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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라이너스가 속한 제국군 8군단은 얼마 전 소왕국 아보카의 남단 끄트머리에 상륙했다.

       

       소왕국 아보카는 마치 장화 모양처럼 길게 뻗어 나온 반도국가.

       

       제국의 수도 칼바사르와 좁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예로부터 왕래가 매우 잦은 끈끈한 동맹국이다.

       

       그런 아보카 왕국을 마왕군이 침략했고 왕국의 군대는 고전을 면치 못하며 계속 남쪽으로 후퇴.

       

        이제 바다 말고는 물러날 곳이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제국에서는 제후국 구원을 명목으로 8군단을 아보카 왕국군 후방에 통째로 이동시켰다.

       

       아보카 왕국이 뚫리면 배를 타고 직선으로 칼바사르까지 진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보카 왕국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상륙 후 아보카 왕국군과 합류한 8군단은 기세 좋게 북진하다가 반도의 1/3 지점인 낙타령에서 마왕군의 거센 저항에 막히게 된다.

       

       상호간에 마법과 온갖 투석무기들이 날아다니는 통에 양측은 전선에 참호를 파고 지루한 대치에 돌입했다.

       

       군단 지휘부에서는 지금 대적하고 있는 마왕군의 군단이 대체 몇 군단인지를 알아내기 위래 골머리를 앓았다.

       

       어디 놈들인지를 알아야 대략적으로나마 전력을 유추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대응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지금은 저 지랄 맞은 참호선 뒤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기다리고 있을지 당장은 알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저놈들이 아보카 왕국 접경지역에서 사라진 마왕군 정예 9군단이라면 여기서 더 밀고 올라가는 건 자살행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체된 상황에 라이너스와 디안이 최전방 참호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 # # # #

       

       

       “나는 라이너스다.”

       

       라이너스가 디안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너, 한 달 전에 입대했지? 나도 딱 그때쯤 들어왔어. 동기끼리 잘해보자고.”

       

       사실 디안은 일주일 전, 8군단이 막 상륙전단을 꾸릴 때에 입대한 신병 중의 신병으로 엄밀히 따지만 라이너스의 후임.

       

       그러나 전투에 돌입하면 반나절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판국에 동일계급 신병끼리 선후임을 나누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그런데, 냠냠, 너는 어디서 왔냐?”

       

       나란히 앉아 감자를 먹으며 디안이 물었다.

       

       “말해줘도 아마 모를 거다. 그저 제국 귀퉁이 소왕국의 작은 영지에서 왔다고만 알아둬라.”

       

       “영지에서 왔다고? 그럼 너 귀족이냐?”

       

       “농노의 자식이었다.”

       

       “그러면 귀족군에 편입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제국군에 있어?”

       

       “우리 영주님은 사람은 좋지만 그외에는 무능한 분이시다. 그분을 따라 전장에 나서서 의미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서 제국군에 지원했다.”

       

       그러자 디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죽는 게 싫으면 그냥 도망치면 되잖아. 여기라도 귀족군하고 다른 거 없을 걸?”

       

       “그럴 수는 없어. 불온한 마왕군 때문에 대륙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두고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역시 라이너스가 맞군. 제대로 찾았어.”

       

       디안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자 라이너스가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무슨 소리지?”

       

       “아무 것도 아냐. 좋아. 그럼 내가 도와주지.”

       

       “뭘 도와주겠다는 것이냐?”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휘그르르르르르르-

       

       “마법이다!”

       

       디안과 라이너스가 동시에 참호 바닥에 몸을 던지자마자 콰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참호가 통째로 흔들리며 그들 위로 흙더미가 와르르 쏟아졌다.

       

       휘그르르르르- 쾅- 휘그르르르르- 콰광-

       

       “염병하네, 진짜 뿔쟁이 새끼들.”

       

       디안이 바닥에 쏟아져 먹기 힘들게 된 소금을 아깝게 보며 욕을 내뱉었다. 라이너스의 감자 역시 저만치 굴러가 잔뜩 더러워져 있었다.

       

       잠시 후 적의 산발적인 마법공격이 멈추자 디안과 라이너스는 몸을 털며 일어났다.

       

       “난리다, 난리.”

       

       재수없게 마법에 당한 병사들의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것을 보며 디안이 혀를 찼다.

       

       “야, 라이너스. 개죽음은 싫다고 했지? 이왕이면 끝까지 살아 남아 이 부당한 시국을 끝내고 싶지?”

