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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그렇지만 어떻게?

       

       저 손을 뚫어내려면 뭘 해야 하지?

       

       이게 그가 평소 플레이하던 광전사였다면, 자신의 키만큼이나 도끼를 든 거인이었다면 그는 저 자그마한 손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필살의 일격을 가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발을 떼게 만들기 위해 어깨로 부딪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것도 아니라면.

       

       무수히 많은 방법이 주한의 머릿속을 지나쳤지만 그 모든 것은 그가 광전사를 플레이 할 때를 기준으로 맞춰져 있었다.

       

       검으로, 검성으로, 이 사람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주한은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주한의 검에 망설임이 생겼다.

       

       화령은 그 자그마한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미친 듯이 쏟아지던 검격이 멈췄다.

       

       주한이 팔을 멈췄기 때문은 아니었다.

       

       화령이 자신의 검지와 중지로 검날을 붙잡은 것이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공격 속에서 저걸 잡아냈다고?

       

       말이 안 되잖아.

       

       헛웃음이 샜다.

       

       주한은 언젠가 팀의 선배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벽이 너무도 높아서, 구름을 뚫고서 저 하늘 너머를 향할 정도로 높아서,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된다면 경외감만이 들 뿐이라고.

       

       투쟁심도. 질투심도. 좌절도. 분노도.

       

       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주한의 선배는 말했다.

       

       주한은 이전까지는 그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미친 놈처럼 들이박아서 이길 때까지 도전을 해야지.

       

       적어도 한 게임의 프로라면 남들이 이제 그만해도 괜찮다 말을 할지언정 자신이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허나 지금 주한은 선배가 한 말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불합리한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넘을 수 있는 벽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과연 내가 광전사를 들고 온다고 해서 이 사람을 넘을 수 있을까?

       

       거대한 도끼로 조금이라도 벽에 금을 내서 그 너머를 보는 게 가능할까?

       

       화령은 멍하니 서 있는 주한에게서 검을 빼앗더니 허공에 대고 가볍게 휘둘러 보였다.

       

       주한은 그 순간 검로를 따라서 번개가 내리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좋은 검이구나. 네게는 과분할 정도로.”

       

       명백한 도발이었지만 주한은 답하지 못했다. 화령의 말은 담백한 사실이었으니까.

       

       “이대로 가면 내게 위협한 번 못 줄 듯 싶으니 조언 하나 해주마.”

       “…네.”

       “이 검은 네가 본래 쓰던 무기가 아니다. 왜 검을 도끼처럼 휘두르느냐.”

       

       어라? 내가 도끼를 쓴다고 한 번이라도 말을 했던가?

       

       내가 프로인 줄도 몰랐던 사람이 내 주캐릭을 알 리도 없을 텐데.

       

       그러니까 내가 몸을 움직이는 것만 보고 내가 원래 쓰던 무기가 양손도끼라는 걸 알아챘다는 소리지?

       

       게임의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무술사범님 같네. 정말로.

       

       “아니지. 이런 식으로 말을 해봐야 알아듣지 못하겠구나.”

       “대충 알긴 했는데요.”

       

       그래도 주한은 프로다. 화령이 지적해준 것은 본인도 느끼는 바가 있는 부분이었다.

       

       실제로도 주한은 자신의 팀 코치에게 무슨 캐릭을 하든 광전사처럼 플레이하는 버릇 좀 버리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알면 무얼 하느냐. 어찌 개선해야 할지를 모를 텐데.”

       “어.”

       “되었다. 그대는 기본적인 실력 자체는 있는 듯하니 내 방법 하나를 알려주마.”

       

       자신이 상대했던 적을 떠올려보라고 화령은 말했다.

       

       자신이 여태 싸워왔던 적중에서 검을 다루던 이를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했다.

       

       그 자가 어떤 식으로 검을 휘둘렀는지를 떠올려보고 그 길을 따라가 보라고 했다.

       

       “어차피 지금 네겐 영향을 받을 기본조차 없다. 그럴 때는 무작정 따라 해보는 것도 괜찮지.”

       

       설명을 끝마치고는 화령이 검을 던졌다. 허공으로 날아간 검은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주한의 앞에 박혔다.

       

       주한은 검 손잡이를 잡으면서 화령의 말대로 검성을 플레이하던 유저를 떠올리려고 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얼마 전 그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검성 유저였다.

