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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6

       하루가 멀다고 꾸역꾸역 몰려드는 마인들.

         

       그들을 보다 수월히 상대하기 위해 조금씩 높이고 또 높이다 아득히 높아진 성벽.

         

       백우진은 그 위에 서서 저 먼 곳을 내다보았다.

         

       물경 이만을 헤아리는 마인과 마수.

         

       그리고 그들을 앞장세우고 물밀듯이 몰려오는 마교의 광신도들.

         

       마지막으로 그런 그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듯 허공을 걸어오는 천마.

         

       “…장관이네.”

         

       적일지언정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그들은 대단히 비장하고, 용감해 보였다.

         

       죽음의 공포 따위는 진즉에 초월한 듯, 사지(死地)로 향하는 그들의 걸음에는 그 어떤 잡념도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퍽 매섭고, 황당했다.

         

       “누가 보면 자기들이 용사 일당이고, 우리가 악당인 줄 알겠어.”

         

       온갖 더러운 수법으로 강해져서 남의 땅이나 탐내러 오는 주제에.

         

       “카악, 퉷!”

         

       성벽 아래다 걸쭉하게 침을 내뱉은 뒤 돌아서는 백우진.

         

       그쪽에는 또 다른 장관이 펼쳐져 있다.

         

       한달음에 달려온 정사연합의 연합원들.

         

       도굉이 써 붙인 벽보를 읽고 한 팔 거들기 위해 찾아온 재야의 인사들까지.

         

       복색이며 정신이 하나로 통일된 바깥의 마교와 달리, 이들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청의무복, 흑의무복, 백의무복 등.

         

       온갖 색깔의 무복들로 알록달록하고, 그로 인해 눈이 아플 정도로 번잡하다.

         

       하다못해 정신 무장이 저들처럼 죽음을 각오했을 만큼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잠깐 의기 넘쳐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죽는 건 두렵게 느끼는 이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이 전쟁은 싸우기도 전에 패배한 전쟁인가?

         

       그런 건 또 아니다.

         

       백우진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오합지졸처럼 보이는 무림의 전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저 멀리서 마교도들이 몰려오고 있소.”

       “……!”

         

       술렁이기 시작하는 이들.

         

       막상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압박감이 제법 거센 모양.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백우진이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외쳤다.

         

       “혹 이 중에서 그들을 직접 볼 의향이 있는 이가 있소?”

         

       그러자 제법 단단한 심지를 가진 듯 보이는 이들이 듬성듬성 손을 들어 올린다.

         

       백우진은 그중 한 사람을 뽑아 손짓했다.

         

       “이리 올라오시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길.

         

       “송구하오만 내 무공 수위가 그리 높지 않아 그곳까지 한 번에 뛰어오를 수 없소이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흘러나오는 작은 웃음.

         

       백우진 또한 가볍게 웃으며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닿는 건 걱정일랑 말고 힘껏 뛰어올라 보시오.”

       “그리 말한다면…, 알겠소.”

         

       사내가 내공을 끌어올려 있는 힘껏 뛰어오른다.

         

       제법 높지만 성벽 위에 닿기엔 한참이나 모자란 높이.

         

       이대로 떨어질 일만 남았다 싶은 그때.

         

       “어, 어엇…!”

         

       사내의 몸이 허공에 그대로 멈춰 섰다.

         

       그리고 제멋대로 허공을 거슬러 올라가 성벽 위에 당도하여 살포시 떨어졌다.

         

       대체 어찌 그것이 가능했는가?

         

       “허, 허공섭물…!”

         

       허공섭물(虛空攝物).

         

       내공을 이용하여 멀리 떨어진 물체를 움직이는 기공술의 한 종류를 뜻한다.

         

       이는 제법 어려운 것이기는 하나,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일류 또는 절정의 경지에만 올라도 작은 물체 정도는 손쉽게 움직일 수 있기에.

         

       허나 사람을 옮기는 건 그 수준의 차원이 다르다.

         

       무거울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를 허공섭물로 간섭한다는 건 그야말로 신외지경에 다다라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대체 경지가 어디에 닿아 있는 게야?”

       “천광검신이 대단하단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천마와 제법 비등하게 싸웠다더니….”

