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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덜덜덜.

       

       병사들의 몸이 떨렸다.

       

       그들의 눈이 먼 곳을 쳐다보며 풀린 듯 몽롱해져 갔다.

       

       툭.

       

       공포에 젖어가는 병사의 몸을 노인이 힘을 주어 흔들었다.

       

       “정신 차려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들려온 목소리에 병사가 공포에서 깨어났다.

       

       “아버지…”

       

       아버지라 불린 노인이 병사의 몸을 뒤로 당기며 성벽으로 바짝 붙었다.

       

       “내 뒤에 있거라. 위험하단다.”

       

       어느새 성벽의 가장 앞에는 노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몸 역시 떨리고 있었으나, 눈빛만은 형형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언데드가 다가올수록 공포가 심해질 것이다. 정신을 못 차리겠거든 입술을 깨물거라.”

       

       “…예?”

       

       “고통이 공포를 잠시나마 걷어 줄 것이다.”

       

       공포에 질린 병사들의 시선이 각기 앞에 서 있는 노인들의 등으로 향했다.

       

       굽어진 허리.

       

       나이가 들어 왜소해진 어깨.

       

       하지만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아버지의 등.

       

       그들의 등은 그때 그대로였다.

       

       “곧 화살에 불을 붙여야 한다. 준비를 부탁하마.”

       

       “…언데드에게 불이 통하나요?”

       

       노인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전장을 밝히기 위함이다.”

       

       언데드가 다가 올 수록 병사들의 떨림은 심해졌다.

       

       수많은 스켈레톤들.

       

       그것들이 뿜어내는 죽음의 기운이란 평범한 사람이 버티기에는 너무도 강렬했다.

       

       덜덜덜.

       

       “두려우냐?”

       

       “…”

       

       병사의 눈이 또다시 공포로 젖어 들어갔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전신으로 엄습했다.

       

       스윽 –

       

       노인이 부드럽게 병사의 등을 쓰다듬었다.

       

       “두렵다면, 아비의 등만 보거라.”

       

       길지 않은 한마디.

       

       그 한마디와 왜소한 등이 병사의 시야에서 언데드를 가려 놓았다.

       

       순간, 성벽의 중앙에서 거대한 불꽃들이 어둠을 가로질렀다.

       

       콰앙 –

       

       번쩍 –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스켈레톤들의 몸이 부서지며 주위가 환해졌다.

       

       수많은 언데드들을 밝히며 불꽃이 타올랐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병사들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저렇게 많은 언데드들을 상대로 어떻게 이긴다는 말인가?

       

       “화살 장전!”

       

       거대한 목소리가 성벽을 통째로 울렸다.

       

       척 –

       

       노인들의 팔이 불화살을 잡아당겼다.

       

       “쏴라!”

       

       명령과 함께 불화살들이 날아가며 전장 곳곳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언데드가 빼곡한 끔찍한 광경이었다.

       

       “허억…!”

       

       “주…죽을 거야…!”

       

       “괴물…!”

       

       “이놈들아! 정신 차리거라!”

       

       병사들의 몸이 노인의 손에 흔들렸다.

       

       뺨을 맞는 사람도 있었으며, 작은 단검으로 자식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노인도 있었다.

       

       “이제 싸워야 한다는 말이다!”

       

       “얼른 창을 들어!”

       

       이대로 전투가 가능하기나 할까.

       

       예상했던 광경에 노인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들이 굳은 얼굴로 창을 쥐며 성벽에 바짝 붙어섰다.

       

       심지가 강한 젊은 병사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오…온다…! 전투 준비!”

       

       긴장감이 고조된 것은 그곳만이 아니었다.

       

       성벽의 중앙.

       

       파라몬과 클로셀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몬, 마법사들의 수가 적네. 마나를 아껴야 할 것이야. 다른 언데드들을 대비해야 하니.”

       

       전투가 얼마나 길어질지 모른다.

       

       클로셀이 굳은 얼굴로 파라몬을 바라봤다.

       

       “알고 있네. 이것이 전부가 아닐테니 당연한 일이지. 그보다…성기사들의 연락은 아직 없는가?”

