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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2

    “여, 여긴 대체 어디지……?”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순간 펼쳐진 별세계에 사이먼은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 갑자기 이런 문명과 한참 동떨어진 초원이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면 이런 반응이 당연할 테니까.

    “초원?”

    방금 전까지 자신은 분명 실내에, 그것도 하늘이 살짝 어두워져가는 시간대의 현대의 가장 발전하고 큰 도시국가중 하나인 에이레스의 장난감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정오에 가까운 밝은 하늘과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초원이었다.

    당황한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과 테이블에 함께 앉아있던 이들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서드? 메를린? 이봐, 다들 어디로 사라진거야?”

    그러나 어디를 보던 간에 숨을 곳 하나 없는 초원을 보면, 그들이 자신을 두고 어딘가에 몸을 숨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순간이나마 떠올렸다는 것이 얼마나 멍청이같은지를 금방 깨닫고 만다.

    “설마 환상인가?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한때 루체스트의 수석 연구원이었던 그도 나름대로 마법에 대한 눈썰미나 감각은 있는 편이었다.

    또한, 이제 중년을 막 넘어가는 시기이긴 해도 아직 정교한 환상마법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오감이 둔해질 나이는 아니다.

    또, ‘그녀’가 자신에게 굳이 이런 고품질의 환상을 보여줄 이유도 없다.

    그런 상황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 풍경은, 틀림없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난 이곳으로 이동한 건가?”

    사이먼은 발 밑의 들풀을 딛고 서있는 발로 쓸어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텔레포트나 어떤 아티팩트를 통해 자신은 이곳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아무래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럼, 나를 왜 이런 곳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이먼.

    자신을 부르는 여린 목소리에 사이먼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가, 경악하고 말았다.

    “허억-!”

    -철컥.

    그것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려한 갑옷이었다.

    그 에이레스의 평균 성인 남성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건장한 체격의 갑옷은,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대를 압도하는 구석이 있었다.

    -이제보니 패션센스가 상당히 젊으시군요?

    그것이 서드에게서 빌려입은 자신의 후드를 가리키며 말하는 목소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그렇게 당황과 혼란에 빠진 사이먼은 머릿속에 한데 뭉친 의문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 무슨…? 다, 당신은 누구요? 나를 어떻게 할 셈이지? 또 그 목소리는 대체-.”

    그러자 그 갑옷은 자신은 아무런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는 듯 손을 들어보이며 답했다.

    -질문은 한번에 하나씩, 천천히 하기로 해요.

    소녀와 같은 높은 음성은 아무리 들어도, 틀림없이 그 커다란 갑옷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철컥, 찰칵.

    갑옷의 쇳소리와 함께 그녀가 말했다.

    -일단 저는 그냥 당신을 안내하기 위해서 온 거니까요.

    잠시 후, 사이먼의 의문중 하나는 풀렸다.

    그녀가 어떻게 아무런 인기척 없이 자신의 바로 뒤에서 나타날 수 있었는가 하는 것.

    사실 간단한 것이었다.

    그건 공간이동이었으니까.

    -다시 한번 환영해요. 당신이 부디 루크 님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다시금 한순간에 초원에서 오래된 도시같은 풍경의 성 안으로 이동한 그는 난간을 통해 조그만 도구들을 가지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곰인형들과 철컥거리며 물건을 옮기고 있는 천 덮은 갑옷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을 앞서서 걸음을 옮기는 갑옷을 향해 물었다.

    “저기…. 여기는 어디입니까?”

    그의 질문에 갑옷 속의 그(또는 그녀)는 주변을 가리키듯 한쪽 팔을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루크 님의 아공간이에요. 연구, 생산, 조사등 다양한 목적으로 운용되고 있죠. 뭐 지금은…. 드래곤의 해체작업을 마무리 하느라 바쁘지만.

    갑옷의 팔을 따라 시선을 옮긴 사이먼은 광장에서 커다란 천으로 덮인 무언가가 바로 그 ‘니드호그’였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까부터 묘하게 풍기던 이 피비린내는 바로 저기에서 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또 한 가지 의문이 해결된 그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었다.

