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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1

    <501 – 혁명가의 유혹(1)>

     

    릴리아는 철저하게 제압당했다.

    제어수갑을 찬 처지는 피차 마찬가지일 텐데.

    수갑을 챈 대상의 마나를 구속하는 항마의 기운이 마구 침투해서 기를 운용하기만 해도 피를 토할 정도의 고통을 느끼게 될 텐데.

    죽음을 불사하고 마나를 끌어올린 그녀의 저항에도 혁명가는 핏기조차 보이지 않고 여유롭게 응수하며 릴리아의 저항을 찍어눌렀다.

     

    “세상을 쉽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요행을 바랍니다. 크게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죠. 쉬운 삶과 성공한 삶. 언뜻 보기엔 비슷한데 막상 사람들은 이 둘을 같다고 인정하지 않죠. 그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알 바 아니야. 얼른 쓰러지기나 해!”

    “요행은 노력이 부족했고, 성공은 노력이 충분했던 겁니다. 쉬운 삶과 성공한 삶은 다르지 않지만 그들이 행한 노력은 다르죠.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노력은 절 제압하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혁명가 토벌이라는 대업을 이루기엔 너무 쉬운 삶이었던 것이죠.”

     

    인정할 수 없었다.

    세상의 온갖 비기들을 전부 구사하면서도 다치지 않을 수 있도록 디스트로이어의 곁에서 온갖 기술을 훔쳐 배워왔다.

    때로는 아군이 사용하는 기술을.

    때로는 적군이 사용하는 기술을.

    용사행을 거듭하며 마주한 강자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재능이 뛰어나다고 노력을 등한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증거가 수만에 달하는 기술의 종류들이다.

     

    “이보다 치열할 수는 없었어. 또래의 평범한 여자들이 화장과 쇼핑,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이나 유흥에 시간을 보낼 무렵에도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렸어!”

    “인정합니다. 당신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감히 제어수갑을 찬 상태로 저를 제압하려 들 사람은 흔치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내 삶이 쉽다고 말을 해? 쉽지 않아. 내 인생도, 내 노력도!”

    “그래도 제 대답은 변치 않습니다. 노력이 어떠했든 당신의 삶은 여전히 쉽습니다.”

    “어째서!”

    “상대가 저이기 때문입니다.”

     

    웨스커의 화계마법에 그슬린 지하통로로 진입하면서도 혁명가는 뒷걸음질 치고 벽을 붙잡는 릴리아의 저항 시도를 가볍게 무시했다.

    거침없이 앞서가는 그의 발걸음에 릴리아는 질질 끌려가고 혁명가의 팔에 끌려다닐 뿐이었다.

     

    “대륙십대도적의 전대 서열 5위 자비도둑. 무자비의 극의를 이룬 남자를 거울처럼 정교한 모방으로 능가하고자 벌였을 노력은 적지 않을 겁니다. 한 개인이 인생을 걸고 맞설 숙적으로 삼기엔 지나치게 가혹할 정도로 강한 상대이죠.”

    “…”

    “그런데 이를 어떡합니까. 당신이 노리는 혁명가라는 남자는 무려 제국을 적으로 둔 사내. 제국의 품에는 전대 자비도둑 수준의 강자가 황제를 따르는 어중칠검 하나만 해도 일곱이나 되는데 말입니다.”

     

    지하수로의 발에 채이는 누군가의 유해였을 잿더미를 짓밟으며 혁명가가 큭큭 웃었다.

     

    “아시겠습니까? 어중칠검 하나만 해도 이미 제 목표는 당신의 일곱 배인데. 그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제가 해왔을 노력이 고작 당신의 노력에 비교되는 것은 오히려 저를 향한 모욕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이 되었다.

    혁명가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릴리아에게는 자부심이 있었다.

    어차피 혁명가도 사람이라고.

    두려운 건 혁명군의 규모와 민중의 지지뿐이라고.

    본인이 나서면 해치우는 건 손쉬울 거라고.

    모두 오판이었다.

    혁명가는 강했다.

    대륙십대도적조차 마나연공법의 운용이 불가해질 정도의 가혹한 방해 속에서도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마나를 사용할 정도로.

    그의 마나제어술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왜 그런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도 제국에 저항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거지?”

     

    그것은 일찍이 웨스커가 릴리아에게 던졌던 화두와 다를 바 없었다.

    그 힘을 우리를 위해 사용하면 좋았을 텐데.

    보다 나은 사용처가 있을 텐데.