       

       “없네.”

       

       파라몬과 클로셀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분명히 간단한 조사를 마친후에 합류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것일까.

       

       클로셀이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오지 않을 지도 모르네. 저들의 태도를 보았지 않은가.”

       

       “….”

       

       “스펙터와 벤시를 대비하려면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할 걸세.”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파라몬이 다시 생각을 돌려 성문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급하게 마법사들이 보강을 해 놓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성문이 뚫린다는 것은 수성전에서 패배한다는 것.

       

       “기사들은 병사들을 도와라. 명심하라. 지키면서 싸워야 한다.”

       

       “파라몬님…?”

       

       기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명령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얇은 옷만 걸친 파라몬이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살은 쏠 필요가 없다. 뼈 사이로 지나갈 테니.”

       

       파라몬이 입을 열며 재차 당부했다.

       

       “언데들의 화살도 걱정할 필요 없다. 네크로맨서가 근처에 있지 않다면 활을 쏠 수 없을 것이다.”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성문이 약하구나.”

       

       마지막 한마디의 말을 남긴 파라몬이 성벽을 밟고 뛰어올랐다.

       

       허공으로 치솟은 몸.

       

       파라몬이 땅으로 떨어지며 큰 소리를 만들어 냈다.

       

       쿠웅 –

       

       인간의 몸으로 성벽 위에서 뛰어내려 살 수 있는 자들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파라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성벽 위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스르릉 –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검이 뽑혀져 나왔다.

       

       서거억 –

       

       언제 휘둘러진 것일까.

       

       푸른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성문으로 다가오던 스켈레톤들의 머리를 잘라 놓았다.

       

       서걱 –

       

       서거억 –

       

       검이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분리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파라몬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스켈레톤의 사이를 누비며 귀신 같이 머리를 잘라 내는 그의 검술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푸른 오러만이 번쩍일 뿐.

       

       ***

       

       성벽을 따라 스켈레톤이 기어 올랐다.

       

       가벼운 무게에 강한 힘.

       

       지치지 않는 스켈레톤에게 성벽의 높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으…으아악!!”

       

       다리가 엉켜 넘어진 병사가 손을 휘저으며 뒤로 도망쳤다.

       

       해골과 정면으로 마주한 그 병사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스켈레톤이 병사를 덮치려 할 때.

       

       퍼석 –

       

       스켈레톤의 머리가 부서지며 성벽 밑으로 떨어졌다.

       

       노인이 휘두른 창이었다.

       

       “이렇게 머리를 부숴야 죽는다.”

       

       창이 또 한 번 다른 스켈레톤의 가슴을 노리며 찔러졌다.

       

       갈비뼈 사이로 창날이 긁히며 파고들었다.

       

       그극 –

       

       “…여의치 않을 때는 그대로 밀어내라.”

       

       체중을 골고루 분산한 완벽한 자세.

       

       노인이 힘을 쓰자 스켈레톤이 밀려나며 성벽 밖으로 떨어졌다.

       

       “하아…하아…”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나 흘렀을까.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벌써 늙은 몸뚱이가 힘겨워하고 있었다.

       

       콰과광 –

       

       폭음이 휘몰아쳤다.

       

       성문 앞에서 싸우고 있는 소드 마스터가 만들어 내는 소리였다.

       

       그 이름은 들어 보았다.

       

       클라우스 파라몬.

       

       대륙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그렇다 하여도 노인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귀족의 칼이 평민을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올리는 없기 때문이다.

       

       기사와 귀족의 검이 약자를 수호한다고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소드 마스터의 검이 성벽을 기어오르는 스켈레톤들도 부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무너졌을 지도 모른다.

       

       “일어나서 싸워라.”

       

       노인이 젊은 병사를 일으켜 세우며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노인의 다리에서는 어느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겠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젊은이의 뺨을 한대 올려붙인 노인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스켈레톤이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익….!”

       

       창으로 막은 스켈레톤의 검.

       

       하나를 막기에도 벅찼다.

       

       젊었을 때의 힘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간신히 스켈레톤을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들이었다.

       

       훌륭하게 싸우고 있는 모습.

