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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사실 캐릭터성과는 별개로, 제이크 린드버러라는 캐릭터는 다소 억울함이 많은 캐릭터이기는 했다.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을 하고 있다는 내부적인 설정과 완전히 다르게, 그 외모 설정 때문에 각종 동인지에서 여러모로 좋지 않은 이미지로 쓰였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 자체가 유명한 것과는 별개로 그런 종류의 동인지가 그렇게 많지 않기는 했지만.

        

       후속작에서 그런 이미지가 많이 사라지긴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순애보’라는 설정 때문에 역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빼앗기는 작품이 나오기도 했고…… 뭐, 이래저래 불쌍한 캐릭터였다.

        

       “…….”

        

       “…….”

        

       문제는 우리가 나눌만한 대화가 딱히 없다는 거다.

        

       사실 이 시점에서는 나보다는 앨리스와 나눌 대화가 더 많겠지. 앨리스는 황제가 될 위치에 있었고, 다른 귀족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그럴 테니까. 솔직히 나와 친분을 쌓는다고 해도……

        

       아, 아닌가? 나도 앨리스와 거의 언제나 붙어 다니는 사람이었으니 보는 입장에서는 가까워져서 나쁠 것도 없는 사람이긴 했다. 내가 가진 이미지 때문에 다가오기 힘들다는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였고.

       

       참고로 옆에 있던 여자애들은 나와 제이크가 마주서서 한 마디 말을 섞는 순간부터 슬금슬금 뒤로 빠지더니 어느새 도망가버렸다.

        

       “황녀님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들었습니다. 같은 학급으로서 먼저 인사를 드리러 가지 못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상대는 여자에게도 거리낌 없이 말을 걸 줄 아는 속 편한 인간이다. 잠깐 대화가 없었던 것만으로 내 앞에서 도망치거나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양옆에 여자들을 끼고 있지 않은가.

        

       ……다시 생각해보면 얘도 ‘자각 없는 하렘 주인공’ 같은 캐릭터다. 물론 주인공 주변의 히로인들과는 다르게 이 공자 옆에 있는 히로인들은 거의 다 조연이긴 했다. 귀족반이니 이름이야 존재하긴 했지만, 기껏해야 질투하는 역할로 잠깐 나오고 마는 캐릭터들.

        

       그리고 그 조연들은 나와 제이크가 대화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슬금슬금 뒤로 빠지고 있었다.

        

       남을 질투하고 따돌리는 장면이 나오더라도, 결국 귀족가의 여식들이다. 출신은 둘째치고 신분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심지어 귀족가 일부에서는 귀족 살해자라고 소문이 돌기까지 하는 나를 대놓고 대적할 인물은 없다.

        

       대놓고 말을 거는 귀족도 드물기는 하다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제이크 조금 뒤쪽에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서 있는 하녀를 보았다.

        

       귀족반과 평민반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교복의 디자인이 다르지는 않다. 치마 특유의 주름만 아니라면 군복인지 교복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운 이 디자인은 일단 ‘학생끼리는 모두 같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 같기는 했지만…… 사실 귀족끼리는 대부분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기에 별 의미는 없었다. 게다가 얼굴을 모르더라도 소문은 또 금세 퍼지니까.

        

       “다만, 적어도 교내에서는 모두 같은 학생일 뿐입니다. 저를 보고 황녀라고 굳이 높여 부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그럼…….”

        

       흠, 하고 제이크가 고민하더니 말했다.

        

       “실비아, 라고 부르면 될까?”

        

       “…….”

        

       아니, 뭐.

        

       그렇다고 성인 팬그리폰이라고 부르기에는 영 애매한 것도 사실이긴 했다. 아무래도 황실의 이름이었고, 그러니 망령되게 막 부르는 것도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이름으로 불러버리는 것을 보면 넉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하긴, 상대는 제이크였지. 만나는 모든 캐릭터들을 처음부터 이름으로 불러대는 캐릭터였으니 굳이 지적하는 것도 의미는 없다.

        

       그보다는, 제이크를 내 앞까지 끌고 왔을 하녀 쪽을 보았다.

