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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7

    택배로 보내놓은 인형들의 정보가 취합되기 전, 잠깐의 쉬는 시간.

    레니에는 루크가 건네준 사진들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게 오늘 찍어온 증명사진이로군요? 으음, 생각보다 더 괜찮게 나왔네요. 또, 증명사진이 아닌 것도 좀 섞여있는 것 같구요. 화장도 했나요?

    “그래, 사진 하나 찍는데 참으로 열정적으로도 찍어주더군.”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었지.

    그 덕분에 돈을 벌기도 했고, 추가로 나중에 오면 공짜로 사진을 찍어준다던가 높은 할인을 적용해준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다시 그 사진관에 갈 것 같지는 않다.

    다시 찾아갔을 때 그런 해프닝이 떠오르면 어색해서 말이다.

    그러고보니, 처음의 그 사진관도 그렇고 이번 사진관도 그렇고, 심지어는 소르비도 그렇고.

    자신은 어째 사진을 찍는 인물들과는 영 연이 없는 듯 하다.

    그냥 다음부터 사진 정도는 집에서 얌전히 혼자 찍는 걸로 하자.

    루크가 그런 생각을 하며 찻잔을 들어올리자, 레니에가 확인차 물었다.

    -그럼, 이 사진으로 재등록하실 건가요?

    “아니, 그건 미룰 생각이야.”

    -네? 어째서요?

    그럴거면 대체 왜 오늘 일부러 시간을 내서 증명사진을 찍고 왔느냐는 레니에의 물음에, 루크는 마시려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걸 이용해서 내 가짜 신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네.”

    -가짜 신분이요?

    그러자 레니에는 어불성설이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뭐, 확실히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연령에 큰 차이가 있기는 한데요…, 결국 루크님 본인 이름은 못 바꾸잖아요? 그럼 어차피 금방 동일인인 걸 들킬텐데요?

    루크의 행정상의 풀네임은 ‘루크 리스핀드 게네퍼 이루시’.

    고민끝에 결국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동시에 따고도 자신의 성까지 따르는 상당히 괴악한 이름이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지는 않고 여전히 ‘루크 이루시’라고 소개하며 그렇게 불리우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에 마법사인 루크에게 ‘루크 이루시’라는 이름은 서클에 새겨진 본인의 증명이며, 그 본질 위에 쌓아올린 서클이라는 구조물이 존재하는 한 절대 바꿀 수 없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법사는 타인을 사칭할 수 없으며, 이름 또한 바꿀 수 없다.

    스스로를 증명하고 정의하는 첫번째 기반을 마법사인 루크가 쉽게 바꿀 수 있을리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심장에 새겨진 서클 그 자체가 자신의 전부인 지금의 루크에겐 더욱 더 치명적이다.

    따라서 거짓신분은 금세 탄로나는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말이다.

    루크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뭐, 그 부분은 신경쓸 것 없네. 어차피 내 신분증명이 필요한 단계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 예정이니 말이야.”

    위조신분은 그냥 일종의 보험.

    혹시나 행정상 미성년이 아닌 ‘루크 이루시’가 필요할 경우 사용할 허수아비가 필요할 뿐이다.

    뭘 하려고 해도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11살이라는 나이는, 루크에게 너무나도 걸림돌이 많았으니까.

    그렇게 설명한 루크는 찻잔을 다시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거짓명의로 등록될 건 내가 가진 인형들중에 하나가 될거야.”

    혹시나, 정말로 필요할 때는 인형인 대역을 꺼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자신이 누군가를 사칭해야하는 일은 만에 하나라도 절대 없겠지.

    그러자 레니에는 알만 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흐응, 보면 볼수록 잔머리만 늘어간다니까요. 정말.

    루크는 어떻게든 자신이 지닌 제약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회피법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그렇고 말이다.

    자연의 법칙을 어떻게든 뒤틀고 비틀어서 이변을 만들어내는 마법사라는 족속이 원래 약속을 하면 어떻게 깨트릴 수 있는지부터 고민하는 자들이라고는 하지만, 루크는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하다고 해야하나?

    과거 루크는 자신이 무언가에 얽매인다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가족과의 연도 거의 끊은 채 지냈고, 아카데미의 학장자리도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것들이 계속해서 늘어갈 무렵 그만두었으며, 작은 마을의 촌장을 맡을 때에도 마을의 다른 어른들과는 깊은 관계를 구축한 적이 없었으니.

    그나마 자신과 케일에게만큼은 얽매인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던 건지 비교적 평범하게 대하는 편이기는 했었지만, 결국 왕궁마법사로 자신의 곁을 지켜달라는 부탁마저도 무시하고 숲 속의 촌구석에 틀어박힌 인간이었다.

    그깟 아이언골렘 몇기를 ‘기사단’이랍시고 보내놓고서 말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루크의 모습이 레니에로서는 항상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날 위해서 해줄 수 있지. 레니에?”

    저런 표정으로 ‘날 위해’라는 말을 하면 결국 해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쳇, 진짜 치사한 사람이라니까.

    레니에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해주기는 하는데요, 한가지 조건이 있어요.

    “뭐지?”

    -제가 나중에 이 사진을 갖고 취미생활을 좀 해도 뭐라하지 않는 거요.

    “취미생활? 그게 뭔데?”

    -‘그림그리기’요. 

    의외의 대답에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대의 취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듣는데.”

