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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0

    <500 – 도적길드 vs 혁명군(4)>

     

    웨스커는 억울했다.

    대륙십대도적이면 도적답게 하찮고 졸렬한 싸움이나 할 줄 알았다.

    문을 딴다거나 몰래 숨어다닌다거나 그런 거.

    그런데 <거울>이라니.

    거울의 양면처럼 인계를 뒤집은 명계를 거울표면을 통해 등장시킨다니.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도적놀이나 할 능력이 아니다.

    삼대검왕.

    오색마법주.

    그런 거물들과 나란히 대륙십대도적이 거론되는 이유가 실감될 정도의 강함이다.

     

    “어째서 그런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도 고작 도적길드 따위에 남아있는 겁니까! 그런 힘을 혁명군을 위해 사용한다면 진즉 대의를 제국전역에 바로 세우고도 남았거늘!”

    “혁명군은 싫거든.”

    “도적길드는 뭐가 다릅니까? 어차피 도둑질이나 하려고 모인 것들인데!”

    “누명에 살인, 증거조작. 그런 건 도적길드도 필요에 의해 저지를 때가 있으니 이해 못 할 건 아니야. 그런데 너희가 선을 넘은 게 있어. 우린 적어도 마인토벌을 위해 마인과 손잡는 인류의 배신자들을 잡을 때에나 그런 짓을 벌이거든.”

     

    혁명군은 근본부터 태가 달랐다.

     

    “너흰 민간인을 도륙하잖아.”

    “대의를 위한 희생일 뿐입니다!”

    “그래서 싫어.”

     

    릴리아의 감정에 호응하여 웨스커의 힘을 소진시키는데 투입되던 망령들의 일부가 후방에 모여 몇 개의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눈 부신 빛에 휩싸인 망령들은 혼의 융해와 재결합을 통해 원혼의 밀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진 상위몬스터로 진화를 이루었다

     

    <울부짖는 벤시>

    <손목 긋는 네이리>

    <눈 가리는 프리키>

     

    고스트계 몬스터의 상위종들의 등장에 웨스커가 휘하 적색마법사들에게 소리쳤다.

     

    “잔챙이들은 알아서 막으세요.”

     

    사방에서 몰려드는 유령들을 막는 데 전개하던 힘을 거두고 그녀 또한 불마법의 밀도를 올리는 고위계마법을 발동했다.

     

    <파이어다이브>

     

    수준 이하의 부정한 존재는 불길에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불타올라 재가 되어 없어질 불을 온몸에 두른 화염계 돌진기!

    콰아앙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발칵 뒤집히던 도시가 어느 경계를 기준으로 파괴에서 벗어났다.

     

    <광역방어경계 – 대도시방어사양>

     

    파이어다이브의 착지 여파조차 거뜬하게 견뎌내며 경계의 안팎이 격리되었다.

    웨스커는 전대용사 디스트로이어의 작품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내었다.

     

    “설치형 경계를 일정 수준 이상의 파괴가 도시에 닿는 순간 자동 발동하도록 조건부 술식을 심어두어서 만들었군요. 성벽보다 효과적인 경계의 벽을 세우기 위해서.”

    “언젠가 도적길드 본부가 습격당할 사태에 대비했거든. 설마 마인도 아니고 인간에게 먼저 침략당할 줄은 몰랐지만.”

    “그래봤자 이제 끝이죠. 경계가 펼쳐진 이상 너는 저 너머의 사람들을 망령으로 끌어들일 기회를 놓쳤어요. 수의 폭력도, 상위종의 융합도 막혔죠.”

     

    차라리 경계를 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더 많은 망령들이 몰려올 수 있었다.

    만일 일이 그렇게 돌아갔다면 <파이어다이브>로 해치운 것과 동등한 수의 상위종 유령들이 다시 일어나고 필살기나 다름없는 기술을 다시금 사용하며 웨스커는 마력탈진에 허덕이다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야만 했을 것이다.

    그때의 교전은 한 도시 전체의 유동인구만큼의 몬스터를 홀몸으로 상대하는 미친 짓이니까.

    하지만 그 길을 상대가 닫았다.

    고작 인명피해가 두려워서.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을 견뎌내지 못한 좁고 얕은 시야가 자처한 위기입니다. 혁명군과 도적길드의 차이를 실감하며 죽도록 하세요.”

     

    강적이지만 결국 여기까지에 불과하다.

