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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교단이요?”

       『그래.』

         

       비공정 창고의 물품을 살펴보던 악마가 손을 털었다. 손이 가공된 약재와 유리병에 담긴 가루들을 가리켰다.

         

       『마석 각성제의 중간 결과물들이다. 보존과 유통의 편리성을 고려해 완성 직전 상태로 유지해 놓은 상태지. 이걸 그대로 운반해 재가공하면 마석 각성제가 된다.』

         

       파스텔은 심각한 표정이 됐다.

         

       “수상한 용병 집단인 줄 알았는데 진짜 수상한 교단이었네요.”

         

       허공을 검으로 쑤시는 제스처를 했다.

         

       푹푹푹!

         

       속삭이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목소리로 다짐했다.

         

       “무슨 목적으로 하늘고래에 올라탔는진 모르겠지만 저한테 들킨 이상 전력을 다해 훼방을 놓아주겠어요!”

         

       괴조들을 포획하는 걸 보면 포획한 괴조 친구들을 해방시켜주면 교단이 아주 좋아하겠지?

         

       파스텔은 아기새 철창으로 걸어갔다.

         

       “아기새 친구들!”

       ―삐이.

         

       아기새들이 올망졸망 쳐다봤다.

         

       “너희에게 매우 중대한 사명이 생겼어!”

         

       바로바로 동족 구원!

         

       “잘할 수 있겠지?”

         

       파스텔은 아기새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곤 감금을 풀어줬다. 창살은 자물쇠로 잠겼지만 열쇠도 근처에 놓여 있던 덕이었다.

         

       철창에 갇힌 새는 몰라도 자유로운 파스텔은 얼마든지 열어버릴 난이도.

         

       아기새들이 기지개를 켜듯 날개를 폈다. 풀려난 부리로 시원하게 외쳤다.

         

       ―삐이!

         

       파스텔은 서둘러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댔다.

         

       “쉿! 쉿! 잠입 미션이야!”

         

       알아들었는지 아기새들이 부리를 닫았다. 대신 몸을 좌우로 흔들며 뒤뚱뒤뚱거렸다.

         

       “맞아맞아!”

         

       파스텔은 덩달아 뒤뚱거리며 호응했다.

         

       “잠입 미션이야! 너희 똑똑하구나?”

         

       아기새 중에서 지능 순위를 따지면 완전 파스텔급!

         

       ―삐이?

         

       문득 창고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으아?

         

       놀란 파스텔은 악마를 돌아봤다. 악마가 검으로 변해 손에 잡혔다. 아기새 친구들을 다시 철창에 밀어 넣곤 나무 상자 사이에 후다닥 숨었다. 어둠이 몸을 섬세히 가려줬다.

         

       문이 열리고 깊은 창고를 빛이 비췄다. 사람의 실루엣이 내부로 들어왔다.

         

       “새끼 새를 선창에 넣어두면 사나워질 게 뻔한데 골치 아프게 왜 여기다 둔 거야.”

         

       교단 일원이 숨은 상자 근처로 다가왔다.

         

       파스텔은 검을 꼭 쥐었다. 심장이 뛰고 눈이 빙빙 돌았다.

         

       으아으아.

         

       이거 살인해야 하는 상황인가?

         

       멀쩡한 정신으로 살인?

         

       그야그야 교단이고, 아기새의 철창이 풀린 걸 발견하면 바로 소란이 일 거고, 그전에 처리하는 게 맞는데…….

         

       호르몬 친구? 네가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상황이야. 어서 나와봐.

         

       파스텔은 검을 꼭 쥐고 빌었다. 그런데 호르몬 친구는 반응도 하지 않았다. 정 부르고 싶다면 잠입 상태를 깨고 위험에 몸을 던져야 할 거 같았다.

         

       으아아.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애.

         

       진짜 곤란하다구우!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심장박동이 가벼운 몸을 흔드는 거 같았다. 정신이 뒤엉키고 호흡이 가빠졌다.

