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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2

        

       열병에 걸리게 하는 부적.

       분류를 따지자면 저주에 속하는 주물(呪物)이다.

         

       하지만 모름지기 물건이라는 것은 쓰기 나름이 아니던가.

         

       칼을 요리할 때 쓰면 식칼이 되고, 사람을 죽일 때 쓰면 흉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 * *

         

         

         

       저택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나쁜 의미가 아닌, 좋은 의미로 말이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어수선하다’라는 감상을 불러일으켰던 정원은 멋들어지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덕분인지 어느새 저택의 풍경과 분위기에 녹아들어서 경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잘 정돈된 정원을 거닐다 보면 부산스러움과 어수선함은 온데간데없이 정신이 착 가라앉으며 평온이 찾아오는 느낌이었고,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고 경치를 눈에 담아두고픈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생기를 품고 자라난 화초들이 있다.

       화초들은 금방 물을 준 듯 싱그러운 빛깔을 품고 있었고, 태양의 빛과 함께 곧게 몸을 세운 채 자신의 건강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초 사이사이로 보이는 뒤의 풍경에는 아름다운 돌도 있었고, 채 높이 자라나지 못한 다른 화초들도 있었다.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기 좋은 형태로 다듬어진 커다란 나무가 있다.

       나무는 정원사의 손길에 사람이 보기 아름다운 형태로 재단 되었고, 빼곡하게 자라난 나뭇잎 사이사이로 햇빛을 투과시키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무의 아래에는 딱 좋은 농도의 그늘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나무의 기둥은 그 어떤 상처도 없이 말끔하고 매끈한 형태의 껍질이 몸통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껍질을 따라 올라가면 아름다운 형태로 사방으로 뻗은 굵은 가지를 볼 수 있었고, 나뭇잎 사이의 빈틈으로 진성을 훔쳐보고 있던 소녀도 볼 수 있었다.

         

       “흠? 이아린? 거기서 무얼 하고 있느냐?”

         

       진성은 풍성한 나뭇잎 사이로 몸을 숨기고 있던 이아린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숨을 죽인 채 위에서 진성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이아린은 들켰다는 듯 헷, 하고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앞발을 포개며 앉아있을 때처럼 모여 있던 두 손은 벌려졌고, 팔이 들리고 상체가 일으켜졌다. 그리고는 고양이가 기지개를 피는 것처럼 묘한 자세를 취하더니, 굵은 가지 하나를 손으로 꽉 잡고 몸을 옆으로 뉘었다.

         

       촤악.

         

       이아린은 아주 능숙하게 나무에서 내려왔다.

       원숭이가 나무를 타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기라도 하는 듯,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린 뒤 허공에 몸을 날린 것이다.

         

       허공으로 날아간 이아린이 향하는 방향은 진성이 있는 곳이었다.

         

       이아린은 마치 맹수가 나무 위에 있다가 사냥감을 덮치는 것처럼 진성에게로 쇄도했고, 진성의 바로 앞에 소리 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곤 주먹 쥔 한 손을 바닥에 대고, 한쪽 무릎을 꿇는 형태로 바닥에 착지했다.

         

       흔히들 슈퍼히어로 랜딩(Superhero Landing)이라고 부르는 자세였다.

         

       그렇게 멋들어지게 착지한 이아린은 고개를 슬쩍 올려 진성과 눈을 마주치고는 배시시 웃었다. 그리곤 슈퍼히어로의 등장과 함께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대사를 읊었다.

         

       “이 몸. 등장.”

         

       누가 봐도 장난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표정과 말투였다.

       하지만 가벼운 장난이라는 태도랑은 달리, 이아린의 등장은 놀랍게도 히어로와 잘 어울렸다.

       낮잠을 잘 때 덮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얇은 이불이 망토처럼 걸쳐져서 하늘을 날아오는 동안 펄럭였고, 무공을 수련할 때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육상복은 화려한 색감과 무늬 때문에 슈퍼히어로가 입을법한 슈트 같은 느낌을 주었다.

         

       우연이 겹쳐서 이런 느낌이 되었다기엔 어려울 정도였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았느냐?”

