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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장미 풍차 카바레는 6대 극장 중 하나로 뽑힐 만큼 명성 있는 곳이었다.

       총감독 유그 마로이네는 공연계에서 알아주는 거물이었고, 그 휘하 사단의 실력은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공연을 펼친다고 해도 카바레의 본질은 창관(娼館)이었다.

       배우들의 복장 노출도 심했고 춤도 노래도 상당히 외설적이었다. 가게에서 직접 몸을 판다고 내걸지는 않았지만, 직원들이 손님과 합의하고 몸을 섞는 일은 흔하게 발생했다.

         

       미성년자가 출입 불가능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엘라도 그에 대해선 이미 알고는 있었다.

       설마 대회 개막식에도 그 규정이 적용될 줄은 몰랐을 뿐이다.

         

       “너무 하잖아!”

         

       원더스타인의 설명을 들은 그녀가 방방 뛰었다.

       그래도 명색이 부단장인데 개막식에 참석도 못 하다니.

       그것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16살 소녀를 부단장으로 앉혀뒀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 했겠죠.”

       “그런 악덕 단장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싶었겠지.”

         

       엘라의 빈정거림에 원더스타인이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그의 웃음이 왠지 오늘따라 더 얄밉게 느껴졌다.

         

       한 달 동안 훈련하느라 고생한 게 누군데.

         

       열심히 피땀 흘려 나무를 키워놨더니, 엄한 놈이 과실만 따가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장미 풍차가 자랑하는 군무, 캉캉(Cancan).

       진짜 보고 싶었는데…….

       안 그래도 16살짜리가 부단장이라 하면 다른 곳에서 우습게 볼 것 같은데. 그냥 나이를 3살 올릴 것을 그랬나.

       아니, 이미 장미 풍차 사람들은 내 얼굴과 이름을 다 알잖아?

       아, 치사해. 진짜 치사해.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러나 이건 화내봤자 별수 없는 문제였다.

       극장 쪽의 규정이 그렇다니까.

         

       마야는 엘라보다 그 사실을 더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군요.”

         

       평소와 같은 무감각한 목소리.

       실망의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그럴 뿐.

       그녀는 사실 크게 아쉬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럴 때 드러나는 그녀의 미묘한 표정 변화는 지금까지 오직 원더스타인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아니었다.

         

       엘라의 눈썰미는 예리했다. 그녀의 관찰력은 뛰어나다는 말로 평가될 수준이 아니었다.

       세쌍둥이가 연습할 때 꾀를 내어 셋이서 교대로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알아챈 그녀였다.

         

       며칠이 걸리기는 했지만, 무념해 보이는 마야의 표정에서도 감정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오늘따라 그녀가 더 짜증스럽게 여겨진 것도 그래서였다.

       원더스타인을 입에 담으면서 그에 대한 존경심, 동경,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게 대놓고 눈에 들어왔으니까.

         

       원더스타인의 실체도 모르면서 그가 베푼 약간의 호의에 넘어가서 그를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멍청한 계집애.

       그게 마야에 대한 엘라의 첫인상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은 없었다.

         

       다만, 방금 그녀가 실망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놀라긴 했다.

       뭐든 의욕적으로 덤비는 엘라와 달리 뭐든 무덤덤하게 구는 마야.

       당연히 서커스 그랑프리에도 별 열정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개막식에 이렇게 기대를 했다니.

       의외였다.

         

       스케치북을 꼼지락거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보니 상당히 미련이 많다는 게 느껴졌다.

         

       “우리 둘 다 못 가면 그럼 자작님이랑 둘이서 가는 거네?”

       “그렇게 되겠죠?”

         

       엘라는 유라크네를 슬쩍 바라봤다. 그녀는 지금 스벤의 뼈 조립을 도와주고 있었다.

       분명 방금 대화를 들었을 텐데도 그녀에게 동요는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어딘가 여유 있는 미소를 슬쩍 짓는 게 보였다.

         

       뭐지?

       그렇게 이 인간에게 안절부절못하더니.

       드디어 콩깍지가 벗겨졌나?

         

       그때였다.

       그들의 후원자가 경호원과 함께 후원으로 내려온 것은.

         

       아나이스 베르그송.

