테니까.

        

       하스펠트가 딱 그 꼴이었다. 가문에서 80년간 연구해 온 비원이 족보 없는 새끼한테 강탈당했다는 걸 안다면, 하스펠트 집안의 어르신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귀족사회에선 체면이 중요하다. 플레어 연구도 제 손으로 완성하지 못했는데, 만약 이 광경을 보고 다른 귀족들이 안 좋은 소문이라도 퍼뜨린다면 하스펠트 가문의 위상이 땅에 처박히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플레어 개발을 완수한 시점에서 하스펠트 가문 전체와 대면하고 싶지는 않다. 후일을 위해서라도 일단은 이 대화의 맥을 끊고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나는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플레어를 연구해오라고 하신 건 교수님이잖아요.”

        

       최대한 차분하게, 할 말은 하면서.

        

       “제가 언…. 아…….”

        

       이렇게 놓고 보니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어투였다. 내가 하스펠트 교수에게 이런 말투로 응대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하스펠트 교수님 왜 저러신대?”

       “논문 표절하다가 걸리셨다는 말이 있다는데 사실일까?”

       “…진짜? 그런 사람으로는 안 봤는데.”

        

       이미 곡해가 시작됐다.

        

       여기서 쏘아붙인다면 더 할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체면을 위해 말을 아끼는 길을 선택했다.

        

       여긴 학회의 건물, 즉 공공장소다. 문명인이란 무릇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니.

        

       “……흐.”

        

       하스펠트도 정신을 차린 걸까. 내 말을 곱씹은 듯한 그녀가 허무함이 깃든 얼굴을 한 채 물러났다.

        

       “지금 무슨 일인가요?”

        

       한 사람의 질문에 내가 곤란해하고 있을 무렵, 이사장이 박수를 치며 직접 나섰다.

        

       “별일 없습니다. 잠깐 소란이 있었던 것에 대해 제 이름으로 대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 다들 이렇게 모여있으면 다른 사람 통행에 방해되니 신속히 해산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사장이라는 직책 덕분인지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도 금방 자리를 떴다.

        

       흩어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걸어오는 한 여인이 있었다. 메리가 헤를라인 선생님이었다.

        

       헤를라인 선생님은 멍을 때리고 있는 하스펠트 교수를 한 번 흘기고는 나와 이사장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헤를라인은 실눈이기 때문에 시선이 우릴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헤를라인 선생님은 나와 가볍게 묵례한 뒤 이사장에게 귀를 빌려달라고 촉구했다. 귀띔하는 소리가 충분히 커서 나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하에 있는 컨퍼런스 룸 세팅이 완료됐습니다. 발표 회의는 당장이라도 진행할 수 있어요.”

       “호오, 그런가?”

        

       곧 이사장이 날 보며 말을 전했다.

        

       “원한다면 오늘이라도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학생?”

       “다들 절 기다리고 계시는 건가요?”

       “허허, 학생을 보려고 외박을 내신 분들도 계십니다.”

        

       날 보려고 외박을 하는 귀족들이 있다고?

        

       뭐야 그거. 나 무서워.

        

       “그러면 최대한 일찍 잡아야겠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공저자도 부르고, 시연에 필요한 안전장비도 가져와야 하니까요.”

        

       이런 일은 후딱 끝내고 쉬는 게 마음 편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길을 돌렸다.

        

       **

        

       에테르가 로테와 프레이를 데리러 밖으로 나간 사이, 클라이스는 데스크 한쪽에 마련된 벤치에서 힘없이 앉아있었다. 그런 클라이스 곁으로 인영 하나가 드리웠다.

        

       “…….”

        

       메리가는 아무 말 없이 클라이스 옆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동고동락하던 친우였다. 둘 다 틸레트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전장에서는 생사를 오가며 서로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지금껏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그 10년에 달하는 우정에 금이 가고 있다.

        

       “…메리가, 나는 당신이 벌인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어요. 당신도 그렇죠?”

        

       툭, 하고 던지듯이 내뱉어진 말.

        

       메리가라면 클라이스의 세세한 감정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현재 클라이스의 말에는 힘만 없을 뿐이지,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만은 명확했다.