         

       교단 일원이 숨은 상자 곁을 지나쳤다. 아기새의 철창 앞으로 가더니 옮기려는 듯이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어?”

         

       철창이 열려 있는 사실을 발견한 반응.

         

       파스텔은 검을 잡은 채 격렬히 머뭇거리다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 덮개를 눌러놓은 돌덩이를 발견했다. 한 손에 잡을 만한 적당한 크기였다.

         

       돌덩이를 잡았다.

         

       “이거 왜 열려 있는 거지?”

         

       후다닥 뒤를 덮쳤다.

         

       가문의 조상님들!

         

       그동안 사악하다 비난해서 미안해요! 못난 후손에게 한 번만 축복을 내려주세요!

         

       돌덩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조상님들의 노하우와 경험을 이곳에 현현시키겠습니다!

         

       돌덩이가 반짝이는 듯했다.

         

       크래프트 가문에 대대로 내려온 전통 놀이!

         

       뒤통수 후려치기-!

         

       “으랴아!”

         

       가문의 비기가 정통 후계자에 의해 구현됐다. 세련되게 움직인 돌덩이는 뒤통수를 정확히 가격했다. 묵직한 타격음이 울렸다.

         

       “억!”

         

       짧은 단말마가 울리고 핏방울이 조금 튀었다. 교단 일원이 풀썩 쓰러졌다.

         

       파스텔은 피 묻은 돌덩이를 든 채 숨을 몰아쉬었다. 들숨과 날숨을 따라 어깨가 들썩였다. 심장이 거침없이 뛰었다.

         

       흐아흐아.

         

       이것이 크래프트의 전통 놀이?

         

       돌덩이를 타고 핏방울이 흘렀다.

         

       파스텔은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쓰러진 교단 일원을 내려봤다. 머리에 피를 흘리는 일원은 미동도 없었다.

         

       “주, 주, 주, 죽으셨나요오?”

         

       으아아.

         

       이러지 마세요오!

         

       제발 살아주세요오!

         

       우아앙!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절이다. 힘 조절을 매우 잘했구나.』

         

       앗.

         

       그렇구나.

         

       파스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떨리는 몸을 손으로 비비며 진정시키곤 교단 일원을 다시 살펴봤다.

         

       정말 죽은 게 아닌지 몸을 거칠게 흔들어 보자 정신을 차린 듯 교단 일원이 눈을 떴다.

         

       “어, 무슨…….”

         

       교단 일원이 머리를 짚으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깨울 생각까진 없었는데!

         

       으아아.

         

       “이러지 마세요오!”

         

       파스텔은 다시 돌멩이로 후려쳤다.

         

       퍽-!

         

       “억!”

         

       교단 일원이 다시 풀썩 쓰러졌다.

         

       『아니…….』

         

       악마가 당황했다.

         

       파스텔은 놀라 얼결에 후려치긴 했지만 어쨌든 다시 쓰러진 교단 일원을 보며 경악했다. 시체처럼 미동도 없었다.

         

       우아앙!

         

       “주, 주, 주, 죽으셨나요?!”

         

       으아아.

         

       이러지 마세요오!

         

       제발 살아주세요오!

         

       덜덜덜.

         

       『……기절이다. 다만 요양은 오래 해야겠군.』

         

       앗.

         

       그렇구나.

         

       휴우.

         

       파스텔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란 심장을 천천히 진정시켰다.

         

       그리곤 시체 아님과 돌덩이를 번갈아 봤다.

         

       “설마 이건 득템의 상황……?”

       『그건 무슨 소리지?』

         

       파스텔은 돌덩이를 보다가 양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돌덩이!”

         

       모두가 원하던 비살상무기.

         

       평화주의자를 위한 대화 수단이야!

         

       돌덩이 친구가 말해왔다.

         

       돌덩이: 전 아무도 죽이지 않아요.

         

       믿음직한 발언.

         

       파스텔은 용기로 가득 찼다.

         

       호르몬 친구 없이도 교단을 단죄할 수 있을 거 같아!

