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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분명 뭔가 있단 말이지.”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결투장 위.

       

        [ 드디어 8강입니다. 어려분은 이 남자가 8강에 오를 것이라 예상했습니까? ]

       

        진행자의 소개를 한 귀로 흘린 나는 턱을 괴고 고민했다.

       

        양하나를 구출하고, 늦기 전에 승천전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다만 불길한 징조를 두 눈으로 목격한 덕분에 기분이 차갑게 가라앉는 느낌이다.

       

        ‘시원한 답이 나오질 않네.’

       

        <히사있>의 스토리를 세세하게 꿰고 있는 나다. 자연히 첫번째 메인 시나리오라 부를 ‘약물 소동’ 역시 내 기억에 남아있었고.

       

        [ 소개합니다! 아카데미 역사에 도전하는 남자, <현상거절> 임혜성! ]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약물 소동… 그러니까 본격적인 <히사있> 첫번째 시나리오의 시작 시점은 첫번째 승천전이 종료된 이후라는 것이다.

       

        <히사있>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독특한 사실은 마땅히 주인공이라 부를 사람이 없다는 것인데, 그나마 주인공 격인 캐릭터가 히어로 아카데미에 편입하며 시작되는 것이 ‘메인 시나리오’였다.

       

        뭐, 아무튼.

       

        [ 오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온 분들이 참 화려합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다섯이 넘는 랭커들이 왔다고 하더군요! ]

       

        [ 적에겐 두려움을, 아군에겐 용기를 불어넣는 그야말로 진정한 히어로가 아닐까요? ]

       

        스윽.

       

        두 해설의 맛깔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방어 능력이 전개된 통유리… 그러니까 VIP 관객석이었다.

       

        ‘랭커가 다섯이라고?’

       

        승천전의 8강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결투라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문제는 참가자. 오늘 경기에 임하는 나와 내 상대가 그다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D등급 능력자, <현상거절>.

        A등급 능력자, <괴력>.

       

        S급 능력자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Z급 랭커들의 능력을 창공을 수놓는 승천전. 그 8강이 D급과 A급의 대결로 전락했으니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워어어어어! 혜성이 형! 4강 진출하면 나랑 사귀는 거다?”

        “대.”

        “혜.”

        “성.”

       

        사람들의 반응이 묘하게 뜨거웠다. 이해할 수 없는 열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 조금전 도착한 뉴스 속보가 있었습니다. 캐스터 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

       

        [ 어어. 무슨 속보죠? 저는 전혀 몰랐는데요! ]

       

        과장된 목소리를 보니 알고 있었구만. 해설자의 연기 실력은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 <현상거절>이 아카데미 심부에 열린 게이트를 토벌했다고 합니다! ]

       

        [ 허, 허억! 그렇다면 괴수를 토벌한데 이어, 승천전 출장까지 이어서 한 것이군요! ]

       

        “……놀고 있다.”

       

        아무래도 양하나를 도와 괴수를 토벌한 사건이 이미 뉴스 속보로 보도된 모양이다. 관객들의 열광과 해설자의 찬양 폭격을 보니 이제야 왜 이런 반응이 쏟아지나 알 것 같았다.

       

        터벅터벅.

       

        “끄흑!”

        “……?”

       

        그러던 와중, 내 상대인 <괴력> 김은호가 결투장 위로 올라섰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이름도, 이명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고.

       

        헌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무슨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도 하다 온 것처럼 온몸의 근육이 부풀어 있었고, 피부 전체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거기다.

       

        “끄윽.”

       

        가장 이상한 점은 그가 입으로 내는 소리다.

       

        마치 게이트 너머에서 나타난 타차원의 짐승처럼, 고통의 신음과 비명 그 사이의 무언가를 내뱉고 있었다.

       

        “……설마?”

       

        척 보기에도 평범함과 백만 광년은 멀어보이는 반응에 내 눈이 가늘어졌다.

