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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2

    <502 – 혁명가의 유혹(2)>

     

    “아, 아카데미의 그 교장을?!”

     

    크다.

    규모의 크기도, 목표의 크기도.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는 황제도.

    이를 간파한 혁명가도.

    고작 대륙십대도적의 일인이 인생의 숙적이자 목표였던 릴리아와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컸다.

     

    “그런 걸… 나한테 이야기하는 이유가 뭔데?”

    “웃기는군요. 당신이 알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까? 제국에 저항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답을 지금 들려드린 겁니다.”

    “황제가 악룡토벌을 꾀하는 것이 네가 나서는 이유라고? 그건… 혁명군의 민초들을 위한 입에 발린 소리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잖아!”

    “당신이라는 사람도 참 현실 부정이 심하군요. 정말로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까? 실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제국이 악룡을 죽이기 위해선 민초들의 희생이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다는 사실을.”

    “……”

    “제국과 변방의 수많은 노동력과 자산이 악룡을 죽일 제물을 연금술로 얻어내는 그날까지 무한대로 희생될 미래를.”

    “난… 모르겠어. 그런 짓을 저지르는 황제와 황제를 막겠답시고 정작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패막이로 써먹는 당신 중에 누가 더 나쁜지.”

     

    혁명가는 자비도둑과는 달랐다.

    반면에, 자비도둑은 황제와 같았다.

     

    자비를 훔치고 무자비를 만연시키기 위해 비극을 자행하고 방관해온 자비도둑.

    노동의 가치를 비웃으며 제국 전역의 곡물을 수탈해 악룡토벌에 필요한 신화급의 신물을 뽑아내는 황제.

    그런 황제를 막겠다며 민초를 희생시키며 이용하는 혁명가.

     

    셋 모두 악인임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셋 중에 가장 나은 사람을 손꼽자면 틀림없이 혁명가일 것이다.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제 눈을 바라보십시오. 현실이 아무리 잔혹하고 허망하더라도 눈을 돌리고 외면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봤자 당신이 악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몇 마디 말을 더해도 그 사실은 틀림없어. 당신의 지난 행적이 이를 증명하니까.”

    “저는 제가 악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제국이 지정한 삼대거악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입니다. 죽어 나간 사람들의 희생을 덧없이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이 남자의 행보와 사상은 과격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그 목표와 목표를 이룸으로써 벌어질 결과는 어떠한가.

    대륙의 모든 생명을 오직 악룡을 토벌하겠다는 이유 하나로 궁핍하게 만드는 미친 황제를 막겠다는 목표가 정녕 잘못되었는가?

    악룡의 토벌을 포기하도록 무력으로 강제하는 행위가 정말 잘못인가?

    이룰 수 없는 꿈에 동의한 적 없는 제국신민들의 희생을, 변방백성들의 착취를 강요하는 황제는 차라리 혁명가의 손에 죽는 편이 낫지 않은가?

     

    “이제 당신은 대의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대의를 이루기 위한 희생이 무엇인지도 이해했죠. 황제와 혁명가를 통해서 말입니다.”

    “…”

    “그러니 다시 묻도록 하죠. 이 문을 열면 디스트로이어와 오크노디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도적길드 본부 심처.

    수많은 잠금장치와 마법장치로 보호받는 <대도적의 잠금문>을 올려다보며 혁명가가 오랜 숙적을 마주하는 기대감을 담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릴리아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녀를 뚜렷이 직시하였다.

    릴리아, 그녀 자신조차도 모를 속마음을 모조리 꿰뚫어 볼 기세로.

     

    “저는 도적길드와 디스트로이어에게 새로운 대의와 희생을 만들었습니다. 혁명가 토벌이라는 대의와 릴리아의 목숨이라는 희생을.”

    “…”

    “디스트로이어는 어떨 것 같습니까. 도적길드는요? 그들이 과연 당신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혁명가 토벌의 숙원을 이루고자 할까요?”

    “……”

    “황제토벌이라는 숙원을 앞둔 저를 저지하는 행위는 과연 이 세계를 위한 정당한 일입니까? 제가 죽는다면 황제의 미친 도박은 언제까지 계속되겠습니까? 디스트로이어가 이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

    “민초들을 살리기 위해 당신 한 명의 죽음을 바라는 디스트로이어의 대의와 전 대륙의 약자들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민중들의 희생이 필요한 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가려질 수 있겠습니까?”

