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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6

    “아, 괜찮네. 아이들은 내가 잘 맡아두고 있을 터이니, 이쪽은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사진 잘 찍고 돌아오게나. 그래. 이러면 약속한 치즈돈가스는 나중으로 미뤄야겠구나.”

    아이들 때문에 먼저 돌아가게해서 미안하게 됐다는 다이튼의 전화를 끝낸 루크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의 의미는 물론 촬영 이후에 있을 저녁약속이 취소된 탓이 아닌, 사진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쌓인 피로감 탓이었다.

    웨딩 사진을 찍어야해서 자동차를 운용할 수 있는 인원 둘이 빠져버리니 돌아올 때에는 버스를 이용했는데, 아이 둘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아무래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때마침 좌석도 부족해서 서서 가야했는데,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을 조용히 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커브길에서 두 아이를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기도 해야하는 일은 제아무리 그런 일에 익숙해진 루크라고 해도 상당히 정신력을 소모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자신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다가 자리를 양보해준 시민의 도움을 받아서 그나마 괜찮기는 했지만, 역시 직접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확실히, 자가용을 이용할 수 없으니 교통편이 불편하긴 하군.’

    자동차를 운전하는 법 정도는 배우고자 하면 금방 배울 수 있겠지만, 아직 행정상으로 나이가 아직 11살밖에 되지 않은 루크는 법적으로 면허증을 딸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야만 했으니까.

    ‘레니에를 이용하면 면허증 위조 정도야 불가능하진 않겠다만…….’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고 시간만 있다면 국가의 중요시설까지 강제로 접속할 수 있는 레니에라면 가상의 신분을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지.

    마침 오늘 증명사진도 찍어두었으니, 이것을 토대로 ‘성인인 루크 이루시’의 신분을 새로 만들어낸다면, 굳이 운전면허를 제외하더라도 ‘어린 나이’가 지닌 이런저런 제약을 손쉽게 회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애초에, 그러려고 증명사진을 찍은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비록 ‘완전히 성장한 모습’은 아니어도, 오늘 사진사에게 오해를 받은 일을 보면 성인으로 속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으니…….

    ‘가만, 그러고보니 오늘 자리를 양보받은 것도 설마…?’

    사진관의 홍보 모델 건으로 살짝 성숙해보이는 메이크업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아이 엄마라고 착각당해서 자리를 비켜준 건 아니었겠지?

    에이, 설마.

    자신이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아이들의 언니 정도로 봤겠지.

    그렇게 생각한  루크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건 순간, 마력이 방 안의 온도를 적정기온으로 데우고, 방의 불이 켜지며, 환기를 마친 창문이 닫히고 커튼이 쳐지고, 찻잎이 들어간 포트에 물이 받아졌다. 

    그 후, 저절로 켜진 화면에서 레니에의 발랄한 목소리가 재생된다.

    -사진관은 잘 다녀오셨나요?

    이 모든것은 레니에의 마중 프로토콜.

    루크는 그 일사불란한 동작을 확인하며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 보다는 일에 집중할 때다.

    “그래, 현재 전체적인 진행상황은?”

    -지금까지는 순조롭네요. 인형들도 다들 목적지에 잘 도착한 것 같구요. 잠깐만 있으면 각자 현장에서 마력을 회복한 인형들의 현황을 알 수 있을거에요. 이미 실시간 연결이 복구된 개체도 조금씩 나오고 있구요.

    “그런가? 빠르군.”

    물질 텔레포트를 이용해 가능한 빨리 배송하는 특급배송택배.

    처음엔 생각보다 비싼 택배비에 경악하기는 했지만, 그 비싼 택배비가 아주 헛된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괜찮겠어요? 일단 계획은 진행되곤 있지만, 이제는 사용 가능한 자금이 없는데요.

    그 금액이 예상보다 아주 ‘조금’ 더 비싸기는 했지만서도.

    루크는 때마침 물을 받아둔 마력포트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리자 물을 찻잔에 내리며 말했다.

    “녀석들의 계획만 알아낼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큰 지출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이후부터는 내가 직접 움직일 테니.”

    사실 루크는 이미 예전부터 여러가지 필요한 아이템들을 구매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던지라, 벌어들인 것에 비해 모아둔 돈이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에 연구할 것이 늘어난 최근에는 더 지출이 심해지기도 했고.

    물론 성체 칸타시스의 몸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팔 수 있다면 자금 따윈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마는, 그것을 유통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했다.

    단순히 장물로 넘기기엔 너무나 특이한 물품이라서 출처를 역추적당할 위험도 크고, 당장 루크에게 쓸모도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역시 마법사라는 족속은 결국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보다.

    그나저나, 자신의 찻잎이 풍기는 향기는 역시 사진관에서 대접받은 싸구려 티백과는 차원이 달랐다.

    다이튼은 대체 이 향의 어디에서 그 질낮은 차와의 공통점을 찾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나불댔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자존심은 상해도 그렇게까지 화가 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 그런 남자니까.

    침묵을 잘 못 견뎌하는 성격 때문에 말실수를 자주 했지.