    올바른 건 네가 아닌 이쪽이 분명한데.

     

    “제 사명이 바로 선 이유에 대해 처음부터 들려드리기에는 너무 긴 이야기가 되겠군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당신의 사정과 비슷할 겁니다.”

    “내 사정이 무엇인지는 어떻게 알고?”

    “전대 대륙십대도적 서열 5위 자비도둑. 그 남자 또한 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여야만 했던 대상 중에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자비도둑이…?”

    “당장은 혁명군이 부득이하게 목표를 이루고자 카넬레 시의 시민들과 도적길드의 길드원분들을 사살하고 있지만 저희에게도 대중을 위한 대의는 존재합니다. 전대 자비도둑은 그 대의가 위협받을 정도로 지나치게 거친 분이었죠.”

     

    쿠웅.

     

    혁명가의 발길질 한 번에 도적길드 본부로 향하는 지하수로 비밀출입구가 개방됐다.

    릴리아의 공세로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며 제압되었던 웨스커가 독한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혁명가의 앞으로 나섰다.

     

    <화염방사>

     

    통로를 가득 메운 함정들이 오작동하는 소리를 배경삼아 혁명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비도둑은 대기근이 닥쳤을 무렵, 가뜩이나 제국의 수탈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도시에서 약자들을 착취하여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앗아갔습니다. 오직 자신만을 중시하는 그는 제국과 마찬가지로 혁명군의 대업에도 방해가 될 사내였죠.”

    “그렇게 거슬렸으면 좀 더 빨리 죽여주지 그랬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도록.”

    “저 또한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국이라는 대적을 앞에 두었기에 남부 신성도시국가연맹에도 손을 뻗기엔 다소 시간이 걸렸으니 말입니다.”

     

    제국의 적이라고 불릴 정도의 남자다.

    그런 혁명가가 남부의 일에 적시에 개입할 수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릴리아도 정말로 혁명가가 자신 대신에 자비도둑을 해치울 것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당신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조금만 더 시야가 넓었더라면, 혁명군의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수 있었더라면 복수의 날을 앞당겨줄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개수작 부리지 마. 이미 지나간 일을 멋대로 떠드는 것쯤이야 돈도 시간도 들지 않는 값싼 동정에 지나지 않아.”

    “그래도 마음만은 알아주셨으니 다행입니다. 더는 제 손으로 당신을 지면에 대고 질질 끌고 다니지 않아도 제 발로 일어서주시기는 하지 않습니까.”

    “…바닥에 쓸린 상처가 아팠을 뿐이야.”

    “큭큭. 그런 걸로 해둡시다.”

     

    함정구간의 너머, 다시금 나타난 복도에 화염방사를 펼치려던 웨스커를 혁명가가 저지했다.

    그가 손을 까닥하자 혁명가의 뒤를 따르던 무리 사이에서 젊은 여성이 피리를 들고 나섰다.

     

    <탐색의 노래 – 음파탐지>

    <활동감지>

    <마나감지>

     

    레이더를 작동시키듯이 주변 일대를 수색한 노래에 실린 마나가 여성에게 되돌아왔다.

     

    <표적 생성>

    <추적>

     

    화려한 빛이 어둠 속에 숨었던 도적들의 육신을 가차 없이 폭로했다.

     

    “쳐라!”

    “성가신 탐지능력. 저걸 놔둬선 안 돼.”

    “음유시인만 죽이면 된다.”

     

    벽과 천장, 바닥으로 빠르게 흩어져 달려드는 길드본부 내에 대기하던 도적들.

    무력부대의 통로 전체를 활용하는 원형돌진에도 음유시인은 뒤로 물러서는 대신, 나지막이 경고의 목소리만을 전했다.

     

    “결계를 쳤습니다. 10초간 제 앞으로 나서지 마십시오. 생사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여성이 다시 피리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도적들은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음파차단>

    <감각차단>

     

    무슨 짓을 벌여도 상관없다.

    소리로 위협한다면 듣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그런 대응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피리소리를 따라 차원의 경계가 열렸다.

     

    <거인찬사곡>

     

    숨 가쁜 소리와 함께 점차 크게 열리는 경계.

    당황한 도적들이 제 발로 앞으로 나선 여성의 숨통을 끊고자 암기를 날렸다.

    일부가 연주를 방해하는 사이, 나머지는 더욱 속도를 올려 근접전으로 확실하게 처리한다.

    또 나머지는 음유시인이 쓰러짐과 동시에 열릴 결계 너머의 마법사들부터 쓰러뜨리고자 기를 비축하며 돌파를 준비했다.

