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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1

        

         

       시간이 흘렀다.

         

       한국과 일본은 진성의 뜻대로 안정되었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사람들의 피로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재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일들 때문에 사람들은 신경이 곤두선 채 생활해야 했으며, 혹여나 일상을 위협할 ‘무언가’를 경계하며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 줄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러한 경계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경계가 과하면 과할수록, 긴장감을 끌어올리면 끌어올릴수록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피곤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언론에서는 수없이 우려먹을 수 있는 이 소재를 그냥 버릴 생각이 없었고, 정부 역시 위기 상황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려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이 사건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던 양국의 정부도 과할 정도로 신경질적으로 나서게 되면서 상황은 점점 더 심해졌고.

         

       하지만 영원히 팽팽하게 당겨질 수는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한계까지 늘어났던 긴장감은 축 늘어져 버렸다.

         

       진성의 개입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긴장감은 풀리고, 그 자리에 탈력감과 피로감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을 괴롭히고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비하던 것에서 시선을 자연스럽게 돌리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떻게 그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냐고?

         

       반대로, 그게 부자연스러울 이유도 없지 않은가?

         

       큰 사건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사건은 해결되었다.

         

       여기에 이상한 점이 무어 있단 말인가?

         

       큰 사건이 연달아서 터진 것이 유별나다면 유별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산불이나, 공장 화재나, 추돌사고는 큰 사고에 속한 것이지만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번에 일어난 일들 역시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다.

         

       ‘물론 받아들이기 쉽게 하려고 피로감을 한계까지 올리긴 했지만.’

         

       특히나 너무나 피곤해서, 너무나 피로한 나머지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은 상황이라면?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 것 같은 탈력감에 휩싸인 상태라면?

         

       그렇다면 더더욱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바로 지금 상황처럼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약간의 불이 붙는다면….

         

       『 한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오디션 프로그램! 』

         

       『 경악스러운 윤곽?! 과연 용두사미가 될 것인가, 용 그 자체가 될 것인가! 』

         

       『 참가 조건 공개! 인디가수도 참여할 수 있다?! 』

         

       『 오디션 프로그램 관계자”인재를 수급하기 위해 조건을 여유 있게 잡을 것.”, 아마추어, 인디가수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활동하지 않은 프로까지도…?』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훌륭하게 돌릴 수 있었다.

         

       “야사키, 야사키 토키타카…. 나쁘지 않아. 쓸만하군….”

         

       진성은 별장에서 만났던 남자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꽤 날카로운 육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

       아마 핏줄에서 물려받았을 육감에 대한 재능 덕분에 성공 가도를 달려왔을 사람.

         

       연예기획사의 사장이며, 유명한 프로듀서이며, 온갖 사악한 짓을 하고 다니는 것과는 다르게 이미지 메이킹으로 선량한 이미지를 퍼뜨린 인간.

         

       그가 가진 재능은 그를 높은 곳까지 올려주었고, 그가 가진 육감은 더러운 짓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음에도 권력자와 친분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거기에 남에게 팔아넘길지언정 자신이 직접 손은 대지 않는다는, 장사꾼과 같은 마인드를 가진 덕분에 악명과 더불어 선망도 얻고 있었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그 재능 때문에 주목받게 되었다.

       박진성이라는 주술사에게 말이다.

         

       육감이 강한데다가 무녀의 핏줄까지 이은 것도 주목할만한데, 거기에 거리낌 없이 악행까지 저지르고 다녔다?

       게다가 제 발로 축복까지 받기까지 했으니….

         

       진성이 주목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으리라.

         

       그렇게 야사키 토키타카는 별장에서 진성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었다.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조력자.

       아주 쓸모가 많은…존재.

         

       그리고 진성은 야사키 토키타카를 잘 사용하고 있었다.

       야사키 토키타카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런 대규모 기획을 행하게 했으며, 그가 쌓아왔던 인맥들을 아낌없이 이용하게 했다.

       당연하게도 진성과 연관이 있는 이들이 그의 뒤를 받쳐주거나 자금을 지원하면서 규모는 점차 커졌다.

         

       [ 이건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시기, 이 규모의 오디션이라면 무조건 성공합니다! 이 황금손, 미다스의 손 야사키 토키타카의 이름과 명예를 걸 수도 있습니다! ]

         

       [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기획…. 그렇다면 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 빅 웨이브에! ]

         

       게다가 실적도 있고, 인지도도 있는 사람이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호언장담하고 다니니…. 진성과 얽히지 않은 이들에게서도 수많은 투자와 도움이 들어오고 있기도 했고.

         

       성공.

       무조건 성공한다.

       투자하면 무조건 이득을 볼 수 있다!

