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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5

    어딘가를 향해 전화를 걸던 그는 받지 않는 전화를 끊어버리며 중얼거렸다.

    “씁, 이상하구만.”

    화면에 나타난 이름은 아까 전에 택배기사가 말한 제이슨.

    혹시 택배 시킨 게 있냐, 자신이 받아두었으니 찾으러 오라고 연락을 하려고 했더니만…

    연락이 되질 않는다.

    사실 방금 전, 택배기사가 자신에게 제이슨에게 갈 택배를 맡겨두고 갔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했다.

    나름대로 꼼꼼한 성격인 녀석이 누구에게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울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녀석이 평소와 같았다면 아마 자신에게 오기 전, 그 쪽 시설에서 다른 누군가가 받았겠지.

    그런데 택배기사가 굳이 이쪽으로 찾아온 것이라면, 그쪽 건물에는 아예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나?

    영업을 안 하더라도 다른 조직이 종종 시설에 깽판을 치러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건물을 아예 비워두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뭐, 한번 확인이나 해볼까.”

    원래 이런 문제같은 게 생기면 일단 바로 움직여봐야 했다.

    안 그러면 그동안 너는 뭐했냐며 보스에게 질타를 당할 테니까.

    게다가 그는 애초부터 엉덩이가 가벼운 탓에 공부도 잘 못하던 인간이었으니, 가만히 앉아있는 것에도 이젠 슬슬 좀이 쑤실 때가 되기도 했다.

    ‘잠깐 확인차 나가서 담배나 피우고 와야지.’

    -철컥.

    그가 그렇게 문을 열고 자리를 비운 사이, 택배상자에 얼핏 봐서는 있는지도 모를 작은 구멍을 통해 미약한 반사광 하나가 비쳤다.

    그리고 잠시 후, 택배상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툭, 툭, 푸욱-.

    잠시 툭툭거리는 소리 후, 내부에서 돌연 솟아오르는 작은 칼날.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사무용 커터칼의 날이 내부에서 튀어나와, 테이프로 밀봉된 틈새를 소리없이 잘라낸 것이다.

    -스윽….

    그렇게 밀봉을 스스로 풀어낸 택배는 은밀히 그 몸을 상자 밖으로 꺼내었다.

    “…….”

    상자에서 나온 것은 택배상자에 쓰여있던 품목명과 같은 ‘인형’.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그것은 스스로 움직일 줄 아는 인형이었다는 점이다.

    작은 곰 인형은 자신이 상자를 빠져나올 때 사용한 커터날을 바라보았다.

    미리 두 칸 정도로 부러트려놓은, 아주 작은 커터날.

    이런 사무용 커터칼 한두 칸 정도로 작은 조각은 다른 쇠붙이 장식으로 숨기기도 용이해 탐지기를 사용한다해도 쉽게 탐지할 수 없었다.

    택배사의 ‘텔레포트’가 있기 전, 까다로운 검수를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소재 또한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흔한 것이라 눈에 띄지도 않아 인멸하기도 쉽고 저렴한데, 그럼에도 그 날카로움은 급소를 노리기엔 충분하다.

    따라서 이 정도면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큰 문제가 있는 장비는 아니었다.

    훌륭한 소드마스터라면 이 작은 칼날 하나만으로도 수십의 목 정도는 단숨에 그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여차할 때의 임기응변은 가능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텔레포트’의 영향으로 축적된 모든 마나가 사라진 상태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애초에 고농도의 마나 자체가 검수를 통과할 수 있을 리 없으니 미리 제거해두기는 했지만.

    -‘마력 충전율, 23%….’

    그래도 꾸준히 마나를 회복하는 중이었기에,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만전을 회복할 수 있다.

    또 충전율 40%부터는 아린세이아와의 연결도 다시 이어져 보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그 전에는 일단 현장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인형은 천천히 자신이 부여받은 임무와 현장의 정보를 떠올려보았다.

    -‘이곳은 유령도시 코스티, 목표는 어딘가에 있을 루체스트 연구소의 정보 수집….’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현 상황에서는 조금 막연한 목표이지만, ‘그녀’가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이상 분명히 무언가 알아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일단은 한 걸음부터 시작해볼까.

    -‘방금 나간 그 녀석을 따라가봐야겠군.’

    그 녀석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낀 것 같아보였으니 말이다.

    —–

    ‘이거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네.’

    가족사진을 찍은 후 다이튼의 머릿속에 떠오른 감상이었다.