       멀리서 그녀의 녹색 머리카락이 보이는 순간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유서 깊은 정원이 불장난에 쑥대밭이 되었다.

       유라크네가 첫날 말하길 여기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귀하고 비싼 꽃들이라고 했다.

       그들이 입힌 손해는 전부 베르그송 상회 측에서 배상해야 할 비용이었다.

       오늘 부순 정원을 다시 복구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평소 예산 문제로 그에게 시시콜콜 잔소리를 늘어놓던 그녀였다.

       이 일을 가지고 얼마나 그를 들들 볶아댈까.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벌써 귓가에 울렸다.

         

       “단장님.”

       “자작님.”

         

       한 소리 들을 각오를 한 원더스타인.

       그러나 아나이스의 입에서 나온 것은 질책이 아니었다.

         

       “뭔가 터지는 소리를 들었는데 괜찮으신가요?”

         

       그건 분명 걱정 섞인 위로였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정원을 둘러봤다.

         

       “단원들은 다치지 않았어요?”

       “네. 다들 무사합니다.”

       “다행이네요.”

         

       이쯤 되자 옆에 있던 엘라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베르그송 자작이 원더스타인에게 마음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긋나긋한 태도는 그녀답지 않았다.

       날카롭게 툭툭 내뱉는 식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왜 이래.

       유라 언니도 그렇고, 자작도 그렇고.

         

       사람이 갑자기 바뀐다면 죽는다고 했다.

       엘라는 그녀가 이별을 고하기 전 주변을 정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이, 설마.

         

       여기서 아나이스의 심리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유라크네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이 승리감으로 뛰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내일이 아마도 마지막 만남.

       그러니 끼어들지 않을게요.

       작별인사는 잘 나누길 바라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나이스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극장에 가셨던 일은 잘 처리하셨나요?”

       “네. 저희 쪽 단원 둘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아 출입이 안 된다고 합니다. 자작님과 저 둘이 들어가게 됐네요.”

       “둘만의 데이트라. 좋네요.”

         

       그렇게 둘은 내일 있을 행사를 대비해서 얘기를 나누며 정원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유라크네는 잠시 둘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곧 엘라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내일 넌 어떻게 할 거야? 호텔에 있을 거니?”

       “아뇨. 광장에서 다른 행사나 구경하러 갈까 봐요.”

         

       그러나 유라크네는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 떠오른 짓궂은 미소가 어떨 때 나오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갈 생각이구나.”

       “네. 지난 몇 주 동안 장미 풍차 직원들 몇 명이랑 좀 친해졌거든요.”

       “어느새?”

       “틈틈이 만나서 놀았죠. 부탁하면 뒷문으로 들여보내 줄 거예요. 특석에서 못 보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혼자 갈 거니?”

       “말하면 한 명쯤은 더 가능할 거예요, 유라 언니 갈래요?”

       “아니, 난 괜찮아. 내가 물은 이유는…….”

       “아! 그럼 혼자 가야겠다! 챙겨야 할 사람 없어서 좋고!”

         

       엘라가 누구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스케치북을 만지작거리던 마야의 손이 멈췄다.

         

         

       ***

         

         

       루즈의 경찰관들은 오늘 하루 잔뜩 긴장한 채 거리를 순찰했다.

       서커스 그랑프리의 개막식이 있는 날이었다.

         

       축제의 준비 기간에 있었던 소란만으로 도시 전체가 몸살을 앓았다.

       축제 당일의 현장에서는 어떤 지옥도가 펼쳐질까, 다들 두려워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기마경찰대의 기병들이 모두 소집되었다.

         

       첫 번째 폭죽이 오른 것은 이제 막 해가 서쪽 건물 지붕 너머로 사라졌을 때였다.

       도시의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동시에 카바레 뒤편의 문이 열리며 수십 명의 악사가 행진을 시작했다.

         

       악사들은 모두 화려한 색의 정복을 맞춰 입었다.

       장미라는 이름을 의식해서인지 붉은색이 강조되었다.

         

       고수들의 북소리에 맞춰 트럼펫, 트럼본 등의 금관악기가 나팔을 불었다.

       군중들은 음악 소리에 맞춰 손뼉을 치고 발을 굴렀다.