    -뭐, 저는 루크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꽤 오래 살았고, 그러다 생긴 취미니까요. 마지막으로 그린 지 몇천년은 된 것 같긴 하지만 말이죠.

    “그래?”

    조건이라기에 뭔가 거창한 것을 생각했는데, 고작 그런 조건이라면 상당히 귀여운 편이다.

    하지만, 굳이 이 사진을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나?

    “그런데, 그대라면 그림을 그릴 때에 내 사진은 굳이 필요 없지 않나? 어차피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카메라가 그대의 눈이 아닌가. 그대가 원한다면 내 어떤 모습이든 찍을 수 있을 텐데.”

    그러자 레니에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사진사는 아니라서요. 이런 고화질의 사진은 네트워크와 연결된 카메라로는 찍기 어렵기도 하고요.

    “그런가….”

    루크는 그럭저럭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맘대로 하게.”

    -네, 알겠습니다. 신분 문제는 이거 끝나면 좀 이따가 해두죠, 뭐.

    그렇게 말하는 레니에의 그 모습을 에이레스 정부의 네트워크 보안 관계자가 보았다면 상당히 언짢았을 테지만, 수많은 해커들을 좌절시킬 정도로 두터운 방벽을 자랑하는 에이레스의 군사 네트워크를 해킹해 위성을 탈취하는 레니에라면 행정시스템에 새 신분을 슬쩍 끼워넣는 것은 실제로 마치 방청소를 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그나저나, 세상 참 좋아졌다니까요. 이렇게 정교한 초상화를 그렇게 금방 찍어낼 수 있는 세상이라니. 제가 당신 얼굴하나 그릴 수 있게 되는 데에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그랬나? 허면, 혹시 아린세이아의 그 그림도…?”

    -맞아요, 제 작품이었죠. 

    레니에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가, 이내 탓하는 듯한 말투로 약하게 쏘아붙였다.

    -아무도 당신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니 어쩔 수 있나요? 제가 그려야지. 

    “응? 내 얼굴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루크의 물음에 레니에는 뭘 모르는 척 하냐는 듯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네. 이 주제에 대해선 당신이 저보다 더 잘 알지 않나요?

    -…그래서, 제가 당신이 남긴 ‘여신의 그릇’을 이 아공간에서 찾아낸거죠. 저희는 그 뒤로 꽤 긴 시간동안 함께 했지만, 결국 저는 지쳤고…. 눈을 감았어요.

    “그랬군….”

    -그런데 이제와서 이런 형태로 부활이라니, 진짜 말도 안되는 일이라니까요.

    이어진 레니에의 말에 루크는 아무말 못하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하하…. 역시 그렇게 된 거였나.’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불멸의 존재인 신을 타락시키는 주문을 사용한 대가로, 사용자는 모든 시간선에서 존재가 말소된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저주이자, 세계의 법칙.

    그러나 자신은 이렇게 살아있다.

    ‘루크 이루시’라는 인물은 출처가 불분명한 동화 속의 잔재로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렇게 ‘루크 이루시’의 정체성은 여전히 남아 이 시대에 눈을 뜬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이나, 계산에 착오가 있었나 싶었는데…….

    ‘사고…였군. 역시.’

    어렴풋이 짐작이야 하고 있었지만, 결국 가설에서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방금 전의 레니에와의 대화였다.

    자신은 사망한 루크의 염원으로 서클의 형태가 되어 ‘루크’로서 그의 일을 마무리했고, 그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여신의 ‘그릇’에 그 흔적이 새겨졌으며, ‘모종의 방법’으로 본래 ‘지워져야 했을’ 자신은 지워지지 않은 채 루크 숲의 강력한 마력과 사념에 이끌려 기억과 정체성을 자각했고, 그것이 자신의 현재 모습이었다.

    자신이 지워지지 않은 그 ‘모종의 방법’이란 역시, ‘역천의 모래시계’겠지.

    시간선을 ‘외부와 격리’시켜 시간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모래시계는 말 그대로, ‘역천’을 위한 계단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반쯤은 도박인 수였는데…. 다행히 통하기는 했나보다.

    -어휴, 그런 몸이 되어서도 어째 그 묘한 미소는 변하질 않네요. 진짜 누가 딸 아니랄까봐.

    “…딸이라.”

    ‘딸’.

    자신이 ‘루크’에게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니 그렇게까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루크는 레니에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레니에가 루크를 ‘자신의 딸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한 뉘앙스가 말에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자신 또한 이 시대에서 그녀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으니.

    이것은 제 꼬리를 문 뱀이 아닌가.

    서로가 서로의 어미라니!

    게다가, 레니에는 꽤 오랫동안 이 ‘몸’과 함께 했다고 하기까지 했으니, 그녀에겐 정말로 자신이 그녀의 딸처럼 느껴질 가능성도 있었다.

    “…잠깐, 우리 관계는 확실히-”

    하지만 그에 대해 루크가 무언가 항의를 하려던 순간, 다급한 신호로 인해 말이 끊어졌다.

    -[리브, 루체스트의 요주인원 발견. 현재 추적중.]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나저나 레니에, 손은 잘 그리나?”
    -으음, 손이 좀 그리기 귀찮고 어려운 신체부위기는 하죠. 하지만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왜요?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아무래도 자신은 그림에서 손가락이 더해지거나 줄어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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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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