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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1

       하늘은 우중충하고, 스산한 바람이 연신 불어와 불길함을 더하는 날.

         

       태산과 마찬가지로 숭산 또한 천천히 걸어 오르던 그녀는 드넓은 산의 중턱에 도열해 있는 정사연합의 무리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수만 무려 천여 명.

         

       중원 무림을 양분하는 두 세력이 내세운 수치곤 조금 모자라 보였으나, 그들에게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

         

       “잘도 선별해 왔군.”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수라는 말을 듣기에 부족함 없는 이들이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을 모아 헛되이 죽게 하느니, 확실한 고수들로 인원을 구성한 모양.

         

       그 기세가 사뭇 강렬하여 천마조차도 긴장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할 즈음.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사내, 무림맹주 현학이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왔다.

         

       “평생 만나지 않길 바랐건만, 결국 이리 만나게 되는구려.”

         

       사흑련주 도굉의 목표가 천마와 검을 맞대는 것이라면 현학은 그 반대였다.

         

       사상과 신념이 전혀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마교.

         

       그들의 종주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은 하나뿐.

         

       지금처럼 두 세력의 갈등이 극에 달하여 전쟁이 벌어졌을 때뿐이기에.

         

       평화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현학으로선 그러한 순간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참으로 애석하다는 듯 말하는 그를 향해 대꾸하는 천마.

         

       “글쎄…, 바라지 않았던 마음과는 별개로 준비는 철저히 한 듯한데.”

         

       천 명이 넘는 고수.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음에도 전혀 사그라지지 않은 기세.

         

       각오를 단단히 한 듯, 한 자루의 검을 마주한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현학이 허허로이 웃으며 대답했다.

         

       “인생이란 것이 단 한 순간도 뜻대로 흘러가려 하지 않으니 어쩌겠소.”

         

       자신이 원하는 미래만을 마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때로 바라마지않던 일 또한 어떻게든 헤쳐 나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

         

       그 순간을 조금이나마 덜 고통스럽고, 슬기롭게 지나가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오로지 준비하는 것.

         

       누군가는 그를 향해 지레 겁먹고 예산을 낭비한다는 말까지 일삼았다.

         

       그리고 현학은 그 말이 현실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랬다면 적어도 무능한 겁쟁이 무림맹주로 남을지언정 세상은 평화로웠을 테니.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천마는 웃는 낯으로 그를 치하했다.

         

       “그대의 식견은 역대 그 어떤 무림맹주보다 훌륭하군.”

         

       최악의 상황을 그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에 대비하기 위해 모진 수모와 치욕을 감내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없다.

         

       그것도 명성이 드높은 자일수록 더더욱.

         

       현학은 그 어려운 길을 걷고, 마침내 다다랐으니 어찌 훌륭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진심이 느껴지는 찬사에 그는 웃었다.

         

       “허허…, 적에게 듣는 칭찬이라. 참으로 각별하구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

         

       그러나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찰나의 웃음 끝에 얼굴을 굳힌 그가 그녀에게 제안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 순 없겠소?”

         

       단 한 사람.

         

       그녀 하나만 의지를 꺾는다면 이곳에 피를 뿌릴 일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죽음을 각오하고 이곳까지 내달린 중원 무림의 동량들 또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게 될 터.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으나, 천마의 대답은 단호했다.

         

       “피를 보고 싶지 않다면 그대들이 돌아가면 될 일 아닌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강렬한 의지의 표명에 놀란 그가 되물었다.

         

       “그대는 대체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오.”

         

       이에 천마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의 드높은 이상을 위해.”

         

       여기서 멈출 거였다면 애초에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터다.

         

       어떻게든 그를 잊으려 애쓰고, 원래 세계에서 삶을 영위했을 테니까.

         

       보장된 명예와 지위 전부를 포기하고 오로지 하나의 이상만을 위해 이곳에 다다랐다.

         

       그녀는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제 이상을 위해 천 명의 피를 뒤집어써야 한다면 응당 그러할 뿐.

         

       “으음…!”

         

       현학은 보았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속에 잠들어 있는, 뒤틀리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욕망을.

         

       설령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가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을 의지의 발현을 멈출 방법은 그녀의 목숨을 빼앗는 방법뿐임을.

         

       “…더 이상의 대화는 무용하겠구려.”

       “그대와 나는 제법 생각이 잘 통하는 듯하군.”

         

       천마의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솟아오른다.

         

       “마침 나 또한 그리 생각하던 참이거든.”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없는 이상,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했다.

         

       이제는 맞서 싸우는 것뿐.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천마를 죽이자!”

       “중원을 위협하는 악적을 죽여 평화를 수호하자!”

         

       오오오오!

         

       천 명이 넘는 고수들이 쏟아내는 기세가 오직 한 사람, 천마에게 향한다.

         

       그것은 그녀로서도 참으로 아찔한 감각이었다.

         

       거대한 산이 머리 위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

         

       조금만 방심하면 그대로 짓눌려 생을 마감할 것만 같은 죽음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를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하아앗!”

         

       단숨에 사방을 포위한 천 명의 고수들이 달려든다.

         

       사각지대라곤 일절 보이지 않는 완벽한 합공.

         

       이에 맞서기 위해 발을 구른다.

         

       투웅

         

       가볍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한 걸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땅을 타고 흐른다.

         

       거침없이 내달린 기운은 마침내 지맥을 뒤흔들어 거대한 폭발을 자아냈다.

         

       쿠콰콰콰!

         

       난데없이 땅거죽이 솟구치자 당황하여 물러나는 연합의 고수들.