     

    <일장, 거인의 내리침>

     

    콰과과.

    그 모든 협동이 통로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손의 등장과 동시에 끝났다.

    내밀었던 손을 움켜쥔 거인이 시체를 한 움큼 가득 쥐고 사라지자 통로는 피와 살이 튄 흔적만을 무참하게 드러냈다.

     

    “시간이 아직 남는군요. 이야기를 조금 되돌리죠. 당신은 저의 목표를 궁금해하셨죠?”

    “…그래.”

    “제국의 정의는 황가의 부흥과 존속을 위한 것. 그들은 희생을 모릅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지탱하는 부를 나누지 않고, 수많은 민초들이 굳게 닫힌 창고만 바라보며 굶어 죽죠.”

    “제국이 막대한 식량을 비축하고도 민중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았다고?”

    “잔혹한 현실이죠.”

    “흥. 혁명군은 속일 수 있어도 도적길드는 속일 수 없어. 제국의 식량창고에는 네 생각처럼 그렇게 많은 식량이 남아있지 않았어.”

    “확신하시는군요?”

    “우린 도적이야. 호기심은 참지 못하고 궁금하면 직접 찾아가서 잠긴 문 너머를 들여다보지.”

    “제국의 창고를 열어보았습니까?”

    “봤어. 그곳에 남은 식량은 비상시에 병사들에게 나누어줄 최소한의 군량미밖에 남지 않았어. 대기근이 닥쳤을 당시엔 제국에게도 역량이 없었다고.”

     

    연주 한 번으로 통로를 쓸어버릴 엄청난 소환곡을 연주할 수 있는 음유시인.

    지금은 힘을 크게 소진하고 회복 중이지만 마법을 전개하면 광역살상이 가능한 적색마탑의 웨스커.

    그런 강자들을 아직도 여러 명을 대동한 혁명군의 수장, 혁명가의 걸음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그렇기에 릴리아는 그의 의견에 반박했다.

    자신의 답변과 분노가 그의 심기를 충분히 거스를 수 있기를 바라며.

    전투부대가 허무하게 무너진 지금, 오크노디가 머무르는 장소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오산입니다.”

    “뭐?”

    “식량창고에 식량이 없는 건 당연합니다. 전부 사용했기 때문이죠.”

    “병사들에게라도 줬겠지.”

    “아뇨. 그 식량이 사용된 곳은 바로 황제의 허영과 사욕입니다.”

    “허영과 사욕…?”

    “제국에는 존재합니다. 창고에 식량이 들어온 기록은 있어도 나가는 기록은 없는 이유를 해명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그들은 그 기술을 자신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금기>로 지정했죠.”

     

    흔들어야 하는 마음은 분명 혁명가의 것이었는데.

     

    “그렇습니다. 제국은 대기근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수많은 민중들의 목숨을 살릴 식량으로 <강화>라는 사치스러운 짓을 저지르고 있었던 겁니다.”

     

    릴리아는 깨닫고야 말았다.

    정작 지금 흔들리는 마음은 자신의 것임을.

     

    “황제가… 강화를? 아니, 이상하잖아. 식량이라고. 한 번 먹으면 끝나는 식량. 그딴 걸 강화해서 대체 어디에 쓸 건데!”

    “연금술에는 등가교환이라는 법칙이 존재합니다. 격이 맞는 대상은 서로 동일한 가치를 지닌 다른 물품으로 전환할 수 있죠. 유물등급의 곡식이 같은 유물등급의 잡기로 전환된다면 아무리 하찮은 유물이라도 곡식보다는 쓸모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고작 그딴 걸 위해서 그 많은 곡식을 모조리 강화로 날려버렸다고…?!”

    “고작이 아닙니다. 황제가 노리는 것은 유물 따위보다 더 대단한 겁니다. 그는 제국 전역의 곡식을 제물로 삼아서 전설조차 넘어선 신화의 영역에 발을 걸친 신물을 손에 넣으려 합니다.”

    “얻어서, 뭘 하려고!”

    “제국의 오랜 적. 제국력 981년의 종지부를 고할 대적, 악룡 오모시로이의 토벌입니다.”

     

    혁명가의 대의는 황제의 대의에 비하면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민초들의 목숨을 갈아가면서라도 혁명을 저지르려는 이유가 납득이 갈 정도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물가챠에 미친 황제

    오늘은 500화 축하의 감사인사를 대신하여 다음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응애노디가 나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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