    이왕 하는 김에 다른 사진도 한꺼번에 처리하겠다고 하루에 죄다 몰아놓았으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정신적으로 상당히 지쳐버렸다.

    그냥 가만히 서서 포즈만 취하는 것도 꽤나 힘이 드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아, 루크가 일이 있다고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갔으니 망정이지, 다들 계속 남아있었으면 더 힘들 뻔했어.”

    게다가, 중간중간 아이들 관리까지 해야 한다면, 그 힘은 두 배 이상으로 들어버린다.

    뭘 하든 한번에 해결되는 법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루크는 사진사의 내친김에 신부복을 입은 사진까지 찍는 건 어떻냐는 제안에 도망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중얼거림이 전해졌는지, 한창 준비중인 문 너머에서 예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그러게…, 가족사진이라는거 의외로 찍는 게 힘든 거였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어.”

    그녀는 그동안 이런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기도 했고, 애초에 사진 자체를 사진관에서 찍어본 것이 너무나 오래된 터라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했다.

    이렇게 지치는 일일 줄 알았다면 아이들이 떼를 쓴다고 해도 그냥 집에 두고 왔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사진을 찍긴 했으니 됐어.”

    “응, 게다가 무료로 해준다고 하셨고.”

    설마하니 사진관 홍보모델이라니, 사진관에서 먼저 루크에게 그런 제안을 해올 줄이야.

    이건 예뻐진 루크의 덕을 좀 보았다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오늘 모든 사진을 공짜로 찍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가족사진이라는게 말이지….

    “근데 이번에 찍은 가족 사진, 뭔가 좀 그렇지 않아?”

    다이튼의 질문에 예르나는 준비실에 들어가기 전, 함께 확인한 가족사진의 모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글쎄, 나는 잘 나온 것 같던데? 화목해보이고 좋지 않았어?”

    자신이 생각하기엔 별로 이상할 것 없이 잘 나온 사진이었다만, 다이튼이 보기엔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뭔가 맘에 안드는 부분이 있어? 아, 디아나 표정은 좀 굳어있는 것 같긴 했는데.”

    “아니, 그게-.”

    예르나가 생각해보니 그런 부분도 있었다고 중얼거리자, 다이튼은 화면에 임시로 뽑혀져나온 가족사진을 바라보며 말을 삼켰다.

    구도상 자신이 가운데, 왼쪽에 예르나, 오른쪽에 루크를 세우고 가운데에 디아나와 파이리스가 나오는 사진이다.

    확실히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가족사진의 구도고, 특별한 점도 없이 촬영된 평범한 느낌의 사진이었다만…….

    ‘이거 처음에 사진사한테 그런 이상한 오해를 받아서 그런가, 진짜 내 아내가 두명인 것 같잖아?’

    예르나는 사진에 대해서 별 생각이나 불만이 없는 것 같았지만, 다이튼은 가족사진을 찍을 때 묘한 표정이던 사진사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듯했다.

    그도 그럴게, 사진에는 ‘아내’라는 엘프 외에도 수인족 한 명, 거기에 자신을 닮은 여자애 하나랑, 루크를 닮은 여자애 하나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 같이 딸려 있었으니까.

    다이튼으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디아나는 자신의 친동생이고, 따로 파이리스는 입양된 루크의 동생이니 당연히 닮게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사진사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듯했다.

    과연 그녀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어떤 막장 드라마의 이야기를 써내리고 있었을지 왠지 알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디아나는 어머니가 엘프 쪽인 아이이고, 파이리스는 어머니가 수인 쪽인 아이가 아닌가 하는…, 뭐 그런 내용의 망상이었겠지.

    결국 필사적인 해명 끝에 어떻게든 그녀에게 자신들의 조금 특별한 가족관계를 납득시키긴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루크가 올해로 11살이라는 사실만큼은 전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긴,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루크는 전혀 그런 나이로 보이지 않기는 하지.

    정신연령도 처음 봤을 때부터 꽤 높은 아이였고.

    헌데 루크도 요즘은 스스로도 그 부분이 좀 신경이 쓰이는 것 같긴 하다.

    아까 사진을 찍으면서도 ‘역시 너무 큰건가?’라고 중얼거리던 걸 보면.

    사실, 자신도 이제는 루크가 아빠라고 부르면 좀 닭살이 돋는다.

    예전에는 반응이 재밌어서 좀 놀려먹긴 했는데, 막상 걔한테서 직접 들어보면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하나?

