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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6

        

         

       번쩍번쩍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새.

       일반적인 동물이라면 꺼려져서 접근조차 하지 않을 부적을 먹어 치우기까지 한 새.

         

       범인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게이밍 오목눈이.

         

       아나스타시아가 꿈에서 가져와서 엘라에게 선물로 준, 바로 그 새.

         

       “황당하기는 하더구나. 부적을 동물이 먹다니….”

         

       이양훈은 그때를 떠올리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심정이 절실히 묻어나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동물이 먹은 건데….”

         

       이양훈은 그때 느꼈던 황당함과 더불어, 자신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귀한 부적을 먹은 것이야 약간 화가 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말도 못 하는 동물이라서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말이다.

       게다가 토하게 할까 하는 고민도 살짝 하기는 했지만, 게이밍 오목눈이의 특수성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새가 그냥 새가 아니라서 정상적인 소화기관이 있는 게 아니라…그래. 소환사가 소환하는 소환수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더군. 음식을 먹으면 정상적으로 소화 과정을 거치고 영양분은 흡수하고 찌꺼기는 배설물로 내보내는 것과는 다르게, 그 새는 일단 입에 넣으면 그걸 그대로 흡수해버린다고 하더군. 그냥 말이야.”

         

       게이밍 오목눈이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오목눈이 치고는 과도하게 큰 몸과 번쩍번쩍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것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인 동물과도 흡사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

       그 속은 생물이라고 부르기 힘들었다.

         

       음식?

       먹는다.

       하지만 그 먹는 ‘음식’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벌레, 과일, 과자, 술, 돌멩이, 가구, 금속 조각까지.

         

       자신이 슬라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냥 닥치는 대로 먹는다.

       그리고 그렇게 먹은 음식은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슬라임이 용해액으로 삼킨 것을 녹여버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그냥 분해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분해된 것은 이 게이밍 오목눈이가 존재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양소로 변한다.

         

       아니….

       영양소라기보다는, 에너지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게이밍 오목눈이가 생명체는 아니었으니까.

         

       꿈에서 가져온 기묘한 것.

         

       게이밍 오목눈이는 아나스타시아의 위치크래프트로 인해 현세에 영향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현세의 것은 아니다.

       아나스타시아가 생명력을 사용해서 존재하게는 했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다고 볼 수도 없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꿈을 근원으로 하기에 언제든 허깨비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다.

       아나스타시아가 생명력을 회수한다면 그림자처럼 언제든지 흩어질 수 있다.

         

       아나스타시아의 위치크래프트로 움직이는 꿈의 존재.

       생명력이라는 이름의 닻으로 현세에 고정된 허상.

         

       그것이 바로 게이밍 오목눈이였다.

         

       어쩌면 그것은 악몽의 성질과도 닮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끔찍한 악몽은 너무나 또렷하고 현실과 똑 닮아서.

       그래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게 만들고, 끔찍한 공포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터져버릴 것처럼 심장을 뛰게 만들고, 정신을 박살 내는 것처럼 사람을 몰아붙인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게 만들고, 입가에서는 저절로 고통의 신음이 흘러나오게 만든다. 가위눌린 듯 제대로 움직이지 않은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간신히 움직인 팔은 허공을 휘저으며 오지 않는 도움을 갈구하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통스럽고 끔찍하고 역겨운 것임에도, 악몽은 사라진다.

       눈을 뜨는 순간 생생했던 악몽은 그냥 ‘재수 없는 것’으로 격하되어버리고, 악몽 속에서 겪었던 절실한 고통은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는 하찮은 시련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 그 기억은 순식간에 휘발되어 사라지고, 아주 작은 조각만이 남는다.

         

       그렇게, 악몽은 사라져버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너무나 깨끗하게.

         

       그리고 이러한 악몽과 아나스타시아가 위치크래프트로 만들어낸 것은 너무나 닮아있었다.

       생명력으로 형상을 만들기는 하였으되 닻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져버릴 허무한 꿈과 같았고, 잠시 현혹할 수 있을지언정 세상에 영원히 머물며 영향은 미칠 수 없는 조형물과 같았다.

         

       ‘그래. 그렇기에 담비는 사역마(Familiar spirit)를 가지지 못했지….’

         

       마녀에게 사역마라는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사역마는 반려동물이며, 부하이며, 가족이며, 하인이며, 신체 일부이며, 인생의 동반자였다. 거기에 더해 어중간한 경호원보다 훨씬 믿음직한 경호원이었고, 때로는 자신의 구명줄이기도 했으며, 자신의 목숨을 구원해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회귀 전 아나스타시아는 사역마를 가지지 못했다.

       집단 무의식을 탐험하다가 정신과 육체, 영혼마저 녹아내리는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까지 말이다.

         

       기괴한 탄생.

       뒤틀린 정신.

       그녀의 놀이터이자 족쇄이며, 나중에는 그녀를 삼켜버린 집단 무의식의 존재까지.

