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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과학은 ‘자연철학’이라고 불리는 철학의 한 갈래에서 시작한다.

       

       이는 ‘인간 경험’에 속하지 않는 자명하고 불변하는 자연의 법칙을 해석하려는 시도였고,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말을 빌리자면 ‘우주’라는 책에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있는 철학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유에서 시작하여, 갈릴레오와 케플러에 의해 보다 보편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데카르트와 페르마의 해석기하학을 통해 언어를 찾았으며─.

       

       아이작 뉴턴이라는, 세기의 천재를 만나 꽃을 피운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작가님?”

       “네.”

       

       “제가 수석 마법사이기는 한데요오…. 저 수석이라 되게 똑똑하고 대단한데에….”

       “네.”

       

       “이거 무슨 뜻인지 이해가 전혀 안 되는데요오…?”

       

       

       이 세계에 알려지기에는 너무 많은 개념이 뒤섞여있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 세계는 문명적으로는 르네상스와 근대 이후가 뒤섞인 수준에 가깝다. 어떤 면에서는 더 발전된 측면도 있다. 위생 관념은 완벽하게 잡혀있고, 출판사에서는 하루종일 인쇄기가 돌아가며, 거리에는 마차와 자동차가 함께 돌아다니고, 꼬라박기는 했지만 비행기나 잠수함이라 부를만한 기계들도 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세계의 문명은 자명함을 추구하는 ‘자연철학’의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닌, 수없이 많은 통계와 경험적 기반 아래 세워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과학적 외삽법의 극한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마법처럼 ‘개인’이 ‘현상’을 뒤흔들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는 세계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렇죠? 사실 저도 잘 이해가 안 가요.”

       “네에?”

       

       “그래서 주석 작업을 하려고요. 아마 주석이 본문보다 훨씬 길어질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아예 뜯어고쳐야할 부분이나, 원래 ‘프린키피아’에 없는 지식들도 다수 들어가겠지만요.”

       “이해가 안 되네요오…. 저는 수석인데에….”

       

       “그러니까, ‘수석’이신 밀리 클레앙 마법사님만 해주실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해요.”

       “저만 할 수 있는…?”

       

       “네. 밀리 클레앙님이 모르는 건 아마 다른 마법사들도 전부 모를 테니까─, 그걸 ‘기준점’으로 삼아서 책을 다시 쓰려고요.”

       

       

       원 역사의 아이작 뉴턴처럼 일부러 난해하게 내용을 쓸 생각은 없었다. 프린키피아의 이름을 빌리기는 했지만, 내가 만들려는 것은 일종의 ‘과학 전공서’였다.

       

       자연과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이론들이 담겨있는 교과서.

       

       최대한 친절하게 주석을 달고, 이 세계에 없는 지식이라면 그것이 유도되는 과정부터 하나하나 설명하고, 그리하여 ‘인과성의 자명함’에 대한 지식을 이 책을 통해 풀어낼 생각이었다.

       

       이 세계의 표현을 빌리자면 ‘회색 마탑’의 ‘마법서’가 될 예정이었다.

       

       

       “후, 후후…. 그렇죠오…. 제가 모르는 건 다른 마법사들도 아무도 모르죠오….”

       “네네.”

       

       

       밀리 클레앙이 자아도취에 빠져서 키득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그런데 작가님은 어떻게 알아요오…?”

       “저야, 뭐.”

       

       

       전생의 지식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라서.

       

       나는 그냥 농담하듯 이야기했다.

       

       

       “천주께 계시라도 받지 않았겠습니까?”

       

       .

       .

       .

       

       “여러분…. 제가 새로운 마법서를 가져왔어요오….”

       “수석님! 감사합니다!”

       

       “이 마법서는 헤로도토스 작가님께서 써주신 것인데에… 제가 어떻게 헤로도토스 작가님께 마법서를 부탁하게 되었느냐면….”