    살짝 구체적으로 말하면, 밖에서 들으면 잡혀갈 것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뭐…, 실제로도 한 번 루크의 아카데미 축제 때 잡혀보긴 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루크가 자라온 모습을 꾸준히 봐왔다보니 지금의 루크가 ‘성인 여성이다’ 라고 느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만, 오늘은 이런 식으로 의식하게되니 굉장히 난처한 기분이 된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예르나 앞에서 어떻게 하나?

    “…아냐, 됐다. 맘에 들어.”

    “응, 역시 그렇지?”

    고민 끝에 다이튼은 그냥 조금 이상한 가족사진에 대해서는 수긍하기로 했다.

    그냥 이 가족구성원이 타인의 눈에 비치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됐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지금은 루크가 없으니 다시 찍을 수도 없다.

    물론 일정을 다시 잡으면 못 찍을 것도 없긴 하지만, 결국 어떻게 구도를 바꿔서 찍든 결과물은 비슷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집에 들어와서 잘 보이는 데다 걸어두는 건 생각을 좀 해보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침내 신부복 착용을 마친 예르나가 준비실에서 나왔다.

    -끼익–.

    예르나가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아주 예뻤다.

    가슴골을 살짝 드러내는 흰색 민소매 원피스에, 목부터 쇄골을 덮는 반투명 레이스.

    어깨를 덮어 망토처럼 뒤로 퍼져나가는 흰색 천은 마치 천사의 날개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 어때? 역시 나한테 이런 건 잘 안 어울리려나…?”

    예르나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온통 발그레해져서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어어. 아, 그게-.”

    그에 다이튼은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 감정을 대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바보인 다이튼의 머릿속에서는 그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전에는 쓰여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책을 많이 좀 읽어두는 건데.

    하지만 대답이 늦자 예르나는 약간 불안해졌는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오랜 숲지기 생활로 인해 근육이 발달해서 그런지, 웨딩드레스를 입었음에도 사람들이 여성에게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가녀린 신부의 느낌은 잘 들지 않았다.

    그런 우악스런 느낌을 가리려고 어깨를 덮는 천에, 손의 굳은 살을 덮으려고 흰색 장갑을 쓰고 있기는 했지만 역시 잘 어울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게다가, 한번 화상을 입은 뒤에 회복되었다고는 해도 이미 오래 전부터 유지되어온 잔상처들은 치유하지 못해 피부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자신감이 사라진 예르나는 이내 멋쩍은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 그냥 나 드레스 입지 말까…? 역시 여자치고는 팔뚝이 좀 그렇긴 하지…?”

    평소엔 별 신경도 안 쓰던 부분이었는데, 막상 드레스를 입으니 굉장히 눈에 띄는 결점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 다이튼이 빠르게 칭찬과 함께 해명을 늘어놓았다.

    “아, 아냐! 진짜 예뻐! 너무 예뻐서 말을 고르느라 잠깐 넋을 놓은 거야. 응, 진짜 예쁘다! 대단해!”

    “그래…? 맘에 들어? 나, 이상하진 않아?”

    “전혀 안 이상해! 그 팔뚝도 좋아! 아니, 그냥 다 예쁘고 좋으니까, 걱정 마!”

    예르나가 감추고 싶어하는 저 우악스런 부분도, 사실은 숲의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 흔적이나 다름없으니까.

    자신 또한 그것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런 모습에 반한 것이다.

    직업에 충실한 그녀는 언제나 멋진 여성이었다.

    그녀가 결국 출산휴가를 쓰게 되면 자신만이 이런 여성을 독점한다는 것이 다른 숲지기들에게 미안함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말을 쏟아내며 허둥지둥대는 다이튼의 반응에, 그제서야 예르나는 안심했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그런거면 다행이다.”

    “응!”

    그에 사진사도 맞장구치며 말했다.

    “역시 잘 어울리세요. 두 분 다 동안이셔서 사진도 잘 나올 것 같구요.”

    두 분 다 동안이라니, 다이튼은 25살에 그런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저 사람, 분명 자신의 나이를 착각하고 있는 거겠지.

    엘프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둘 딸린 남성이, 보통 20대일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더이상 해명하느라 말을 늘어놓는 것도 지쳤기 때문에, 그냥 그런 걸로 하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분명 그냥 가족사진이었는데…
    직접 그려보니 뭔가 이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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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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