       

        [ 터질듯한 적의 투지에 <뇌전검>은 긴장했다. 그는 이제껏 만났던 히어로와 궤가 달랐다. 적이 가진 비정상적인 희열 가득한 공격은 정상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것이었다. ] 

       

        어째서일까?

       

        원작 기준, 승천전 4강 경기에서의 양하나 시점으로 서술되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양하나의 상대는 S급이었고.’

       

        원작 초반부의 이야기가 내 덕분에 뒤틀렸다. 당장 죽었어야할 송수아가 살아있고, 빌런 꿈속을 걷는자가 나타났다. 결과는 좋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설마 그건가?”

       

        척 보기에도 비정상적인 상대의 상태에 어느정도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최근 일성 연구소에서 반출되어, 급속도로 히어로 아카데미에 유입되기 시작한 약물. 저놈은 그 약물을 복용한 것이 틀림 없었다.

       

        “지겹게 꼬였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본래라면 아카데미를 지켰을 한유리가 갑작스러운 서울 출장을 떠난 것도 그 ‘약물’이라는 것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한유리를 비롯한 일성 그룹의 노력과 다르게. 금지된 약물은 빠르게 아카데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당장 내 앞에 선 놈도 복용자가 틀림 없었다.

       

        [ 두 선수가 입장을 완료했습니다. 이제 결투 시작까지 고작 60여초 남았을 뿐입니다. ]

       

        [ 사실, 감조차 오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대결인지라, 그저 관객 및 시청자 여러분께 부디 즐겨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군요! ]

       

        상황을 알지 못하는 진행자들이 흥겨운 해설을 늘어놓았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타디움 중앙에 자리한 거대 전광판의 숫자는 속절 없이 줄어든다. 이전 경기들과 같이 숫자가 0을 알리면 결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크흐흑!”

        “왜 웃어?”

       

        그러던 와중.

       

        내 상대인 <괴력>이 낮게 웃었다. 이상할 정도로 여유를 부리는 놈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곧장 놈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안에… 무한한 힘이 넘친다.”

        “얼씨구.”

       

        티를 내지 못하면 안달나는 타입인가?

       

        복선 없이 돌직구를 던지는 상대방의 대답에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넌 날 막지 못해. 지금 내가 가진 힘은 ‘랭커’를 아득히 상회한다.”

        “설마 했는데… 또 내가 당첨이야.”

       

        솔직한 친구의 목소리에 뒷골이 땡겨오는 기분이었다.

       

        뭐, 어느정도 예상을 하긴 했었다. 

       

        안젤리카는 8강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예언했다. 또 한유리는 8강 참여자가 일성에서 반출된 약물을 복용할 수도 있다는 걸 경고했지.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왜 하필 상대가 나지? 차라리 <원소술사>같은 녀석이 쓰레기 처리에 나서는 게 도리 아닌가.

       

        째깍.

        째깍.

        째깍.

       

        내가 운명의 잔인함에 몸서리치는 사이, 시계 초침 같은 효과음과 함께 전광판 카운트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숫자가 0이 되었을 때.

       

        [ 승천전 8강.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

       

        퍼엉!

       

        “……!”

       

        제자리에 여유 가득한 몸짓으로 서 있던 놈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전에 보았던 <공간왜곡>의 텔레포트처럼, 한순간에 내 시야밖으로 나간 것이다.

       

        하지만.

       

        “현상거절!”

       

        이미 이것도 내 예상 안에 있던 행동이었다. 일성의 비밀 연구소에서 반출된 금지된 약물. 그것이 가진 능력은 나도 대강 알고 있거든.

       

        쐐애애액!

       

        진언을 뱉기도 전에 가공할 소음이 내 귀를 파고들었다.

       

        주먹.

       

        놈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속도가 장기인 <신속>처럼, 내 앞에 나타나 주먹을 내지른 것이다.

       

        [ 내게 가해지는 물리 공격을 거절한다! ]

       

        퍼어엉-!

       

        다급하게 외친 진언은 유효했다. 놈의 주먹이 내 심장을 꿰뚫기 직전, 세상의 법칙이 뒤틀린 것이다.

       

        비틀!

