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1

        

         – 조장님! 지금 오고 계신 건 맞으십니까? 이유는 몰라도, 저희 쪽에 배정된 수색범위가 제일 넓어서 야간조 애들이랑 교통정리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조장님? 듣고 계십니까…? –

         

         “…….”

         

         여전히 통신 채널에서는, 졸지에 막중한 책임을 떠맡게 된 예하 전투원이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헬레나는 이제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계속 화장실에 숨어있도록 한 도망자를 떠올렸다.

         적어도 두 엔지니어 중의 한 명의 도움이라도 구할 수 있었다면 관제실에 숨겨 보기라도 했을텐데… 조금 미안했다

         

         남자에게 들은 설명, 혹은 그가 감금당한 동안 주워들은 것의 반.

         …아니, 막말로 반의 반의 반만 진실이라고 쳐도 그녀는 더는 파라다이스 사에게 이득이 된다면 어떤 방식이던지 간에 공헌할 마음이 사라졌다.

         

         그러나 자신은 일을 벌리고 도망가버리면 끝이라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크레딧이나 타 먹던 그들도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기에 선택한 침묵.

         조용히 어떤 보고가 오가는지 듣기만 한다.

         

         …물론 규정이고 법률이고 나발이고 모조리 무시하기로 마음먹었어도. 아직까지는 유효한 전투경찰 신원과 활성화된 권한을 쓰지 않는 건 바보짓이었으니….

         

         – 출입권한 확인되었습니다. 의료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

         

         매끄럽게 상승하기 시작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는 동요한 정신을 가다듬었다.

         

         겉으로는 태연함을 연기했으나 속은… 약간 곪아 들어가고 있었다.

         

         자기 발 밑에서 무슨 개지랄이 일어나고 있는 줄도 몰랐으면서 경찰도 썩 나쁜 일은 아니라고 아샤에게 자랑스럽게 설교했던 얼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자가당착으로 인해 피어난 혐오가 심장을 무겁게 짓누르고, 5대 메가 코프 중에서도 최대 자산 규모를 자랑하는 파라다이스의 잔혹함에 대한 규탄을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우선 두 눈으로 직접 HA층을 확인하고 나서.

         

         느긋한 게 아니다. 희생된 사람들을 구하긴 이미 한참 늦어버렸으니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하는 것뿐이다.

         

         “아이고오~ 나 죽겠다… 이 미친 견찰 새끼들아!! 이 의수 찌그러진 것 좀 봐라! 어떻게 책임질 거야?!”

         

         “……경찰은 도시의 안전과 무고한 시민분들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안타깝지만 차량 정차가 끝나기도 전에 창밖으로 철제 의수를 내미셔서 발생한 사고는 보상이 어려울 것 같습….”

         

         “세상에…! 이놈들이 이젠 블루 등급도 무시하는구나! 내 당장 시민권자 커뮤니티에 공론화해서…!!”

         

         “…그냥 사회질서 유지부와 얘기하실 수 있도록 직통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씹새끼.”

         

         문이 열리자 언제나처럼 온갖 앓는 소리와 말싸움으로 소란스러운 병원 풍경이 맞아주었다.

         

         헬레나는 자연스럽게, 피해입은 방문객들과 이쪽 책임자가 싸우느라 바쁜 접수대 근처를 지나쳐 안쪽에 위치한 직원 전용 병동으로 들어갔다.

         간혹 저런 곤란한 상황이 있으면 중재자를 자처하곤 했지만… 경황이 없는 지금은 무리였다.

         

         현재 그녀의 목표는 남자가 지하에서 빠져나올 때 방패로 삼았다던 연구원 겸 작업자, 통칭 박사.

         

         막사 구역을 도시 어딘가라 여기고 인질을 풀어주면서 유일한 무기였던 유리 파편으로 목 근처를 꽉 눌러서 상처를 입혔다고 하니, 변변찮은 반항도 못하는 비전투원이라면 줄줄 흘러내리는 자기 피에 당황해 곧바로 입원했을 거라는 판단이다.

         

         게다가 아무리 비밀 프로젝트라지만 한낱 직원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탈옥을 용납했을리도 없으니 상대는 적어도 지하 구역의 실세 중 하나.

         

         “목 부분에 상처….”

         

         늘어선 침상과 병실 투명 창을 살짝씩 곁눈질하면서 수색한다.

         

         …이 강행돌파의 유일한 문제라면 주먹구구식으로 사람을 찾는데 가장 큰 이정표가 인상착의인데.

         거기서 인상은 연구원이 입고 있었다는 오염방지용 방호복 때문에 정보가 전혀 없었고, 착의는… 만일 벌써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면 구분할 방법은 몸에 남은 부상뿐.

         

         그렇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진상에 도달하는 최후의 갈림길의 정답은 꽤나 쉽게 그녀에게 주어졌다.

         

         “윽…?! ……차라리 내가 직접 치료하는 게 낫겠군.”

         

         “죄송하지만 여기 비치된 수술장비는 허가받은 의료진만 사용 가능한지라….”

         

         “…나도 그걸 아니까, 참고 있는 걸세.”

         

         물 흐르듯 나오는 동종업계 종사자의 핀잔에 이런 복장을 착용하는 부서가 관문에 있었나… 싶었는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치료를 계속하는 의사.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방호복의 목 윗부분을 벗어 놓고 비스듬히 누워 경동맥 부근에 난 상처를 치료받는 중인 중년남성.

         

         “…찾았다.”

         

         똑똑…!

         

         마치 위급한 용무가 있다는 듯이 강하게 진료실 문을 노크한 후, 그녀는 기립 자세를 취했다.

         또한 세심하게 고개는 박사로 추정되는 자를 향해 고정해서 그의 주의를 끄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크흠! 이거 제가 자리를 비켜드려야겠군요.”

