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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7

       *** ***

         

       어전회의.

         

       “시작하라.”

         

       형형한 눈빛을 발하는 유경의 명을 내리자 지방에서 올라온 산더미같은 상소문이 하나 둘씩 풀려나기 시작했다.

         

       “복건태수 탄율의 보고서입니다. 무림의 도당과 혈교의 괴이한 무리들이 공멸하였으니 급히 병졸을 풀어 복건의 치안을 안정화시켰다 합니다. 괴이한 무리들에 술렁이던 백성들은 놀란 마음을 다스리고 생업에 종사하고 집 안에 웅크렸던 백성들이 하나 둘 가옥을 떠나니 사람과 물류의 흐름이 팔방으로 뻗어나가며 크게 융성할 기미를 보인다 합니다.”

         

       “안휘태수 천우지의 상소문입니다. 안휘의 괴이한 무리가 자취를 감추었으나 그 빈자리를 노리고 도적떼가 융성하니 군을 일으켜 도적을 처리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합니다. 그 모습에 하나 둘 불안에서 벗어난 백성들의 칭송 소리가 이제는 온 안휘에 울려퍼지고 있다 합니다.”

         

       “오오, 참으로 황국의 홍복이 아닐 수 없군요.”

         

       “사필귀정이라. 사특한 무리는 결국 흥할 수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재상해는 회의에 참석한 문무백관들의 중얼거림을 한 귀로 흘리며 상소문의 내용을 떠올렸다.

         

       도적떼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운남이라던가 이미 혈교가 할퀴고 지나간 상처를 단번에 메울 수 없는 지방들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적혀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천하는 평화를 회복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 평화의 주역이 황국이 아니라 뇌명존자라는 점이다.’

         

       황군의 힘으로 뿌리뽑지 못한 혈교.

         

       고수들로 이루어진 합격방진이 아니면 타격조차 입히지 못하는 혈괴는 물론이고 혈교의 혈인들 역시 황군과는 상성이 나빴다. 기본적으로 무인을 상대하는 황군의 전략은 거리의 이점을 이용한 다수의 창병이 한명의 무인을 옭아매는 것. 그러나 혈탄으로 원거리 공격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혈인들은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다.

         

       ‘혈교의 등장은 확실히 황국에게 악재였으나…그 악재가 천하를 흔들 수 있었던 원인 역시 황국에 있겠지.’

         

       황국이 무림세력을 초토화시키지 않았더라면 무림세력이 방파제가 되어 혈교의 준동이 백성들에게까지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고.

         

       무림세력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황군과 국력을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황국의 국력을 쏟아 혈교의 대응책을 마련할 여력이 있었을 테니까.

         

       무어라 변명을 주워섬길 수는 있었지만 결국 황국이 해내지 못한 일을 무림인 한 사람이 해결했다.

         

       다른 이들은 그저 놀라운 영웅의 등장이라고 여기겠지만…과연 유경도 그리 생각할까.

         

       혹여 뇌명존자의 등장을 계기로 혈교 때문에 멈추었던 무림탄압이 재개되지는 않을까.

         

       재상해는 연신 낭독되는 상소문을 듣고 문무백관들을 살피며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홍복! 황국의 홍복입니다!”

         

       “황국의 미래에 창창한 해가 떴군요.”

         

       황국의 중역들이 한 자리에 모였거늘 나오는 소리라고는 사태에 대한 분석이나 해결책보다는 영양가 없는 칭송이나 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각지의 태수들과 지방관들이 혈교의 무리들을 쓸어 버린 것이 뇌명존자이며 뇌명존자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당들을 처리한 이들이 무림맹과 문파의 문을 닫아걸었던 정파들이었음을 몰랐기에 상소문에 그들의 소식을 누락했을까.

         

       태수들과 지방관들도 다 재상해와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러한 태수들의 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경은 그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보고를 듣고만 있었다.