         

       곳곳에서 쏟아지는 감탄사.

         

       백우진은 그들 앞에 오연히 서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뒤지는 줄 알았네.’

         

       사내의 신법이 생각보다 더 구렸다.

         

       그만큼 끌어당겨야 하는 거리도 길어졌고, 무게는 또 어찌나 나가는지.

         

       덕분에 내공이 아주 쪽 빨렸다.

         

       자칫 거리가 조금만 더 길고, 그동안 상대가 발버둥 쳤더라면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이러한 속내를 숨긴 채 짐짓 태연한 표정을 한 그가 사내와 함께 등을 돌렸다.

         

       “저-기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마교도들이 보이시오?”

         

       거침없이 밀려드는 마교도들은 어느덧 사내의 모자란 안력에도 훤히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보, 보이오.”

         

       그 순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칼날이 들이밀어져도 움츠러들지 않을 것만 같던 사내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막연한 상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

         

       막상 수만의 마인과 마교도들을 눈으로 직접 마주하니 오금이 저리기 시작한 것.

         

       이를 알면서도 그는 물었다.

         

       “기분이 어떠시오. 지금도 죽음이 두렵지 않소? 당장 저들을 향해 뛰쳐나가 싸울 수 있겠냔 말이오.”

         

       이는 그의 감정을 교묘하게 건드리는 말이었다.

         

       ‘이걸 보고도 네가 깝칠 수 있어? 진짜?’

         

       묘하게 자신을 깔아뭉개는 듯한 말투에 사내가 반발하듯 제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무, 물론이오! 이 강모, 비록 실력은 일천하나 무림의 위기 앞에서 등 돌릴 만큼 나약한 사내는 아니란 말이오!”

       “흐음…, 그렇구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백우진.

         

       “그대의 뜻은 잘 알겠소. 그럼 이만 내려가시오.”

       “…아까처럼 내려보내 주면 안 되오?”

         

       아쉬운 투로 무리한 부탁을 건네는 사내를 향해 백우진이 입술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복화술을 시전해 상대에게 즉답했다.

         

       “그 멀쩡한 다리 뎅겅 부러지고 싶냐?”

       “……!”

       “좋게 내려가, 좋게.”

       “아, 알겠소.”

         

       백우진의 살벌한 음색에 잔뜩 겁에 질려 부리나케 뛰어 내려가는 사내.

         

       그러기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 좋은 미소로 좌중을 향해 묻는다.

         

       “묻겠소. 그대들은 정녕 전쟁이 두렵지 않소?”

         

       누군가 외쳤다.

         

       “우리는 소인배가 아니오! 무림을 위해 이 한목숨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소이다!”

         

       그 한마디에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외쳐대기 시작했다.

         

       “저 말이 맞소!”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소!”

       “저들에게 중원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죽음으로 지킬 것이오!”

         

       와아아아-!

         

       제멋대로 충천하는 의기.

         

       그러나 이는 허상이다.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적을 마주하면 단숨에 가루가 되어 흩뿌려질 나약한 허상.

         

       “그대들과 나는 생각이 다른 듯하구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음성에 잦아드는 소란.

         

       이에 백우진이 말을 이었다.

         

       “나는 두렵소.”

         

       그들과 달리, 백우진은 허상 따위를 품지 않았다.

         

       “몰려드는 저 악귀들이 두렵고, 내가 죽을 것이 두렵고, 내 동료들이…, 나아가 그대들이 저들의 손에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게 몹시도 두렵소.”

         

       모든 전쟁에서 그는 같은 마음이었다.

         

       늘 두렵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이런 마음을 품었다고 하여 내게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겠소?”

       “…….”

       “…….”

         

       그들은 말했다.

         

       자기들은 중원 무림의 존망이 걸린 전쟁 앞에서 두려워할 만큼 소인배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백우진은 소인배고, 그를 지탄할 수 있는가?

         

       그럴 리가.

         

       그는 앞선 혈교와의 전쟁에서 열세에 몰린 전장만을 돌며 위기에 빠진 무림의 동도들을 구원하고, 끝내 혈교주와 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심지어 지금도 마찬가지.