         

         “……그리 하시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의사가 먼저 재액을 피해 도망쳤고.

         급소의 상처가 봉합된 걸 손으로 매만져 확인한 박사는 콧수염을 씰룩이며 거만하게 대꾸했다.

         

         본론을 꺼내기 전에 조심스럽게 떠난 의사와 주변을 엿보는 섬세한 흉내까지 마치고 나서야 헬레나는 명령받은 적 없는 구실을 꺼냈다.

         

         “박사님, 그… 수확 구역에서 프로젝트에 관련해 손수 봐주셔야 할 문제점이 생겼다고….”

         

         “?! 그 거지 같은 들개 새끼를 잡았다는 희소식도 아니고, 또 다른 말썽거리가…? 대체 징수 부대는 뭘 하는건지 모르겠군! …그 와중에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통신이 아니라 마중을 보낸 것도 우습고.”

         

         …원래는 ‘재상품화 프로젝트’ 라는 구체적인 명칭을 언급해 확고한 믿음을 사려 했으나 그녀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재상품화 프로젝트는… 근원이 된 발상부터가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모든 인력은 곧 자원, 그리고 자원은 가공하면 상품이 된다.

         

         메트로폴리스 물가로 보면 거의 헐값이나 다름없는 가격에 시민증을 모른 척 거래해주는 파라다이스 코퍼레이션이지만… 그런 시민 친화적인 그들에게도 아무런 효용도 없고, 이득도 주지 않는 인간은 모조리 무가치하다고 정의하고 완전히 ‘분해’ 하는 시험적 비즈니스.

         

         박사를 비롯한 상급자들은 대놓고 이걸 면접이라고 칭했다 한다.

         

         백만 크레딧도 지불하지 않은 무연고자들을 감금하고 여러가지 검사를 하는 과정.

         

         그 사람의 재능과 육체를 바탕으로 기업에 기여할 가치를 계산하는 공정.

         

         …최종적으로 어느 기준치에도 합격하지 못한 인간들은 의료기술 연구에 소모해 버리거나, 그 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최대한 싱싱할 때 해부해서 모든 장기와 부품들을 필요한 구매자에게 유통하는 작업까지.

         

         그야말로 장벽 바깥의 인류를 주인 없는 물건으로 보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극한의 착취였다.

         

         일련의 면접 도중 합격한 사람들은 비록 미래는 저당 잡혔어도 어찌저찌 하베스트 플래닛 어딘가에서 살아있겠지만. 불합격한 이들은 당연히….

         

         “한데… 웬 경찰이… 혹시 실험체 운송에 차질이 생길까봐 현장 책임자 아가씨처럼 윗선에서 심어 놓은 인원인가? 쯧, 기밀 프로젝트는 항상 신중해야 하거늘.”

         

         “…….”

         

         슬쩍 띄워진 농간을 덥썩 물고 제 할말만 열심히 쏟아낸 박사는 훌쩍 몸을 일으켜 거침없이 다리를 놀렸다.

         

         성큼성큼, 묵묵히 뒤에 따라붙은 헬레나의 충직한 자세에 박사가 기꺼워하던 것도 잠시.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도 하급자인 그녀가 버튼을 누르지 않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도 않은 박사가 몸소 움직였다.

         

         – 출입권한 확인되었습니다. 수확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

         

         “…후우.”

         

         목적한 바를 달성한 걸 확인한 후 심호흡.

         

         일부러 이런 끔찍한 촌극을 벌인 이유도 별게 아니다. 헬레나 발렌타인이 정식으로 HA층에 발을 디디기 위해선 내부자의 협력이 필요했으니까.

         

         ……아직껏 상사에 대한 태도가 건방지다며 허튼소리를 내뱉는 박사?

         아마 길잡이로 부려지다가 드러나는 죄질에 따라 처우가 결정되지 않을까…?

         

         쿠궁…!!

         

         중화기 무기고로 위장했던 지하 계층은 정말 관문 밑바닥에 지어졌는지, 거슬리는 쇳소리와 동시에 승강기가 안착했다.

         

         고작 입구를 보고 뭘 판단할 수 있겠냐마는.

         어느모로 봐도 폭발물이나 교전용 로봇이 쌓여 있는 창고와는 거리가 먼 정경이다.

         

         깔끔한 내부 통로,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거치는 멸균 시설과 방호복 거치대, 그리고 그 앞을 지키는 징수 부대원.  

         

         마침내 그걸 목도한 헬레나가 입술을 깨무는 사이, 이들을 보고 좀 배우라는 듯 당당하게 선행한 박사는 직책이 무색하게도 즉시 제지당했다.

         

         “…정지. 아까 전의 변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신 건 이해하겠으나… 아무리 박사님이라고 하셔도 되는대로 비인가 인력을 끌어들이실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적당한 변명으로 넘어가는 건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이후로 벌어질 참극은 유혈이 낭자할 게 뻔했기에, 그녀는 굳은 관절을 찬찬히 풀어주었다.

         

         “그게 무슨… 실무진이 일부러 나를 데려오라고 보낸 게 이 자가 아닌가!”

         

         “……? 박사님, 전투경찰 DS3-1은 이곳에 접근가능한 명부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작은 오해가 불러온 빈틈은… 교전에 있어서 치명적.

         

         이번엔 너그러운 검집이 아닌, 보는 이의 눈이 시릴 정도로 벼려진 칼날이 뽑아져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계획 : 음… 아나스타샤 만나는 곳까지 쓰면 딱 맞겠다!
    현실 : 이미 또 지각 + 피로 + 손가락은 또 뻐근해지기 시작함.

    그렇게 아샤는 이틀 휴가를 얻었네요… 부럽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