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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9

    <509 – 과거회상은 위험해>

     

    황제의 부름.

    그것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따랐던 매스각키 황녀.

    그녀는 사지를 향해 찾아가고 있었다.

    황녀만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진범으로 지목될 인물은 오크노디와 리프.

    모두가 꼼짝 못 하고 자연스럽게 함정에 빠질 위기였다.

     

    “황제의 뜻입니까?”

    “제가 아는 것은 습격이 있으리라는 예고. 그리고 황녀전하를 제도로 모셔 오라는 분부뿐입니다.”

    “생사를 불문하고, 인가…”

    “…”

    “그걸 제게 알려주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암흑마나에 취했다고는 하나 제 딸조차 버렸을지 모를 황제폐하께서 어중칠검이라고 버리지 않겠냐고.”

     

    아가씨의 의뭉스러운 언동이 알렉산더의 마음을 흔들었기에 일어난 심중의 변화.

     

    “그쪽의 친절한 아가씨가 심은 의심암귀가 먹혔다고 해야겠지요.”

     

    그것이 아가씨와 자신을 살렸다.

    아가씨의 머리를 만지던 리프의 손길이 우뚝 멎었다.

    어디까지 알고 저지른 것인가.

    알렉산더의 마음은 의도적으로 흔든 것일까.

    흔들리지 않았다면 어쩔 작정이었을까.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마차에 탑승한 걸까.

    의문은 많지만 무엇하나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녀가 모시는 아가씨는 처음부터 줄곧 그런 존재였기에.

     

    “달아나고 싶지는 않습니까?”

    “저는 아가씨를 모시는 메이드. 아가씨를 두고는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집사와의 약속대로 오크노디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 * *

     

     

    매스각키 황녀는 자신만 따로 다른 마차를 배정받아 불만이 가득했다.

    어째서 오크노디와 함께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

    제도에 돌아가기까지 족히 며칠은 걸리는데.

    그 긴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하는 걸까?

     

    ‘나도 참 많이 변했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이라면 황녀로서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하는 일상에 지쳐 이런 휴식시간이 간절했을 터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카데미 입학 이전에는 꿈도 못 꿀 하드한 스케쥴을 보내면서도 혼자만 가만히 있는 시간이 괴롭게 느껴졌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허접추종자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 모셔야 할 주인이 사라졌다고 패닉에 빠져서 학업도 내팽개치고 그러면 혼쭐을 내줄 거야♡’

     

    두고 온 추종자들을 향한 걱정.

    다른 세력과의 격차에 대한 우려.

    무사히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

    그런가.

    어느새 내 안에서 아카데미의 생활이 이렇게나 중요해졌던 건가…

    새삼 우스웠다.

    암흑마나만 해도 예전에는 그렇게 질색을 했는데.

     

    ‘재능의 벽을 마주하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강해지고자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심취하는 힘을 이렇게 직접 습득할 줄이야.’

     

    후회는 없다.

    그녀는 돈이 많으니까.

    그녀가 품은 암흑마나도 순도가 매우 높다.

    암흑마공을 사용할 때마다 신체가 갈려나가고 폭주의 위협에 시달리는 다른 암흑마나 사용자들과 달리, 그녀의 안정성은 독보적인 수준이다.

    어쩌면 그녀에게도 암흑마나 친화력이라는 것이 제법 높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해당 속성의 이미지와 유사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 친화력 상승의 조건이라면 그녀에게 암흑이란 그리 낯설기만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황제의 딸이다. 잡아라!

    -너희가 수탈해간 곡식 때문에 우리 마을의 아이들이 모두 죽었어. 이렇게 된 이상 황제도 아이를 잃어야 해. 그게 공평이라는 거잖아!

    -혁명군을 위하여!

     

    혁명군은 어디에나 있었다.

    굳이 도시대습격처럼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도 그녀가 호위를 대동하고 궁전을 벗어날 적이면 어디에서든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숲에 들어가면 반드시 마주치는 그린스킨 몬스터의 말예 고블린보다도 높은 빈도로.

    인간이 모인 도시나 마을, 가도를 지나칠 적이면 어디서든 나타났다.

    그리고 죽었다.

    어중칠검까지 갈 것도 없이 황녀의 호위를 맡은 황궁기사들의 손에 의해서.

    기사들의 부름을 받는 호위대의 호위병들의 손에 의해서.

    반드시 한 명은 동행하는 궁중마법사의 마법에 불타거나 감전되거나 얼어붙기도 하면서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죽었다.

    때로는 자기들이 달려들다가 마나석을 폭발시켜 폭탄처럼 펑 터지기도 했다.

     

    -언니…

     

    첫 나들이에 나갔을 적, 그녀의 순박한 동생이자 제국 3황녀 야요이는 폭발한 혁명군의 피와 살점을 뒤집어쓰고 영혼이 갈려나간 사람처럼 공허한 얼굴을 했었다.

    매스각키는 거의 본능적으로 야요이의 뺨을 붙잡고 그녀의 고개를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딱히 놀랄 것 없어♡ 허접평민은 원래 멋대로 펑펑 터지는 생물이야♡

    -정말로…?

    -물론이지♡ 주택담보대출을 못 갚아서 빚 폭탄이 터지고 연애운도 박살 나서 출산율도 터지고 곡식상납소출량이 미달 되어서 마을이 터지고 마을주민 전체가 강제노역소로 끌려가기도 하는걸~?

    -히익! 밖은 무서워요… 이제 돌아갈래…

     

    사람이 죽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고, 흔해빠진 일이니 그리 충격받을 필요 없다고.

    야요이를 달래면서 그녀는 깨달았다.

    아.

    나한테는 정말 당연한 일이었구나.

    놀랄 필요도 없는 그냥 평범한 일상이었구나.