       

       현직 1군 프로들이 나오지 못하는 대회라고는 하지만 여러 유명 아마추어와 2군 프로들이 잔뜩 참여한 대회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그 유저의 검술을 떠올렸다.

       

       패배의 기억이 아파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주한이 상대해 본 사람 중에서 가장 검을 잘 휘두르는 건 그 사람이었다.

       

       분명 그 사람 검을 이런 식으로 잡았었지.

       

       “이제야 자세가 좀 나오는 구나.”

       

       화령은 그리 말을 하고는 한손을 들어 손가락을 까딱였다.

       

       서로의 HP상황은 화령이 유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주한의 공격은 단 한 번도 화령에게 닿지 못했으니까.

       

       그렇지만 아직 게임의 시간은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기회든 얼마든 있었다.

       

       애초에 한 발자국만 움직이게 만들면 내 승리잖아.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주한이 검을 휘둘렀다.

       

       어찌 보면 그의 검격은 이전보다 더 어설퍼졌다.

       

       패배 때문에 외면하고 있던 일에 얼굴을 들이밀고 상대를 따라하려 한 것이다. 어설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어설픔은 금방 사라졌다.

       

       주한은 여전히 자신이 패배한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의 풍경은 여전히 그의 꿈 속에서 악몽으로 자리 잡았다.

       

       선명한 악몽의 기억을 재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검격이 이어진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이전과는 달랐다.

       

       검로와 검로 사이에 또 다른 검이 끼어들어 연격을 만들어 낸다.

       

       수도 없이 이어지는 검격은 모두가 준비였으며 모두가 공격이었고 모두가 방어였으며 모두가 살초였다.

       

       모든 것이 거짓이자 진실이었다. 그것은 이미 검술이라기보단 검으로 이루어진 환각이라 부르는 편이 옳았다.

       

       물론 그 재현은 완벽하지 않았다. 패배의 기억을 떠올리며 더듬더듬 따라가는 검로엔 어색함이 가득했다.

       

       환각은 중간에 상대에게 현실을 보여주었고, 모든 것을 의심케 해야 할 검로는 너무도 정직했다.

       

       여전히 검은 화령에게 닿지 못했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주한은 자신이 펼치는 검에 매혹되어 버렸으니까.

       

       *

       

       그래. 이래야지.

       

       네가 이 게임을 업으로 삼는 자라면, 투쟁의 업을 짊어진 자라면 이 정도는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번에 왼 편으로 오는 참격은 허수구나. 왼 편을 노리는 척 하며 찌를 셈인가? 걷어내 주마.

       

       호오. 이번에는 정면에서 내리치는가? 이전에 몇 번의 거짓을 깔았기에 저것도 거짓으로 보이겠지만 달랐다. 이번엔 진심이었다.

       

       검을 붙잡은 손목을 쳐내 공격을 막아낸다.

       

       즐겁구나.

       

       모든 것이 진실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검술이라니. 이를 상대하는데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자. 다음은 무엇이냐. 그대가 보일 다음 수는. 다른 공격은. 다른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더냐!

       

       아아. 궁금하기 그지 없구나.

       

       그대가 흉내내는 이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대가 보고서 따라 걷는 길의 끝에는 누가 서 있는 것일까.

       

       그 자가 생각하는 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리도 화려한 검무를 펼치는지를 알아내고 싶구나.

       

       마음 같아서는 이 시간을 계속해서 즐기고 싶었지만 연극에는 제한시간이 존재했다.

       

       이제 흉내쟁이는 퇴장할 시간이었다.

       

       10초.

       

       남은 것은 단 10초였다.

       

       이만한 것을 보여주었는데 시간제한으로 패하게 만들어서는 안 됐다.

       

       이 자에게는 그에 걸맞는 패배를 맞을 권리가 있었다.

       

       자신의 공세에 취한 상대의 틈 사이로 권을 꽂아 넣었다.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함은 아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잠시 거리를 벌리기 위함이었다.

       

       “아이야. 허공섭물이라는 것을 아느냐?”

       “네?”

       

       몰라도 상관없다. 지금 알게 될 터이니.

       

       몸 안에서 내기를 끌어 올려 그를 주변으로 퍼트렸다. 그리고 나서 퍼트린 기를 아이의 주변으로 집중했다.

       

       기로써 손발을 휘어 잡아 움직임을 멈추고, 허리를 붙잡아 발악을 막고, 입을 붙잡아 소리를 막는다.

       

       아이의 몸이 위로 떠오른다. 천천히. 완만하게.