       

       “그… 그래….”

       

       시체가 뿔뿔이 흩어진 참담한 광경에 정신이 혼미해진 라이너스가 떠듬거리며 대답했다.

       

       “좋았어. 나랑 같이 움직이자. 이 지랄 맞은 참호에서 벗어나 마왕성까지 가보자고. 따라와.”

       

       “어디를 가는 거냐?”

       

       “따라와 보면 알아.”

       

       

       # # # # #

       

       

       “이런 건방진 자식들이!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참호 후방의 대대 지휘소.

       

       난데없이 들이닥친 병사 두 명을 입구에서 대대 참모가 호통치는 중이었다.

       

       “대대장님께 건의드릴 게 있습니다.”

       

       “너네 소대장 중대장은 다 뒤졌냐!”

       

       “말했는데 다 무시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디안은 서슬퍼런 참모의 질책에도 당당했고 라이너스는 그 뒤에서 다소 긴장한 빛으로 서있었다.

       

       “밖에 뭐냐?”

       

       그때 지휘소 안에서 대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대대장님. 병사 두 명이 갑자기 건의사항이 있다며 찾아와서 말입니다. 보나마나 별일도 아닌 부상으로 후방이송이나 뭐 그런 것일 테니….”

       

       “대대장님! 저희가 적군 포로를 잡아 오겠습니다!”

       

       “닥쳐, 이 자식아!”

       

       “들어오라고 그래.”

       

       꽥 소리치던 참모는 대대장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지휘소 안으로 들여보냈다.

       

       “흐음.”

       

       지휘소 안에서 대대장은 디안과 라이너스의 얼굴을 찬찬히 보며 물었다.

       

       “너희가 포로를 잡아 오겠다고? 이유는?”

       

       “현재 우리가 진격도 후퇴도 못하는 건 저 앞에 있는 놈들이 어디 소속인지 몰라서가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포로를 잡아와서 심문하면 알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일단 허락부터 해주십시오. 그러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일개 병사가 대대장에게 하기에는 당돌한 발언에 참모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건 라이너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대장은 차분하게 물었다.

       

       “그전에 한 가지 묻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포로를 잡으러 나가는 건 자살이나 다름없다. 그런 위험한 일을 하려는 이유가 있나?”

       

       “여기 처박혀 있어도 죽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손가락만 빨다 운 없으면 투석기나 마법에 맞아 죽을 것이고 후퇴한다는 선택지는 있을 수가 없죠. 여기서 더 밀리면 칼바사르까지 바닷길이 뻥 뚫리게 되니까요.”

       

       디안의 말에 대대장의 눈에 흥미로운 빛이 돌았다.

       

       “다른 군단의 지원을 받는다는 수도 있지 않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설명해 봐.”

       

       “지금 제국에서 여기에 돌릴 예비군단이 없으니까요. 만약 있었다면 고작 군단 하나만 보냈겠습니까? 오히려 여기는 바다가 있으니 차순위로 두고 육로로 이어지는 다른 요충지 방어에 더 급급할 겁니다. 그러니 이러나저러나 결국 우리 군단이 여기서 끝을 봐야만 한다는 거지요.”

       

       디안의 말에 대대 참모들이 다소 놀란 빛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고작 하전사가 저렇게 멀리 내다본다고?’.

       

       “그런데 저는 칼 한번 못 뽑아 보고 참호에서 언제 죽나 기다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약 포로를 잡아서 저것들이 어디 군단인지, 우리 군단이 정면으로 들이받아 볼만한 것들인지 판단할 수만 있다면 지금과 같은 좆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잠시 침묵하며 디안을 보던 대대장이 입을 열었다.

       

       “너, 디안이라고 했나? 하전사라고?”

       

       “그렇습니다.”

       

       “좋아. 승인한다.”

       

       “대대장님! 하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참모의 반발에 대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저 하전사의 말대로다. 어차피 우리 군단은 여기서 북진하든 바다에 수장되든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고, 그렇다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야만 하겠지. 승인한다. 디안과 라이너스. 너희 둘이 포로를 잡아 와라.”

       

       “감사합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디안이 확신에 가득차 대답했다.

       

       “그런데 방법은?”

       

       “아,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디안이 설명하자 지금껏 침착을 유지하던 대대장의 눈빛이 다소 흔들렸다.