    전에 예르나와 함께 있을 때도 자주 그랬고.

    “그보다, 칸타시스쪽은 어떻지? 사이먼은 도움이 될 것 같나?”

    -아아, 그것 말이죠. 연결해드릴게요.

    레니에의 조작에 잠시 후, 화면에서 레니에의 형상이 사라지고 아린세이아에 있는 사이먼의 모습이 나타났다.

    -음? 갑자기 뭐지, 이 화면은?

    사이먼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웠을 현상에 당황한 사이먼을 향해 루크는 일단 안부인사를 건넸다.

    “사이먼, 거기는 어떤가. 잘 지내나?”

    루크의 인사에 사이먼도 이제는 상황을 파악했는지 당황을 얼굴에서 지워내며 중얼댔다.

    -아, 이 영상은 실시간인가? 과연, 그쪽에서 연락해온 거로군.

    “맞네. 그대가 연구할 물건은 잘 확인했나?”

    -확인했네. 허허, 이걸 보니 어째서 그가 나를 그토록 손쉽게 내칠 수 있었는지 알겠어.

    레니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장소, 옥좌에 모셔진 드래곤의 알을 본 사이먼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완성’의 증거였기에.

    궁금하던 것의 답을 얻은 질문자는 더이상 지식을 알려줄 이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한때 루체스트의 수석 연구원이던 자신을 그토록 무가치하게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내가 연구하던 당시 도플갱어기술은 사실 미완성이었다. 

    “미완성이었다?”

    -처음부터 불완전한 기술이었지. 이론적으론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결여되어 있었어.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없으면 완성시킬 수 없었지. 그런데……, 그는 이렇게 성공했군.

    멸종한 드래곤을 이 정도의 완성도로 재현해낸 기술이 미완성일 수는 없었다.

    분명, 그가 어떤 ‘무언가’를 찾아냈다는 이야기겠지.

    사이먼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자신이 바라던 ‘드라우프니르’를 완성시킨 모양이야.

    그의 이야기를 듣던 루크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드라우프니르……?”

    ‘드라우프니르’. 

    이는 과거 그에게 약물을 사용했을 때에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번에 그의 입으로 처음으로 들어보는 키워드였다.

    “그는 이 기술의 완성본을 그렇게 부르는 것인가?”

    -그래. 일단은 생각나는 걸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는 ‘복제를 이용한 무한의 편린’……. 그는 그렇게 말하더군.

    “무한의 편린이라고?”

    예상외의 대답에 루크는 심각한 표정으로 루크는 턱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흐음, 과연…….”

    루크는 ‘무한’이라는 단어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한때 무한을 연구하던 마법사였으므로.

    하지만 무한이란 개념은 필멸적인 물질계에 존재할 수 없는 것.

    그러나 필멸의 세계에서도 그 편린만큼은 붙잡을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무한의 편린’.

    예컨대, 이는 즉 불사를 말하는 것이리라.

    “복제를 통한 불사성이라….”

    사실, ‘완벽한 복제’를 이용한 불사 또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결국 ‘복제’를 통한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아 다른 방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그 또한 분명 방법중에 하나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러고보니, 루체스트에서 얻어낸 많은 자료들이 ‘생물의 복제’와 연관이 되어있었다.

    과거 세이어가 자신의 몸을 ‘샘플’이라 칭했던 것도 그렇고, 그의 그러한 의도만큼은 항상 투명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그는 역시 복제를 통한 불사를 노리는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목적이 있나?

    루크는 한동안 턱을 문지르다 입을 열었다.

    처음엔 단순히 호기심과 쓸모로 인해 회수한 ‘칸타시스’였지만,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리면 의외로 큰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이먼. 너는 드라우프니르라는 그것의 역설계는 가능한가? 그동안 도플갱어를 많이 연구한 자이니,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터.”

    루크의 질문에 사이먼은 긍정적으로 답했다.

    -아마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네. 없는 걸 연구하는 거라면 몰라도, 이미 존재하는 거라면 가능하겠지.

    칸타시스를 니드호그로 완성시킨 그 ‘무언가’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당연히 드라우프니르에 대한 역설계도 가능할지 모른다.

    -물론 알이 제대로 부화한다면 말이야. 아무래도, 알인 채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

    “그런가. 그렇다면 일단은 부화를 서두르세나.”

    따스하고 안락한 아린세이아의 환경은 이미 하나의 거대한 부화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알이 부화하기엔 최적의 환경이나 마찬가지.

    드래곤의 알이라고 그 부화조건이 크게 다른 건 아니다.

    하지만 사이먼은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뭐……. 일단은 가능한 빨리 해보겠지만, 시간은 괜찮은 건가? 

    “괜찮네. 시간은 우리의 편이니.”

    역천의 모래시계.

    그것에 시간가속까지 더해지면, 그 어떤 부화시설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속도로 알을 부화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툭.

    사이먼과의 연결을 끊은 루크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일단,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바로 그 모래시계를 고쳐야겠군.”

    역시, 그와 자신은 어쩌면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자신과 ‘이미’ 깊은 연관성을 가진 자일지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조금 더 자주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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