    승리를 확신하며 웨스커는 결정타를 위해 마나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릴리아의 눈에는 두려움도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겼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확신만이 도사렸다.

    거울이 될 파편은 모조리 깨져 잔해 사이에 작은 알갱이가 되어 처박혔는데.

    강물조차 말라버린 수로에는 작은 웅덩이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데.

     

    ‘허세겠죠.’

     

    잔인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웨스커의 손이 지평선에 한 획을 더했다.

    손가락 끝에 맺힌 작렬의 기운이 경계 안을 폭발로 가득 채웠다.

     

    “웨스커님?!”

    “그런 위력으로 폭발을 일으켰다간 저희도…!”

    “걱정 말아요. 죽지는 않아. 쓸모없는 당신들이라도 망령으로 넘겨주기는 싫거든요.”

     

    정말 죽지만 않고 간신히 살아남을 정도로 부하들에게 향하는 여파가 조절된 폭발.

     

    <6위계 절멸마법 – 레드라인Redline>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터지는 폭발 사이로 뜨겁게 차오르는 열기가 웨스커의 심장을 가쁘게 뛰도록 만들었다.

    그래, 이거다.

    그녀는 이런 폭발 속에서만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한 소녀를 무너뜨리기 위해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세계에 끝을 고하는 순간이.

    자신에게 가혹했던 만큼 동정할 여지조차 없는 세계에 이번에는 그녀가 가혹해질 수 있는 순간이.

     

    “하아아아아…! 좋아요. 실로 좋아. 작렬하는 폭발로 온 세상을 폭파시키는 순간의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허벅지를 비비 꼬며 두 손으로 화끈 달아오르는 뺨을 쓸어내리는 웨스커.

    그녀의 교태 섞인 외침에 온도가 다른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대답했다.

     

    “약점을 보여주면 적색마탑의 마법사는 반드시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하아아?! 작렬하는 레드라인 속에서도 살아남다니, 당신 좀 지나치게 끈질기지 않나요? 화염친화가 부족하면 폐부까지 불타오르고도 남아야 하는데!”

    “질문이 잘못됐어. 나라면 어째서 네가 적색마탑의 마법사인지 알았냐고 먼저 물었을 거야.”

     

    어라? 그러게.

    정말 어떻게 알았담?

     

    “물어본 적은 없지만 친절하게 대답해주자면, 성장을 위해 내가 익혔던 기술에는 오색마탑의 마법도 있었지. 적색의 주류학파인 작렬도 예외는 아니야.”

    “하하. 사문의 정에 기대어 목숨을 애원하기라도 할 작정인가요? 당신, 제법 귀여운 구석도 있군요.”

    “귀여운 건 어느 쪽일까.”

     

    경계를 가득 채운 폭연이 가셨을 때, 웨스커의 희열에 가득 찼던 얼굴이 당혹스러움에 일그러졌다.

     

    <상쇄>

     

    웨스커가 펼친 적색마탑의 비전기술 <레드라인>이 같은 화계마법에 의해 상쇄되었다.

    지팡이의 힘을 빌려 쥐어 짜낸 6위계의 마법이 막혔다면 상대가 동원한 것도 6위계여야만 한다.

    도저히 어깨너머로 배울 수준이 아니다.

    고르고 고른 엄선된 천재들도 수개월을 탑에서 보내며 익혀야 하는 비전.

    그런 비전이 완벽하게 유출되었다.

    우연히 기술서가 유출되었다는 수준의 이야기는 진즉에 넘었다.

     

    “비전이란 결국 하나의 심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풀어 쓴 것에 지나지 않아. 수많은 분야의 기술을 배우다 보면 인간의 상상력이란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

    “비전유출 없이도 독자적으로 비전을 깨달았다는 건가요?!”

    “어려울 건 없었지. 실제로 이렇게 네 비전마법을 막아낸 것처럼.”

     

    이해할 수 없다.

    사고가 따라잡을 수 없다.

    천재소리를 들으며 자라온 웨스커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재능의 범주에 공포가 밀려왔다.

    이건 안 돼.

    마음이 꺾인 그녀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녀의 퇴로를 막은 경계는 건재했다.

    건재한 정도를 넘어서 새빨간 빛을 띠며 강력한 마력반응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이 반응은 직전까지의…?!”

    “그래. 결계는 투명해. 투명하다면… 얼마든지 거울이 될 수 있어.”

