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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3

       

        

        

        

        

        

        

       -[Streamer ‘Eugene’ // ON AIR]

        

       -[자막기능을 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인과 함께 다크 존 시작부터]

        

        

        

       “지인? 갑자기 왠 지인? 하모니랑 다이스? 아니면 로건이나 로렌티나 나오나?”

        

       “그 사람들이 나왔으면 방제에 상어랑 북극곰이라고 써놓지 않았을까? 아예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왔을지도.”

        

       “자막 기능은 뭐지?”

        

        

        

        10월 23일, 월요일.

        

        전업 스트리머가 아닌 탓에 비교적 불규칙하게 켜지는 유진의 스트리밍.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방송이 시작된 순간 백수십만 명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의 시청자들이 몰려든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는 아주 조금 달랐다. 스트리밍 제목 때문이었다.

        

        수많은 시청자들은 방제를 보자마자 ‘지인’이 평소 카메오로 자주 출연하며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로건이나 로렌티나, 혹은 이제 유진과 뗄레야 뗄 수조차 없는 찰떡 그 자체가 되어버린 하모니와 다이스를 의미하지 않음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만약 상기 열거한 이들이라면 방제가 저럴 일이 없었으니까.

        

        배가 아픈 사람이 집에 오자마자 열려있는 화장실 변기칸으로 호다닥 들어가는 것을 참을 수 없듯이, 수많은 시청자들은 홀린 듯이 유진의 스트리밍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눈 앞에 떠오르는 몇 개의 시스템 메시지.

        

        

        

       -[알림 : 언어 ‘영어’를 감지했습니다.]

        

       -[알림 : 자막 기능을 작동합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하나, 그리고 둘.

        

        한쪽은 늘상 들어왔던 유진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얇다기보단 살짝 낮은 편에 속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청명했-으나, 오늘은 그 사이에 백수십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 중 어느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가 하나 더 섞여있었다.

        

        유진과는 다른 방향의 차분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두껍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얇았다. 공기가 적잖이 섞여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주장이 약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 확고한 음색.

        

        시청자들의 시선이 유진 옆에서 뭔가 주섬주섬 준비 중인 인원을 향했다.

        

        갈색에 한없이 가까운 머리카락. 수상하리만치 머리 위로 쫑끗 솟아있는 털. 호박 – 채소가 아니라 – 을 깎아 박은 듯한 노란 눈동자. 유진보다는 덜하지만 꽤나 날카로운 눈매. 흡사 새를 연상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 옆에는 유진이 있었으며, 폐허가 된 여름의 뉴욕이 두 명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로 보이는 특징적인 구조물 –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잇는 브루클린 브릿지를 본 이들은 전혀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 갑작스럽지만, 이들은…튜토리얼 중이었다.

        

        그 사실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방송을 켜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분 가량 시청자를 방기해두고 있던 유진이 숨을 후 하고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영어로.

        

        

        

       “…반갑습니다, 여러분. 유진입니다. 대략 3일만에 방송을 켠 것 같네요. 갑작스럽게 이렇게 영어로 스트리밍을 진행하는 이유는 별 것 없고, 오늘 함께 할 게스트가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기 때문이니 양해 바랍니다.”

        

        

        

       -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게스트?

       -오늘도 시청자들의 예상을 아득하게 빗나가는군요 선생님 ㅋㅋ

       -영어발음 진짜 감탄만 나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스트누군가요???? 닉네임뭐임?????????????

       -팩트한사발)비얌년 지인이면 저사람 아바타도 현실이랑 똑같을 가능성이 높다

       -다들 키보드에 올라간 손가락멈춰 ㅋㅋㅋㅋㅋㅋㅋㅋ

        

        

        

        UI 위에 표기되는 수많은 정보.

        

        OliviaNL이라는 닉네임. ‘튜토리얼 진행 중’이라는 문구. 캠에 비치고 있는 두 각각의 캐릭터 머리 위에 떠있는 <HARDCORE>라는 글씨까지. 바로 그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빠르게 짐작했다.

        

        더군다나 얼마 전, 이카루스 인터내셔널에서 직접 말하길, 튜토리얼 난이도를 개선하겠다고 하였다. 무려 6년만의 쾌거였다.

        

        이는 안전가옥에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 반드시 혼자서 진행할 수밖에 없는 미션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이는 튜토리얼이 시작되기도 전 게스트와 함께 서있는 유진이라는 광경으로 구체화되었다.

