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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5

    <505 – 두 번째는 무서워>

    혁명가의 발언을 듣자마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건 혁명가토벌전 2 페이즈잖아요! 페이즈를 앞당겨 쓰는 건 반칙이지!”

    “호오. 재단의 후계자이자 디스트로이어의 어린 제자여. 제 계획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까?”

    “흥. 아카데미의 주간이벤트부터 각 지역의 지역이벤트, 삼대거악의 대규모작전까지 제가 모르는 이벤트는 극히 드물다고요?”

    당돌한 발언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혁명가가 릴리아에게 잠시 기다리라며 손을 들어 저지했다.

    시간을 벌어 손해 볼 일 없는 교수님들도 반격하는 대신 잠자코 대치했다.

    “재단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저로서도 예전부터 궁금했었지요. 그렇게까지 자신한다면 하면 묻겠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망령은 소환하지 않느니만 못하죠. 그런데도 저는 그들을 부르고자 했습니다. 절 위해 죽은 망령들이 죽어서도 충성을 바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푸른 딱지죠! 망령들이 생전에도 중히 여기던 화폐였잖아요? 명계에는 화폐를 강제할 제국도 없으니 그들이 원하는 매개체가 화폐가 되죠!”

    망령들의 화폐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혁명가는 지옥의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현계의 물질을 명계에 전송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논의입니다.”

    “그래서 악인토벌을 해왔잖아요? 자연스럽게 명계에 물질전송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수급하려고.”

    자신을 위해 죽은 자들을 명계에서 푸른 딱지로 사육하며 기른다.

    마치 역모를 꿈꾸는 귀족들이 자신에게만 충성을 바치는 사병을 공들여 육성하듯이.

    “애초에 혁명가는 격투가도, 검사도, 마법사도, 도적도,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황제토벌을 진지하게 목표로 하는 혁명을 일으키려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요. 그런 소중한 전력들을 마구 죽도록 만들었다면 이유가 있어서 죽였겠죠!”

    “큭큭큭. 당신, 정말로 재미있군요.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극악과 극악 사이에서도 통용되는 말일 줄은 몰랐습니다.”

    혁명가는 부정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저는 제 안에 명계의 차원문을 심어두었습니다. 황제라는 거대한 적에게 복수하기엔 한없이 나약했던 청년에겐 수백 년에 걸쳐 힘을 축적해온 제국에 맞설 수단이 필요했죠. 그러다가 무심코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잡초처럼 널린 민초들의 존재를. 어디에서 죽어 나자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약한 인간들을.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고 가볍게 사용하는 그들의 목숨을 거둘 수 있다면, 사후에라도 이용할 수 있다면 이보다 큰 힘이 될 자원이 있을까?”

    “그래서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혁명의 날>이 지나간 뒤에 열었다면 능히 황제타도를 가능케 할 엄청난 수의 망령들이 모였겠지만 지금까지 모은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를 이루었지요.”

    12년 전의 파란딱지의 난.

    10년 전의 검은 소금.

    8년 전의 마검양산.

    5년 전의 불사자의 마약.

    2년 전의 퍼플카니발.

    그가 일으킨 굵직한 혁명에 동참하고 사망한 민중들의 수만 모두 헤아려도 족히 천만을 넘는다.

    유동인구 백만 명의 카넬레 시와 달리 천만 단위의 사람들이 오가는 제국제도부터 각 지역의 주요거점에서 벌어진 사건들.

    그 수를 정확히 추산하면 혁명가가 모은 망령의 수는 1억에 가까워진다.

    ‘혁명의 날 이벤트가 발동하면 한 번에 그 숫자가 두 배로 뻥튀기되지만!’

    고작 백만 단위로도 망령들을 융합시켜 상위개체가 잔뜩 튀어나왔는데 억 단위의 망령들을 융합시키면 어떤 존재가 탄생할까.

    물량으로도, 융합으로도 그 미래는 감당하기 힘든 대참사가 된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이 이벤트에 편승하는 공략을 주로 설계하는 편이다.

    혁명가가 혁명의 날을 일으키고.

    제국의 황제가 위기에 처하고.

    그래도 끝내 황제가 승리하는 판에 끼어들어서 용사가 황제를 토벌하도록 길을 열어준다.

    혁명의 날을 기점으로 황제의 신물강화가 제국전역에 알려지며 황제를 향한 원성이 극에 달하기에 가능한 용사의 황제토벌이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힘을 투사하는 방향이 황제가 아니게 된 지금, 편승이벤트는 사라졌다.

    “저는 그 물량을 방금 당신에게 사용하려 했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은 충분히 깨달았겠죠.”

    “황제 목따려고 원기옥 모으다가 저한테 내던지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큭큭큭. 영웅이라도 까무러칠 협박에도 태연하다니, 그 배짱마저도 사랑스럽군요. 하아. 제가 원래 이렇게 쉬운 남자는 아니지만 당신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별히 한 번만 권해보도록 하죠.”