         

       …참 달콤한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어찌 일의 성공을 사람이 장담할 수 있으랴?’

         

       하지만 이러한 달콤한 말과는 달리, 그 실체는 어둡기 그지없었다.

         

       장래가 어둡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말로는 성공을 확신할 수 있으되, 그 실체는 알 수 없다고 말함이 옳으리라.

         

       진성의 회귀 전에도 없었던 대규모 기획.

       이 기획이 성공할지, 성공한다면 어떤 규모가 될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야사키 토키타카의 호언장담은 벌레를 끌어들이기 위한 달콤한 향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의 끝에 있는 것이 정말 꿀을 품은 꽃일지, 아니면 벌레를 집어삼키는 식충식물일지는…그때 가서야 알 수 있는 것이겠지.

         

       ‘오디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미 나의 목적은 이루어졌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미 박진성의 목적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보라.

       훌륭히 사람들이 전쟁이니 다툼이니 하는 것에서 눈을 돌리고 있지 않은가?

         

       ‘비구름이 지나간 뒤에는 날이 개고 빛이 땅에 내려앉는 법. 그때 새들은 지저귀고 벌레들은 잠시간의 휴식을 끝마치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법이니. 이러한 시기만큼 정비하기 좋은 때가 또 어디에 있으랴?’

         

       전투가 끝나면 정비를 하는 법이 아니던가.

       수확이 끝난 뒤에도 그것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한 법.

         

       진성 역시 그러했다.

         

       그가 한국과 일본에서 얻은 것이 얼마고, 정리해야 할 것이 얼마던가.

         

       한국과 일본에서 강탈한 주물, 주술 기록, 주술 재료.

       리세를 통해 구매한 별장들과 흉가들.

       그가 손에 넣은 인간들.

       이번에 이제순의 몸에서 얻은 인피(人皮)까지.

         

       잠깐 떠올려도 그가 얻은 이득은 어마어마했다.

       거기에 더해, 인맥과 인지도와 같은 무형적인 것들까지 생각한다면….

         

       ‘좋군.’

         

       진성은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함 속에서 잠시간 안식을 취할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고된 노동 후에 오는 안식일이란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

       그 안식일에는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미처 즐기지 못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니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으랴?

         

       손에 들어온 주물을 연구하고, 주술 기록을 보고 익히고, 주술 재료들을 어디에 쓸지 행복한 고민도 할 수 있을 것이고, 귀한 재료들로 주물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합리적인 대가를 지불하는 주술 의식을 떠올리며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것도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인맥을 넓혀가며 몸을 강화하기 위한 단서를 찾는 것도 좋겠지.

       정부와 더 깊은 연을 쌓아가며 국가 행사에 힘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기업가들과 연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니, 그런 것도 좋지만….

         

       ‘그래. 한국과 일본의 유적을 찾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회귀 전 진성이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곳.

       전쟁과 함께 파괴되어 쑥대밭이 되어버린 지역들….

         

       그런 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훌륭한 일일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곳에서 주물이나 주술 기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발견은 그에게 참으로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니.

         

       그래, 분명히 기쁜 일일 것이다.

       기쁠 테지만….

         

       ‘효율이 높지는 않겠지.’

         

       그 기쁜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높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유적이라는 것이 어디 그 혼자만 찾아다닐 수 있는 것이겠는가.

       유적은 장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람을 부려서 유적을 찾고 발굴하게 하는 것이 이득이 아니겠는가.

         

       아니, 대대적인 발굴도 필요 없다.

       유적을 발견만 하면 된다.

       탐색은 진성이 직접 그곳으로 가서 하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여행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 시간을 그런 곳에 쓰는 것보다는 더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 저택에 들를 때도 되었지….’

         

       진성은 거대한 저택을 떠올렸다.

       이제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게 된 저택.

       피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 식구로 지냈던 이들이 있는 그곳.

         

       ‘흐음.’

         

       진성은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왔던 이양훈을 떠올렸다.

         

       ‘슬슬 부적이 작동할 때가 되었을 터이니….’

         

       그때 진성은 이양훈에게 살(煞)이 낄 수 있다면서 부적을 하나 건네주었는데, 그 부적의 효과가 슬슬 발동할 때가 되었다.

         

       이양훈을 액(厄)에서 보호해주기 위한 부적.

       살(煞)이 끼는 것을 방지해주는 부적.

         

       하지만 보호를 위한 것임에도 액막이의 기능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기이한 물건.

         

       그 부적의 효과는-

         

       ‘열병에 걸렸을 터이니, 이번엔 내가 병문안을 감이 옳겠지.’

         

       지닌 사람이 열병을 앓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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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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