       “수석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탑주님께서 시키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색 마탑의 수석 마법사, 밀리 클레앙의 주도에 의해 마법서 ‘프린키피아’가 마탑에 배포되었다.

       

       회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의아함 반 호기심 반이 섞인 심정으로 프린키피아를 읽기 시작했다. 소설 작가가 쓴 마법서라니, 도저히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탓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접하였고.

       

       

       

       “크아아악─!”

       “수석 마법사님이 악마의 책을 가져왔다!”

       “이 지식은─, 지식은─! 너무 아름다워─!”

       

       

       과도한 지식을 접한 끝에 고통을 호소했다. 사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프린키피아를 접한다고한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책’ 취급하며 던져버렸겠지만….

       

       그들은 마법사였다.

       

       없는 지식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눈 앞에 실존하는 지식을 ‘이해한다’는 가능성 정도는 이끌어낼 수 있었다. 스스로의 ‘마법사’로서의 가능성을 강화하여 끊임없이 마법적 영향력을 높이는 것은 모든 마법의 기초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떠한 ‘가능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서, 가능성의 폭이 좁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마법사들은 ‘마법을 추구하지 않는 선택지’를 지우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마법에 예속된다. 백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평생을 방랑벽에 시달리며,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동일성과 질서에 대한 강박증을 앓는다.

       

       그리고 ‘회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이것이… 마법…? 아아, 세상의 얼개가 풀려나고있어….”

       “모든 법칙은 수학으로 정의가 가능하다고…? 천구의 움직임조차 결국 수학적 진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동기계에 불과하고…? 그렇다면 이것을 마법에 접목하면…!”

       

       

       하나의 지식에서 하나의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을 스스로의 서약으로 삼았다.

       

       이는 지식의 응용, 증명, 새로운 공식의 유도, 다른 학문과의 결합, 공학적 설계, 실용적 방법론 등을 포함한다. 하나의 지식을 완벽하게 이해하여 그곳에서 새로운 지식을 도출해내는 것이 ‘인과’를 진리로 삼은 회색 마탑의 서약이었던 것이다.

       

       마법사들은 ‘프린키피아’에서 정의된 지식과 방법론을 이용하여 기존의 공학적 설계와 청사진을 새롭게 구성하고, 해체하고, 재해석했다.

       

       이러한 ‘마법적 진리’는 곧 현상의 구체화로 이어졌고.

       

       마침내.

       

       

       “흐아아악! 드디어 ‘비행기’의 장거리 비행에 성공했어! 기존 추락 지점 위를 수십번이나 지났지만 한번도 추락하지 않았다고!”

       

       

       기존의 공학적 발전을 가로막던 ‘마법적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에 성공했다.

       

       한번 성공한 이상 그 이후로는 간단했다. 표준화된 기체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비행이 이루어질 항로를 만들고, 수 차례의 시험 비행을 거치며 통계적 안정화 작업에 들어가면 된다.

       

       이는 공돌이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회색 마탑에서는 무척이나 익숙한 일이었다.

       

       

       “비행 데이터를 기록해라! 통신 마법사! 백색 마탑에 소식을 전해! 기존 실험 한계를 넘어서는 상공에서의 비행이 실현되었다고! 비행 항로를 만든다!”

       “지금 백색 마탑에 아무도 없어요!”

       

       “그 새끼들 다 어디로 갔는데?!”

       “원양항해용 배 완성되는 거 못 기다리고 카누 타고 남쪽으로 떠났다는데요?!”

       

       

       물론 사소한 문제들이 있기는 했다. ‘허풍선이 공작의 모험’을 읽고 방랑벽이 도진 백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카누를 타고 대양을 건너려고 시도하는 일 따위가 그러했다.

       

       회색 마탑은 기계 설계의 스페셜리스트였으나, 그 이외의 분야들에서는 역시 다른 마탑의 도움이 필요했다.