         

       그 모든 것이 아나스타시아가 사역마를 가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니.

       어쩌면 저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저런 복잡한 이유가 아니라, 정말로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다.

       특별한 위치크래프트를 다룰 수 있었기에 사역마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일지도….

         

       『 진-성! 진성은 궁금하지 않나요? 제 크립티드(Cryptid)의 비밀이?! 』

         

       『 어쩌면 이 크립티드에는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요! 집단 무의식과 꿈, 인간의 정신세계…. 거기에 생명력까지! 이 비밀은 정말 대-단한 게 아닐까요! 』

         

       『 얼마 전에 사이버 저승을 연구하던 놈들을 죽였었잖아요? 어쩌면 제 꿈도 그거랑 비슷한 느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데이터—라고 하면 너무 이과 같네요! 체크무늬를 입어야 할 것 같아요~! 데이터는 취소! 정신이라고 할게요! 』

         

       『 자아, 진-성! 잘 들어보세요! 사람의 정신을 집단 무의식에 박아놓고 그걸 본체로 삼을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생명력만 주입하기만 한다면 저는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는 거죠! 』

         

       『 생각만 해도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저는 코인이 무한인데 다른 사람들은 코인이 0개! 생명력 공장만 있다면 저는 영원히 살 수 있는 거예요! 』

         

       『 물론 혼자만 살면 너무 쓸쓸하니까, 진-성도 영원히 부활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드릴 수 있답니다! 아니, 그냥 만들어드릴게요.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진-성이니까 제가 그 정도는 특별히 서비스해드릴 수 있어요! 』

         

       『 후후. 한 번 부활해보시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릴지도~? 』

         

       진성은 과거의 담비를 떠올렸다.

       용병으로 같이 다닐 때 그녀는 호기심이 많았다.

         

       대전차 지뢰를 점프해서 밟으면 진짜 폭발하는지 실험한답시고 대전차 지뢰를 폭발시키기도 했고, 백린이 사람 몸에 붙으면 진짜로 물에서도 꺼지지 않는 게 맞냐면서 약탈자를 백린으로 태운 뒤 물에 집어 던지기도 했고, 우츠 다마스쿠스(Wootz damascus) 강철을 사용해서 총알을 만들면 뭐든 꿰뚫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귀한 다마스쿠스 검을 녹여서 총알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죽창이 정말 한방에 사람을 보낼 수 있는지 실험해보겠다고 죽창을 발사할 수 있도록 RPG-7을 개조한 뒤 그걸로 싸우기도 했고, 폭죽으로 우주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크립티드의 몸에 폭죽을 다발로 묶은 뒤 하늘로 쏘아 보내기도 했다.

         

       그녀는 정말 수많은 기행을 벌였다.

       넘쳐흐르는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게다가 이 기행 중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눈살을 찌푸릴만한 것들도 상당했는데, 이는 아마 유혈이 낭자하고 온갖 더러운 꼴을 다 볼 수 있는 용병 생활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호기심이 넘치고 기행을 일삼는다고 해서 그것이 꼭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넘치는 호기심 덕분에 다른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거기에 자신의 특별한 위치크래프트와 그녀의 성격은 궁합이 잘 맞았고, 덕분에 그녀는 날이 갈수록 엄청나게 강해졌다. 게다가 호기심 덕분인지 신선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으며,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호기심과 함께 한 인생이라서 그런 걸까.

         

       ‘담비’라는 별명이 붙은 데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듯.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는 죽어버린다는 말처럼.

         

       아나스타시아는 호기심 때문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육체는 정신을 위한 거름이 되었고, 정신과 영혼은 집단 무의식에 녹아내리게 되었지.’

         

       그녀는 육체조차 보존하지 못했다.

       항상 그녀를 구원해주었던 위치크래프트는 육체에 있는 생명력의 한 방울까지 쥐어짜서 그녀의 정신과 영혼이 집단 무의식을 탐사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육체는 먼지가 되어버렸다.

         

       정신과 영혼?

       아나스타시아는 육체가 사라져버린 그 순간부터 집단 무의식을 탐사할 수 있는 자격을 잃어버렸다.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탐험할 수 있는 것.

       육체, 정신, 영혼. 그 모든 것이 멀쩡한 존재만이 이 집단 무의식에 속할 수 있다.

         

       그리고 육체를 잃어버린 순간, 아나스타시아는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

         

       영혼과 정신.

       그 두 개만을 가진 것.

         

       그래.

       아나스타시아는 육체가 사라진 그 순간, 귀신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 아니게 된 아나스타시아를 감히 집단 무의식에 접근하려 했던 다른 귀신들과 똑같이 대했으리라.

         

       찢고, 부수고, 갈아버리고, 흐트러트리고, 녹이고, 흡수하고….

         

       그렇게 회귀 전의 아나스타시아는 죽었다.

         

       허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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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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