        

        튜토리얼이 바뀌었음을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 그 자체.

        

        

        이미 준비를 전부 끝낸 유진과는 다르게, 처음에는 조금 느린가 싶었던 게스트의 손놀림이 점차 빨라진다.

        

        손에 든 .50 Beowulf Tactical의 개머리판을 이리저리 조절하고, 탄창을 삽입하며, 위에 올라간 사이트의 영점을 간략하게 조절한다. 후퇴되어있던 노리쇠가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전진했고, 약실로 한 발이 밀려들어간다. 어쩐지 기이할 정도로 절도있는 모습이었다.

        

        후- 하고 숨을 내뱉은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됐어. 오래간만이라 조금 헤맸네. 기동하다가 발이 꼬여서 넘어지지만 않으면 좋겠는데…백업해줄 수 있지?”

        

       “물론이지요. 시간 있으면 시청자들한테 인사 한 번만 해주세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진짜 너 하나만 보러 들어온 거구나…세상 일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역시나. 아무튼…다들 반가워. 올리비아라고 부르면 돼.”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저…선생님…찌찌가 방탄판을 뚫고 튀어나오려고 하는데요

       -와 상체가 터질라그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이시간부터올리비아눈나와한몸이된다 올리비아눈나를욕하는것은곧나를욕하는것이다

       -비얌 지인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다이너마이트랑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비율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굴 크기는 유진이랑 비슷하거나 살짝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키가 10cm 이상 차이가 나는 이상 비율. 현실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한없이 수렴하지 않을까 생각이 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비슷한 결과물을 몇 번이고 본 시청자들은 놀라고 감탄할지언정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장 로렌티나와 로건의 키를 더해 반으로 나누면 187cm에 수렴하였고, 같이 서는 순간 남자들조차 땅꼬마로 만들어버릴 정도였으니까.

        

        채팅창은 몇 분도 되지 않아 불바다가 되었고, 시청자 수는 200만 명을 돌파하여 어느덧 220만 명이라는 초유의 숫자로 옮겨가고 있었-지만, 유진은 언제나 그렇듯 단 1도 신경쓰지 않고는 입을 열었다.

        

        

        

       “하드코어 모드가 두 명이라서 그런지 꽤 거친 길이 되겠네요. 센트럴 파크랑 꽤나 먼 브루클린에서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그래. 가자.”

        

        

        

        가장 원초적인 폭력이 두 명의 손에 들려있었다.

        

        비록 이것저것 줄어들긴 했지만, 가야만 하는 거리는 10km 가량. 비록 게임이기에 상당수가 축소되었다고 한들 이곳은 수많은 스폰 지점 중에서도 센트럴 파크와 가장 멀리 떨어진 포인트였고, 거기에 더해 시청자들 역시 이들의 머리에 뜬 하드코어 표식을 슬슬 알아차리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바람과 이스트 강에서부터 풍겨오는 물비린내, 한참 전부터 관리의 손길이 끊긴 탓에 갈라지고 잡초가 자란 아스팔트 길, 버려진 쓰레기봉투와 페인트가 벗겨져 완전히 녹슬고 부서진 자동차들.

        

        모든 준비가 끝난 두 사람은 손목에 착용한 이카루스 기어를 가동시켰고, 앞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며 주변을 빠르게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미 익숙한 듯 주변을 스캐닝하며 앞으로 전진하는 유진,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듯한 기동이었지만 초 단위로 정교해지는 몸놀림과 함께 이동을 시작하는 올리비아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두 명의 행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올리비아가 처음으로 다크 존에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치이익!

        

        

        

       “시커 마인 배치.”

        

       “적 분대가 곧 흩어질 거고…잡았다.”

        

        

        

       -그럼그렇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얌 지인이면 당연히 특수부대 언저리겠지…그럴거같더라….

       -단발사격 정확한거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튜토리얼 난이도 완화됐다고 하지 않았음? 근데 왜 적들 꼬라지가 저모양임?????

       -둘다 하드코어 모드니까 ㅋㅋㅋㅋㅋㅋㅋ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공이가 움직인다.