     

    감히 그녀의 입으로는 답을 내놓을 수 없는 거대한 질문이 릴리아의 정의관을 쓰나미처럼 덮쳤다.

     

    “이제 그 답을 알아봅시다.”

     

    혁명가의 하수인의 손으로 해제된 대도적의 잠금문.

    최후의 장벽이 열리며 황금색 재보의 빛이 문의 틈새로 새어 나왔다.

    빛이 가신 저편에서 기다리는 것은 세상의 가장 깊은 어둠을 들여다본 것처럼 새카만 칠흑의 망토를 두른 세계최강의 도적, 디스트로이어였다.

     

     

    * * *

     

     

    “오크노디 1년생. 귀하에게 전수할 지혜는 많으나 더는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이 없습니다.”

     

    명호스님은 비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세요 교수님! 꼭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머 잘못하셨어요?”

    “고작 한 달의 가르침으로 석가의 가르침을 모두 전하기엔 시간의 제약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심득서의 습득을 도전할 수밖에 없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아하. 제가 스킬북 읽다가 꿱 하고 죽을까 봐 걱정되시는 거군요?”

     

    명호스님이 두 눈을 감고 염불을 굴리며 온몸으로 죄스러움을 표현했다.

    스님도 참 걱정이 많으시네!

     

    “걱정말아요. 수능에서도 불교 배웠거든요. 논리적 사유는 외우기도 쉬워서 1등급 받았음!”

    “…재단의 얕은 가르침으로 석가의 깊은 가르침을 모두 이해했다고 자부하니 소승의 마음이 더욱 편치가 않군요. 심지어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어찌하여 전에는 말하지 않았던 겁니까?”

    “음. 물어본 적 없으니까요?”

     

    아는 정보는 나오는 족족 다 말해야 하면 오늘부터 오크노디는 설명충이 되어버려요!

    그런 플레이어의 고충도 모르고 스님은 기다란 석장을 들고 염불 대신 만지작거리며 뜸을 들였다.

     

    “오크노디 1년생… 재단에서도 옛 신의 유해를 노리고 흉계를 꾸몄습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수능철학은 누구나 다 보는 거고 불교만 다룬 것도 아닌걸요!”

    “허어. 재단의 장학생이라면 누구나 모든 옛 신들의 유해를 노리도록 교육받는다니.”

     

    안심시키려고 한 말인데 스님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둡고 피폐해졌다.

    저러다가 스님이 덜컥 자살해도 곧장 내 탓이구나 하고 바로 이해될 지경이다.

    하지만 고뇌하고 번민하면서도 명호스님의 눈에는 결의의 기색이 어렸다.

     

    “재단의 노림수에 당하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으나, 소승은 디스트로이어 교수와의 계약 이전에 오크노디 1년생을 믿겠습니다.”

    “정말요?”

    “예, 정말입니다.”

     

    한 번 믿기로 결심하면 끝까지 믿겠다는 것처럼 스님의 눈에는 더 이상 의혹과 망설임이 남지 않았다.

     

    “오크노디 1년생은 재단의 이사장과는 다릅니다. 악인의 후계자라고 반드시 악의 길을 걸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석가의 가르침을 1등급… 가장 높이 깨우쳤다는 이야기 또한 본성의 올바름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우왕. 공부 열심히 한 보람 있당!”

    “허허허. 그 천진한 미소에 석가의 가르침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의 고뇌가 무엇인지 절로 머리가 개운해지는구려. 석가의 광명은 가장 깊은 어둠 속에도 내릴진대 어찌 미천한 소승이 그 빛의 깊이를 재단하려 했는지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명호스님이 손목에 찬 염주 팔찌를 풀어서는 내 작은 손에 들려주었다.

     

    “받으십시오. 이것은 석가의 심득과는 별개로 소승이 전하는 선물입니다.”

    “와! 염주팔찌! 손목에 차고 다니면 힙한 아이템!”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요. 오크노디 1년생이 석가의 선한 가르침을 잊지 않는 한, 이 팔찌가 그 마음의 순수를 보호할 것입니다.”

     

    다정하게 말하는 명호스님의 얼굴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낯설어 보였다.

     

    “매스각키 황녀.”

    “응앗?!”

     

    주눅 든 얼굴로 경전을 풀어 쓴 심득서를 주워읽던 매스각키 황녀가 화들짝 놀라 손에 든 경전을 철퍼덕 내던졌다.

     

    “옛 신의 가르침 따윈 전혀 관심없거든~? 오크노디가 읽고 내팽개친 심득이 궁금해서 엿보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빨리 아니라고 말해줘 허접스님!”