       

       젊었을 때의 자신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자신이 살아남았으니 아들 역시 살아남으리라.

       

       이제는 등 뒤에만 두던 아이가 아니었다.

       

       흐뭇한 미소가 생겨나기 무섭게 스켈레톤이 한 마리 더 달라붙었다.

       

       그그극 –

       

       “허억…!”

       

       이제는 틀린 것일까.

       

       노인이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았다.

       

       한마디라도 남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들의 훤칠한 등을 가리고 검이 날아왔다.

       

       시야를 가득 메우며.

       

       채앵 –

       

       퍼석 –

       

       “….?”

       

       서걱 –

       

       “병사들을 도와라!”

       

       “…기사?”

       

       노인의 앞을 가로막은 기사.

       

       어느새 주변에 기사들이 빼곡했다.

       

       “성벽 끝이 밀리고 있다! 다들 움직여!”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주변을 스쳐 지나가며, 스켈레톤을 휘저어 놓았다.

       

       “고…고맙습니다…!”

       

       “전투가 불가능해 보이는군.”

       

       기사의 눈이 노인의 옆구리를 훑었다.

       

       “부상자는 뒤로 빠지도록.”

       

       고압적인 태도.

       

       하지만 노인에게는 기꺼운 모습이었다.

       

       기사라는 자들이 마음에 드는 건 이 순간이 최초일 것이다.

       

       달려가는 기사들을 본 노인이 창을 움켜쥐었다.

       

       옆구리가 시큰 거리는 걸 보니, 또 그새 부상을 입은 모양이다.

       

       “허허…죽을힘을 다해 싸워야겠군.”

       

       노인이 성벽을 향해 달렸다.

       

       아들을 향해서.

       

       “아버지!! 왜 아직도 안 내려가고…!”

       

       “아들아, 나 말고 앞을 보거라.”

       

       “헛…!”

       

       다시 보아도 아들의 전투는 훌륭했다.

       

       어느새 얼굴에는 두려움이 걷혀 있었다.

       

       핏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대를 이어 군인으로 키운 것이 전혀 후회되지 않았다.

       

       “아주 나와 똑 닮았구나.”

       

       퍼석 –

       

       노인의 몸에 힘이 넘쳐흘렀다.

       

       방금까지 지쳐 있던 몸이 젊음을 되찾기라도 한 듯 용맹함을 자랑했다.

       

       아들이 빈틈을 만들어내면, 여지없이 노인의 창이 그곳을 휘저었다.

       

       처음 전투를 시작할 때와는 전혀 다른 구도.

       

       주위에 있는 병사들 중 단연코 그들이 으뜸이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호흡이 척척 맞았다.

       

       눈빛 하나면 어떠한 말도 필요 없었다.

       

       콰득 –

       

       이대로라면 언데드가 아무리 몰려와도 버텨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노인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를 보기 전까지는.

       

       “아…아버지! 몸에서 피가…!”

       

       옆구리와 다리 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었다.

       

       날아드는 칼을 쳐 내며 빈틈을 만들어 낸 그는 보고 말았다.

       

       아버지가 어떻게 자신을 도왔는지.

       

       만들어 낸 빈틈을 향해 창을 찌르는 노인의 몸에 또 하나의 상처가 늘어났다.

       

       저 상처로 잠시나마 자신이 안전해진 것이다.

       

       “아…안 돼…아…!”

       

       소리 없는 절규가 흘러나왔다.

       

       부상이 너무도 심각했다.

       

       당장에라도 치료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전쟁 중에 한눈을 판 대가일까.

       

       아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앞에 있던 아버지의 뒤에서 검날이 배를 뚫고 나와 있었다.

       

       “아…아버지…!”

       

       “한눈 팔지 말거라.”

       

       노인은 굳건했다.

       

       힘없이 바닥으로 스러지면서도 눈빛이 앞을 향해 있었다.

       

       이제는 등 뒤에서 벗어나 앞에 있는 아들에게로.

       

       “내 등 뒤에 있지 않아 다행이구나.”

       

       가까워지는 바닥.

       

       무너지는 와중에도 노인은 창을 휘둘렀다.

       

       죽을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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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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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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