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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2

       서릿발과도 같은 서늘한 기세가 주변을 요요히 휩쓸고 지나간다.

         

       그러한 기세를 뿜어내는 이는 다름 아닌 천마.

         

       이는 자비였다.

         

       살고 싶다면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라는, 채 버리지 못한 인간성이 건네는 한 줌의 자비.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모든 걸 내던졌다.

         

       그렇기에 그녀는 제 목적을 방해하는 이들을 언제든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그녀가 한 줌의 자비심을 내보이는 까닭은 제 목숨을 도외시한 채 오직 평화만을 위해 달려드는 이들이 과거 그와 자신 앞에서 죽어간 동료들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지금의 자신을 보면 대체 무어라 욕하고 손가락질할지.

         

       ‘이거야말로 위선이로군.’

         

       퍽 우스웠다.

         

       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계를 멸망시킬 결심을 한 주제에 고작 이곳에 흐를 피 조금 줄이겠다고 자비를 베풀다니.

         

       그림으로 그린 듯한 제 위선에 토악질이 올라올 지경.

         

       죽어간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망설였다?

         

       그마저도 우습다.

         

       설령 눈앞의 이들이 과거 동료들이라고 한들, 걸음을 멈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직도 남아 있었나. 이토록 같잖은 감정 따위가.”

         

       그럴 리 없다.

         

       지금의 감정은 추억에 의해 잠시 번졌다가 사그라들 잔불에 불과할 터.

         

       그것을 곧 증명할 것이다.

         

       제 앞을 가로막는 적의 피로 온몸을 흠뻑 뒤집어쓰는 것으로 말이다.

         

       독기를 가득 머금은 그녀의 시선이 제 주변을 둘러싼 이들에게로 향했다.

         

       “…신을 원망하거라.”

         

       너희들의 죽음은 전부 신에게서 비롯되었으니.

         

       주변을 둘러싼 암울하기 그지없는 세상으로부터 뭉게뭉게 피어오른 검붉은 기운이 그녀를 둘러싼 천 명의 고수들 사이를 가득 메운다.

         

       “뭐, 뭐야.”

       “내,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절대 방심…, 크헉!”

         

       방심하지 말라.

         

       그 말을 전하기도 전에 이변은 시작되었다.

         

       서걱!

         

       예리함과는 거리가 먼 기운에 둘러싸인 연합원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쿨럭…!”

         

       몸을 바닥에 누인 채 쓰러진 그의 전신에는 누군가 검으로 전신을 난도질한 듯한 자상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서, 설마…!”

         

       문득 품게 되는 불길한 생각.

         

       안개처럼 주변을 둘러싼 이 기운들이 전부 그녀의 검기인 건 아닐까.

         

       애석하게도 그것은 정답이었다.

         

       스걱!

         

       카가가각!

         

       “끄억…!”

       “크아악!”

       “케흑….”

         

       검붉은 안개와도 같은 기운에 몸을 둘러싸인 이들이 하나둘씩 쓰러진다.

         

       그 괴기스러운 현상에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발버둥 쳐보지만, 소용없다.

         

       오히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기운은 더욱 강하게 몸에 들러붙어 그들을 난도질했다.

         

       콰드드드득!

         

       콰콰콰-!

         

       “이, 이럴 수가…!”

         

       그 참혹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입을 쩍 벌린 채 비명을 내지르는 현학.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었다.

         

       서린 의지만으로 주변을 둘러싼 기운이 예기를 품게 되었다.

         

       이는 심검을 넘어선 또 다른 무언가.

         

       무공에 평생을 바쳐 온 그로서도 미처 생각지 못한 경지의 무학.

         

       한 번의 생이 아니라 두 번의 생을 바쳐도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까마득한 영역에 그는 전율하며 의구심을 품었다.

         

       저것이 정녕 인간에게 허락된 힘이 맞단 말인가?

         

       그리 생각하기도 잠시.

         

       “…방장.”

         

       그는 제 옆에 서서 마찬가지로 경외와 공포에 휩싸여 있는 소림사 방장 태원을 불렀다.

         

       이에 퍼뜩 정신을 차린 그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말씀하시오.”

