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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세희 연구소 안쪽에 위치한 회의실에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실에 있는 것은 이세희, 박서아, 김중뢰.

    이렇게 3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회의실의 화이트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세희 연구소 회색 사신 긴급 대책 회의.>

    “그럼 회의를 시작하죠.”

    김중뢰가 묵직한 목소리로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회의는 회색 사신과 사람의 접촉이 너무 잦은 것을 문제시 하는 부소장님과 소장님의 견해 차이를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회의 시작 선언이 울리자 세희는 잽싸게 말을 시작했다.

    “사진을 보면 변화는 명백해. 사소하다고 넘기기도 힘들어. 회색 사신 일이니까.”

    세희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희가 통통 두드린 탁자 위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사진 위에는 작은 글씨로 ‘예린on.’ 혹은 ‘예린off.’ 가 적혀있었다.

    모두 회색 사신이 지내는 격리실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미묘한 차이가 존재했다.

    ‘예린off.’ 쪽이 조금 어두워보였다.

    회색 사신의 빛이 조금 약해보이고, 표정도 살짝 침울해보였다.

    반대로 ‘예린on.’쪽은 조금 밝아보였다.

    회색 사신의 빛이 좀 더 뚜렷해 보이고, 표정도 살짝 밝아보였다.

    사진을 본 서아는 손을 살짝 까닥이고는 발언을 시작했다.

    “저게 예린 연구원을 회색 사신으로부터 격리한 결과라는 건 이해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군요. 특급 위험 오브젝트와 특정 인물과의 접촉이 빈번한 건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요?”

    서아는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게다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가능성도 높아 보여요. 저절로 다른데 흥미를 붙이고 밝기를 회복할 가능성도 있어요.”

    세희는 그 말에 반박했다.

    “그 ‘다른 곳에 붙이는 흥미’가 연구소 입장에서는 별로 좋지 않을걸?”

    주르륵 늘어놓는 사진들.

    불바다가 된 격리실 한가운데 서있는 사신의 사진. 

    팔다리가 박살난 오브젝트를 내려다보는 사신의 사진.

    격리실 벽에 이집트 벽화같이 사신 모양 구멍이 뚫린 사진.

    사신이 일으킨 여러 가지 사건 기록 사진이었다.

    “예린이가 없는 사신이는 흉포하다고.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대형 사고를 치고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느낌? 의외로 사람들을 잔뜩 붙여주면 귀찮아하는 것 같아도 엄청 얌전해져. 물론 예린이가 붙으면 혼자서 해결! 가성비가 좋아.”

    말을 마친 세희는 다시 사진을 주르륵 늘어놓았다.

    피아노 치는 파란 도마뱀의 다리 한 쪽을 붙잡고 들어 올려 피아노 치는걸 방해하는 사신이 찍힌 사진.

    해골 거미를 격리한 격리실 유리에 볼을 밀어붙인 채, 정신없이 구경하는 사신이 찍힌 사진.

    3발 자전거를 즐겁게 타고 있는 사신이 찍힌 사진.

    “이건 최근 찍은 사진들이야. 벌써 다른 격리실을 마구 돌아다니고 있어. 뭐, 사신이가 인간을 공격하거나 그러지는 않으니까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도 괜찮긴 해.”

    똑. 똑. 똑.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서아의 고민이 깊어지던 회의는 갑작스러운 노크소리에 끝이 났다.

    “소장님. 나와보셔야겠습니다. 회색 사신이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으로 인해 실종되었습니다.”

    ***

    연구원들이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의 반응을 기록하는 격리실.

    그 격리실 안에서 인형은 나에게 초대장을 건네줄 뻔했다.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이 초대장을 공손히 건네주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초대장을 회수했다. 

    그리곤 뒤로 돌아서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연구원들에게 다가가서 초대장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마치 준 적이 없다는 것처럼.

    내가 그 인형 앞에 서면 마치 안 보인다는 듯이 다른 곳을 향해서 몸을 돌렸다.

    빙글.

    내가 돌면 인형도 돌았다.

    빙글.

    내가 돌면 인형도 또 돌았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는 초대장을 건네줄 생각이 없어 보이니, 정공법보다는 기습으로 초대장을 탈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유령화로 숨어서 살금살금 기회를 노렸다.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이 격리실 안의 다른 연구원에게 초대장을 건네주는 순간 실체화하여 초대장을 붙잡았다.

    잡았다!

    ‘응?’

    하지만 인형은 초대장을 있는 힘껏 쥐고서는 넘겨주지 않았다.

    인형과 내가 서로 초대장을 당기는 상황.

    최선을 다해 당겨보지만, 초대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대로 인형도 나를 떨치려고 하지만, 작은 인형의 몸으로는 힘들겠지.

    계속 이어질 것 같았던 비등비등한 상황은 갑작스럽게 끝났다.

    인형의 꿰며진 입을 막고 있던 흉측한 실밥이 뜯어지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으어어어어어!”

    인형은 듣기 싫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근육이 마구 그 크기를 늘려가더니 인형 옷 상의를 찢어발기며 드러났다.

    둥근 얼굴에 상반신 탈의를 한 근육질 인형이라니.

    이런 건 존재해선 안 된다.