        

        그것이 뇌관을 강타한 순간 이어지는 과정. 탄피 내의 화약이 화염으로 바뀌고, 오갈 데 없는 폭발력은 탄두를 맹렬히 밀어내며 총신 바깥까지 밀어낸다. 그와 동시에 피스톤이 후퇴하고, 차개는 덩그러니 남은 탄피를 외부로 뱉어냈다.

        

        올리비아는 탄환이 발사되는 과정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상황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무의식 속에서 생각했다. 방아쇠는 유진이 당겼고, 그녀는 공이에 얻어맞은 탄환이었다. 머리라는 탄피 속에 가득차있는 기억이라는 화약이 일순간 타오른다.

        

        격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리고 잊고 살 수밖에 없었던 기억과 머슬 메모리. 그러나 막내에 의해 한 번 여지가 주어진 순간 잇따르는 반응은 실로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기억에 신체가 맞춰지고 있는 것이었다.

        

        

        한 발.

        

        이 세계의 피분수는 붉은 색이 아니라 노란 색이었고, 죽음에 대한 묘사는 훨씬 더 간결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조차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재현력,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플래시백이 올리비아를 덮는다.

        

        매 초마다 그녀라는 낡은 칼을 뒤덮고 있던 녹이 사라지며, 뭉툭했던 날은 뭐든지 베어낼 수 있는 날카로운 날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진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고, 과거 다크 존에 처음 발을 들였을 무렵, 하모니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녀가 보였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형태로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전방의 백색 자동차까지 전진합니다.”

        

       “좋아. 안심하고 돌격해.”

        

        

        

        등을 맡긴다.

        

        목숨을 맡긴다.

        

        이미 과거에도 수없이 많이 해봤으며, 동시에 해냈었기에 할 수 있는 협동 플레이.

        

        만약 올리비아의 자리에 다이스나 하모니가 있었더라면…유진은 크게 발소리를 내며 전방으로 달려갔지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생각은 몇 번이고 꼬깃꼬깃 접어 집어넣으려고 했음에도 제멋대로 떠올라 알아서 결론을 내놓는다.

        

        크게 발소리를 내면 건너편의 적군이 착용하고 있는 헤드셋으로 그 소리를 들을 거고, 그 순간 몸을 들어 나를 사살하기 위해 엄폐물에서 몸을 들어올릴 터였으며, 다이스나 하모니가 그것을 보고 역으로 적을 사살한다.

        

        …그동안 많은 걸 가르쳤지만, 그 두 명이 이런 것들까지 일일이 인식하고 교전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교전에는 무수한 심모원려가 녹아들어있었고, 설령 수없이 유진과 합을 맞춘 두 제자조차 이러한 것들을 전부 감안하거나 파악하고 교전에 임할 수 없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오늘은, 그리고 유진과 함께 하는 사람은 할 수 있었다.

        

        

        

       ───투웅!

        

        

        

       “크악…!”

        

       “체르카프! 망할!”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희들이 기대한 뉴비! 그런 건 없다 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드코어 모드(적들이 맞이할 운명이 하드코어하단 뜻)

       -이눈나도 적 식별 속도랑 조준실력이 장난이 아니네 ㅋㅋㅋㅋ

       -이제보니 베오울프를 쏘고있었네 무친사람아냐이거 ㅋㅋ

        

        

        

        압도적인 파워.

        

        NIJ III급 방탄복을 뚫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머리를 맞추는 순간 목뼈가 부러지고, 방탄복에 몇 발 가량을 쏘는 순간 부러진 늑골이 폐를 찌르는 정신나간 위력이 정확한 조준과 합치된 순간 경이로운 결과가 튀어나왔다.

        

        BMP만 없다 뿐이지 군 기지를 지키는 어지간한 초병들보다도 더 짱짱하게 무장한 러시아 상륙보병 분대원 10명, 그리고 이들이 형성한 전열.

        

        그 모든 것들이 마치 플라스틱 칼 앞의 생일 케이크마냥 쪼개지고 있었다.

        

        

        그러나 올리비아의 실력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오래 가지 못했다.

        

        영혼까지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한 명이 하늘을 날았고, 브루클린 대교 아래 표표히 흐르는 이스트 강으로 자유낙하한 것이었다 –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유진이 강으로 집어던진 것에 가까웠지만.

        

        

        

       “…아이구.”