        

       피부가 조금 어둡다. 게임에서는 그 피부색으로 차별당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다만 그렇다고 마냥 어두운색도 아니다. 애초에 백인 혼혈이었으니까.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할 거라면 나도 차별당해야 하는 건가?’

        

       원작에서 제이크가 이 아이를 편들면서 했던 말이었다.

        

       남들이야 제이크의 피부색이 햇볕에 그을린 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게 다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햇볕에 그을리는 것만으로도 바뀌는 것이 피부색인데, 고작 그것으로 누군가가 뭔가를 못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렇게 말하는 제이크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겠지. 그런데 상대가 공작인 걸 어쩌겠는가.

        

       “아, 이쪽은…….”

        

       제이크도 내 시선이 뒤쪽으로 향해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손을 뻗어 자기 옆에 서 있는 그 애의 등을 두드려 앞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하며 말했다.

        

       “이쪽은 로티…… 라고 해.”

        

       다소 왜소해 보이는 그 여자애를 제이크가 소개했다.

        

       고아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애도 따로 성이 없었다. 이 세계관에서는 부모에게 성을 물려받지 못하면 후에 누군가와 결혼하여 가정에 편입되거나, 아니면 자기가 성을 만들어 붙이게 되지 않는 이상은 성 없이 살아가게 된다.

        

       로티는 린드버러의 사생아였다. 평민과 아이를 낳아도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을 텐데, 식민지에서 데리고 온 하녀 사이에서 나온 아이라면 더 그렇다.

        

       태어날 때부터 쭉 하녀로 살아온 로티,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귀공자였던 제이크.

        

       서브 커플이긴 했지만, 꽤 흥미로운 캐릭터들이었다.

        

       “실비아 팬그리폰이라고 합니다.”

        

       “……로티라고 합니다. 먼저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원래는 하녀가 직접 나서서 자기 이름을 말할 일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제이크와 함께 자라기는 했지만, 로티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것이다.

        

       로티의 얼굴은…… 내가 본받아도 될 정도로 완벽한 무표정이었다.

        

       “뭔가 할 일이 있었나? 갑자기 말을 걸어서 미안. 여자애들을 떼어내려면 너한테 말을 거는 게 좋지 않겠냐고 로티가 말해서.”

        

       “도련님.”

        

       “…….”

        

       나는 제이크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표정에는 일말의 부정적인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귀족가, 그것도 그 귀족 중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공작가의 일원이었으니 말을 돌리는 법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발언은 일부러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를 떠보기 위한 말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문자 그대로 진심이겠지.

        

       “걱정하지 마, 로티. 실비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로티의 말에 제이크가 확답했다.

        

       그건 또 어디서 나온 확신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습니까?”

        

       “그래.”

        

       나의 질문에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너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네가 그다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거든.”

        

       원작에서 제이크가 사람 보는 눈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대하는 캐릭터였으니까. 주인공 일행이 도피 생활을 하는 파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항구 마을에서 지내며 평민들과 말을 놓고 살며 유유자적하게 낚시나 하며 지냈을 정도니까. 덤으로 로티와는 신혼 관계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그렇게 생각해보니 사람 보는 눈이 좋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했다면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생활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의 의심 정도는 가지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제이크에 대한 경계도를 아주 약간 올렸다.

        

       “그러니까…… 그래. 로티와 비슷한 느낌이야.”

        

       “…….”

        

       “……도련님.”

        

       로티의 표정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내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고 로티가 다시 한번 제이크를 불렀다. 하지만 제이크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로티를 한 번 바라보았다. 로티의 시선이 내 발아래로 떨어졌다. 무려 공작가의 장남이 한 말이니 감히 주워 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대신 사과할 권한도 없다.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긴 했지만, 태도만으로도 겁에 질렸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냥 다르다고도 할 수 없겠지요.”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로티의 얼굴이 다시 살짝 올라왔다.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제게 말을 거셨던 이유는, 그것뿐입니까?”

        

       “아, 응. 그냥, 겸사겸사 인사나 나누자는 거지. 같은 반이잖아?”

        

       “그렇습니까.”

        

       “응.”

        

       “그렇다면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고.”