        

       왜 화내는 걸까.

        

       그냥, 자기 논문이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겼다는 게 분해서?

        

       믿었던 친구가 자기 노예를 해방하는 데 도움을 줘서?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여신만이 감정의 방향을 이해하실 뿐.

        

       “당신이 에테르의 입학 자금을 대줬다고 말했을 때 제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요?”

       “클라이스.”

        

       뭉근한 불길이 클라이스의 샛노란 머리카락을 몇 가닥씩 태웠다. 화계마도사가 마력을 정제하지 못하고 발산하면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진짜 세상이 두 쪽 나는 줄 알았어요. 적어도 걔 혼자서 돈을 꿍쳤다가 입학비로 쓴 거였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하필이면 당신이 끼어들어서.”

       “…….”

       “그래서 합격했고, 지금처럼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네요. 당신이 바라마지 않던 일이 그대로 벌어졌어요.”

        

       클라이스의 말에는 논리적인 허점이 존재했다.

        

       에테르가 탈출하려는 원인을 먼저 제공한 사람은 클라이스였다. 3년간 굴려 먹은 조수를 팔아먹으려 한 것도 모자라, 그동안 자신도 해내지 못했던 마도를 연구하게 시켰다.

        

       또한 메리가는 에테르의 의사를 존중할 생각이었다. 에테르가 클라이스의 밑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했더라면 굳이 친구의 노예를 아카데미에 입학시키려는 도움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자신이 에테르를 뒷돈 주고 지원했다는 사실을 까발렸을 땐 클라이스도 그 건을 묻겠다는 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 그만큼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클라이스는 메리가에게 화를 내면 안 되는 위치였다. 메리가의 한쪽 눈을 영영 불구로 만들어버린 책임은 그 누구보다도 클라이스에게 있었으니까.

        

       생명의 은인에게 화를 내면 자신만 쓰레기가 된다는 걸, 클라이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연 발화하고 있는 몸뚱이를 식히기란 어려웠다.

        

       “노예…. 아니, 조수에 이어서 논문까지 빼앗겼네요. 나처럼 등신같은 일을 두 번이나 당한 사대공작은 이 나라에 또 없을 거예요. 당신도 그리 생각하죠? 헤를라인.”

        

       메리가는 침묵을 택했다.

        

       그렇게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아날로그 시계의 분침은 기껏해야 180도를 돌았는데, 벌써 여러 날이 지난 것만 같았다.

        

       “프레젠테이션 준비가 끝났습니다. 두 분도 참석하시겠습니까?”

        

       기나긴 침묵을 깨준 건 로베스피에르 이사장이었다.

        

       “…그래. 특허권을 사면…….”

        

       클라이스는 잠깐을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사람은 지하에 위치한 대형 컨퍼런스 룸으로 향하는 동안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클라이스가 중앙의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메리가가 바로 옆에 따라붙었다. 클라이스는 다음 칸으로 자리를 옮겼고, 메리가도 그에 따라 앉는 의자를 바꿨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

       “…….”

        

       컨퍼런스 룸은 중앙에 칠판이 놓여있고, 그 칠판을 중심으로 여러 좌석들이 방사형으로 놓여있는 구조였다. 칠판에서 멀리 떨어진 객석일수록 상대적인 고도가 더 높았다.

        

       준비실에 있던 금안족 소녀가 무언가를 이끌고 들어왔다. 조금 더 기다리자 반대쪽에서 두 소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소녀는 기구와 장비를 가득 실은 카트를 끌어서 교단 위로 올려놓았다. 개중에는 실리카 재질의 광석 뭉텅이와 콘크리트, 단단해 보이는 마수의 겉껍질도 있었다.

        

       “저게 플레어 발생기인가 보군.”

        

       크다. 가로로 놓인 규모를 기준으로만 어림해도 성인 남성 다섯에 달하는 길이였다.

        

       그 장대한 크기를 본 클라이스의 얼굴에 문득 화색이 돌았다.

        

       “제가 만든 거랑은 달라요…!”

        

       그 미소를 본 메리가는 고개를 떨군 채 머리를 싸맸다. 깊은 한숨이 회의장의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