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06

   용이 떨어진 후에도 공허의 추종자들은 발악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검성이란 강자 앞에서 무의미했다.

   

   적 모두를 가뿐히 제압한 유덴은 에르기누스의 마법진을 다시 쌓아가는 조이와 페이비를 보고 웃음을 흘렸다.

   

   “페이비. 이거 맞죠? 저 실수한 거 없죠?”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저에게 확인받으실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만.”

   “그. 그렇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신데 왜 마법진을 아예 붕괴시키신 건가요.”

   “그 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자비의 극치에 달한 성녀마저도 답답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조이는 허술해 보였다.

   

   허나 마법진을 그려나가는 그녀의 손길은 달랐다.

   

   아직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현역의 어지간한 마법사들을 압도하는 조이의 마력제어는 유덴이 속으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파트란의 피를 이으신 분이란 건가. 내버려 두면 알아서 해결하실 것 같네.

   

   “카리아님. 교회건 왕국이건 아무데나 좋으니 이 쓰레기들 좀 넘겨주세요.”

   “네가 직접 안 하고? 네가 세운 공이잖아.”

   “하하. 제가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오늘 하루 종일 알른 영애께 놀아났을 뿐인데.”

   

   오늘 소울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결국 알른 영애의 손바닥 위에서 굴러갔을 뿐이다.

   

   공허의 추종자들도. 자신도. 다른 이들도. 모두 다 알른 영애가 짜놓은 무대 위에서 놀아난 것인데 이걸 어찌 자신의 공이라 하겠는가.

   

   유덴은 이런 식으로 떠먹여주는 공적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런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처럼 유랑을 반복할 리 없잖은가.

   

   “영애께서도 참 신기하네요. 저를 딱히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진 않았는데 왜 제게 공을 주신 걸까요.”

   “글쎄에.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카리아가 히죽거리는 소리를 들은 유덴은 오만상을 찌푸리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엇을 바라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배우로써 노력은 했으니 약속은 꼭 지켜 달라 전해주십시오.”

   “직접 말하는 게 더 설득력 넘치지 않아?”

   “…그 분이랑 이야기하면 열이 올라서.”

   “하하하. 그거 이해해. 고용주님은 사람 열불 터지게 하는 구석이 있으니까.”

   

   카리아의 웃음소리에 미묘한 표정을 짓던 유덴은 잠들어 있던 학생들이 하나 둘 일어나는 것을 보며 검을 집어넣었다.

   

   “검성님. 가기 전에 하나만.”

   “뭐죠?”

   “시계탑에서 당신 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친구라면. 루카를 이야기하는 건가.

   

   그 녀석. 살아 있으려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꽤 강한 축이라 공허의 추종자들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텐데.

   

   “걱정 마. 안 죽었어.”

   “…제 생각 읽지 말아주세요.”

   “보이는 걸 어떡해?”

   “하아아. 어쨌건 정보는 감사합니다.”

   

   유덴은 감사를 전하자마자 한 치 망설임 없이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마법진이 있던 장소의 높이는 상당히 높았지만 검성이라 부리는 괴물에게 그 높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검성님?”

   “진짜인가?”

   “나 아직 꿈꾸고 있나?”

   “뭔 바보 같은 소리야.”

   

   소리조차 내지 않고 착지한 검성을 맞이해 준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학생들의 시선이었다. 이런. 뛰어내릴 곳을 잘못 골랐나.

   

   “검성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덴이 스스로를 자책하던 그 때에 학생 중 하나가 감사의 목소리를 전했다.

   

   “저도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검성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 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감사에 유덴의 입꼬리가 굳는다.

   

   어쨌건 나도 사람인지라 칭찬 받는 걸 싫어하진 않아.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내가 한 거라고는 무대 위에서 열심히 춤을 춘 것 뿐인데 이렇게 감사를 받는 건 찝찝하다고!

