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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7

   이 년이 왜 날 걱정하는 거지?

   

   내가 악신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나?

   

   그럴 리가.

   

   나는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악신의 기운을 몸에 잔뜩 짊어지고 있었다. 이성이 증발될 만큼 많은 기운을 몸에 두르고 있었단 말이다.

   

   검성이란 호칭마저 얻은 유덴이 그 기운을 못 알아차릴 리가 없지.

   

   이 년은 지금 그 모든 걸 알고서도 나를 걱정하고 있다.

   

   나를.

   

   나를.

   

   아직도 자신의 친구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허. 씨발.”

   

   헛웃음과 함께 욕지거리를 내뱉은 루카는 실핏줄이 터져 시뻘개진 눈으로 유덴을 바라봤다.

   

   “유덴. 아니. 검성님.”

   “…응?”

   “제가 그토록 같잖아 보이십니까? 대륙에서 말살당할 죄를 지었음에도 걱정을 건네야 할 정도로?!”

   

   이 년은 예전부터 이랬다.

   

   나를 자신의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건지 내가 무슨 짓거리를 하던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았지.

   

   오히려 비겁한 수를 쓴 나를 박살내고는 지금처럼 괜찮냐고 물어봤다.

   

   “루카. 그게 무슨.”

   “헛소리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언제부터 성인군자가 되었다고 착한 체를 하십니까.”

   

   루카는 꽤 오랜 시간 유덴과 동료로 지냈다.

   

   그렇기에 유덴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은 안다.

   

   검성이 되기 전의 유덴은 제멋대로인 모험가 그 자체였다.

   

   기분가는 대로 움직이고.

   

   다른 이들이 시비를 걸면 상대를 짓뭉갤 때까지 열을 올리고.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으면 그걸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상대를 박살낼 때까지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헌데 왜 그녀가 날 걱정한단 말인가.

   

   자신의 기대를 배신한 것은 물론이고 여태까지 수도 없이 뒤통수를 쳐 온 나를 왜 유덴이 걱정하느냔 말이다!

   

   “하. 그렇겠지요. 당신 같은 별에게는 저 같은 돌멩이는 애완동물 정도로 여겨지겠죠. 필사적으로 짖어대도 아무런 위협도 느껴지지 않는 강아지 정도로요.”

   “아냐. 그렇지는.”

   “뭐가 아니란 거야! 그럼 왜 네가 아직도 날 걱정하는 건데!”

   

   잠시나마 얼굴에 걸쳤던 가면을 벗어던진 루카는 자신의 감정을 담아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너한테 뭘 잘해줬는데!? 설마 아직도 내가 네 경지를 드높이는데 도움을 줬다 생각하는 거냐!?”

   

   과거의 유덴은 언제나 루카에게 고맙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루카가 아니었더라면 자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 때마다 루카는 속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느꼈지만 겉으로는 웃음을 지었다.

   

   다른 이들의 앞에 내밀기에 자신의 본성은 너무도 추악했으니까.

   

   “만약 그딴 병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집어치워! 난 언제나 네가 무너져 내리길 바랐다! 네가 죽기를 바랐다고! 내 위에서 빛나는 별이 떨어지길 원했단 말이다!”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있는 루카는 평생동안 걸쳐 왔던 가면을 집어 던지고 자신의 본성을 드러냈다.

   

   유덴의 걱정 담긴 눈동자를 경악으로 물들게 하기 위해 자신이 벌여왔던 죄를 고백했다.

   

   허나 현실은 루카의 생각대로 변화하지 않았다. 유덴은 루카의 고백을 듣고서도 경악하기는커녕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뭐냐.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냐. 어째서.”

   “그거 눈치 챈 지 꽤 오래 됐거든.”

   “…뭐?”

   “루카. 내가 너랑 헤어지고서 몇 년이란 시간이 지났어. 난 검성이 됐고. 전대 검성에게 끌려 다니며 정치라는 걸 배우게 됐고. 네가 했던 행동들이 뭔지 알게 됐지.”

   

   몇 년이란 시간은 한 마리의 짐승이었던 유덴을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전대 검성의 손에 이끌려 이런저런 곳에 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유덴은 과거 루카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이 무엇인지 눈치 챘다.

   

   그가 지니고 있던 감정도 말이다.

   

   “그치만 다 지난 일이잖아. 네가 했던 여러 일들은 결과적으로 내게 도움이 됐는걸.”

   “헛소리 마. 너는. 너는 결코 널 적대한 자를 용서하지 않잖아!”

   “대부분은 그랬지. 근데 넌 달라.”

   “가식 떨지…”

   “기억 안 나? 너랑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 때 내가 죽을 위기에 처했던 걸 구해준 건 너였어.”

   

   베네딕 경을 마주하겠다는 일념으로 무리한 강행군을 반복하던 유덴은 자신의 몸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외면한 채 또 다시 위험 속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유덴은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한다.

   

   자신을 향해 내리쳐지는 와이번의 꼬리를.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한탄하다 체념하던 자신을.

   

   그리고 그 와이번의 목을 가르던 루카의 검을.

   

   “그것 말고도 고마운 건 여러 가지가 있지. 주먹구구식으로 머리부터 들이박던 내게 체계라는 걸 알려준 것도 너고. 온갖 검술도장에서 사기만 당하던 나한테 호구 잡히지 않는 법을 알려준 것도 너고. 혼자서 미친 듯이 내달리던 내 옆에 있어준 것도 너잖아.”

   

   같은 평민 출신의 모험가였지만 유덴과 루카가 지닌 지식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지금도 유덴은 루카가 없었다면 길거리에서 비명횡사를 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만큼이나 루카라는 사람이 준 도움은 그녀에게 큰 것이었다.

