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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6

    <506 – 오늘부터 운명공동체>

     

    “도, 도망쳐야 해…”

     

    혁명군의 잔당들은 경계술사가 목숨을 걸고 펼친 차원문을 통해 급히 달아났다.

    릴리아는 부상에 괴로워하는 디스트로이어를 보고 머뭇거렸으나 잔당들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가뜩이나 구심점도 잃고 혁명군 강자들도 대거 잃은 마당에 릴리아처럼 장래가 유망한 고수를 버리고 갈 수는 없었나보다.

     

    “디스트로이어…”

    “정신 차려! 너도 이젠 혁명군이야. 여기가 아니면 배신자인 네가 살아남을 곳은 없다고!”

     

    설득에 당한 릴리아가 굳은 얼굴로 그들의 뒤를 따라 달아났다.

    놓치기엔 아까운 경험치들이었지만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조아 해병>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이어 디스트로이어 교수님까지 피를 토하고 쓰러지니 미처 달아나는 이들을 막을 새가 없었다.

     

    “교수님!”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심장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마나연공법을 돌렸다.

    가뜩이나 암흑마나가 많으신 분이 마나억제를 뒷전으로 하고 큰 힘을 발휘한 대가였다.

     

    “몸도 편찮으신 분이 무리하면 어떡해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교수님의 등에 손을 얹고 연공법을 도와주니 명호스님이 기겁했다.

     

    “타인의 마나연공법에 함부로 간섭했다간 둘 다 크게 다치는 것을 모릅니까? 어서 빨리 손을 떼어야… 으음? 으으음…?? 왜 멀쩡하지???”

     

    수상하리만치 완벽하게 운공을 보조하는 나!

    당연히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마나연공법을 알고 있기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겸사겸사 교수님의 암흑마나도 조금이지만 슬쩍 훔쳐 갔으니 두 배로 이득!

     

    “쿨럭!”

     

    기혈이 진정되었는지 교수님이 새카맣게 죽은 피를 토해내었다.

     

    “히야앗!! 허접교수 죽어버리는 거야…?”

     

    매스각키 황녀가 주춤주춤 기둥 뒤에서 소심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오크노디… 너, 방금 그 남자는…”

    “앗, 그건요…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해야 하나…”

    “네 스승이겠지…”

     

    엣?

     

    “악몽에서 보았던 사내… 망령계 고위몬스터를 일격에 소멸시키던 저력… 힘을 감추지 않는 내 전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강자… 그만한 인물이 달리 더 있을 리가 없지…”

    “…골든 정답!”

    “사정은 나중에 묻겠다. 우선은 전송진을 써서 아카데미로 돌아가라…”

     

    교수님이 쿨럭쿨럭 피를 토하며 말했다.

    매스각키 황녀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허접교수 골로 가는 거야…?”

    “예의가 바른 건지 싹퉁머리가 없는 건지 모르겠군… 쿨럭. 명호, 네가 데리고 가라.”

    “홀로 괜찮겠습니까?”

    “내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몸으로는 전송진에 들어갔다간 그대로 비명횡사할 거다…”

     

    모기독도 위험해서 전송진 이용을 금하는 마당에 암흑마나 폭주를 겨우 가라앉힌 교수님의 몸 상태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도 슬슬 느긋하게 이번 사태로 쌓인 경험치를 보며 리플레이 딸을 치듯이 자아도취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참 공교로운 사태가 벌어졌다.

     

    저벅. 저벅.

     

    지하수로 전체가 울릴 정도로 일사불란한 발걸음.

    제식이라 불러 마땅할 일사분란한 걸음걸이가 대군의 움직임을 따라 퍼졌다.

     

    쾅!

     

    선두에서 문을 박차고 나타난 이는 230cm는 아니라도 족히 210cm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사내.

     

    “어중칠검의 출두다. 황녀전하의 신분을 억류한 반역도당들은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

     

    제복차림의 정예병들이 일제히 멈춰서더니 창대 끝으로 바닥을 쿵쿵 내리쳤다.

     

    척!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창날을 비스듬히 내린 자세는 언제든지 명령만 떨어지거든 돌진할 수 있다는 준비된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뜩이나 큰 교전으로 심력이 소진된 마당에 명호스님은 저 살벌한 기세의 군대와 지휘관을 아이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여겼는지 직접 앞으로 나섰다.

     

    “소승은 기프트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맡고 있는 명호라고 하옵니다. 황녀전하의 신변은 교수인 제가 보호하고 있으니 심려치 마십시오.”

    “불허. 제국황녀의 신변을 한 달이나 임의로 억류시킨 채로 잠적한 이들에게 자비란 없다.”

     

    깜짝 놀란 매스각키 황녀가 놀라서 뛰쳐나왔다.