         

       “정답.”

         

       이아린은 주말에 친구들끼리 같이 팔짱을 끼고 영화관에서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몸을 좌우로 비틀며 근육을 풀고, 망토처럼 걸쳤던 이불을 다시 푼 뒤 돌돌 말아서 옆구리에 낀 뒤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냥 평범하게 바라보는 게 아닌, 정밀 스캔이라도 하는 것처럼 얼굴에서부터 발까지 정밀하게 훑어보는 시선이었다.

         

       “이야. 다 나았네?”

         

       그녀가 관심 있게 살펴본 것은 진성의 피부.

       정확히 말하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달아올랐던 피부였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슨 반쯤 익은 것 같았는데….”

         

       진성의 말로는 그리 심하지 않은 화상이라고는 하지만, 상태를 보니 진물이 흐른다거나 몸 일부에 흉이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의 화상이었는데….

         

       지금 진성은 화상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도리어 아기 피부를 보는 것처럼 뽀송뽀송하기까지 했다.

       햇빛을 보긴 한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약간 창백할 정도로 피부가 새하얗기까지 했으니….

         

       오히려 화상을 입기 전보다도 피부가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

         

       “어쩐지 빨갛게 피부 달아올랐던 게 블루 레어(Blue Rare) 정도 같더라니.”

         

       이아린은 진성이 다 낫자 안심이 된다는 듯 웃었다.

         

       “참으로 운이 좋게도 빨리 나은 것은 물론 흉 하나 생기지 않을 수 있었느니라.”

         

       “운은 무슨. 내가 옛날부터 생각하던 건데, 오라비도 신체 회복력이 참 좋단 말이지. 맨날 허튼짓하고 다니면서 몸 막 쓰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러고도 몸이 이렇게 멀쩡하잖아? 그거 보면 오라비는 무공을 익혔어도 꽤 높은 경지까지 갔을 것 같아.”

         

       “허허. 어찌 무업(武業)의 성취를 고작 그런 것으로 가늠할 수 있겠느냐? 무(武)란 것은 재능에 영향을 아니 받을 수 없지만, 그 재능은 그저 시작점에 불과한 것. 기나긴 길을 걷고 높디높은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아, 알았어 알았어. 거 그냥 해본 말에 진지하게 달려들기는. 내가 옛날부터 생각하던 건데 말이야, 오라비도 만만찮은 꼰대인 거 알아? 우리 꼰대만큼은 아니지만, 오라비가 어? 뉴스에서 말하는 젊은 꼰대인지 뭔지 하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단 말이지.”

         

       이아린은 진성이 무(武)에 대해 말하며 훈계하려는 듯 보이자 질색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답답하다는 듯 땀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은 육상복의 목 부분을 슬쩍 들어 올리곤 펄럭거리며 안에 시원한 공기를 넣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휴, 진짜 다행인 게 말이야. 응? 오라비가 무공 안 익혔다는 게 정말로 다행이란 말이지. 그 뭐냐~ 같은 유파, 같은 무기 쓰는 후배만 만나면 훈수를 못 둬서 죽은 귀신이 붙어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알아? 아~ 뭐 오라비가 그런 사람들이랑 똑같다는 건 아니고, 그냥 알아두라고 하는 소리야. 알지?”

         

       이아린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렇게 말하며 진성을 콕콕 찔렀다.

       그러면서도 한 손은 돌핀 팬츠보다도 짧은 것처럼 보이는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는데, 무언가를 쥐고 있는 듯 손목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아린은 계속해서 진성을 쿡쿡 찔렀다.

       하지만 몇 번을 찔러도 진성이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자, 잠시간의 고민 끝에 진성의 한 손을 턱 잡았다. 그리곤 진성의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한 뒤, 주머니에서 손을 뺀 뒤 무언가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바스락.

         

       반쯤 까져있는 사탕이었다.

       그것도 그냥 평범한 사탕이 아닌, 새빨간 포장지에 ‘홍삼’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 사탕이었다.

         

       홍삼 캔디.