    죽음이란 이렇게나 흔한 것이었구나,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겁 많은 여동생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면 큰 상처를 받고 영혼이 병들 것이라고.

    그러니 황가의 일원으로서 피할 수 없는 대외업무는 모두 자신이 맡았다.

    야요이는 그저 궁중에 박혀 평화로운 나날만 보내면 충분했다.

    위험한 일도 귀찮은 일도 전부 자신이 하면 된다.

    그러면 여동생의 영혼은 병들지 않는다.

     

    -할아버지. 엄마는 왜 나무에 목을 매단 거야~?

    -영혼에 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씨가 고운 사람은 그 고귀한 영혼으로 주변 사람을 치유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돌볼 힘이 부족하죠.

    -엄마는 약해서 죽은 거야?

    -그렇습니다. 그러니 매스각키 님은 강해지십시오. 영혼이 병들지 않을 정도로 굳세지셔야 합니다.

     

    수석궁중마법사의 충고는 옳았다.

    야요이는 힘든 일을 겪고도 평화로운 궁중생활을 겪으며 영혼이 병들지 않았다.

    끔찍했던 기억을 이겨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도 생겼다.

     

    -아바마마의 방식이 잘못되었기에 혁명군처럼 극단적인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겠죠. 저는 황위를 물려받아 제국을 개혁시키겠어요. 삶을 포기한 혁명군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약해빠진 아이가 기프트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힘을 얻고 돌아와 황위를 노리겠다고 선언했다.

    기프트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황위계승에 커다란 가산을 주겠다는 황제의 공언도 그 결심에 한몫했겠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아~? 공무도 전부 언니한테 빼앗긴 허접약골야요이 따위가 황제를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야요이 따위는 오후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햇살이나 즐기면서 티타임을 만끽하다가 댄스나 배우고 무도회에서 멋진 남자 꼬셔서 결혼이나 해버려♡

    -싫어요. 언니가 저 대신에 해왔던 노력이 무엇인지 저도 알 나이가 되었어요.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니 더욱 물러설 수 없어요. 절 위해 평생을 희생해온 언니의 희생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정말 바보다.

    그렇게 잘난 체를 할 거면 잘하기나 할 것이지.

    상급반 턱걸이 신세가 되어서 따르는 사람도 없이 어디서 뭘 하는 건지.

    그래.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빨리 돌아가야겠다.

    야요이의 성적이 나보다 좋아지면 안 되잖아.

    그러면 황실에서도 야요이의 쓸모를 재평가하기 시작하고 그 아이에게 일을 맡기기 시작하겠지.

    엄마를 닮아 여린 아이는 다시 영혼이 병들기 시작하고 언젠가 나무에 목을 매달지도 모른다.

     

    “적색마탑의 작렬술식은 응집, 충돌, 폭파…”

     

    오크노디와 함께 지내면서 교수님들 몰래 오크노디가 만들어준 노트를 활짝 펼쳤다.

    한 달의 부재 따위, 조금도 티나지 않게 만들겠어.

    부족한 출석일수는 전부 포인트로 구매하고, 강의를 듣지 않았어도 오크노디의 노트의 힘으로 모든 강의를 완벽하게 소화해낼 거야.

    불안에 떠는 일 없이.

    뭐든지 척척 다 해내는.

    그런 완벽한 황녀가 될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야요이가 설 곳 따위는 어디에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전한 별궁에 돌아가게 만들 때까지!

     

    쿠궁.

     

    그런데 갑자기 마차가 멈췄다.

     

    “하아? 황족의 호송마차는 절대로 멈추면 안 되는 마차 아니었어~?”

    “황녀전하. 호송마차의 운행이 불가피하게 중단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유가 뭔데~?”

    “호송마차의 진행경로에 장애물이 없도록 확인하고 보고해야 할 도로교통부에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외교관저를 통한 확인 역시 먹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도로의 안정이 보장되지 않아 마차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풉풉. 일 너무 못해. 세금도둑. 국민의 수치야♡ 조금은 기다려줄 테니 빨리 확인해♡”

     

    황가의 일원을 노린 테러를 방지하고자 초고속으로 이동하며 대륙각지를 누비는 호송마차.

    그 안전이 위협받는 지금, 매스각키는 대범했던 어린시절과 다르게 겁이 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암흑마나를 습득하면 보통은 사람이 겁이 없고 미치광이가 된다던데 자신은 왜 겁쟁이가 되는 걸까?

     

    -황녀님, 오크노디를 무찌르고 황녀펀치로 수석의 자리를 쟁취해주세요!

    -되는대로 노력해볼게♡

    -황녀님, 저는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고향에 두고 온 약혼녀와 결혼할 예정입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는데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여기 약혼녀의 사진에 축복을 걸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공짜로 드리는 부탁은 아니고 여기 아버지의 유품을…

    -…너, 졸업하기 전에 무조건 죽을 것 같아♡ 사망플래그 너무 많아♡

     

    무심코 떠오른 추억들이 답을 알려주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잃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만족스러운 매일을 보냈다.

    그래서 겁이 생겼다.

    역시 난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해.

    풉풉 웃는 그녀에게 마차 밖에서 거구의 어중칠검 히스클리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녀전하. 절대로 마차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히스클리프?”

    “황녀전하를 노리는 습격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다.

     

    “혁명군은 오는 길에 망했는데~?”

    “혁명군이 아닙니다. 의복과 무기는 혁명군을 표방하고 있지만 기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혁명군이 아니면 누굴까.

     

    “태자 전하께서 보낸 자객입니다.”

     

    아하. 너무 열심히 노력하는 나를 진지하게 두려워하는 오라버니가 있었지 참.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쿠소가키가 아닌 매스각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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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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