   

   “…아냐. 그건. 그건. 네가 내 아래라고 생각했기에.”

   “어쨌건 너한테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야. 네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어. 루카.”

   “…”

   “그러니까 그런 심술 정도야 웃어 넘겨줄 수 있어.”

   “내가. 내가 너란 별을 만들어 냈다고!? 내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빛을 만들어냈단 말이냐!?”

   “그래.”

   “하하하핳! 크하하하하!”

   

   유덴이 내민 진실을 멍하니 듣던 루카는 이내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위압적인 광소는 한참을 웃던 루카가 기침을 내뱉음에 따라 멈췄다.

   

   입을 가로막은 채 콜록거리던 루카는 자신의 가죽 장갑에 묻은 피를 보고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뒤 편에 선 루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알고 있었나?”

   “너무 자의식 과잉 아냐?♡ 내가 왜 너 같은 허접쓰레기한테 관심을 쏟을 거라고 생각해?♡”

   

   귀를 뚫고서 스며드는 루시의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루카는 혼잣말을 하기에 바빴다.

   

   “아냐. 아냐. 그럴 리 없어. 유덴이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도 않은 사실을 네가 알 리가 없어. 아무리 주신의 사랑을 받는 자라 한들. 아! 그렇군! 위대하신 주신께서 계시를 내려준 건가!? 내게 대항할 방법은 알려준 건가!? 그렇지?! 맞지?!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

   

   자신이 내린 결론을 검증받으려는 듯 다급한 외침을 가만 듣고 있던 루시는 고갤 끄덕이길 바라는 간절한 표정 앞에서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알고 싶어?♡ 네 병신 같은 계획이 모두 실패했지만 귀여운 여자애 손 위에서 놀아났단 사실만큼은 남기고 싶어?♡ 푸하하핳♡ 정말 징그럽네♡ 변태의 사고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니까♡”

   “대답이나 해! 너는!”

   “발버둥치는 꼴이 너~무 처량해서 내가 특별히 대답해줄게♡ 틀렸어♡”

   “…뭐?”

   “땡♡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오답♡ 계획도 허접♡ 추리도 허접♡ 눈치도 허접♡ 크흐흫♡ 진짜진짜 개허접교수네♡ 하긴 그러니까 이런 여자애한테 놀아난 거려나?♡”

   

   비웃음을 감출 생각도 없으면서 키득거리는 입가를 손으로 반쯤 가린 루시는 웃음기를 잔뜩 담아서 말을 이었다.

   

   “허접 주신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어♡ 너 따위는 문제가 된다고도 생각한 적 없어♡”

   “아냐.”

   “네가 벌인 여러 일은 내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어♡ 넌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멍멍이였을 뿐이야♡”

   “아냐.”

   “심지어 넌 다른 사람들한테도 영향을 끼치지 못 했어♡”

   “아냐. 아냐.”

   “여기 이 아저씨성애자의 명성을 드높여준 건 나♡ 내 친구들을 성장시켜준 것도 나♡ 널 이용해서 공허의 추종자들을 일소한 것도 나♡”

   “아냐. 아냐. 아냐!”

   

   귀로 파고드는 말을 부정하며 자신의 얼굴을 부여 잡는 루카의 모습에 루시는 같잖다는 감정을 그대로 담아 그를 바라봤다.

   

   “푸하하핳♡ 그래~♡ 아니라고 믿고 싶겠지♡ 근데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어?♡”

   “…”

   “네가 나보다 재능도 없고 다른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능력도 부족한 개허접이란 게 바뀌냐구♡ 응?♡”

   목소리를 잃어버린 루카가 자신의 감정에 몸을 맡긴 채 앞으로 내달리지만 그의 발악은 루시의 옆을 지키던 기사에 의해 가로 막혔다.

   

   알른의 기사 칼은 루카를 간단히 제압하고서 루시의 앞에 내밀었다.

   

   “나는 착하니까♡ 내 말을 잘 따라 준 멍멍이한테 마지막으로 상을 줄게♡ 고마워?♡ 내 의도대로 죽어라 발악해줘서?♡”

   “루시이이이 알르으으으은! 나는 널!…”

   

   퍼억! 루카의 울분어린 목소리를 꿰뚫고서 루시의 발이 날아든다. 정확하게 턱을 가격한 발차기에 루카는 휘청하더니 그대로 얼굴을 축 늘어트렸다.

   

   “알른 영애.”

   

   뒤 편에서 이 모든 촌극을 구경하던 유덴은 여러 감정이 뒤섞인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절 배우로 쓴 값은 비싸게 치르셔야 할 겁니다.”

   “알아. 아저씨성애자. 해준 게 있으니까 너 같은 변태도 바보 파파한테 좋게 말해줄 게. 파파는 내 말이라면 어쩔 줄 모르는 왕바보니까 좋게 봐줄 걸?”

   

   장난스레 내뱉어지는 루시의 말에 입술을 곱씹던 유덴은 애써 감정을 죽인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일의 전말을 모두 다 말씀해 주시죠. 언제부터 당신의 장난감이 된 건지 알고 싶으니까.”

   “그건 저도 궁금하네요. 알른 가문의 영애.”

   

   바닥에 가라앉아있던 분위기를 꿰뚫고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놀란 이들의 시선이 시계탑의 계단 쪽으로 향한다. 시계탑 위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아낸 1왕비 카바티 솔라딘은 태연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소울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일이니까요. 제게도 들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찌 생각하십니까? 알른 영애?”

   “차라리 협박을 하지 그러세요? 망상병 왕비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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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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