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504

       만 번의 칼질을 통해 새긴 손 하나 길이 정도의 상처.

         

       그 옆에는 구천 번의 칼질로 새긴 팔뚝만 한 길이의 상처가.

         

       또 그 옆에는 칠천 번의 칼질로 새긴 팔 하나 길이의 상처가 새겨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서 있는 검은 공간 안에는 온통 그러한 상처들이 빼곡하게 나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전부 백우진의 수련 과정에서 생겨난 것들.

         

       “슬슬 좀 알겠는데.”

         

       그렇게 길이는 늘이고, 횟수는 줄여가기를 수천 번째.

         

       가장 최근에 생긴 얇고 긴 상흔을 바라보는 백우진의 눈에는 만족감이 서려 있었다.

         

       단 세 번의 칼질.

         

       그로 인해 만들어진 상흔의 길이는 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들어가고 남을 정도.

         

       그 말은 무엇이냐.

         

       “완성…, 아니 깨우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완성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에는 한참 이르다.

         

       그러나 마침내 백유성이 남기고 떠난 ‘절(絶)’을 깨우치는 정도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 듯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으려나.”

         

       온통 검은색뿐인 공간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도 지금까지 휘두른 칼질의 횟수를 떠올리며 추측하건대, 이곳에서의 흐름으로 대략 반년 정도 지나지 않았나 싶다.

         

       심상에서의 시간은 현실보다 지극히 빠르다.

         

       그 말인즉, 심상에서 반년이 지났을지언정 현실에서는 그보다 훨씬 적은 시간만이 흘렀다는 뜻.

         

       “열흘…, 아니, 보름 정도려나.”

         

       그리 얼마 되지 않은 듯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제법 긴 시간일 터다.

         

       적의 칼을 맞고 쓰러진 사람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면 그걸 보고 있을 사람들의 애간장이 얼마나 타들어 가겠나.

         

       그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설 지경이건만, 천마는 천마대로 걱정이었다.

         

       “…제단은 전부 부서졌겠지.”

         

       열흘이든, 보름이든.

         

       그녀가 원하는 일을 이루기엔 너무나도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니 제단은 남김없이 부서졌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할 터.

         

       “슬슬 일어나긴 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제단을 전부 부순 그녀는 곤륜산을 향해 진격해 올 것이다.

         

       그곳 하늘에 마지막 제단인 황룡의 제단이 숨어 있으니.

         

       그녀를 멈출 마지막 기회는 이제 단 한 번뿐.

         

       제때 일어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배운 걸 써먹기도 전에 세상은 무너져 내릴 터.

         

       “이틀…, 아니, 하루.”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다시 검을 쥐는 백우진.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그것을 검에 담는 방법 또한 점점 더 깨달아 가는 중이다.

         

       어렵겠지만, 하루에서 이틀 정도라면 확실하게 실마리를 손에 쥔 채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 듯하여.

         

       “그럼 다시 시작…!”

         

       그때까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수련을 이어 가려던 찰나.

         

       쩌적

         

       “…….”

         

       무언가 불길한 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백우진이 검은 공간에 새긴 무수한 상처 중 하나.

         

       쩌적!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세로로 그어진 상흔이 사방팔방으로 크기를 부풀려 나간다.

         

       거미줄처럼 뻗어 나간 균열이 또 다른 상흔과 연결되고, 그곳에서 시작된 균열이 또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기를 여러 차례.

         

       쩌적!

         

       쩌저적!

         

       “어, 어어….”

         

       어느덧 균열은 백우진을 둘러싼 검은 공간 전체에 퍼져 상황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파캉!

         

       청명한 소리와 함께 깨져 나간 검은 공간의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백우진의 머리 위로.

         

       거대한 운석처럼 떨어지는 파편들.

         

       이를 막아내기 위해 검을 쥐었으나.

         

       “…어디 갔어, 이거.”

         

       손아귀에 응당 느껴져야 할 검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쥔 검은 심상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그의 의지에 반응하여 만들어 낸 진짜 같은 가짜.

         

       그것이 사라졌다는 건 검은 공간을 이루고 있던 심상이 마침내 사라지고 있다는 뜻.

         

       “아…, 놔.”

         

       그가 허탈해하는 사이, 거리를 좁혀온 파편들이 백우진을 덮쳤다.

         

       퍼걱!

         

       둔탁한 소음과 함께 암전되는 시야.

         

       동시에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정신이 빠르게 수면 위로 부상한다.

         

       이윽고 떠지는 두 눈.

         

       조금 전 느낀 생생한 타격감이 머리에서 느껴진 백우진은 검은 공간이 아닌, 고즈넉한 방에서 눈을 뜨며 소리쳤다.

         

       “아, 시발 꿈!”

         

       이었구나.

         

       라고.

         

         

       * * *

         

         

       여러모로 충격적인 외침과 함께 강제로 눈을 뜬 백우진.

         

       그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드는 여인들이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깨어나 정말 다행이라고, 무사히 일어나 줘서 고맙다고 연신 울어대는 여인들.