       

       “미친 짓이로군….”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게 전쟁이지요.”

       

       디안이 씨익 웃었다.

       

       

       # # # # #

       

       

       “정말로 괜찮은 거냐?”

       

       막 새벽 동이 터오르는 시간

       

       참호 후방의 버려진 농가 이 층 창가.

       

       위장을 위해 창가를 덮은 그물망 뒤에서 라이너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아, 괜찮다니까.”

       

       그물망 사이로 적진을 살피며 디안이 낄낄 웃었다.

       

       “적어. 두 명. 동에서 북으로. 보통 보폭.”

       

       라이너스는 반신반의하며 디안이 관측한 것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수첩은 지난 일주일 간의 관측기록으로 빽빽하게 들어찬 상태. 모두 적들의 경계태세에 관한 것들이었다.

       

       대대장 승인 이후 디안은 여기 눌러앉아 하루종일 집요하게 적진을 살폈고 본 것은 모조리 수첩에 적었다.

       

       그것을 지도에 도식해 최적의 침투로까지 모두 산출해 냈고 오늘은 혹시나 적의 경계작전에 변동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중이다.

       

       “좋아, 라이너스.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다. 오늘 들어가면 딱 맞겠어.”

       

       “이거 정말 성공할 수 있는지 걱정이군.”

       

       “걱정하면 뭐가 달라지냐? 그리고 이거야말로 네가 바라던 거잖아. 대륙의 평화에 기여하는 것.”

       

       디안이 라이너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를 믿고 따라와. 그러면 너랑 나 둘 다 전쟁 끝날 때까지 팔다리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어.”

       

       “너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거지?”

       

       “너를 믿는다.”

       

       “나를? 그건 무슨 소리냐?”

       

       “가자. 늦으면 내일 이 시간까지 하루를 더 허비해야 해.”

       

       디안과 라이너스는 농가를 내려와 참호를 타고 최전방으로 이동했다.

       

       디안이 선정한 침투로의 시점에 멈춰서 기다리자 잠시 후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휘그르르르르르-

       

       아군의 후방에서 시퍼런 빛줄기 몇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들어 참호 바로 앞에 떨어졌다.

       

       바닥에 마법이 내리꽂히며 자욱한 포연이 피어오르자 디안이 소리쳤다.

       

       “뛰어!”

       

       디안과 라이너스는 참호를 기어올라 전력으로 전진을 향해 달렸다.

       

       휘그르르르르르르-

       

       그들이 막 첫 번째 포연으로 들어가자 두 번째 마법 공격이 그들의 진행방향 전방에 떨어졌다.

       

       첫 번째 포연을 뚫은 디안과 라이너스는 뒤이어 피어오른 두 번째 포연으로 몸을 감췄다.

       

       이어지는 세 번째 네 번째 마법공격과 포연에 숨어 그들은 계속 달렸고 점점 목표지점에 가까워졌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야…. 미친 짓이라고….”

       

       귀를 찢는 굉음과 머리를 울리는 진동을 직통으로 뚫고 나가며 라이너스가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아군의 공격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는 극도로 무모한 기동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야 참호와 참호 사이의 허허벌판 황무지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다 왔다! 저기다, 라이너스!”

       

       다섯 번째 포연을 뚫은 그들은 비로소 목표지점인 적의 참호 가까이에 위치한 좁은 수풀지대에 몸을 던졌다.

       

       휘그르르- 콰앙- 휘그르르르- 콰광-

       

       아군의 마법공격은 그들을 지나쳐 적의 참호를 한번 쓸고 지난 후에 멈췄다.

       

       디안과 라이너스는 수풀 아래에 배를 납작하게 깔고 엎드려 때를 기다렸다.

       

       아군의 의미없어 보이는 마법공격에 잠시 소란스럽던 적의 참호가 조금씩 조용해졌다.

       

       서로간의 표적을 정하지 않은 위력포격이 일상화된 상태라 그러려니 넘어간 모양이다.

       

       가만히 엎드려서 하늘의 태양을 곁눈질하던 디안은 라이너스를 툭툭 건드리며 전진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일주일 동안 눈알이 빠질 만큼 지겹도록 봐온 결과 지금 이 시점 이 지점이 가장 경계가 취약하다.

       

       라이너스와 디안은 입에 단도를 물고 천천히 수풀을 기어갔다.

       

       참호를 크게 도는 순찰조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빠르게 끝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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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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