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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7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치열한 삶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허무하게 찾아오기도 하는 것.

       맥을 탁 풀리게 만들고, 실소를 짓게 만드는 것.

       실수와 실패를 한 대가로 가혹하게 찾아오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 사람이 사는 곳이 지옥이라면 더욱 쉽게 죽는다.

       그 지옥의 위험한 곳에 있다면 더더욱 빠르고 쉽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아나스타시아는 죽음을 맞이했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진성이 죽기 전에 자신을 재료로 주술 의식을 행했던 것처럼, 비슷한 끝을 맞이했던 것일 수도 있다.

       친밀한 사이였기에, 진성과 닮게 되었기에, 그렇기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겠지.

         

       ‘죽음의 윤곽이 보일 때 할 수 있는 것은 미련을 푸는 것이라. 미련을 담지 않고 떠나가는 것만큼 홀가분한 일은 없을 것이로다.’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삶을 정리하고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는 이가 있다.

       못다 한 것을 풀고 미련을 없애려는 자가 있다.

       아쉬움은 있으나 뒤를 이을 사람에게 넘겨주는 사람이 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에게 있어선 무엇이 중요할 것인가.

       반드시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 깨달은 사람이 걷는 길의 앞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죽음이 일상과도 같고, 사람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미친놈들이 활보하며, 언제든 죽어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직업을 가진 이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가?

         

       ‘누군가가 사람을 절벽으로 몰아넣는다면, 그곳에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타살인가, 아니면 자신의 의지대로 죽음을 택한 것인가? 혹은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닌 활로(活路)를 찾아 낮은 확률에 몸을 던진 것인가?’

         

       알 수 없는 이야기다.

         

       집단 무의식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아나스타시아가 왜 그곳의 바닥을 보려 한 것인지.

       어째서 정신을 기반으로 영원히 부활할 수 있는 존재가 되려 한 것인지.

         

       자신의 선택대로 죽음을 택하기 위해서였던가?

       그것은 살기 위해서 확률이 낮은 도박을 택한 것인가?

       영원을 손에 넣고 호기심을 충족하며 살아가기를 바란 것인가?

       지금이 아니면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여긴 것일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던 것일까?

       단순하게 강한 것만으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세상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가능성은 크다.

       위의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모두일 수도 있고, 모두 다 아닐 수도 있겠지.

       그는 회귀 전 담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가 죽은 이유 중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까 조금만 실수해도 죽겠네. 그럼 죽기 전에 궁금해하던 것을 해결해야겠지!’라는 욕망이 있었다면.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참으로 진성과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뒤틀렸고, 지금 아나스타시아는 살아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아나스타시아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도록 놔둘 생각이 없기도 했으니….

         

       아마 아나스타시아가 과거와 똑같이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턱의 아랫부분에 손을 가져갔다.

       마치 기다란 수염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흐음?”

         

       이러한 진성의 모습에 이양훈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느냐?”

         

       이양훈이 보기에 진성의 모습은 기이하게 보일만 한 것이었다.

       게이밍 오목눈이가 부적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입을 다물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수염이 있는 것처럼 턱 아래 허공을 쓰다듬으려 하는 것까지.

         

       턱 아래를 쓰다듬으려 하는 행동은 차치하더라도, 앞엣것만 보더라도 이건 분명히 뭔가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중요한 부적이었느냐.”

         

       이양훈의 눈동자가 혹시나 한 생각에 살짝 흔들렸다.

         

       진성의 반응을 보니 ‘새가 먹었는데 뭐 그 이유로 연락하기도 그렇고, 그냥 넘겨버리자.’라고 판단한 것이 실수처럼 느껴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 상상 이상의 폭탄이 되어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예감도 들었고.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대수롭다면 대수로운 것이지요.”

         

       진성은 상념을 끊고 이양훈의 질문에 답했다.

         

       “혹시 외국으로 나가실 예정이신지요?”

         

       “외국?”

         

       이양훈은 진성의 말에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있긴 했지만, 취소했다. 네가 살(煞)을 맞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흐음. 그 말에 다른 말을 제가 덧붙였습니다만, 그것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래. 일정을 취소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직접 가는 것보다는 낫지만 피해가 올 수 있다고 했지.”

         

       이양훈은 병문안을 갔을 때 진성이 한 말을 그대로 읊었다. 그리고 진성이 뭐라고 하기 전, 품에서 무언가 하나를 꺼내서 자랑하듯 진성에게 보여주었다.

         

       루비 같은 색의 액체가 찰랑거리는 자그마한 병.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병 안에는 붉은 액체가 들어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붉은 액체가 절반, 남은 절반은 기름으로 보이는 것이 차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로 관광지에서 파는 열쇠고리 같은 느낌을 주었다.