         

       느슨하게 쥔 검을 고쳐잡은 현학.

         

       그는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태원을 향해 말을 이었다.

         

       “난 저들이 살았으면 좋겠소.”

       “아미타불….”

         

       작게 불호를 외치며 입가에 자비로운 미소를 그리는 태원.

         

       “소승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무림의 위기에 발 벗고 나선 이들이다.

         

       천마라는 이름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까지 포기하고 달려온 무림의 미래.

         

       자신과 더불어 그들의 목숨이 전부 이곳에서 사그라진다고 하더라도 천마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무림의 미래는 밝게 타오르리라.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리 생각했건만.

         

       “내 생각이 틀렸소.”

         

       이제야 깨달았다.

         

       저들은 천마의 목숨보다 훨씬 소중한 무림의 미래이자, 동량지재라는 것을.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무림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어두울 것임을 말이다.

         

       “…방장.”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그에게 무리한 부탁을 건넸다.

         

       “나와 함께 이곳에서 죽어주시오.”

         

       저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저들이 무림의 미래라면, 자신은 과거이자 현재다.

         

       높게 솟은 산봉우리 너머로 저물어 사라질, 사라져야 마땅한 과거의 잔재.

         

       너무나도 오랜 시간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제는 그들을 믿고 길을 터줄 차례.

         

       “소승 또한 슬슬 부처님 곁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느낀 참입니다.”

         

       태원 또한 그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소림사의 천 년 무학을 익히고 발전시키는 데에 필요한 건 자신이 아니라 저들이다.

         

       적당히 무르익었고, 무림을 위해 목숨마저 내던질 만큼 혈기왕성한 제자들.

         

       저 자랑스러운 존재들이 소림을, 나아가 무림을 이롭게 할 터이니.

         

       “늦기 전에 가봅시다.”

       “그러지요.”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노년의 두 고수가 비장에 찬 표정으로 걸음을 옮긴다.

         

       체력의 안배 따위는 두지 않았다.

         

       내공 전부를 끌어올린 그들의 주변으로 평생의 무학이 펼쳐진다.

         

       “아미타불…!”

         

       불호와 함께 그의 등 뒤에 솟아오르는 거대한 불상.

         

       천수관음(千手觀音).

         

       그의 의지에 따라 천 개에 달하는 손이 일제히 천마를 향해 뻗어 나간다.

         

       「천수신장(千手神掌).」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무학과 불심이 어우러진 최후의 일격.

         

       “흡…!”

         

       젊었을 때는 지겹도록 다투고, 늙어서 마침내 벗이 된 상대의 전력을 지켜보는 현학.

         

       그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얼마 전 얻은 심득을 통해 완성한 본인만의 무리를 풀어낸다.

         

       수없이 많은 검술을 익히고 창안하였으나, 결국 원점.

         

       모든 검술의 시발점.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칠 뿐인 단순한 검식에 그는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얻었다.

         

       「태산압정(泰山壓頂).」

         

       마침내 그 이름에 걸맞게 태산을 짓누를 만한 위력을 지니게 된 검식이 천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

         

       하늘을 전부 가린 천 개의 손과 태산마저 짓누르는 검.

         

       제 머리 위로 드리운 두 노고수의 평생의 무학을 올려다보는 천마.

         

       “…좋은 결심이다.”

         

       그들의 결심을 알아차린 천마는 곧장 주변을 둘러싼 기운을 거둬들여 머리 위로 떨어지는 두 초식을 막아섰다.

         

       쿠와아아앙-!

         

       쿠르릉!

         

       세상에 종말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내리치는 굉음.

         

       거대한 기의 충돌에 모두가 비틀거리고 있을 때, 현학이 피를 토해내며 외쳤다.

         

       “다들 퇴각하라!”

         

       이에 태원 또한 목소리를 보태어 거들었다.

         

       “소림의 제자들은 후일을 도모하라!”

         

       삼존.

         

       정파 무림을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 중 두 기둥의 외침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자신들이 막아서는 동안 이 자리를 떠나라.

         

       “방장님!”

       “맹주님!”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력함.

         

       이에 대항하기 위해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던 둘을 애타게 부르짖는 이들.