    “그럼, 당신은 대체 무엇입니까?”

    그녀가 답했다.

    -저는 관리인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곳의 모든 시설과 환경, 그리고 인형들을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그 대답에 사이먼은 살짝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당신 혼자서 말인가요?”

    -네, 혼자서. 어떤 무심한 주인 때문에 말이죠.

    그녀는 자신이 이 모든 것들을 관리한다는 것에 지치기라도 한 것인지, 할 수만 있다면 한숨이라도 푹 내쉴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에 사이먼은 위로를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관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치고 어려운 일인지는 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으니까.

    “으음, 그렇군요. 그거 정말 힘드셨겠습니다.”

    게다가 혼자서 이 모든 것들을 관리하려고 한다면,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게 분명하다.

    어디를 가나 이런 불만은 쌓이기 마련인 모양.

    그런 생각을 하니, 아까 전까지만 해도 두려웠던 그 갑옷의 모습이 처량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러자 그녀가 조금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당신은 공감해주시는군요?

    그에 사이먼은 말을 이었다.

    “예, 저도 한때 루체스트에서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관리하던 몸이니까요. 그러니까, 저도 상관의 무관심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루체스트는 철저하게 결과를 중점으로 두고 돌아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 어떤 대단한 성과를 내더라도 지금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언제든지 대체되며, 개인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는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자리가 갈아치워질 수 있는 환경은 사람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

    기업에게는 단지 한 명의 개인에 불과하지만, 그 개인 자신에게는 한 명이 모든 것이기도 하니까.

    뭐, 그냥 루크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은 점에서 화가 났던 그녀의 경우를 생각하면 핀트가 조금 어긋난 공감이기는 했지만.

    -정말 그렇다니까요. 무관심이 진짜 위험한 건데 말이죠!

    “맞습니다. 위험하지요.”

    핀트가 어찌됐든, 서로 공감대를 찾아 친밀해진 덕인지, 딱딱하고 경직되었던 분위기도 이제 조금은 풀어진 것 같았다.

    무뚝뚝하고 위압적인 갑옷과는 달리 여성스럽고 낙천적인 분위기의 목소리가 감정을 안정시키는데 꽤 도움이 되기도 했고.

    사이먼으로서는 그 안쪽을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 저는 여기에서 뭘 해야하는 거죠?”

    -그건 이걸 보시면 바로 알게 되겠죠.

    어느새 복도 끝의 문에 다다른 그녀가 문을 열며 말했다.

    그리고 열린 문 너머로 보인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 이건-!”

    —-

    “칸타시스의 알?!”

    루크가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레니에가 대답했다.

    -네, 칸타시스의 안에서 발견했죠. 

    단단한 암석을 알 모양이로 뭉쳐놓은 것 같은 특이한 생김새, 그것은 분명히 지룡의 알이었다.

    아까부터 레니에가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바로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이건 자신이 꼭 봐야 하는 것이긴 한데….

    “말도 안돼.”

    드래곤은 세계수의 문에서 지워진 종족.

    그것은 이 세계에서 그 종이 모두 사라졌거나, ‘권한’을 잃어 해당 종의 모든 개체가 종으로서 확실히 끝장난 상황이라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칸타시스가 이렇게 후손을 남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현상이다.

    세계수의 법칙이 어긋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바로, 칸타시스가 생물학적으로도 알을 가질 수 없다는 것.

    “내가 드래곤의 암수구분에 정통한 것은 아니다만…. 칸타시스가 적어도 암컷은 아니었을 텐데……?”

    루크라고 드래곤의 생태계에 깊은 조예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웅동체가 아닌 이상 암과 수를 구분하는 형태로 자손을 남겨왔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따라서 수컷인 칸타시스의 몸 속에 알이 존재할 리가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은 그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도 우습게 만들고 있었다.

    오죽하면 사실은 이게 드래곤의 알이 아니었고, 다른 새의 알을 삼킨 것이 소화되지 않은 채 내장 어딘가에 들어있다가 해체를 하면서 꺼내진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마력시로 살펴본 결과, 이것이 드래곤의 알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한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이 안에는 분명히 ‘드래곤하트’가 들어있었으니까.