     

    두 사람의 기운이 상쇄되며 하늘로 솟구쳤던 기운은 경계 내부표면을 따라 반구형으로 흩어졌다.

    그때의 폭발력을, 에너지를 릴리아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되돌려줄 시간이야.”

     

    두 사람의 마법이 상쇄되며 일어난 충격이 경계표면을 따라 다시금 솟구쳤다.

    안 돼.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

    웨스커가 다급히 지팡이를 들고 외쳤다.

     

    “합동방어마법진 가동!”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적색마법사들이 그녀의 부름에 응해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나 부하들을 배려하지 않았던 그녀의 폭발은 부하들이 쥐어 짜낼 수 있는 출력의 한도를 크게 낮춰버린 뒤였으니.

     

    “아아악!”

    “크아악!”

     

    하나둘 마나가 고갈된 마법사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거나 마나역류현상에 의해 불이 붙은 몸으로 발버둥 치다가 쓰러졌다.

    함께 막아도 부족한 위력을 홀로 견뎌내야만 했던 웨스커는 직전의 부하들이 그렇듯이 목숨은 건졌으나 여력은 없는 궁지에 몰렸다.

     

    쨍그랑!

     

    경계의 힘을 빌린 반격 탓에 과열을 견디다 못한 경계가 파괴되었지만, 그마저도 릴리아에게는 손해가 아니었다.

    경계는 이미 제 몫을 다했고, 웨스커에게는 대량학살을 펼칠 여력이 남지 않았으니까.

     

    “제어 수갑 채워.”

     

    릴리아의 지시에 경계 인근에서 대기 중이던 카넬레 시 경비대가 달려왔다.

    대다수의 부하를 잃고 목숨만 건사한 그녀의 손목에 영락없이 수갑이 채워졌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하에 도움이 필요해. 지상의 혼란수습은 본부가 안정되는 대로 도와줄 테니 경비전력의 공백을 시 경비대가 메워줬으면 좋겠어.”

    “대륙십대도적의 부탁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환히 웃으며 손을 내미는 경비병.

    어딘지 모를 꺼림칙함에 릴리아가 망설이자 경비병이 애써 상처를 감추려 애쓰는 웃음을 지었다.

     

    “역시 높으신 분에게 천한 평민의 손길이 닿아서는 곤란하겠죠?”

    “…곤란하지 않아. 가진 힘이 다를 뿐, 피차 평민이라는 신분도 마찬가지고.”

     

    부탁하는 처지에 상처를 줄 수는 없지.

    웨스커와의 격전은 릴리아에게도 부담이 컸지만 악수야 별것도 아닌 일.

    지친 몸을 이끌고 애써 마주 손을 내밀었다.

     

    철컥.

     

    마주 잡은 손에는 어째서인지 고위계 범죄자에게 채워야 할 봉인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함정?!’

     

    릴리아는 본능적으로 뒤로 체중을 실어 경비병을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단숨에 복부를 강타하여 쓰러뜨리고 품에서 열쇠를 꺼내 수갑을 해제한다.

    완벽에 가까웠을 계획은 무서울 정도로 정교한 반격에 가로막혀 봉쇄되었다.

     

    “봉인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이 정도의 한 손 격투를 벌이다니,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의욕만 넘치는 우리 웨스커 양이 참패를 면치 못하는데 어찌 윗사람으로서 두고만 볼 수 있겠습니까.”

     

    웨스커의 윗사람.

    혁명군의 간부보다 높은 자.

    모든 기술을 최소 5위계 수준의 숙련도로 펼칠 수 있는 그녀의 격투술을 능가하는 실력자.

    마나운용이 방해받는 봉인수갑을 그녀의 한쪽 손과 자신의 한쪽 손을 함께 찬, 차라리 혼자만 봉인수갑을 차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상태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마나연공법을 펼쳐낸 자.

    이런 신분.

    이런 실력.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한 사람뿐이었다.

     

    “자, 릴리아 양.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마음 아픈 도적길드 분들에게 어디 한 번 보여주러 가봅시다. 혁명가 토벌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저들이 릴리아 양의 희생을 눈감을 수 있는지, 우정을 소중히 여기며 끝내 기회를 놓칠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삼대거악의 일축.

    혁명군의 수뇌.

    <혁명가>가 그녀를 인질로 붙잡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wa! 5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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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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