         

       그러나 함성이 시작된 것은 그 뒤부터였다.

       이름 높은 장미 풍차의 무용수들이 나온 것이다.

         

       어깨와 가슴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녀들.

       쭉 뻗은 다리가 치마 사이를 살랑거릴 때마다 사람들의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갔다.

       그 미모에 있어서, 그 몸매에 있어서 어느 한 사람 모자란 사람이 없었다.

         

       무용수들은 열정적인 몸짓으로 춤을 췄다.

       그들이 몸을 흔들 때마다 치마들이 들썩거리며 눈부신 빛깔을 뿌렸다.

         

       무용수들이 선 무대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다.

       그것은 말들이 이끌었다.

       루즈의 기마경찰대가 기꺼이 협조해준 것이다.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말들은 차분했다.

       기마경찰대는 엄밀히 따져서 시가 아닌 군 소속.

       말들은 포화 속에서도 겁먹지 않도록 훈련받았다.

         

       카바레의 행진은 장미 풍차 후문에서 시작되어, 광장을 거쳐 시청 앞을 돌아, 다시 장미 풍차 정문으로 들어가며 끝이 났다.

         

       두 번째 폭죽이 오르고, 광장 중앙의 무대 위에서 관현악단이 연주를 시작했다.

       동시에 사람들이 물밀 듯이 광장 내부로 몰려들었다.

         

       막상 축제가 시작되자, 경찰들의 긴장은 금방 풀어졌다.

       우려와 달리 축제는 아주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조용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지금도 장미 풍차 카바레 앞은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했다.

       구경을 나온 인파에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크고 작은 폭죽이 여기저기서 솟아오르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카바레 주변 거리의 천막들에서는 그랑프리에 참여하지 않는 곡예사들이 재주를 부렸다.

       경찰들의 가장 큰 경계 대상이었던 그들은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구경 나온 가족들에게 풍선을 나눠주는 꺽다리 광대가 기마경찰대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한 곡예사는 능숙하게 관객들을 유도하여 경찰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몇 번은 유치장에 끌려와 이제 얼굴이 익숙한 차력사가 여성 경관을 향해 기분 나쁘지 않은 농담을 던졌다. 경관은 피식 웃음을 흘리곤 농담으로 응수했다. 관객들은 웃음과 박수로 호응했다.

         

       기마경찰대의 부사관 사보는 그제야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감탄사, 환호, 칭찬, 박수를 갈구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거나 불쾌하게 만드는 짓은 하지 않았다.

       무대 밖에서는 몰라도 무대 위에서는 철저한 프로들이었다.

         

       “키르쿠스의 영광이 있기를.”

         

       신부님이 들었으면 경을 쳤겠지.

       뭐, 어떤가. 오늘 같은 날.

         

       사보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몰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장미 한 송이가 그의 애마의 갈기에 자연스럽게 꽂혔다.

       천막 위를 사뿐사뿐하게 뛰어다니는 요정 차림의 곡예사가 그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렇게 카바레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오자, 정문 앞에 마차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대부분 귀족 가문이나 기업의 문양을 달고 있었다.

       서커스 그랑프리의 후원자들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외국의 귀족도 많았지만, 샤를로티아 국내의 유명 인사도 있었다.

       방금 카바레 앞에 멈춰선 마차가 그랬다.

         

       “베르그송 상회의 문양이군.”

       “정확히 말해 베르그송 가문의 문양이지. 밑에 ’From 1844‘가 없잖아.”

         

       마차 안에서 다섯 사람이 내렸다.

         

       녹색 머리칼의 마른 체형의 여인이 아나이스 베르그송 자작이었다.

       그 뒤로 서 있는 총사는 경호원이었고, 여자애 둘은 서커스 단원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검은 복장의 금발 남자.

       그가 바로 소문의 그 프랑크 원더스타인이었다.

         

       오늘 사보가 목표로 한 남자였다.

       그의 손에 든 진압봉에 힘이 들어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1년 8월 18일
    -잔환2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저도 50화까지 왔다는 게 믿기시 않네요..ㅎㅎ

    어느새 50화!

    독자님들 응원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그건 진짜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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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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