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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9

        

         

       결심이 선 진성은 미국으로 향하는 표를 끊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가 미국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바로 비행기였다.

         

       물론 불안이 있기는 했다.

       지금까지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으니까.

       정말 재수가 없으면 진성이 탄 비행기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벌떡 일어나서 총을 들고 위협을 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배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었으니까.

         

       일단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로 이동하는 배가 없었다.

       물론 아예 갈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화물선에 타거나, 크루즈를 빌리거나, 요트를 빌려서 타거나….

       충분히 진성이 쓸 방법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할만한 가치가 있냐고 한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직접 교섭을 하거나 인맥을 빌려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냥 표를 끊고 느긋하게 한 번에 갈 수 있다면 모르되, 굳이 이런 절차까지 밟아서 배를 탄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배에 탑승했을 때 벌어질 일도 뻔했다.

       대대로 뱃사람과 미신은 매우 친숙한 관계였다.

       아니, 친숙한 수준을 넘어서 아예 삶 자체가 미신과 결합이 된 수준이었다.

       정말 얼토당토않은 미신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있어선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라는 것은 너무나도 변덕스러운 것이라서, 미신이라도 믿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뱃사람에게 있어서 주술사라는 존재는…어지간한 VIP보다도 중요한, 귀인 중의 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신을 믿는 것을 넘어서 미신을 다루는 이들이었으니까.

         

       만약 진성이 배에 탄다면?

       뱃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배가 무사히 항해할 수 있도록 의식을 해달라, 부적이라도 써달라, 좋은 말씀이라도 해달라, 점을 봐달라 등등.

       수많은 요청이 물밀듯이 몰려올 것임은 분명했다.

         

       물론 그 요청에 걸맞은 극진한 대접이 따르기야 하겠지만….

         

       그 극진한 대접에 기뻐하기에는 진성은 너무 닳고 닳아있었다.

         

       그렇기에 진성은 귀찮은 일을 겪는 대신, 약간의 부담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목적지는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John F. Kennedy International Airport).

         

         

         

        * * *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난기류도 없었다.

       승무원들은 친절했으며, 승객들은 그 흔한 진상조차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는 쉽게 하늘로 올랐고, 평화로운 비행 끝에 공항에 도착했다.

         

       그렇게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내리자 그는 익숙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내는 체향이 뒤섞여서 만드는 묘한 향기였다.

         

       진성은 그 냄새를 맡으며 공항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택시 하나를 골라잡았다.

         

       “어디로 가십니까?”

         

       “월 스트리트로 가주시죠.”

         

       또박또박하고 느릿하게 목적지를 묻는 기사에게 진성은 유창한 영어로 대답했다.

       이번에 진성이 사용한 말투는 영국식 억양이 섞인 영어 발음이었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듯한 느낌이 드는 미국식 영어 발음에, 상류층 발음이라고도 불리는 옥스브리지 영어(Oxbridge English)를 약간 섞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게 했다.

         

       “오, 미국인이십니까? 아니면 영국인?”

         

       부잣집에서나 쓸법한 고급스러운 영어 발음에 택시 기사는 흥미가 생겼는지 질문을 던졌다.

         

       “하하. 그냥 외국인입니다.”

         

       진성은 택시 기사의 말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그냥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때도 진성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경박한 느낌이 들지 않게 동작을 했다.

       마치 몸에 예절이 박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택시 기사는 그런 진성의 모습을 백미러로 흘끗 보더니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부유한 집안사람인가 보군.’

         

       운전대를 잡고 있던 중년의 백인은 진성을 외국에서 온 부잣집 자제라고 여겼다.

       유학이라도 갔다 온 것 같은 유창한 발음, 동양인임에도 몸에 서양의 느낌이 잔뜩 배어있는 것, 동양인이라고는 하지만 젊다 못해 어려 보이기까지 한 외모, 몸에 걸친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옷, 관광을 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촐한 수준의 짐까지.

       그 모든 것이 진성을 비즈니스나 교육 때문에 미국에 방문한 사람으로 여기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진성이 의도한 것이었다.

         

       ‘지금의 미국은 미국 밖에 관한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현재의 미국은 고립주의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냥 자기들끼리 잘 살면 그만이라고 여기며 울타리를 두르고, 울타리를 높여서 담장을 만들고, 그 담장을 겹겹이 쌓아 성벽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을 반대로 말한다면, 줄어든 외부에 관한 관심만큼 내부에 관해 관심을 보인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내부’에는 단순히 미국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 오는 이들 역시,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대상이었다.

         

       그리고…이러한 관심의 첫 번째 관문은 바로 공항이었다.

         

       ‘아마 지금 활발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있겠지.’

         

       네오콘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 시점부터 미국은 자유보다도 국가의 안전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국가에 대한 안전’을 중요시하게 된 것은 훨씬 이전일지도 모른다.

       911테러가 일어나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테러에 신물이 나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때부터 안전을 위해서는 자유를 조금은 침해해도 된다고 여기게 되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침해의 범위가 넓어지며 지금에 이르러….

         

       ‘공항은 거름망이며, 1차 관문이다.’

         

       마침내 미국은 안전을 위해서 외국인마저 감시하기에 이르렀다.

       아주 은밀하게, 그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말이다.