         

       좀처럼 나아갈 수도, 떠날 수도 없는 복잡한 상황에서 현학이 다시 한번 외쳤다.

         

       “사흑련주에게…, 그리고 천광검신에게 전하시오.”

         

       자신을 대신하여 가장 앞서 천마를 상대할 두 사람.

         

       그는 허허로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무림의 미래를 지키고 먼저 가는 것이니, 무거운 뒷일을 맡긴다고 하여 부디 원망 말라고.”

         

       그것은 자신 대신 무림을 이끌어 갈 두 사람을 향한 당부임과 동시에 구실이었다.

         

       차마 떠나지 못하고 서 있는 이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기 위한.

         

       일부 인원이 이를 악문 채 그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퇴각하라!”

       “맹주님의 명을 따라라!”

       “방주님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제자는 경을 칠 것이다!”

         

       산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울분에 찬 목소리.

         

       앞서 결단을 내리는 이들을 따라 하나둘씩 걸음을 돌려 하산하는 연합원들.

         

       천마는 구태여 그들을 쫓지 않았다.

         

       설령 쫓는다고 한들, 죽음을 각오한 두 노인이 가만히 보고 있었을 리도 없겠지만.

         

       연합원들이 전력을 다해 산을 떠난 뒤 남은 세 사람.

         

       현학은 천마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자비를 베풀어 주어 고맙소.”

         

       제아무리 그들이 죽음을 각오했다고 한들, 천마가 마음먹고 퇴각하는 이들을 쫓았다면 그중 최소 절반 이상은 명운을 달리했을 터.

         

       “누누이 말했을 텐데. 내 앞길을 막지만 않으면 죽이지 않겠다고.”

         

       사실 그녀는 지금 상황조차도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그대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돌아선다면 그녀는 막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인즉, 앞서 퇴각한 이들을 대신하여 두 사람이 목숨을 걸 이유가 없다는 뜻.

         

       그러나 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알고 있소. 우리가 이대로 돌아선다면 그대는 우릴 쫓지 않겠지.”

         

       그걸 잘 알면서도 두 사람은 남기를 택했다.

         

       “아직 성장할 수 있는 그들은 그래도 되나, 우리는 아니 되오.”

         

       그들과 두 사람의 행동에 실리는 무게는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작금의 패배를 통해 얼마든 더 강해질 수 있고, 또 절치부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 남은 두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패배와 수치를 겪고 살아남았소. 더 이상 성장할 길도, 방법도 없지.”

         

       충분한 패배를 맛보았고, 그럴 때마다 절치부심하여 이때까지 살아남았다.

         

       오래 살아남았다고 하여 분에 넘치는 호의 또한 받아보았다.

         

       삼존.

         

       정파 무림을 지탱하는 기둥.

         

       그렇기에 그들은 도망칠 수 없다.

         

       “거대한 집을 지탱하는 기둥은 무너질 때도 조심해서 무너져야지 않겠소?”

         

       제아무리 오래도록 단단히 지탱한 기둥이라고 해도 결국은 무너지기 마련.

         

       굵고, 길었던 만큼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무너져야만 하기에.

         

       “…그대들의 뜻은 잘 알았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리는 천마.

         

       “오라.”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과 주먹을 강하게 틀어쥐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손짓한다.

         

       “그대들이 바라는 명예로운 죽음이란 것을 선사해 줄 테니.”

         

       검존과 불존 그리고 천마.

         

       세 사람의 마지막 격돌이 숭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정했던 날보다 하루 더 늦게 오게 되어 죄송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던 감기 몸살이 더 심해지더군요.

    더군다나 어제 새벽에는 절 챙겨주시던 엄니께서 옮으셨는지 갑자기 열이 확 올라서 응급실까지 다녀왔습니다.

    최근에 집에 해결할 일이 좀 생겨서 이것저것 바쁘게 하다 보니 체력에 한계가 왔었나 봅니다.

    새벽에 엄니 따라서 응급실에 누워서 수액 한 대 맞고 집에 와서 조금 더 자고 일어났더니 이제야 몸이 좀 풀리네요.

    부족한 부분은 어떻게든 충당할 수 있도록 체력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읍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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