         

       돌덩이를 챙기고 아기새들을 철창에서 다시 구했다.

         

       “아기새 친구들! 평화주의자 파스텔은 준비됐어! 너희 동족들을 구하러 가자!”

         

       아자아자!

         

         

         

       #

         

         

         

       파스텔은 비공정 내부를 조심스럽게 거닐었다. 아기새들이 졸졸 뒤따랐다.

         

       『비공정 공략은 항행 자체를 장악하는 게 정석이다. 조타실로 가면 돼.』

       “그보다 아기새 친구들의 동족부터 구할게요. 싸움이라도 커지면 철창에 갇힌 채 그대로 휩쓸릴 수 있잖아요.”

         

       속닥속닥.

         

       『흠, 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호르몬에 휩쓸리면 모두 죽일 테니 조타실 장악은 아무래도 상관없긴 하겠군.』

       “네에?”

         

       누가 들으면 분홍은 핏자국을 빨래하고 옅어진 색상이라 착각하겠다.

         

       교단 일원을 때론 피하고 때론 기절시켰다.

         

       돌덩이 친구!

         

       “억!”

       “억!”

       “억!”

         

       가는 길목마다 단말마가 울렸다. 기절시킨 사람은 악마가 가르쳐주는 방법으로 옷가지를 묶어 완전 제압하곤 질질 끌어 구석에 숨기고 이동하길 반복했다.

         

       파스텔은 어느새 갑판에 당도했다. 노을이 보였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었다.

         

       교단 일원 대부분이 한밤중의 화물 운반으로 각자 선실에서 잠에 들었는지 별로 보이지 않아 수월하게 갑판까지 나올 수 있었다.

         

       갑판에서 꾸벅이던 몇몇을 조심스럽게 접근해 하나씩 시체 아님 상태로 만들었다.

         

       살금살금.

         

       후다닥.

         

       크래프트 가문의 전통 놀이!

         

       퍽-!

         

       풀썩.

         

       어느새 갑판을 완전 정복할 수 있었다.

         

       “좋았어!”

         

       파스텔은 만세 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뒤통수 치기가 적성에 맞는 기분?

         

       갑판에 있던 교단 일원을 기절시켜 얻어낸 열쇠로 괴조 철창들을 열었다.

         

       괴조들이 하늘로 날아갔다.

         

       “다시는 잡히지 마~!”

         

       파스텔은 손을 흔들며 흥얼거렸다.

         

       교단이 열심히 노력한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주니 속이 다 후련했다.

         

       우아우아, 이러다 중독돼서 성격 나빠질 거 같아.

         

       “괴조는 왜 잡고 길들인 걸까요?”

       『비행 수단은 필요하지만 비공정이 진입하기엔 곤란한 유적 같은 곳이라면 괴조가 쓸만하다.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헤에.”

         

       파스텔은 철창이 아니라 목줄에 묶인 괴조들을 바라봤다. 교단에 길들여진 괴조였다. 확실히 등에 안장이 있다.

         

       우왕.

         

       한 번쯤 타보고 싶다.

         

       “얘네는 어쩔까요? 교단 재산이니 훨훨 날아가 줬으면 좋겠는데요.”

         

       목줄을 풀어줘도 딱히 도망을 안 쳤다.

         

       『죽이면 된다.』

       “아으.”

         

       역시 그런가.

         

       아기새 친구들을 슬쩍 돌아봤다.

         

       ―삐이?

       “일단 얘네부터 보내죠! 너희 날 수 있어? 아직 날개가 짧아서 못 나나?”

         

       아기새가 고개를 갸웃했다.

         

       “파닥파닥 가능해?”

         

       파스텔은 양팔을 파닥였다.

         

       파닥파닥.

         

       아기새가 고개를 더 갸웃하더니 다른 아기새와 시선을 마주치곤 하늘을 향해 길게 울었다.

         

       ―삐이-!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하늘 저편까지 퍼졌다.

         

       아기새가 의기양양하게 바라봤다.

         

       잉?