        

        

        

       -저기요 방금 사람이 공중에 떴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젠 눈치도 안보고 대놓고 미친짓을 하고 다니네 ㅋㅋㅋ

       -올리비아눈나 표정관리못하는중wwwww

       -어처구니가 사라지고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아무리 AI 적들 잡는다지만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사람을 얽매고 있는 사슬이 하나둘씩 벗겨질수록 본색이 드러난다.

        

        유진의 사슬은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의 얼굴, 그리고 발현자라는 사실 그 자체였으나…당장 그 사실이 작년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밝혀지지 않았는가. 거기다가 신체검사 및 글로리 앤 아너 1 : 300을 통해서 신체능력도 거의 전부 밝혀진 지 오래였고.

        

        유진의 유어스페이스 채널에 올라온 영상 대다수를 보지 못했던 올리비아조차 과거의 기억을 조금 뒤져보면 당시의 떠들썩함을 그대로 알 수 있는 판이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저러는 건 조금 어지럽긴 했는데.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불과 20분도 지나지 않아 브루클린 대교의 끝이 보였다.

        

        연달아 수 개의 분대를 격파하고 맨해튼으로 진입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꼴랑 그 정도라는 것은…사실상 아무런 방해 없이 걸어서 브루클린에서 맨해튼까지 가는 시간이랑 얼추 비슷할 확률이 높았다.

        

        무수한 시체와 찰박거리는 금색 피가 대교 위를 덮었다.

        

        대교 너머로 보이는 맨해튼은 끔찍할 정도로 조용했다.

        

        

        

       “…내 직장이 여기라고 말해준 적 있었나?”

        

       “아뇨. 그래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네요.”

        

        

        

        구름 한 점 없는 창창한 날씨.

        

        그러나 내려쬐는 햇살 아래에서 길게 그림자를 남기는 수많은 초고층 빌딩은 뉴욕의 웅장함보다는 거대한 관짝, 혹은 묘비를 연상하게 만들었고,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멋대로들 떠들고 있던 수많은 시청자들이 언어능력을 잃어버리고 단답만을 치게 만들었다.

        

        다크 존.

        

        이 세상에서 바이러스 아포칼립스를, 그리고 그로 인해 멸망한 적막 어린 세계를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표현했다고 여겨지는 게임.

        

        

        유진은 힐끔 고개를 돌려 올리비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실로 복잡한 표정이었다. 굳게 다물린 입술과 살짝 찡그려진 미간. 깊고 길게 내뱉는 숨. 몇 번이고 쥐었다가 펴지는 왼쪽 손…이 순간 그녀는 다크 존이 아닌 과거 죽어버린 뉴욕으로 돌아왔다. 눈동자 사이로 기억과 현실이 겹쳐졌다.

        

        저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유진과 올리비아는 맨해튼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걸로 끝이었다.

        

        눈 앞에 알람이 떠올랐다.

        

        

        

       -[알림 : 이유를 알 수 없는 재밍을 확인.]

        

       -[알림 : 로어 맨하탄의 내부 치안을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됨. 잔존 아군 병력의 퇴출 또는 은엄폐 시작, 안전가옥 및 센트럴 파크 HQ 봉쇄 개시.]

        

       -[알림 : HQ 지휘통제 하에 로어 맨하탄 전역을 현 시간부로 ‘미관제구역’으로 지정함.]

        

        

        

       “…이런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 이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관제구역…하모니…탄창떨구기…윽….

       -아니 진짜 타이밍 기가막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녹냥이랑 비얌년 처음으로 합방할때 생각나네 ㅋㅋㅋㅋㅋ

       -‘전설의 시작’

        

        

        

        유진은 어처구니없단 듯 킥킥댔고,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올리비아에게 덧붙였다.

        

        

        

       “별 것 아니예요. 그냥 보이는 애들 뚝배기 전부 깨면 끝이거든요.”

        

       “자주 하던 거네. 그럼 됐어.”

        

        

        

        1년 전에는 사냥감으로서, 지금은 사냥꾼으로서.

        

        실로 기묘한 재현이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우와, 세상에. 진짜 추억이다.”

        

       “아, 저거 저도 봤어요. 저때 탄창 떨…우왁!”

        

       “갈!”

        

        

        

        한편, 가상현실 어딘가.

        

        실로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은 하모니와 흥미진진한 눈의 다이스가 오늘도 사고를 치고 다니는 유진의 방송을 보며 팝콘을 씹고 있었다.

        

        세상이란 이다지도 기묘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과거 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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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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