       

       비행기가 제대로 비행하기 위해서는 ‘청색 마탑’의 도움을 받아 대량생산과 표준화를 하고, ‘백색 마탑’과 함께 ‘비행 항로’를 만들어야했다. 이렇게 비행기가 추락할 가능성을 극한까지 최소화하고 나서야 진정으로 비행기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완성되기 전까지는 ‘우연히’ 성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지만, 완성된 이후에는 그 어떤 우연보다 너그러워지는 것이 마법이었으니.

       

       이제, 마법의 역사에 ‘비행기’가 추가되었다.

       

       

       “후후, 작가님…. 한번 직접 타보실래요오…?”

       “아뇨. 사양하겠습니다.”

       

       “비행 엄청 재미있는데에….”

       “저번 시험 비행장에서의 풍경이 아직 눈 앞에 아른아른 거려서요….”

       

       .

       .

       .

       

       회색 마탑에서는 기존 ‘마법적 제약’으로 인해 한계에 막혔던 여러 발명품들을 안정화시키기 시작했다.

       

       비행기, 잠수정, 증기선….

       

       마법적인 이유로 인해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멈춰서있던 문명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발전을 보여준 것은 역시 위에서 이야기한 이동수단들이었다.

       

       

       “이 잠수정을 타면 북해의 얼음 밑을 탐사할 수 있다는 게 정말이오?!”

       “세계의 중심! 적도로 갑시다! 세계수를 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천금을 줘도 좋소!”

       

       

       여러 모험 소설들, 그리고 ‘허풍선이 공작의 모험’이 끝없는 재화가 ‘이동수단’의 발달에 투자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행성에 숨어있는 신비를 그 눈으로 직접 보고싶어했다.

       

       북극, 대양, 밀림, 사막….

       

       본래라면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 여겨지던 미개척지가 하나둘씩 개척되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여행기와 모험담이 여러 출판사들에서 동시에 출판되고 매진되기도 했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 개척에 대한 열정.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에 대한 두려움.

       

       이제 이 세계의 사람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관점에서 ‘우주’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세계관’이 보다 넓어진 것이다.

       

       나는 그 상상력이 보다 ‘문학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툭 밀어줄 생각이었다.

       

       

       “쥘 베른의 소설이 있으니,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도 있어야겠지….”

       

       

       SF라는 장르의 힘을 빌려서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뉴턴은, 사실 굳이 작가의 말을 통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겠지만, 역학의 체계를 확립하고 천체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정의한 근대 과학의 창시자이자, 미적분의 기본정리를 완성한 수학자입니다.(미적분의 경우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업적이 동등하게 인정됩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보편’에 대한 증명 가능성─, 즉 철학과 분리되는 ‘자연과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최초의 책이라고 평가받습니다.

    이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제목처럼) 뉴턴이 스스로의 이론들을 전부 ‘수학적 방식’으로만 풀어내고 증명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접근은 뉴턴 사후 ‘과학’이 ‘철학’이라는 학문에서 분리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

    뉴턴 얘기를 하자면 또 페르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사실 수학사에서 나타난 최초의 ‘미적분’은 페르마에 의해 시도되었습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의 기본정리를 개발하기 전에, 오히려 페르마에 의해 미분 계산 공식이 먼저 튀어나왔거든요. 이는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법조인이었던 페르마는 꽤 늦은 나이에 ‘취미’로 수학을 시작하였는데… 어, 진짜 기괴할 정도의 수학적 지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페르마는 흔히 데카르트의 업적이라 알려진 해석기하학을 데카르트보다 높은 수준에서 독자적으로 창안했고, 정수론과 확률론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현대까지 응용되고 해석되는 수많은 수학적 정리들을 고안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21세기까지도 수학자를 괴롭혔습니다.

    페르마가 수학을 정식으로 교육받은 적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 수학사상 가장 ‘천재’에 가까운 수학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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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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