         

       제발 중앙에서 무리한 일을 벌이지 않기를 절실히 바라는 지방관들의 상소. 황제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기에, 혹은 황제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 눈치를 보며 적당한 말을 주워섬기고 있는 문무백관들. 그리고 그런 지방관들의 보고와 문무백관들의 태도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황제.

         

       참으로 살얼음판과 같은 형국이었다.

         

       지금은 고요하나 누구 하나 그 얼음판에 작은 돌이라도 던지게 된다면 그 작은 파문만으로 호수를 뒤덮은 얼음은 산산이 박살날 것이다.

         

       그리하여 물이 드러난 호수는 과연 어떤 형국으로 흘러갈지는 재상해조차 쉬이 예상할 수가 없었으니 재상해는 제발 이 어전회의에서 아무런 일도 터지지 않은 채 지나가기를 바랐다.

         

       천하는 여실히 회복세에 들었으니 이대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아도 황국에는 새 살이 돋고 벌어진 상처가 아물 테니까.

         

       지방관들의 상소가 모두 끝이 나고도 황제는 여전히 침묵했으니 자연히 대전 역시 침묵으로 물들었다.

         

       그 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재상해는 기도했다.

         

       이대로 아무런 일 없이 어전회의가 끝나기를.

         

       “참으로 실망입니다.”

         

       그러나.

         

       “황국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문무백관들께서는 어찌 이리 천하의 일에 무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재상해의 기대는 여지 없이 박살이 나 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고 재상해 역시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동창 제독의 속관, 이형백호 두위천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현 황국의 국책이 무엇입니까? 황국의 신민임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병기를 다루고 무공을 휘두르는 무도한 무리들을 잡아들이고 계도하여 황국의 기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 사실을 모를 분들이 아님에도 요새 백성들을 현혹하여 이름을 드높이는 자에 대한 소문조차 들어보지 못하셨단 말입니까?”

         

       문무백관들이 숨을 삼켰고 재상해는 이를 갈았다.

         

       저런 망둥이 같은 새끼.

         

       재상해는 속으로 두위천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평소에도 야심을 숨기지 않는 자였기에 사고를 칠 조짐이 보이는 놈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아무 근거도 없이 사람을 족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참고 있었거늘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진작에 두가의 가주를 불러다가 정강이를 걷어차며 단단히 단속을 해 놓았어야 했거늘!

         

       그런 후회가 재상해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미 두위천의 입은 열렸고 말은 토해졌으니 그저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결국 두위천의 말에 황제의 입이 열렸으니까.

         

       “이형백호 두위천.”

         

       “충!”

         

       “자세히 고하라.”

         

       “충!”

         

       두위천이 거침없이 호천안에 대한 소문을 입에 담았다. 혈교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모산까지 정리했다는 일을 마지막으로 두위천의 보고가 끝이 났다.

         

       재상해를 비롯한 문무백관은 황제가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숨을 죽였다.

         

       “이형백호 두위천.”

         

       “충!”

         

       “그자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해 보고하도록. 과거의 행적은 물론이고 최신 근황까지. 알겠나?”

         

       “충!”

         

       재상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뇌명존자의 실력이 그토록 고강하다면 동창의 감시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천하의 어떤 무인이 동창의 감시를 달갑게 생각할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횡국과 뇌명존자와의 접촉은 그야말로 최악의 형태가 되었다.

         

       “오늘의 회의는 여기서 파하겠다.”

         

       회의가 파하자 두위천은 망설임없이 대전을 나섰고 재상해는 그런 두위천의 뒤를 쫓아 나섰다.

         

       “자네, 나 좀 보지.”

         

       “어쩐 일이십니까? 재상. 본관은 황제 페하의 명을 처리해야 합니다.”

         

       재상해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두위천을 바라보았다.

         

       이런 꼴 보기 싫은 놈이랑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던 재상해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자네는 이 일을 어찌 처리할 생각인가?”

         

       재상해는 현 동창의 상황을 떠올렸다.

         

       옛날 유경이 무림에 대한 탄압을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등을 돌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동창제독 사마경휘였다.