         

       그는 마교와의 전쟁에서도 가장 앞서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무림의 위기마다 단 한 차례의 물러남 없이 앞장서는 이를 누가 욕할 수 있단 말인가.

         

       “두려움이란 감정은 전쟁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감정이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한 좌중을 향해 말을 잇는다.

         

       “내가 죽는 게 두려우면 다른 이들의 죽음도 두렵소. 그리하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옆에 선 동료가 죽어갈 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소.”

         

       그러나 죽음을 도외시한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옆에 선 동료가 죽음의 위기에 놓여도 손을 뻗지 않는다.

         

       ‘먼저 가라, 나도 곧 따라갈 테니!’

         

       이딴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품은 채 자신 또한 죽음을 향해 성큼 다가설 뿐.

         

       “적을 죽이는 것? 무척 중요하오. 허나!”

         

       제 목숨으로 적의 목숨 여럿을 태우겠다는 의기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백우진이 원하는 승리는 그런 게 아니었다.

         

       “옆에 선 동료의 목숨을 구하는 건 수십의 적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값어치 있소. 살아난 그들이 내 목숨을, 다른 동료의 목숨을 구할 것이요, 또 그렇게 살아남아 고작 한둘 더 죽이고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많은 적을 베어 넘길 수 있지 않겠소?”

         

       좋게 말하면 발상의 전환이고, 나쁘게 말하면 궤변이었다.

         

       누군가는 그의 말을 반박하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말로 이루어지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

         

       상대에게는 제 논리를 파훼할 만한 실증이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있다.

         

       제 논리를 실제로 증명할 만한 기록들이.

         

       “나는 그렇게 수백, 수천의 목숨을 구했고 그들의 손을 빌려 승리했고 살아남았소.”

         

       백우진은 그들에게 그리 말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이 논리로 사람들 구하고, 승리했는데? 반박 가능?’

         

       중원 무림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이가 그리 말하는데, 누가 입을 열어 반박할 수 있을까.

         

       또 그만큼 확실한 증거이기에 그들에게 와 닿았다.

         

       그러나 오직 말로써 강요할 수만은 없는 일.

         

       “믿지 못한대도 상관없소. 허나, 지켜보시오. 나는 이러한 마음으로 그대들을 살리고, 또 중원을 구할 것이니.”

         

       직접 보여주면 그뿐이다.

         

       곧이어 펼쳐질 최후의 전투에서 보란 듯이 그들을 감화하면 된다.

         

       그때야말로 꽃이 활짝 피어날 시기.

         

       지금은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씨를 뿌리는 과정일 뿐.

         

       “중원을 구하겠다는 망망대해와도 같은 허상 따위는 잊으시오.”

         

       사람들의 가슴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어놓는 데에 성공한 백우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그와 동시에 검을 뽑아 하늘을 향해 찌르며 외침을 이어 간다.

         

       “동료를 지킬 것이오!”

         

       이른바 새로운 목표의 제시다.

         

       한눈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꿈은 채 이루기도 전에 사람을 지치게 하는 법.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점진적인 목표 달성이다.

         

       당장 커다란 것을 꿈꾸기보다, 이를 이루기 위한 작은 것부터 성취하는 것.

         

       적 하나를 죽인다고 하여 중원이 구해졌는지 안 구해졌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옆의 동료를 구했는지, 못 구했는지는 곧바로 알 수 있기에.

         

       허나 아직은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와닿지 않아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백우진을 따라하듯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동료를 지키자!”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자그마한 외침.

         

       이를 따라 하나둘씩 외치기 시작한다.

         

       “도, 동료를…, 지키자?”

       “동료를…, 지키자…!”

         

       동료를 지키자-!

         

       이 외침의 시작을 알린 이들은 하오문도들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심어둔 백우진의 충실한 심복들.

         

       그들에 의해 여론이 한순간에 뒤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며 백우진은 씨익 웃었다.

         

       ‘역시 선동이 최고라니까.’

         

       두 세계의 구원이라는 원대한 위업을 앞둔 용사의 마음은 검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흰 것도 아닌 경계를 알 수 없는 회색빛 땟국물에 찌든 지 오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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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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