    혁명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이 존경하는 스승 디스트로이어를 살려드리겠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11살 아이인 당신도 살려드리죠. 그저 혁명군을 위해 가벼운 조력만 해주시면 됩니다. 부모님께서도 황제시해에 한몫하러 간다고 하거든 흔쾌히 허락하실 겁니다.”

    마치 초등학교 수학여행에 가는 것처럼 가볍게 제안을 내미는 혁명가.

    뒤에서 교수님들이 무어라 말을 했으나 어느 틈엔가 혁명가를 따르는 수하들이 펼친 경계가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였다.

    이 순간, 우리 둘의 대화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똑똑하네!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겠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고 흔드는 행위 하나는 역시 독보적인 거악답다.

    그런데 말이다.

    다 좋은데 혁명가가 놓친 정보가 하나 있다.

    “해봐요!”

    “협력을?”

    “망령 그거. 한번 보고 싶은데. 지금 저한테 한 번 써봐요!”

    애초에 난 저게 하나도 무섭지 않다.

    “진심이십니까. 당신, 죽는다고요?”

    석가의 심득을 얻지 못했다면 그랬겠지.

    석가의 권능 삼법인.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세 권능은 각각 다음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우주만물은 한결같지 아니하며 모두 변화하니, 경지 또한 그러함에 얻는 효과가 <경지임대>.

    만물의 실체와 나라는 자아는 존재하지 아니하니, 형태 또한 그러함에 얻는 효과가 <성장임대>.

    번뇌를 소멸하여 평온을 얻고 열반에 도달하니, 심신의 안전 또한 그러함에 얻는 효과가 <무적임대>.

    각각의 발동조건과 상세효과, 결과는 명료하다.

    현재의 일격 하나를 상위경지로 끌어올리고 추후의 일격 하나를 하위경지로 사용하여 갚는 것이 제행무상의 경지임대.

    현재의 신체상태를 미래의 신체상태로 앞당기고 미래의 신체상태를 현재의 신체상태로 전환하여 갚는 것이 제법무아의 성장임대.

    현재의 기능경험점을 제물로 바쳐서 해당 기능이 극에 도달한 미래의 힘을 발휘하고 미래에 해당 기능의 극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열반적정의 무적임대.

    이 게임 세계에서 석가의 가르침은 뭐든지 빌리고 갚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요컨대, 망령이 우르르 튀어나와도 죽지 않을 미래의 경지, 미래의 신체, 미래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면 권능발현 한 번으로 카운터를 칠 수 있다.

    물론 범인의 미래는 범인이고, 뉴비의 미래도 뉴비일 뿐이다.

    가능성을 개화하지 못한 허접잡졸이 석가의 가르침으로 미래의 힘을 빌리려고 해봤자 고만고만한 힘이 조금 더 나아질 뿐이다.

    하지만 고인물의 손에 석가의 가르침이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각 분야의 최상의 경지.

    몇십 년을 아카데미에서 썩은 어른의 신체.

    기능 경험치 1000을 찍고 도달할 한 기능의 극의.

    그 모든 것이 종류 불문 모두 해금된 상태라면 최대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

    즉, 이 권능은 고인물 최적화 권능이다.

    * * *

    디스트로이어는 경악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오크노디! 그 녀석의 사악한 꼬드김에 넘어가지 마라!”

    “소용없습니다. 경계를 파훼하기 전에는 저희의 소리, 저희의 모습은 오크노디에게 닿지 않을 겁니다.”

    분노한 디스트로이어는 지연전이라는 사실도 잊고 가차 없이 전력을 끌어올렸다.

    암흑마나의 통제에 사용하던 기운까지 끌어올리며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한층 더 희생할 정도로.

    “디스트로이어! 당신, 그런 무모한 힘의 운용은 가뜩이나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하비는 이미 잃었다. 릴리아 또한 눈앞에서 잃었다. 오크노디마저도 잃을 수는 없다!”

    용사가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 시간벌이에 나섰던 검귀 한 명의 팔이 잘렸다.

    대도적의 잠금문을 해제하며 혁명가에게 붙었던 대륙십대도적 서열 6위 <일초도둑>의 모방기술이 일 초 만에 깨지며 머리가 퍽 터졌다.

    악기를 든 음유시인의 음공이 어마어마한 공간압을 견뎌내지 못하고 본인에게 되돌아가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경계파괴>

    격리공간을 만들어 공간을 단절시켰던 경계술사마저 경계의 강제파괴 부작용으로 입가에서 피를 토하며 위태롭게 뒷걸음질 쳤다.

    4명.

    진심모드의 힘을 드러내기 무섭게 4명의 강자들을 초살한 디스트로이어의 눈앞에 보여선 안 될 광경이 펼쳐졌다.