         

       『부모를 불렀군. 이제 신경 쓸 필요 없다.』

         

       부모가 온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심되는지 아기새들은 여유만만한 상태가 됐다.

         

       헤에.

         

       울음소리 한 번에 부모가 오는 거야?

         

       파스텔은 하늘 너머를 바라봤다. 풀려난 괴조들이 날아가는 와중에 낯익은 괴조가 흐름을 거스르고 날아왔다.

         

       거대한 새 그림자가 노을을 갈랐다.

         

       정말 오는구나.

         

       “좋겠네.”

         

       파스텔은 작게 중얼거리다가 팔짱을 꼈다.

         

       웃으며 아기새들을 돌아봤다.

         

       “너희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부모님이 걱정하니까 앞으론 이런 나쁜 곳에 잡히지 마!”

       ―삐이!

         

       아기새 두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삼남매? 삼자매? 하여튼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파스텔은 말하다 멈칫했다.

         

       잉.

         

       아기새의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전부 두 마리였다.

         

       오잉.

         

       “너희 원래 세 마리잖아!”

         

       아기새 두 마리가 서로를 보더니 부리가 벌어졌다.

         

       경악.

         

       “악마님, 남은 애 어디 갔어요?! 중간에 빠진 거 같은데요?!”

       『흠, 미안하다. 큰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못 봤군.』

         

       으에?

         

       파스텔은 갑판을 둘러봤지만 역시나 한 마리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비공정이 서서히 가속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점점 위로 기울여지더니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어어?!”

         

       파스텔은 난간을 붙잡았다.

         

       ―삐야악!

         

       아기새 두 마리가 추락했다.

         

       우와악!

         

       “얘들아!”

         

       거대한 새가 순식간에 날아오더니 아기새들을 잡아챘다.

         

       휴우.

         

       파스텔은 안심하고 난간에 매달렸다.

         

       비공정이 수직으로 기울여진 채 계속 하늘로 솟구쳤다. 압력이 몸을 감쌌다. 구름이 뚫리고 차가운 물방울이 피부를 휩쓸었다.

         

       “저 들킨 건가요?!”

         

       악마가 상황을 살피듯이 잠시 침묵했다.

         

       『정상적인 가속은 아니군. 이건 엔진 이상이다. 엔진이 멋대로 가속하자 지상과 충돌하지 않도록 항행 방향을 하늘로 조정한 거야. 엔진실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네에?”

         

       비공정 내부에서 연쇄적인 폭발음이 울렸다. 충격량이 비공정을 흔들었다.

         

       악마가 담담히 말했다.

         

       『좋지 않군.』

       “그건 저도 알아요오!”

         

       파스텔은 혼비백산한 상태로 난간을 꽉 붙잡았다. 폭발이 계속되며 가시지 않은 충격량이 비공정을 점점 균열냈다.

         

       한차례의 큰 폭발이 일었다. 비공정의 균열이 벌어지더니 여러 개의 큼지막한 파편으로 부서졌다. 비공정 파편 속에서 수십의 교단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공정의 질주가 멈추고 잠시 부유감이 찾아왔다.

         

       “습격이다!”

         

       누군가 선언하고 원인을 파악하는 시선이 떠돌았다. 시선은 바로 분홍 소녀에 쏠렸다.

         

       으에?

         

       파스텔은 어느새 부서진 난간을 잡은 채 벙쪘다.

         

       부유가 끝나고 추락이 시작됐다.

         

       비공정 잔해들이 모조리 추락하기 시작했다.

         

       “으아아!”

         

       중력이 몸을 잡아끌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하얀 옷과 분홍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휘파람 소리가 났다. 길들여진 괴조들이 날고 교단 인원을 잡아챘다. 교단원들이 능숙하게 괴조의 등에 올라탔다.

         

       “침입자부터 배제해라!”

         

       괴조를 탄 무리가 날아왔다.

         

       병장기와 마법이 추락하는 소녀를 노렸다.

         

       으아아.

         

       호르몬 친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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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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