   

   근데 그렇다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전해봐야 아무도 안 믿겠지! 철없고 성격 더러운 알른 영애가 이 모든 일의 흑막이라고 해봐야 누가 믿겠어!

   

   아악. 그냥 도망치자. 그러는 편이 차라리.

   

   “검성님.”

   

   중후한 중년의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한 유덴이 슬그머니 고갤 돌린다.

   

   그 곳에는 현직 아카데미 전투학과장이며 과거 유덴이 혈기가 넘칠 적에 신세를 진 적이 있는 이였다.

   

   “아카데미를 대신하여 당신께 감사를 전합니다. 검성님이 아니었더라면 무수히 많은 희생이 생겼겠지요.”

   “아니. 저. 딱히 제가 한 일은.”

   “겸손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당신께서 용을 떨어트리는 것을 모두가 보았는데 누가 당신의 공을 부정할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검성님.”

   

   그녀가 어렵게 여기는 몇 안 되는 사람 앞에서 곤란해하던 유덴은 옆에서 이어진 노년의 목소리에 다급히 고갤 돌렸다.

   

   “소울 아카데미의 학장으로써 당신께 감사를 표합니다. 지금은 이 늙은이의 말뿐인 감사지만 추후 상황이 정리되면 따로 성의를 표시하겠습니다.”

   “아니. 아니. 정말 그러지 않으셔도 괞찮은데요!? 이번 건 정말 제가 한 게.”

   “검성님. 그거 아시나요? 너무 과한 겸손도 독이 된답니다?”

   

   약간 멀리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유덴의 몸이 순간 굳는다. 그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다른 이들이 다급히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려온다.

   

   목각인형마냥 딱딱한 움직임으로 고갤 돌린 유덴의 맞은편에 선 것은 현 왕국에서 가장 드높은 이름 중 하나였다.

   

   “…1왕비님?”

   

   카바티 솔라딘. 현 왕국의 1왕비.

   

   병환 탓에 뒤로 물러선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관리하는 사실상 왕국 최고의 권력자.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검성님. 솔라딘 왕국의 미래를 지켜주신 당신께 제가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

   

   1왕비의 감사를 들은 유덴은 깔끔하게 도망치는 것을 포기했다.

   

   예의니 품격이니 뭐니 하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는 유덴조차도 한 나라를 이끄는 사람의 앞에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 그. 그으으.”

   

   불편함에 숨이 막힐 것 같다고 생각하던 유덴을 구원해준 것은 일국의 지배자 앞에서도 당당히 나설 수 있는 한 종교의 지도자였다.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1왕비님. 허나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는지라.”

   “무슨 일이죠. 예술 교단의 사도시여?”

   

   프레테는 차디 찬 왕비의 눈빛 앞에서도 여느 때처럼 웃음을 지어보였다.

   

   “방금 전 검성님께서 전투를 벌인 적은 악신의 추종자입니다. 그녀에게 무슨 영향이 끼쳤을지 모르지요.”

   “그것도 그렇네요.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아뇨. 의례적인 절차같은 거니까요. 오히려 제가 더 죄송스럽지요.”

   

   특유의 언변으로 유덴을 빼낸 프레테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뒤로 한 채 미리 지정되어 있던 장소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사도님. 역시 눈치하나는 끝내주시네요.”

   “저에게 감사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배려라기보단 다른 분의 뜻을 들어준 것 뿐이라.”

   “…네?”

   

   프레테가 유덴을 데리고서 온 장소는 아카데미 한 켠에 자리한 시계탑이었다.

   

   숨겨져 있는 통로를 당연하다는 듯 연 프레테는 먼지 낀 계단을 성큼성큼 타고 올라갔다.

   

   그의 뒤를 따르던 유덴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프레테가 한 말의 뜻을 이해했다.

   

   시계탑의 위에는 이 모든 일을 계획한 루시가 있었고.

   

   그녀가 친구이자 은인이라 생각하던 루카가 있었다.