         

       그중 누군가가 경악하여 소리친다.

         

       “처, 천마군림보…!”

         

       지축을 뒤흔드는 패도의 걸음으로 그들을 물러서게 함과 동시에 심상을 드리운다.

         

       오로지 그녀만이 오롯이 서는 혼자만의 세계.

         

       현경에 다다른 고수의 가장 큰 무기가 그들의 세계를 집어삼키려 할 때.

         

       “지금이다!”

         

       당황한 고수들의 틈 속에서 솟구쳐 나온 이들이 천마의 주변을 둥글게 감싸 안았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이마에 선명하게 찍힌 계인.

         

       그들은 평생 소림의 무학을 갈고닦은 무승(武僧)들이었다.

         

       그중 가장 연배가 높아 보이는 이가 사제들을 향해 외쳤다.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을 펼쳐라!”

         

       기나긴 역사 동안 단 한 차례도 무너진 적 없는 불패의 진법이 그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백팔 명의 무승들이 자아내는 거대한 기운.

         

       이는 천마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음…?”

         

       그녀가 드리운 세계의 색채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그들이 펼친 백팔나한진의 목적은 제 심상 세계를 막는 것이 목적인 모양.

         

       거센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마기가 서서히 잦아들자, 고수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섣불리 무기를 뻗지 마라! 확실하게 진형을 갖추고 상대를 압박하라!”

         

       외침과 동시에 천마를 상대하기 위해 달려드는 현학.

         

       그런 그의 옆으로 또 한 사람이 나란히 달려들었다.

         

       “아미타불…!”

         

       현 소림사의 방장 태원.

         

       세간에서 부르기를 ‘불존(佛尊)’.

         

       불가 무학의 정점에 다다라 검존 현학, 선존 명현과 함께 정파 무림을 지탱하는 세 기둥 중 하나.

         

       나지막이 읊은 불호와 함께 내지른 주먹에서 강맹한 기운이 쏟아진다.

         

       대성하면 백 보 밖에서도 상대를 타격할 수 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 백보신권(百步神拳).

         

       소림의 무학 중 강맹하기로는 수위를 다투는 일격이 그녀에게 향한다.

         

       “호오…, 백보신권인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검존 현학의 검에서 세상을 양분할 듯한 날카로운 검강이 쏟아진다.

         

       정파 무림의 최고수로 손꼽히는 두 고수의 합공.

         

       이를 막아내기 위해 검을 뽑아 드는 천마.

         

       불의, 횡포, 살의 등.

         

       온갖 부정적인 것들에 맞서기 위해 단련한 그녀의 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제 이상을 방해하는 것들을 철저히 부수고 규탄하기 위한 검뿐.

         

       그런 의미에서 천마신공은 그녀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 무공이었다.

         

       하늘의 뜻조차 거스르며 오직 순수한 파괴만을 목적으로 하기에.

         

       검에서 솟아오른 검붉은색의 강기.

         

       보는 이로 하여금 불길함을 자아내는 부정한 힘이 그들의 공격을 무참히 깨부수고 나아간다.

         

       “이런…!”

       “헙!”

         

       온몸을 찢어발길 듯한 거대한 강기를 가까스로 막아내며 기함하는 두 존자.

         

       그들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과연 천마신공….”

       “이대로라면 몸이 남아나질 않겠구려.”

         

       공격을 완벽히 막았음에도 팔에 충격이 스며들었다.

         

       이러한 공격을 몇 번이나 더 막아냈다간 버티지 못하고 몸이 터져 나가고 말리라.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하앗!”

       “차핫!”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집요하게 천마를 붙잡고 늘어질수록 이곳에 모인 연합의 고수들이, 소림의 제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그들을 위해서라면 이 몸뚱어리 하나가 무에 대수랴.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절대자들의 공방이 이어진다.

         

       한 번, 한 번이 서로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갈 정도로 위험천만한 힘을 내포한 공격들.

         

       일견 비등해 보이는 전투 속에서 승기를 잡아가는 쪽은 다름 아닌 천마였다.

         

       “허억, 허억…!”

       “쿨럭!”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디 무인은 심(心), 기(氣), 체(體)가 온전히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두 존자는 심과 기에 비해 체, 즉, 육신의 힘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이 넘도록 정파 무림을 지탱해 온 그들의 세수는 여든을 훌쩍 넘은 상황.

         

       제아무리 심후한 내공이 이를 보충해 준다고는 하나, 그마저도 한계는 있는 법이기에.

         

       반대로 천마는 심, 기, 체 모두 아득히 높은 곳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그들만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서서히 그들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라 갈 즈음.

         

       “맹주님을 보호하라!”

       “방주님을 따라 악적을 처단하라!”

         

       자리에 굳건히 서서 천마를 압박하는 데에 혼신을 다하고 있던 고수들이 나섰다.

         

       그들은 천마라는 절대자가 주는 공포로부터 대항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의 목숨이 중원에 평화를 가져다줄지니!”

         

       와아아아-!

         

       천여 명의 고수들이 내지르는 거센 함성의 소용돌이 속.

         

       천마는 조용히 검을 들어 올렸다.

         

       퍽 서글퍼졌다.

         

       죽음조차 도외시한 채 달려드는 용맹한 전사들의 숨통을 제 손으로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

         

       그러나 제 목표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저승에서 얼마든지 나를 저주해도 좋다.”

         

       그러니 내 이상을 위해 사라져다오.

         

       독기 어린 그녀의 공격이 그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은 정기 휴재일이니 모레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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