         

       어디에 안겨도,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환상적인 촉감과 향기에 헤벌쭉 웃기도 잠시.

         

       진한 재회의 감동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

         

       “생각해 보니까 좀 괘씸하지 않아?”

       “그…러게요. 분명히 안 다치겠다고 했으면서.”

       “위험한 짓 좀 그만하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도.”

       “또 전혀 안 들어먹으셨죠.”

         

       아니, 잠깐만.

         

       백우진이 뭐라 변명을 입에 담기도 전에.

         

       “일단 밟죠?”

         

       그녀들은 악마가 되었다.

         

       “끼에엑!”

         

       그렇게 한 차례 천마의 칼에 찔렸을 때보다 더 짙은 죽음의 향기를 맡은 뒤.

         

       자신이 쓰러짐으로 인해 그녀들의 들쭉날쭉해진 감정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그가 물었다.

         

       “상황은 어때?”

         

       그리고 그 물음을 들은 여인들은 하나 같이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백우진은 그때 직감했다.

         

       자신이 쓰러져 있는 사이,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준비되어 이야기해 주기만을 기다릴 뿐.

         

       그리고 마침내 당선영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맹주님께서…, 전사하셨어.”

         

       숭산으로 향하는 천마를 막기 위해 천여 명의 고수들로 구성된 결사대의 패배.

         

       자신들의 생각이 단단히 어긋났음을 깨달은 무림맹주와 불존의 희생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실패와 희생에 정신이 멍해지기를 잠시.

         

       “잠시 다녀올게.”

         

       그리 말한 백우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굳은 얼굴로 침소를 나섰다.

         

       마음 같아선 연합의 본단을 찾아가 절이라도 한번 올리고 싶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제단이 전부 파괴된 현 상황에서 천마가 언제 곤륜산으로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에.

         

       ‘맹주님.’

         

       도굉과 더불어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준 이.

         

       도굉은 장인어른이라는 명확한 관계라도 있지, 현학은 그렇지도 않았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무림의 평화만을 위해 제 등을 묵묵히 받쳐주었다.

         

       그걸 알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왜 선인들은 이리도 빨리 떠나는지….’

         

       그가 알던 선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빠르게 목숨을 잃고 제 곁을 떠나갔다.

         

       아무런 전조 없이 훅 불어와 한 차례 땀을 식혀준 뒤 금세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오직 제 곁만 지키기에는 그들이 온정을 베풀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기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타인을 구원하기 위해 제 몸을 돌볼 시간이 없어 그리들 허망하게 떠나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더없이 슬프기는 매한가지.

         

       “…내가 있었더라면.”

         

       문득 후회된다.

         

       만약 자신이 쓰러진 상태로 시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러다 문득 쓰게 웃는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겠지.”

         

       선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 같이 쇠심줄 같은 고집으로 제 신념을 관철한다는 것.

         

       자신이 쓰러지지 않았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말리려 해도 그들은 구파일방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소림사의 앞마당에 천마가 마음대로 드나드는 걸 절대로 두고 보지 않았을 터다.

         

       그것이 정파니까.

         

       고리타분하고, 고루하지만, 절대로 꺾지 않고 지켜온 그 신념이 지금까지 그들을 유지해 온 원동력이기도 하기에.

         

       힘없는 걸음으로 산을 오르는 백우진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한숨.

         

       “두 번째라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구만….”

         

       실로 그러했다.

         

       이세계에서 십 년쯤 굴렀으면 적당히 손에 익을 법도 하건만.

         

       그것이 참으로 그렇지 않았다.

         

       어떤 일에는 더없이 능숙한 데에 반해 또 어떤 일에는 더없이 서툴고, 어리숙하니.

         

       삶을 살아가며 겪는 모든 일에 통달하고자 한다는 게 지나친 과욕인 걸까.

         

       “…….”

         

       정상에 다다른 그는 말없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공간에 대한 감각을 깨우친 덕분일까.

         

       아주 먼 곳에서 요동치는 기운들이 느껴진다.

         

       더럽고 추악한 기운.

         

       순수한 힘을 추구하는 천마의 기운에 삿된 욕망이 더해져 만들어진 혼탁한 마기.

         

       머나먼 땅에 진득하게 뭉쳐 있는 그 기운이 이쪽을 향해 넘실거린다.

         

       그들 사이에 놓인 순수한 마기 또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머나먼 그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만큼, 그녀 또한 자신이 어디 있든 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참나.”

         

       관음증 환자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건지.

         

       아무튼.

         

       제단을 전부 부순 그녀가 본거지인 십만대산으로 돌아갔다는 건 더 이상 혼자 움직이는 시기는 끝났다는 뜻.

         

       중원을 향한 야욕과 살의가 들끓는 마교도들을 전부 이끌고, 이곳 곤륜산에 당도하겠다는 나름의 선전포고.

         

       여전히 그녀가 무얼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그녀의 목표가 이루어졌을 때, 이 세상의 존속은 불가능하리라는 것.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식의 때.

         

       그때야말로 기나긴 여정의 방점을 찍게 되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