     

    “허접칠검 주제에 교수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교수님을 욕할 수 있는 건 학생밖에 없다는 상식 몰라? 무례해♡ 예절 다시 배워♡ 키도 쓸데없이 너무 커♡ 목 아프니까 30cm 줄여서 돌아와.”

    “매스각키 1년생…”

     

    늘상 허접교수 타령을 해대며 구박하던 매스각키 황녀의 달라진 모습에 명호스님은 적잖이 감동한 기색이었다.

    역시 사람은 평소에 착하게 굴다가 한 번 나쁜 짓을 하면 엄하게 바라보지만, 평소에 나쁘게 굴다가 한 번 착한 짓을 하면 너그러이 봐주나 보다.

    나도 앞으로는 매스각키를 본받아서 교수님들을 허접교수라고 부르고 다녀야겠다!

     

    “황녀전하!”

    “힉!”

    “황제폐하의 피를 물려받은 전하께선 자신의 신체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시나 봅니다. 저희가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보았는지 아십니까?”

    “몰?루겠는데…?”

    “정확히 팔백이십일 명의 피를 보았습니다.”

    “…!”

    “황녀전하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카넬레 시의 외교공관에서 책임자인 8인의 심의관 중 기강이 해이한 육인의 수급을 베었고, 혁명군과 결탁한 최고심의관의 수급도 베었습니다. 그들을 따르는 사병들과 매수된 관료들을 베었고, 도주를 돕던 브로커와 지하세력을 몰살했습니다.”

    “그게 내 탓이야…? 허접외교관들이 비리를 저지른 잘못 아닌가~?”

    “황녀전하의 잘못입니다.”

     

    거구의 어중칠검은 단호하게 못 박았다.

     

    “황녀전하가 질 나쁜 벗과 사귀어 제국외교관들조차 딴 주머니를 찰 정도로 질 나쁜 도시에 발을 들인 것부터 아카데미에 무단결근을 한 일까지, 황제폐하의 은덕으로 기프트 아카데미에 입학한 제국황녀가 보여야 할 몸가짐이 아니었습니다.”

    “그, 그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내게도 사정은 있었다고 해야 하나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꾸짖을 갈!!!”

    “히얏!!”

     

    깜짝 놀란 황녀가 허접히얏비명을 지르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황녀전하의 옥체에 티끌만큼이라도 상처가 생겼다면 어중칠검의 이름으로 저희는 카넬레 시 전체에 혈채를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경솔한 행동으로 수많은 이들의 피를 보게 만들고 더 많은 이들의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었음에도 어찌 변명이 그리도 깁니까.”

    “으우… 자, 잘못했어…”

    “아니면 황녀전하께서는 카넬레 시가 혁명군이 날뛸 정도로 글러먹은 도시였기에 어중칠검의 힘을 빌려서 남부 신성도시국가연맹에 두 번 다시 거론되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도록 꾀하셨던 겁니까?”

    “하아?! 그런 흉측한 짓을 내가 왜 원하리라 생각하는 거야? 허접추종자들도 애지중지 성장시켜서 재활용해가며 쓰기 바쁜데 내 것도 아닌 허접도시국가의 시민들한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리가 없잖아!”

    “그럼 더더욱 조심하셔야 했습니다. 황녀전하가 저지른 짓으로 인해 저희는 이곳에서 황녀전하가 겪은 일의 진상조사를 위해서라도 참고인을 연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국교수인 이들을 말입니다.”

     

    병사들이 어디서 많이 본 수갑을 꺼내들었다.

    마나사용을 억제하는 제어수갑의 등장에 매스각키 황녀가 빽 소리쳤다.

     

    “교수님들은 아무 잘못도 없어! 오크노디와 날 지키려고 힘든 싸움에 나서셨는걸!”

    “맞아요! 우리 교수님들은 방금 전까지 열심히 싸우고 지치셨는데 밖에서 꿀 빨다가 막타나 치러 온 막타충들이 어디서 큰 소리를 쳐요!”

     

    매스각키 황녀를 도와서 한 소리 했더니 명호스님도 매스각키도 심지어는 디스트로이어 교수님마저도 니가 할 소리냐는 따가운 시선을 던졌다.

    왜지…?

    왜 나한테만 이런 가혹한 시선이 주어지는 것이지…?

    정말 영문을 몰?루겠다…

     

    “걱정 말거라, 재단의 아이여. 교수들과 함께 너 역시 연행을 피할 수 없을 터이니. 너는 너 자신을 걱정하는 편이 보다 건실한 고민이 될 거다.”

    “아하.”

     

    어차피 다 같이 끌려가는 거구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비겁한 막타충은 제국에만 있던 것이 아니었나 보다.