        

       시원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제이크를 한 번 보고, 나는 굳이 따로 인사를 하지는 않은 채 뒤로 돌아섰다.

        

       사실 이제 슬슬 피곤함이 한계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간을 돌려서 이른 시간에 잠들었는데도 그 새벽에 일어났던 것이 역시 치명타가 된 모양이었다.

        

       ……일단 한숨 푹 자고 일어나자. 두 사람에 대한 고민은 그때가 되어서 해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얼른 내 방으로 향했다.

        

       그래도 쉬는 거 하나 정도는 계획대로 되어도 상관없잖아?

        

       *

        

       “…….”

        

       “…….”

        

       꼿꼿한 걸음걸이로 두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먼저 입을 연 쪽은 로티였다.

        

       “도련님.”

        

       “응?”

        

       “……지금 누구에게 말을 거셨는지 아십니까?”

        

       “아니, 말을 걸라고 했던 사람은 로티였잖아?”

        

       “……도련님.”

        

       주변에 여자가 많다면서 투덜거리는 제이크를 참지 못하고 로티가 쏘아붙이듯 한 말을, 제이크는 잊지 않고 실행했던 것이다. 그것도 언제나 함께 다니는 왕녀와 또 다른 황녀가 없던 틈을 타서.

        

       그리고 그 효과는 탁월했다. 실제로 제이크 주변을 감싸고 있던 여학생들이 죄다 떨어져 나갔으니까.

        

       “실제로도 효과가 좋았고. 음…… 나도 아예 저 그룹이랑 같이 돌아다녀 볼까?”

        

       “도련님.”

        

       “아니, 괜찮잖아? 벨부르 왕국의 왕녀님도 있고, 차기 황제로 유력한 황녀님도 있고. 그리고 그레이스 가는 말만 남작가지 웬만한 공작가보다 황실과 가까운 곳이라고. 하나하나가 모두 친분을 쌓기에는 최적의 상대 아니야?”

        

       “…….”

        

       결국 로티가 입을 다물어버리자, 제이크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음…… 좋아, 인정할게. 처음에는 그냥 널 골려주려고 말을 건 게 맞아.”

        

       “…….”

        

       여전히 로티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제이크는 그저 어깨만 한 번 으쓱해 보인 뒤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해보니까 알겠던데? 실비아는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글쎄.”

        

       로티의 질문에 제이크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논리적인 이유는 아닌데.”

        

       “…….”

        

       “너랑 비슷하잖아. 실비아. 본인도 마냥 다르다고는 하지 않았고. 그냥 흔해빠진 고위 귀족 같은 성격이었다면 너랑 비교당했을 때 무슨 반응을 했겠어?”

        

       확실히 실비아 팬그리폰의 그 반응은 뜻밖이긴 했다. 굳이 귀족이 아니더라도, 피부색이 다른 식민지 출신의 사람과 비교당하면 대부분의 제국인은…… 아니, 백인들은 매우 기분 나빠했을 테니까.

        

       하지만 실비아는 황녀이면서도 별로 기분이 상한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무표정이긴 했지만.

        

       “황녀님은 애초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으신 분입니다.”

        

       “나도 알아. 바로 앞에서 봤으니까.”

        

       로티의 말에 제이크는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거의 언제나 무표정을 유지하는 다른 사람을 알고 있거든. 이렇게 보여도 지난 십여 년간 표정 읽는 법은 꾸준히 배워왔단 말이지. 누구 덕분에.”

        

       “…….”

        

       “왜, 너와 실비아는 서로 다르다고 하려고?”

        

       제이크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기라도 할래? 실비아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지금 한가하게 그런 말씀을 하실 때입니까? 황녀님이 만약…….”

        

       “정말로, 소문 속의 그런 사람이라면 내 목숨이 위험할까 봐? 걱정해줘서 고맙네.”

        

       “…….”

        

       로티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입을 다물었지만, 제이크는 굳이 말을 쉬지는 않았다.

        

       “만약 실비아가 그 사람을 죽인 것이 확실하더라도, 글쎄. 너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실비아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였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걸.”

        

       생글생글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제이크를 보고, 로티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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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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