         

       병의 목 부분에는 실 같은 것이 묶여 있었는데, 그것은 길지도 짧지도 않게 늘어지고 끝에 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스마트폰이나 열쇠, 혹은 차 키에 달고 다니라고 말하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이양훈은 그 장난감 같은 것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말했다.

         

       “인맥이 있으면 써야 하지 않겠나.”

         

       진성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얻은 건지 알겠군요.”

         

       진성이 보기에 이양훈이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히 주물(呪物)이었다.

       대단한 수준이라고는 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하찮게 보기도 힘든 물건.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 수준에 그치는 부적 흉내 내는 하찮은 물건들과는 다른, 실제로 액막이에 효과가 있는 주물.

         

       그리고 이 액막이 주물의 주재료는 바로 피었다.

         

       그리고 진성은 피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집단을 알고 있었고, 그 집단에 속한 이들 중에서 최근에 얼굴을 보았던 이도 알고 있었다.

         

       “토마스 B 스티븐슨(Thomas B Stevenson).”

         

       성공회 윈체스터 교구의 교구장 주교이며, 신성주술을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는 신성술사.

         

       “그래, 저번에 안면을 익혔었지.”

         

       진성과 토마스는 윌리엄이라는 망나니 하나와 강령술 때문에 얽혔었다.

       그때 진성은 토마스의 강령술에 대해서 경지에 비해서 조잡하고 어설픈 강령술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었다.

       하지만 그냥 교회에 있는 기록을 읽고 어설프게 사용해본 것에 지나지 않는 강령술과는 다르게, 토마스의 주력은 신성주술이었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를 기반으로 한 주술을 다루는 이들.

       이들은 성혈술(聖血術), 혹은 간단하게 혈주술(血呪術) 혹은 혈술(血術)이라 부르는 신성술을 다루며, 피를 대가로 온갖 효과를 만들 수 있었다.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기본이고, 물을 정화하거나 맛없는 와인에 납이 가득 담긴 피를 떨궈 맛있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으며, 머리카락이 나지 않게 저주를 걸거나 사람을 환상에 허우적대게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이런 신성주술에는 큰 단점이 있기야 했지만….

       적어도 그 단점은 효과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피에 성혈(聖血)의 성질을 부여해서 삿된 것을 물리치고 액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부적인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까?”

         

       “한 번 보고 그걸 알겠느냐?”

         

       이양훈은 슬쩍 보고 부적의 효과를 추리해낸 진성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진성이 주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진성 역시 토마스와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진성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탁했는데 흔쾌히 이것을 주더군. 미리 만들어둔 것이니 부담을 갖지 말라는 말까지 하면서 말이야. 아주 고마운 일이지. 나중에 기부라도 좀 할 생각이다.”

         

       이양훈은 그렇게 말하고는 부적을 다시 품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부적을 받은 건 받은 건데…. 네가 한 말도 있고 하니 찝찝하긴 하더구나. 그래서 외국으로 가는 일정은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했지.”

         

       투자와 관련된 일이기는 하지만, 꼭 내가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니 상관이 없을 것 같구나.

         

       이양훈은 말을 그렇게 하고는 진성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 대처가 올바른 게 맞냐고 동의를 구하듯이 말이다.

         

       진성은 그러한 이양훈의 말에….

         

       “하하. 아주 잘하셨습니다. 참으로 좋은 일이로군요.”

         

       그렇게 답해주었다.

         

         

         

         

        * * *

         

         

       ‘흐음.’

         

       진성은 이후 이양훈과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돌아가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건 미국으로 가는 것은 막기는 하였구나.’

         

       그의 의도와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목적이 이루어지기는 했다.

         

       어찌 되었건 이양훈이 미국으로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허허. 부적이 먹히다니….’

         

       그 과정을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기는 했다.

         

       새가 먹었다니.

       아나스타시아가 가지고 온 크립티드가 그 부적을 날름 먹었다니.

         

       심지어 하나만 먹은 것도 아니다.

       그가 만든 것은 부적’들’이었다.

       그런데 그걸 무슨 새가 밭에 뿌려놓은 종자를 홀라당 다 집어 먹은 것처럼 부적을 다 먹었다는 것이 아닌가.

         

       황당할 수밖에.

         

       하지만 뭐….

       어이가 없기는 해도 화는 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일은 잘 풀렸으니 문제는 없는 것이고.

       먹은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나스타시아가 만든 크립티드라지 않는가.

       아나스타시아를 닮아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을 하던 크립티드들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 정도는 뭐….

       향수마저 자극하는 것이기도 했다.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건물로 돌아왔다.

       그리곤 TV를 켜놓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양훈을 미국에 가지 못하도록 한 그 사건이 언제쯤 뉴스에 뜰까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일주일이 되었을 때.

         

       “뭐지?”

         

       진성은 평화롭다 못해 잠잠하기까지 한 상황에 이상함을 느꼈다.

         

       “어찌하여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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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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