    입구에서 나타난 반가운 사람이 나를 비호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습니다. 아가씨의 신변을 재단이 쉽사리 제국에 넘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리프!”

    “디스트로이어. 당신도 그리 침묵하고 쉽게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비행도적과 길드의 남은 정예들이 어떻게든 당신의 퇴로를 확보하겠습니다.”

    “슈 츄러스…”

     

    지하수로가 불타고 혁명군의 강자들이 몰려드는 대소동의 와중에도 어떻게든 목숨을 건사한 이들이 얼굴을 내비쳤다.

     

    “아가씨. 돌아가는 길은 모시겠습니다. 걱정 말고 함께 전송진으로 가시지요.”

    “누가 보내준다고 말이나 했나?”

     

    거구의 어중칠검이 사납게 윽박질렀으나 그와 동행한 푸른제복 차림의 어중칠검이 간섭하였다.

     

    “거기까지다. 보내줘라.”

    “황녀전하의 신병을 억류한 이들이다.”

    “그리고 재단의 후계자와 도적길드가 비호하는 전대영웅, 아카데미 교수이기도 하지.”

    “지칠 대로 지친 녀석들이다.”

    “그러니 더욱 기특하게 여겨야지. 황제폐하께서 혁명가 토벌의 소식을 듣는다면 저들을 놓아준 것쯤은 가볍게 넘어가실 거야.”

    “왜 저들을 놓아주려는 거지?”

    “상처 입은 맹수는 가장 사납기 마련이니까.”

     

    푸른제복의 사내는 명백히 디스트로이어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크게 다치었으나, 역으로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선을 넘기로 각오한다면 두 사람을 단숨에 줄초상 치르게 만들 수 있다.

     

    “…내키진 않지만 네 판단이 잘못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 알겠다. 놓아주지.”

     

    휴.

    안도하는 황녀에게 거구의 어중칠검은 단호하게 손을 뻗었다.

     

    “물론 황녀전하는 예외입니다.”

     

    흡착의 묘리를 발휘하여 원거리에서 단숨에 황녀를 손아귀에 잡아들인 사내.

     

    “이 손 당장 놓아! 황녀에게 무슨 무례를 범하는 거야? 변태♡ 호색한♡ 황족모욕죄로 곤장 열 대를 때려 마땅할 괘씸한 놈♡”

    “황제폐하의 명이 있었습니다.”

    “히끅?”

    “매스각키 황녀를 궁으로 불러들여라.”

    “그, 그리고…?”

    “아카데미 놀이도 암흑마나 놀이도 더는 멋대로 즐기게 허락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황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커다래진 눈에 차오르는 감정은 틀림없는 공포였다.

     

    “황녀 된 신분으로 운신을 바로하지 아니하고 황족으로서의 모범을 보이지 못한 자, 멋대로 행동한 죄로 궁에 칩거하라는 명입니다.”

    “부족한 학점은 포인트로 사면 되는데… 나 용돈 많은데…? 그걸로 어떻게 봐주면 안 될까??”

     

    허접황녀의 간청에도 거구의 어중칠검은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황제폐하께 직접 읍소하십시오.”

     

    축 처진 어깨로 죄인처럼 끌려가는 매스각키 황녀.

    리프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속삭였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친구분의 일은 안 됐지만 황실의 일입니다. 더는 개의치 말고 돌아가죠.”

    “재단에서 온 메이드의 말을 들으십시오. 길드의 VIP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더는 당신을 지켜드릴 수 없으니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들의 말을 들으십시오. 소승의 생각도 같습니다. 어디에 혁명군의 잔당이 숨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리프도 슈 츄러스도 명호스님도 모두 한 목소리로 매스각키 황녀를 외면하라 말했다.

     

    “음… 그렇게는 안 되겠어!”

    “아가씨?”

    “하. 말 안 듣는 건 그 스승에 그 제자네.”

    “오크노디 1년생!”

     

    암만 뭐라고 해도 소용없다.

     

    “혁명가 이벤트가 끝났으면 황녀루트를 타야죠. 제가 매스각키를 버리고 가면 어떡해요?”

    “아가씨…?”

    “닮은 거 맞나…?”

    “오크노디 1년생…?”

     

    모두의 의구심 어린 시선 앞에서도 나는 당당하게 주장했다.

     

    “매스각키가 아카데미에 돌아가지 않으면 저도 돌아가지 않아요. 지금부터 우린 운명공동체야!”

    “오크노디이…!”

     

    허접황녀가 감동하였다는 얼굴로 달려와 품에 안겨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략분기, 플랜B를 놓치지 않는 오크노디

    오늘은 다음편이 있을 예정이었으나 층간소음을 피해 대피하는 관계로 연참이 사라졌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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