         

       이아린이 진성의 손 위에 올린 것은…바로 홍삼 사탕이었다.

         

       진성은 손바닥 위에 사탕을 확인하곤 이아린을 바라보았다.

       이게 갑자기 왜 나온 것이고, 왜 자기 손에 쥐여준 것인지 의문을 담아서.

         

       진성의 의문 담긴 시선을 받은 이아린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입 벌리면 바로 튕겨서 입에 쏙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한 번을 안 여네.”

         

       쿡쿡 찌른 것은 이 사탕을 입에 넣어주기 위한 빌드업이었다고.

       그런데 입을 열지를 않아서 그냥 손에 쥐여준 것이라고 말이다.

         

       진성은 이아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녀가 할법한 장난이었기에 이해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의문이 생기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 장난에 사용한 재료.

         

       홍삼 캔디….

         

       이아린의 평소 식성을 본다면 딱히 크게 편식하는 것도 없었고, 쓴 것도 잘 먹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홍삼 캔디 같은 것을 즐기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고 싶은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아린은 평소 영약을 많이 먹어왔다.

       물론 엄청나게 귀한 영약은 별로 없긴 했지만…그렇다고 그것들이 영약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먹으면 육체를 튼튼하게 해주고, 내공을 쌓는 데 도움을 주고, 때로는 아예 내공으로 치환이 되어 몸에 자리 잡기까지 했다. 거기에 발육에도 도움을 주고, 병마에 시달리지 않도록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며, 몸에 쌓인 노폐물과 탁기(濁氣)를 밖으로 내보내거나 없애버리기까지 하니…. 정말로 영험하고 영험한 약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약재의 특징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끔찍한 수준의 맛.

         

       쓰고, 엄청나게 쓰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쓰다.

       때로는 입에 대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절로 일어나게 하기도 하고, 물고기 비늘을 잘 갈아서 삼키는 것 같은 끔찍한 비린 맛이 올라오기도 하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향과 맛으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아린은 이런 끔찍한 맛의 영약을 수시로 먹었다.

       이양훈이 구해다 준 영약을 먹고, 학교에서 대회나 시합 같은 데에서 상품으로 건 영약을 얻어서 먹고, 쇠질에 미쳐있는 이상한 여선배한테 양산형 영약을 섞은 프로틴을 얻어먹기도 하고….

         

       이러한 일상에서, 이아린의 혀는 단련되었다.

         

       어지간히 이상한 맛이 아니라면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냉혹하고 강인하게 말이다.

         

       하지만 견딘다는 것은 괴로움에 속한 것이라.

       몸이란 것은 본디 편함을 추구하는 성질이 있는 법.

         

       이아린은 끔찍한 맛의 영약의 맛을 지우기 위해 영약과 상반되는 것들을 먹었다.

         

       괴로움이란 빠르게 잊는 것이 좋고, 나쁜 것은 좋은 것으로 덮는 것이 좋은 법.

       그렇게 이아린의 혀는 담금질하듯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끔찍한 맛 뒤의 달콤한 맛.

       역겨운 맛 뒤의 새콤달콤한 맛.

       …

       …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이아린은 달콤한 디저트를 매우 선호하게 되었다.

         

       그런 이아린에게 홍삼 캔디라….

       어울린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수도꼭지가 고장이 났습니다…
    호스에서 물이 콸콸콸…
    거기다가 꼭지와 호스의 연결 부분에 틈새가 생겼는지 물이 분수처럼 촤아악…

    허허허허…
    일단 꾹 누르니까 물이 사그라들길래, 망치로 수도꼭지를 톡톡 두들기니까 일단 괜찮아지기는 했는데…

    이거 참…
    영하라서 수도계량기 잠글 수도 없고, 밤이라서 고치기도 힘들고…

    얼굴에 물 맞으면서 임시조치를 취하고 나니 기분이 참 황당하기는 하지만…
    새해에 이런 자그마한 해프닝으로 큰 재난을 갈음할 수 있게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니 나쁜 기분은 아닙니다.

    참으로 기묘한 선업의 이치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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