    루크는 얼핏 스쳐지나간 발상에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혹시 칸타시스의 성별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던가…?”

    성별이 달라지는 경우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면 분명 있을 수도 있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떠올려보면 자신도 그런 경우고….

    하지만 레니에의 대답은 꽤 단호했다.

    -아뇨, 해체 당시 칸타시스에게는 확실히 수컷의 기관이 있었어요. 성별이 바뀐 건 아닙니다.

    “…뭐? 그럼 대체 이건 어디에 들어있었던 거야?”

    세계수의 문에서 지워진 종족인 드래곤의, 그것도 수컷의 몸 속에서 나온 드래곤의 알.

    그야말로 충격적인 역설이고, 모순이었다.

    ‘설마…….’

    한때 남성이었던 감각도 기억하고 있는 루크로서는 한순간 머릿속에 떠올린 끔찍한 상상에 속이 다 거북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레니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루크의 끔찍한 상상을 거두고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심장쪽에요.

    “심장 말인가?”

    -네, 심장.

    사실 알이 심장에 박혀있었다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경우라면 차라리 생각해볼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루크는 중얼거렸다.

    “심장이 스스로 자가복구상태에 들어간건가?”

    물론 드래곤이라고해서 사망한 뒤 심장을 알 형태로 변형시켜 생명을 유지시키는 짓은 불가능하다.

    그런 변형마법은 제정신을 유지하는 상태에서도 거의 불가능한 기예인데, 죽어가는 상황에서, 또는 이미 죽은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리 없으니까.

    만에 하나 초월적인 정신력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쳐도, 그러면 굳이 심장을 알의 형태로 변형할 것도 없이 마법으로 자신의 육체를 치유시키면 그만이다.

    또 드래곤들이 그런 걸 할 수 있었다면 이미 루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많은 수의 용을 학살했던 인물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특이현상이 유독 칸타시스에게 발생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아마 칸타시스를 니드호그로 만들기 위해 사용한, ‘차세대 줄기세포’라고 지칭되는 그 기생형 도플갱어 탓이겠지.

    “그런가…. 도플갱어가 자신이 기생한 육신을 재구성하기 위해서 이런 방식까지 취할 수도 있다는 거군.”

    루크는 감탄하기 시작했다.

    숙주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과도 직결된다.

    그렇기에 녀석은 숙주를 어떻게든 살리고자 할 것이다.

    죽은 육신을 갈무리해 알의 형태로 만들어버서 생명을 연명할 정도로.

    뭐, 일반적인 생물은 그런 극적인 변형을 감당할 수 없겠지만….

    육신이 마나의 보고인 드래곤 정도가 되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그러고 있으니, 레니에가 말했다.

    -그래서, 이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일단은 신성력이 가장 강한 여기에 두기는 했는데요.

    “글쎄…….”

    루크는 알을 내려다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죽은 육신을 갈무리해 연명시킨다는 점에서는 시가르마타가 파르바티에게 행한 것과 비슷하지만, 그 완성도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그 상태를 유지하던 게 고작이었던 파르바티와는 달리, 칸타시스의 경우는 적어도 천천히 회복을 하고 있기는 했으니까.

    루크는 그에 흥미가 돋기 시작했다.

    “일단은 연구해보지.”

    레니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부화시킬 건가요?

    “그래, 이건 분명히 쓸모가 있을 테니까.”

    이 녀석이 여기서 성장을 거쳐 다시 살아난다면, 자신은 과거 파르바티의 때처럼 극도로 정순한 드래곤하트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재료를 얻을 기회는 흔히 오는 게 아니다.

    또 이 상태에서 부활한 녀석이 제대로 ‘칸타시스’로 나올지도 궁금하고.

    그러나 레니에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변수가 너무 많아요. 또 이 경우에 대해 어떤 자료도 없잖아요? 현대식으로 개량이 들어갔다지만, 그래도 도플갱어는 마수라서 위험하기도 하고요.

    “그건 방법이 있지.”

    자신이 도플갱어에 대해 모른다면, 아는 사람을 데려오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이먼이 끌려오게 된 것은 아무튼 이런 이유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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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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