    근육질이 된 인형이 초대장을 당기자, 더 이상 두발로 버티고 서있을 수 없었다.

    이리저리 흔드는 대로 갈대처럼 휘둘러지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초대장을 놓치고 튕겨나가, 격리실 안을 데굴데굴 굴렀다.

    ‘!’

    발끈한 나는 인형의 사망 조건을 확인했다.

    [테마파크 스탬프 10개를 모은다.]

    좋아! 다행히 귀찮은 조건을 가지고 있네.

    초대장 안 줬다고 죽이는 건 좀 그러니까, 죽이지 않는 선에서 해결해야지.

    저 정도로 간접적이고 번거로운 조건이면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뚜벅뚜벅, 당당한 발걸음으로 인형에게 다가가 인형의 양어깨를 잘라버렸다.

    “그에에에에엑!”

    인형은 양팔이 떨어져나간 고통에 바닥을 버둥거렸다.

    흥, 그러길래 진작에 줬어야지.

    바닥에 떨어진 <스마일 테마파크로 초대합니다!>라고 적힌 봉투를 주워들었다.

    봉투를 찢고 내용물을 꺼내자, 그 안의 내용물은 간단한 엽서였다.

    엽서의 뒷면에는 테마파크로 가는 방법이 지도와 함께 적혀 있었다.

    약도랍시고 그려진 것은 지도라고 보기에도 애매했다.

    대충 그려둔 지렁이 그림이라고 하는 쪽이 나아보였다.

    가는 방법은 더욱 가관이었다.

    <교통편: 없음.>

    <주소 : 없음.>

    <도보 : 불가능.>

    앞면에는 테마파크의 소개문이 적혀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이 초대장을 받으신 모든 분들을 스마일 테마파크로 초대합니다!>

    <이 초대장은 양도할 수 없으며,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만 합니다.>

    <총 9종의 놀이기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놀이 기구가 너무 적은 것 같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하니까요.>

    <9종을 모두 즐긴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요!>

    <스마일 테마파크에서 인생 최고의 오락을 즐기세요!>

    소개문을 모두 읽자, 엽서에서 어떤 힘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 힘에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점점 소리가 멀어졌다.

    인형의 구슬픈 울음소리도 점점 멀어져갔다.

    주변도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주변이 아예 까맣게 변한 순간.

    어느새 나는 전혀 모르는 곳에 있었다.

    ***

    아침 해가 빛나는 탐정 사무실, 흔들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단순한 실종자 수색인 줄 알았던 의뢰는 파고들다보니 무려 ‘메이커’와 연관된 큰 건이었다.

    의뢰와는 상관없어서 그냥 나왔지만, 부천 연구소에서 벌어진 인신매매와 잔혹한 실험들은 심상치 않아보였다.

    거기에 이번 박람회 테러 사건과의 연관성까지 터져 나와서, 부천 연구소로 경찰들이 잔뜩 들이닥칠 예정이었다.

    지금 부천 연구소에는 조사를 위해 검은 녀석이 남았는데, 엄청나게 번거로워지겠어.

    경찰이랑 조사 결과 공유하고, 연구소를 조사하던 경위 밝히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아니지, 오히려 아가씨가 있으니 의외로 간단하게 정리되려나?

    부천 연구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선배! 저 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후배 1호.

    후배 2호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까, 오래된 후배는 1호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혜진은 어때?”

    “별로 좋진 않아요. 그래도 금세 기운 차리겠죠? 황금뿔이니까?”

    “그거야 모르지. 멘탈리티는 개인차가 심하니까 말이야.”

    의뢰가 완료된 뒤, 혜진은 의뢰비를 낼 돈이 없으니, 뿔을 팔아서라도 내겠다고 했다.

    물론, 당연히 거절했다.

    불법이니까.

    거기에 언니의 죽음으로 충격받은 상태에서 뿔까지 자르면 100% 죽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 돈을 가져와도 뿔이 없어졌으면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렇다고 돈을 구할 방법이 없는 소녀에게 돈을 닦달할 생각은 아니었다.

    격리 구역을 나온 지도 얼마 안 돼서 일자리 찾기도 어려울 테지.

    게다가 황금뿔을 노리는 사람도 많아서 황금뿔을 가진 사람에게는 3배는 흉흉한 세상이니, 조금은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나면 연락해! 일할 곳을 못 찾겠으면 후배 2호로 받아줄 테니까.’ 라고 말해뒀으니 생각이 있으면 연락을 하겠지.

    그래서 생긴 게 예비 후배 2호, 혜진.

    내가 감으로 받은 의뢰는 언제나 보상이 엄청 좋은 의뢰였으니 이번도 그럴 거다.

    이번 의뢰는 큰돈을 버는 의뢰는 아니었으니, 2호가 나중에 큰 도움을 준다는 뜻이겠지.

    “흥, 흐흥.”

    후배 1호가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망치 두 개를 광이 나도록 닦고 있었다.

    “…? 지금 뭐하는 거야?”

    “아 후배 2호니까 망치도 2개를 써야죠!”

    “아….”

    나는 두통이 심해져, 미간을 주무르며 한탄했다.

    사실, 후배 1호도 감에 따라서 고용했는데, 이번만큼은 내 감이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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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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