         

       이는 어찌 보면 얼마 전 진성이 일본 공항에서 보았던 주술사에 대한 편집증적인 경계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물론 훨씬 포괄적이고, 느슨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단 미국의 공항에는 외국인들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대놓고 설치되어 있는 CCTV?

       그건 편린에 지나지 않는다.

         

       폭탄이나 마약을 검출하기 위해서 최첨단 기술을 동원한 장치들을 쫙 깔아놓았고, 공항 곳곳에 사람의 안면을 인식한 뒤 데이터베이스에서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었다.

       테러범이나 국제 수배가 된 범죄자가 나타난다면 즉시 경찰이나 정보기관 쪽으로 신호가 가도록 말이다.

       거기에 능력자를 알아내기 위한 장치 같은 것도 사방에 깔려 있었으며, ‘좋지 않은 의도’로 미국에 방문한 능력자를 제압하기 위해 요원들도 공항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근처 건물에는 저격수가 있고, 공항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위성도 있으며, 미국에 해를 끼치기 위해 찾아온 능력자들을 태울 위장 택시도 있었다.

         

       이걸로 끝이냐?

       아니다.

         

       지금 진성이 타고 있는 이 택시.

       이 택시에도 안전을 위한 장치가 있었다.

         

       일단 첫째로, 블랙박스가 있었다.

       택시 내부에는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이 카메라는 내부를 찍고 음성을 녹음하고 있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택시 기사의 안전을 위해서’ 설치가 되어있는 것이라고는 했지만….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전송되고 있지.’

         

       당연히 진짜 목적은 위험한 이들을 거르기 위해서였다.

       공항에서 거르지 못한 이들이 택시에서 자연스럽게 걸러지도록 만든 것이다.

       택시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는 영상과 음성을 정보기관으로 보냈고, 거기서 ‘기준’에 걸린 이들이 나타날 때 신호를 주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위험하다고 여기지 않는 이들에 대한 자료들 역시 기관에 있는 이들이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는 구조였다.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맞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불법이 아니다.

         

       뭐…정확하게 말하자면 불법이지만 불법이 아니기도 했다.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행위’는 불법이 아니었지만, 개개인을 촬영하고 그것을 불특정 다수가 멋대로 살펴보는 행위는 불법이 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넓게 해석할 수 있는 만큼, 무마하기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이 일의 주체가 미국 정부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기에 진성은 의태했다.

       가장 안전하고, 친숙하고, 그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모습으로.

         

       부유함과 고급스러운 느낌을 한껏 풍겼고, 미국인들이 상류층이라고 여기는 옥스브리지 영어 억양을 섞고, 첫 목적지를 월 스트리트로 지정함으로써 돈과 인맥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했다.

       그리고 어려 보이는 외모에 걸맞은 학생과 사회인 그 중간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이 의태는 1차 거름망에서 완벽하게 통과해, 그를 미국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게 만드는 훌륭한 한 수가 될 것이다.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긋 웃었다.

       자신은 안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월 스트리트에서 누군가를 만날 것이 너무나 기대된다는 것처럼.

         

       그리고 이러한 진성의 태도에 택시 기사는 완전히 경계심을 풀었다.

       그는 중간중간 가볍게 농담이나 건네며 운전했고, 그를 무사히 월 스트리트까지 안내해주었다.

         

       “여기 요금입니다. 그리고 이건 팁입니다.”

         

       “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그렇게 진성은 월 스트리트에 도착했다.

       택시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쓰레기 같은 냄새였다.

         

       뉴욕 특유의 냄새.

       분변과 음식물 쓰레기들이 내는 묘한 악취가 진성의 코를 자극했다.

         

       진성은 그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경계심을 사지 않기 위해 월 스트리트로 왔는데 바로 다른 곳으로 향하면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겠는가.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에서 시간을 좀 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좋은 느낌이 드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그 사람을 시작으로 인맥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 말이다.

         

       그렇게 진성은 높고 거대한 건물들 사이를 거닐었다.

         

       사람.

       사람.

       사람.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길을 뛰고, 걷는다.

       어떤 이는 우두커니 서 있었고, 어떤 이는 고개를 푹 떨구고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어떤 이는 술을 진탕 마시고 골목길에서 누워 있기도 했고, 어떤 이는 계단에 걸터앉은 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날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기도 했고, 어떤 이는 정말로 하늘을 날기도 했다.

         

       “흐음?”

         

       진성의 눈에 허공에 떠 있는 사람이 들어왔다.

         

       난다.

       사람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건물의 고층에서 날아오른 사람이 허공에 부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사람에게는 날개가 없었고, 호기롭게 날아오른 이는 그대로 중력에 이끌려 바닥으로 추락했다.

         

       쿠웅-!

         

       그렇게 추락한 사람은 볼품없이 바닥에 추락했고, 둔중한 소리와 함께 몸이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자의 몸에서 나온 체액이 사방으로 퍼졌고, 재수 없게도 그 근처에 있던 사람의 몸에 튀었다.

         

       “Fuck That Shit!”

         

       피와 뇌수 등을 정통으로 얻어맞게 된 남자는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Fuck! Fuck! Fuck-!”

         

       그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 양복에 묻은 체액을 털어냈고, 손수건을 꺼내서 양복을 닦으며 말했다.

         

       “빌어먹을! 비싼 양복이 더럽혀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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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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