    “선한 이들이 가르침을 나뉘어 받는 일은 결코 석가의 뜻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당장 기프트 아카데미만 해도 제 강의를 통해 가르침의 일부를 전수 받은 학생들이 잔뜩 있지 않습니까.”

    “그래애?”

    “그러니 몰래 훔쳐 배우지 않고 앞으로도 당당하게 석가의 가르침을 보시길 바랍니다.”

     

    석가의 가르침을 몰래 훔쳐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명호스님의 허락에 헤헤 웃으며 굉장히 뿌듯해하는 매스각키 황녀.

    그 천진한 미소를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잠시, 명호스님이 다시금 엄한 얼굴로 말했다.

     

    “매스각키 황녀.”

    “왜 불러~? 허접스님은 혹시 동방의 전통 의례인 구배지례로 사제지간을 분명히 하고 싶은 거야? 풉풉. 허접스승 주제에 바라는 게 많아♡ 그래도 황녀는 전통과 예의를 중요시하니까 해줄게♡”

    “사제지간의 예는 됐습니다. 대신 상황이 여의치 않거든 오크노디와 함께 달아나십시오.”

     

    지난 한 달간 동고동락했던 매스각키 황녀의 얼굴에 동요가 일어났다.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혁명가의 침입을 저지하고는 있으나 긴 시간을 벌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혁명가는 역량의 끝을 알 수 없는 자. 신중을 기해 달아나는 것도 상책입니다.”

    “그럼 교수님들은요?”

    “고작 1년생들에게 걱정 받을 정도로 교수직이 쉬운 자리는 아닙니다. 전송진을 열어두었으니 심득서의 습득이 어렵다 싶거나 습득에 성공했다면 언제든지 전송진을 통해 달아나십시오.”

     

    명호스님은 우리에게 뒤를 맡기고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을 도우러 떠났다.

    매스각키 황녀가 어쩔 줄 몰라하며 명호스님이 떠난 정문과 전송진이 있는 뒷문, 스킬북을 든 나를 번갈아가며 돌아보았다.

     

    “어떡할 거야?”

    “더는 시간 끌 필요도 없고 스킬북부터 열지 머!”

     

    대뜸 스킬북을 펼치는 내 모습에 매스각키 황녀가 비명을 질렀다.

     

    “바보 아니야?! 마음의 준비도 없이 덥썩덥썩 열어버리다가 잘못되면 어떡하려고!”

    “응? 머가 잘못돼?”

    “심득공부가 부족한 상태로 열면 백치가 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부작용 못 들었어?! 이 허접노디!”

    “습득 끝났는데?”

    “벌써 끝났어?!”

     

    애초에 수능 공부는 핵심만 핀포인트로 짚어서 배우는데 똑같이 핵심만 짚는 심득서 수련이 어려울 리가 없잖아.

    히히. 이것이 탐구영역 수능 1등급의 힘이다!

     

    “자, 그럼 가볼까?”

    “가, 가다니… 어디를?”

     

    허접스럽게 동공이 떨리는 황녀의 어깨를 툭 치며 히히 웃었다.

     

    “당연히 싸움 구경이지! 전대용사 vs 혁명가. 이걸 안 볼 거야?”

    “위험하다고 혼나잖아 이 바보노디야!”

    “쫄리면 보지 말든가. 허접황녀는 침대에서 이불 덮고 누울 때마다 그래서 어떻게 싸웠을까 궁금해서 잠도 안 오겠지만 난 꿀잠 잘 거야!”

     

    정말로 불 끄고 이불 덮고 침대에 누웠지만 궁금해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 상황을 뇌내 시뮬레이션 돌렸는지 매스각키 황녀의 얼굴에 괴로움이 번졌다.

     

    “딱히? 그 정도 호기심을 참는 것 정도는 여유인데? 잠이 너무 잘 와서 잠자는 매스각키 공주라고 묘비에 적힐 수도 있는데?”

     

    …이 바보, 무슨 허세를 이렇게 이상하게 부려!

     

    “보기 싫음 전송진으로 가던가!”

    “허접스님이 말했어. 허접노디는 허접이니까 황녀인 내가 보살피라고. 딱히 보고 싶지는 않지만 허접노디를 보살펴야 하니까 같이 가주는 거야♡”

     

    핑계 하나는 잘 대는 황녀와 함께 결국 정문을 열고 몰래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심득서 습득 1초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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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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