       

        “큭큭. 쥐새끼 같은 녀석!”

       

        괴력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신속>의 경우와 달리 공격 자체를 거절해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괴력>이 잔인하게 웃었다. 새빨갛게 물든 놈의 눈동자를 보니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미친놈.’

       

        약물 복용자의 말로는 대부분 처참하기 그지 없다.

       

        ‘일성’은 거대 기업이다. 기업이란 으레 그렇듯, 그들 역시 자선사업가가 아닌 덕분에 기업에 이익을 위해 연구소를 운영한다.

       

        그렇다면.

       

        “그 약물이, 팔자 좋게 네 능력만 강화시킬 거라고 생각했나?”

       

        끔찍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관심 없어. 내 목표는 오로지 승천전의 우승일 뿐이다.”

        “허.”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대는 놈의 말투에 황당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생각해봐라. 약물의 복용으로 잠시나마 강력한 힘을 얻는다고 치자고. 그 다음은? 죽음과 정신붕괴는 생각 안 하는 건가?

       

        “네놈을 찢어주마. 갈갈이 사지를 찢어 사람들의 관심을 송두리째 뽑고, 4강으로 향하겠다.”

        “진짜 미친놈이네. <신속>이 귀여울 정도야.”

        “큭큭! 내 앞에서 인맥 자랑을 하는 건가? 애석하지만, 이 결투장 위에선 네놈의 잘난 친구들도 너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

       

        <괴력>의 김은호.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미친놈의 목소리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친구 아닌데.”

       

        이건 뭔 개소리야. 

       

        내가 <신속>이랑 친구일리가 없잖아!

       

        “흐아아압!”

       

        친구 아니라는 말에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 건지, 놈이 큰 기합을 내질렀다.

       

        쿠구궁-!

       

        그 기합이 화장실에서 힘주는 기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즉시 주변 공기가 요동치며 어마어마한 압력이 결투장 위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약물은 보통 두 등급을 뛰어넘게 만든다고 했었지.’

       

        일성이 제조한 약물의 정보를 떠올린 나는 진지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저 고릴라 같은 놈은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쉽게 비유하자면, 나는 Z급 능력자와 결투를 벌이는 것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현상거절.”

       

        능력을 개방한 나는 놈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강력한 한방이 필요하다. 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놈을 때려눕히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출혈도 각오해야할 것 같았다.

       

        “크허어어어!”

       

        쐐애애애액!

       

        그러던 사이, 놈의 기합 가득한 주먹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빠르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이미 펼쳐진 능력은 손 보다 빠르니까.

       

        그런데.

       

        끼기기긱!

       

        “……미친.”

       

        내가 뒤틀어버린 세계의 ‘법칙’이 찢어진다.

       

        마치 이전 <뇌전검> 양하나와 결투를 치렀을 때처럼, 놈의 괴력이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쇄도하던 것이다.

       

        [ <괴력> 김은호의 공격을 거절한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는 다시 한번 위와 비슷한 진언을 읊는다. 정공법에는 정공법으로 부딪히는 게 내 성미거든.

       

        휘이익!

       

        이어서 놈이 휘두른 주먹의 궤도가 뒤틀렸다. 그리고 곧장 몸이 한바퀴 돌더니, 애꿎은 결투장 바닥을 가격했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파편과 흙먼지가 비산한다. 척 보기에도 값비싼 결투장 바닥에 놈의 주먹 한방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죽여주마. 네 알량한 힘이 다시는 세상 앞에 나타날 수 없도록!”

       

        화 났나? 더더욱 붉어진 얼굴의 <괴력>이 울부짖었다.

       

        ‘약물 때문인가?’

       

        과한 반응이다. 조금은 황당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기도 했고. 당장 나랑 저 녀석은 아무런 원한도 없는 생면부지인 사이였으니까.

       

        “하하.”

       

       어쨌든, 놈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애석하게도 나 역시 아직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 <신속>이나 <공간왜곡>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긴장이 됐지만, 아직 제대로 된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너무 강한 말은 쓰지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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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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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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