    <눈은 마음을 비치는 거울>

    <지정대상 – 혁명가>

    <명계의 문 개방>

    카넬레 시의 지상결계에서 펼쳐진 것과는 규모부터가 다른 거대한 음에너지가 디스트로이어의 진심모드의 최대안법, 맥시멈 와이드 아이즈Maximum Wide Eyes의 침투력을 밀어냈다.

    <세계영역 전개>

    <명계침식 개시>

    문이 열리는 것만으로도 한 세계를 죽음의 땅으로 변모시키고 대기의 마나퍼즐의 속성이 죽음과 잔악, 파괴, 어둠 따위로 변모했다.

    늦었다.

    절망감이 디스트로이어의 숨통을 옭아맸다.

    밤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망령이 쏟아져나왔다.

    그들의 중심부에서 감히 그 힘의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고위 망령이 혁명가의 눈을 비집고 나오려 들었다.

    닿지 않는 힘을 발산하며 소리없는 비통함에 무너져가는 디스트로이어를 무시한 채, 악의의 파도가 한 사람에게 향했다.

     

     

    * * *

     

    그 모든 존재가 노리는 것은 오크노디 하나.

    덮쳐진다면 시체조차 남지 않을 파도다.

    영혼은 망자들의 대해에 휩쓸려 두 번 다시 구원받지 못하겠지.

    자아의 경계가 무너져 오크노디라는 정신체의 존재마저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한다면 더욱 두려워해야 마땅할 광경이건만 신기하다 못해 기이함이 느껴질 정도로 오크노디는 태연했다.

    마치 자신은 죽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사람처럼.

     

    “괜찮아요 교수님. 나 안 죽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오크노디가 권능을 발현했다.

    <옛 신의 유산>

    <삼법인의 권능 – 2식 제법무아(諸法無我)>

    성장임대.

    미래의 자신의 신체를 불러오는 능력.

    남자형태의 자신을 상상하며 능력을 전개했던 오크노디에게 이 권능은 그녀의 의도와는 약간 다른 결과를 초래하였다.

    [소환하려는 성장한 신체의 성별이 다릅니다.]

    [주체로서의 자신을 불러오지 못합니다.]

    [객체로서의 자신이 소환됩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최강의 자신으로 변신할 기회.

    그러나 실제로 이루어진 현상은 혁명가의 눈에 열린 명계의 문과 흡사한 형태의 문이 오크노디의 눈앞에서 열리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나온 자는 230cm의 거대한 남성.

    일명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조아해병>.

    디스트로이어는 그 존재를 오크노디와는 다른 방식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저 남자는… 오크노디의 최상급 투쟁의 악몽에서 보았던 그녀의 스승?!”

    악몽에서나마 자신을 보호하고자 그녀가 아는 최강의 존재의 힘을 빌려 싸웠던 오크노디.

    오크노디가 떠올릴 수 있는 재단의 잔혹한 말살프로젝트의 결실을 단독으로 격멸시킬 수 있는 지상 최강에 한없이 가까울 존재.

    적어도 디스트로이어는 그렇게 믿는 자.

    그런 자가 오크노디의 위기의 순간에 어떠한 전조도 없이 홀연히 나타났다면 디스트로이어의 입장에서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조아해병 = 오크노디 스승설은 사실이었다고.

    그는 지금껏 오크노디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닥친 지금에서야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크노디의 스승은 많은 것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보폭을 넓히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한 번의 도움닫기와 함께 전신근육을 동원해 다리부터 올라온 힘을 올곧게 주먹에 실어 망령의 망해에 내질렀을 뿐.

    그 정직한 일격에 망해가 반으로 갈라지고 차원문을 비집고 나오려던 고위 망령이 산산이 터졌다.

    세계영역 수준의 마나가 일소하였으며, 점차 크게 벌어지던 명계의 문이 강제로 닫혔다.

    경천동지.

    하늘이 놀라고 대지가 진동할 일격을 내지른 그는 천천히 주먹을 회수하고는 등을 돌렸다.

    “회차를 엉망진창으로 진행하는군. 혁명가를 이런 식으로 허비하고도 황제를 물리칠 수 있겠나?”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이죠!”

    “그렇지.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라면 모두 수습할 수 있기도 하고.”

    남자는 듣기만 해도 영혼이 깎여나갈 것처럼 잔인한 웃음을 흘렸다.

    “기억해라. 인과는 부족하나 이 또한 엄연한 왜곡. 너와 내가 같은 위상에 서기까지 남은 시간은 한 번뿐. 그래, 이번이 두 번째였다.”

    다음은 세 번째.

    너의 마지막이 될 시간이다.

    경고와 함께 남자는 갑작스러운 등장만큼이나 홀연히 사라졌다.

    “혀, 혁명가가…”

    명계의 문이 개방될 매개체로 쓰였던 눈과 함께 머리가 날아가 허망하게 쓰러진 혁명가의 시체만을 남겨둔 채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혁명가의 여론이 너무 안 좋아서 3연참의 힘으로 원큐에 보내버렸습니다.
    인기 없는 악역은 살아남을 수 없는 가혹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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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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