   

   친구의 끔찍한 몰골에 놀라 다급히 뛰어간 유덴은 손을 내밀다가 자신의 친구에게서 느껴지는 불온한 기운에 멈칫했다.

   

   “…루카?”

   

   루카에게서는 악신의 기운이 풍겨나왔다.

   

   *

   

   루카는 태어나고서부터 자신이 별이 될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천재라는 명칭을 달고 살았으니까.

   

   별 볼 일 없는 평민 가문의 아이로 태어났을 때에도.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해 어느 유명한 모험가의 아래에서 배움을 얻게 됐을 때에도.

   

   어린 나이에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고위의 모험가가 되었을 적에도.

   

   심지어 왕국의 모든 재능들이 모여든다는 아카데미에 발을 들였을 때에도 루카는 천재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어찌 평민의 피에서 저런 재능이 나올 수 있느냐고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루카는 마냥 자아도취를 하진 않았다.

   

   자신이 나아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리고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자신이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리라 믿었기에.

   

   그는 주변의 여러 둔재들을 내버려 둔 채 미친 듯이 앞으로 내달렸다.

   

   자신의 세력에 올 생각 없느냐는 귀족들의 제안을 떨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루카가 생각하기에 귀족들의 제안은 안주로 여겨졌으니까.

   

   자신이란 별이 더 밝게 빛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루카는 자신을 연마하기 위해 다시금 고난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서 만나게 됐다.

   

   스스로를 천재라 여기던 루카를 초라하게 만드는 재능을.

   

   이미 하늘 위에서 밝게 빛나고 있거늘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더 드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빛을.

   

   루카에게 따라잡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압도적인 재능을.

   

   유덴이라는 사람을 만나고서부터 루카는 매일 매일 마음속에 어둠을 키웠다.

   

   그러면서도 루카가 유덴의 곁을 떠나지 못했던 것은 일말의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수많은 이들이 천재라 부르던 자신의 재능이 거짓이 아닐 것이라 여기며.

   

   눈앞의 별만 떨어트리면 자신이 가장 밝은 별이 될 수 있으리라 여기며.

   

   루카는 진창 속에서 별을 끌어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고마워! 루카! 네 덕분에 또 깨달음을 얻었어! 네가 친구라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던 루카가 체념을 마음 속에 품은 것은 그가 선사하는 모든 계책이 시련이 되어 별이 더 밝아지는 걸 보게 되었을 때였다.

   

   자신을 망가트리기 위함이라는 것도 모른 채 웃으며 감사를 표하는 유덴의 모습에 루카는 별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이 그녀처럼 밝게 빛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 대신 루카는 다른 보석을 깎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른 별을 만들어 내서.

   

   유덴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별을 만들어 내서.

   

   그녀의 앞에 그 별을 내밀어서.

   

   너무나도 밝은 빛에 유덴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유덴에게도 느끼게 하기 위해.

   

   허나 그가 계획했던 모든 것은 단 한 사람에 의해 실패하고 말았다.

   

   유덴보다도 더 밝은 별을 만들기 위해 했던 행동은 유덴이라는 별의 명성을 더 드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으니까.

   

   소울 아카데미를 점거한 악신의 추종자들을 단신으로 물리친 영웅인가.

   

   하하.

   

   젠장.

   

   예전부터 나는 저 년에게 도움이 되는 일만 하는 군.

   

   “…루카?”

   

   당혹 어린 목소리를 들은 루카는 입술을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곱씹었다.

   

   저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을까.

   

   한심함? 딱함? 기막힘?

   

   하. 그래. 어떤 것이건 좋다.

   

   이 멍청한 년이 아무것도 모른 채 웃어대는 것보다야 그 쪽이.

   

   “괜찮아?”

   

   애써 고개를 든 루카가 마주한 시선은 그의 예상과는 저만치 떨어진 것이었다.

   

   유덴은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씨발.”

   

   수많은 시련을 거치고서도 그를 친구라 여기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