       

       나방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듯 아이가 허공을 난다.

       

       비행의 높이가 성인 열 명의 키를 합친 것만큼이나 높아진 순간.

       

       내기라는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본래 자리하던 태양의 옆에 하나의 태양이 더 생겨났다.

         

       얼마 있지 않아 심지가 모두 불타올랐고, 자신을 붙잡아 주던 것이 사라짐에 따라 아이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승리]

       [마스터 티어에 승급하셨습니다!]

       [전사의 영광스러운 전투를 기원합니다.]

       

       이윽고 승리의 글자가 내 앞에 떠올랐다.

       

       게임이 끝나자 방금 전 죽음을 맞이했던 아이가 다시 되살아났다.

       

       나를 즐겁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 했으나 내가 한 발을 내딛자 아이가 어깨를 흠칫하면서 떨었다.

       

       “왜 그러는 것이냐?”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닐까요? 솔직히 저도 방금 전에 그거 보면서 좀 무서웠는데.>

       

       내 일부러 상대의 패배를 장대하게 만들어주려 애를 쓴 것이거늘 그것이 저 아이를 두렵게 했단 말이더냐.

       

       으음. 그리 듣고 보니 그럴 것 같기도 하구나. 허공에서 화형에 당하는 경험은 쉬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채팅창의 여론도 그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천마 뒤에 왜 마가 붙는 지 알 것 같다.

       – 아무리 프로여도 아직 스물이 안 된 애한테 저런 짓을 ㄷㄷ…

       – 화령/논란

       – 멋있긴 했는데. 진짜 멋있긴 했는데. 이건 좀.

       

       아니 무어가 어때서 그러느냐. 어차피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기왕 죽을 거 조금 더 멋있게 죽는 편이 낫지 않나?

       

       무림의 무인 중에서는 부디 자신의 죽음을 영광스레 만들어 달라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단 말이다.

       

       좀 손속이 잔혹했던 것 같기는 하다만 나를 무슨 악마취급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과거 했던 일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거늘! 겨우 이 따위 일로 비난을 받아야 하다니 억울하구나!

       

       “괜찮으냐?”

       

       그래도 일단은 내 잘못이긴 한 듯 싶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에게 물었다.

       

       “네? 네! 괜찮아요. 좀 놀라긴 했지만.”

       

       거 보거라. 괜찮다 하지 않으냐. 녀석들 호들갑은 심해선.

       

       “수고하셨습니다. 마스터 올라가셨죠?”

       “그렇다. 자네가 마지막 상대였지.”

       “진짜 강하시네요. 이렇게 된 거 프로리그 오실 때까지 전승으로 와주세요.”

       “노력은 해보마.”

       

       이 연승이라는 것에 그리 집착하지는 않는다만 나를 이길 아해가 나오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그리 될 것이야.

       

       “헤어지기 전에 하나 물어보고픈 것이 있다만.”

       “뭔가요?”

       “방금 그대에게 그 검술을 보여준 자는 누구인가?”

       

       내 한 번 그 작자를 만나보고 싶구나.

       

       그 자가 펼치는 검술을 한 번 눈에 새긴 후 이 손으로 박살을 내고 싶어서 말이다.

       

       “요즘에 이름을 알리는 아마추어 검성 장인 분이에요. 닉네임이 분명 이순. 이었을 거에요.”

       

       이순인가? 기억하마.

       

       그 자와 투쟁하는 일은 분명 즐거울 듯 싶으니.

       

       “다음에 볼 때는 그대가 가장 잘 다루는 무기로 싸워보자꾸나.”

       “네. 그 때는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고서 아이와 헤어진 후 VR룸으로 돌아온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전에 상황이 은근 당혹스러워 눈치채지 못했다만.

       

       “이 녀석들아. 승급을 하는 데 성공했거늘 왜 축하를 해주지 않는 것이냐!”

       “화령 씨가 승급한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잖아요?”

       

       – 난 화령이 랭킹 1위 찍어도 그렇구나. 할 자신 있는데.

       – 나도.

       – 마스터 정도로 놀라기엔 보여준 게 너무 많아서.

       – 좀 아슬아슬한 맛이 있어야 축하를 해주지

       

       허어. 거 까탈스러운 녀석들이구나.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그제서야 칭찬의 말들이 몇 개 올라왔지만 엎드려서 절을 받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올린 걸로 50화가 되었었네요?! 저도 몰랐습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추천 댓글 선작을 보며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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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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