         

       유경의 최측근이자 오른팔로서 절대적인 황권 구축의 일등공신이었던 사마경휘는 와병을 명분삼아 제독의 일을 놓아버렸고 유경은 또 그런 사마경휘를 고집스럽게 동창제독의 위에 올려두었다.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동창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제독 휘하의 속관, 장형천호와 이형백호가 나누어 처리하는 상황이었다.

         

       즉.

         

       이형백호 두위천이 어전회의에서 뇌명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애초에 황제의 의중이 듬뿍 묻어나는 일이라고 봐야 했다.

         

       그러니 재상해는 두위천을 통해 황제의 의중을 짐작해 보고 싶었다.

         

       “지금은 이 황국이 숨을 돌려야 할 때일세. 그런 시기에 어찌하여 적을 만든단 말인가?”

         

       “글쎄요. 황명이 떨어졌으니 황국의 눈과 귀인 동창의 일원으로서 그저 따를 뿐입니다.”

         

       뺀질거리는 대답에 재상해의 이마에 혈관이 툭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본 두위천이 반사적으로 반걸음 거리를 벌렸다.

         

       강철두 재상해.

         

       어디 황궁에서 재상해에게 머리를 박혀 고꾸라진 이들이 한둘이었던가. 황국에서 먹물깨나 먹었다는 이들을 모조리 머리로 찍어버리며 재상의 위까지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두위천은 곧바로 전략적 철퇴를 감행했다.

         

       “그럼 본관은 이만 황명을 수행하러 가보겠습니다!”

         

       동창의 2인자다운 빠른 판단.

         

       “야! 야!”

         

       재상해는 눈썹을 휘달리며 도망치는 두위천의 뒤통수에 소리를 질러 보았으나 두위천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새끼. 개 빠져가지고. 어? 재상이 부르는데 그냥 내빼? 금의위 훈련소에 다시 처박아서 군기를 주입하던가 해야지.”

         

       동창의 인원 대부분은 금의위에서 차출된다. 그리고 두위천 역시 금의위 출신이었으니…다시 두위천을 금의위 훈련소에 처박을 궁리를 하던 재상해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사 두위천을 족쳐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동창은 황제 직속 기관이었으니 두위천은 상사의 명령을 따른 것뿐이다.

         

       ‘뇌명존자의 등장은 이 황국에 불어온 행운이거늘…이 행운마저도 걷어찰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란 말인가.’

         

       우울한 안색으로 낙양재가에 돌아온 재상해는 집무실의 의자에 몸을 늘어뜨렸다. 그렇게 껄렁한 자세로 책상 위에 발을 얹고 나니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물건 하나가 눈에 보였다.

         

       훈련병일 시절 수여받은 허리띠였다.

         

       재상해는 그 허리띠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재상이 되긴 되었으나…진짜 재상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원.”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고 있자니 바깥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어르신,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딱히 확인할 기분이 아니니 책상에 올려놓게.”

         

       “전우회의 서신인데 그리 할까요?”

         

       “당장 주게!”

         

       재상해는 시비에게 못 말린다는 시선을 받으며 서신을 낚아챘다. 정기적으로 연락을 받을 때도 아닌데 웬 서신이지?

         

       “조가주…이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서신을 보냈지?”

         

       재상해는 재빨리 서신을 읽었다. 구구절절히 쓰여 있는 글귀를 읽어가는 재상해의 눈이 점차 크게 떠졌고 서신의 모든 내용을 다 읽었을 때 재상해는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 서신을 와락 구길 수밖에 없었다.

         

       “하, 하하하하…!”

         

       호천안 교관이…뇌명존자라고? 그리고 그 뇌명존자가 황국을 위해 나서고자 한다고? 그 일로 인해 십이 번대 훈련생들의 힘이 필요하니 다른 이들도 낙양으로 집결할 것이라고?

         

       “이거! 이거이거! 아주 재미있겠어! 오래간만에 그 시커먼 얼굴들도 마주할 테고 말이야!”

         

       재상해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황국에.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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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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