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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원래 연회란 거의 일주일에서 보름의 준비기를 거친 후 열리는 게 상식이었다.

         

       특히 귀족들이 벌이는 연회는 그 액수가 남다르기에 더욱 웅장하고 찬란하게 벌어져야 하는 바.

       하여 하루 만에 열리는 건 실상 불가능하지만.

         

       “여는 오늘 연회가 열리길 바란다.”

         

       -끝이었다.

         

       더는 반박은 없다.

       왕녀가 원한다고 하는데, 열어야지 그럼.

       원래 불가능한 일도 사람을 갈아 넣으면 가능으로 바뀌는 법이다.

         

       수백 명, 아니 천 명의 정예가 동원되며 연회 준비는 반나절 만에 완료됐다.

         

       그리고 생도들은 감탄을 마지않았다.

       아침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정원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연회장으로 변모, 아니 역변했다.

         

       천 명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만들어낸 성과였음이다.

         

       “어, 언제 여기 분수대가 생겼지?”

       “여기 꽃밭 아니었는데? 그냥 모래사장이었는데?”

       “미친!? 저거 다 보석이잖아!”

       “…저거 하나만 팔아도 5년 치 생활비가 생기겠는데.”

         

       분수대를 비롯하여 장식, 그리고 악단과 이동식 주방.

       어두운 밤하늘을 실시간으로 빛내는 마법 도구까지.

         

       돈지랄도 이만한 돈지랄이 없었다.

         

       …으음, 아닌가? 돈이 있다고 해서 이런 걸 할 수는 없으리라.

         

       “왕녀가 역시 대단한 거구나.”

       “그냥 왕녀가 아니지. 무려 왕태녀님이니까.”

       “헤에.”

       “근데 우리는 왜 이렇게 몰려 있냐? 다른 곳에 있지 않고?”

       “그럼 저기 귀족들 있는 곳에서 놀래? 놀고 싶으면 가봐.”

       “…아니, 절대 못 가지.”

         

       새삼스레 권력에 대한 아찔함이 드는 그들,

       교관에게 18-웅(熊)‧나한이란 괴상한 이름을 받은 검술학부 새싹 생도들은 한 자리 한곳에 뭉쳐 있는 상태였다.

         

       분명 그들을 위해 열린 연회지만 부담스럽기 그지없다는 듯이.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던가, 이처럼 한 평생 서민으로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 귀족들이 모인 자리는 어려운 것이었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불편하고 또 불편할 따름이다.

         

       특히.

         

       “으응…? 쿤타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쿤타나 곰돌이들 구경거리가 된 것 같다.”

       “착각이 아니라 진짜 구경거리인 겁니다.”

       “하긴, 신기한 조합이긴 하지.”

         

       농민, 거지, 부랑아, 용병 그리고 야만인.

         

       그들은 주목 받고 싶지 않아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긍정적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 의미로.

         

       아마 저들 중에는 호기심만이 아니라 질투의 시선도 가득하리라.

         

       왕녀의 호의를 산 그들이 아니꼬울 터.

         

       아니꼬운 이유?

         

       하층민이니까.

         

       왕국의 최하층들.

         

       비록 지금이야 아카데미 생도지만 그들의 신분이 어디 갈까?

       그들의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이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한들 평생 신분의 차별은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희는 왜 미어캣 무리처럼 뭉쳐 있냐? 뭐 죄라도 지었어?”

         

       압도적인 마이웨이와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신분이건 뭐건 상관하지 않을 터이지만.

         

       저 사람처럼.

         

       “교관님.”

         

       이한, 그들의 교관이 남들이 보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왔고, 서커스단 신비 동물을 구경하는 것처럼 그들을 보던 귀족과 생도들은 시선을 바로 돌려버렸다.

       귀족과 생도들 모두가 이미 입학식 사건을 들은 바가 있는 것이리라.

       허나 들은 바가 없을지라도 그가 무의적으로 내뿜는 위압감은 길거리에서 주먹 좀 쓴다는 놈들조차 깨갱거리게 만들 압박감이 있다.

         

       실제로 불칸에서 성난 멧돼지 한 마리를 손으로 찢어버리는 광경을 보았던 그들로선 마냥 저것이 위압감에 불과한 게 아님을 알고 있지만서도.

         

       그리고 그러한 위압적인 사내가 나름 상냥한 시선을 던지며 그들을 슥 훑어보았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검술학부 전원이 모여 있군.”

       “로엔 공자님이랑 데미안 조교는 없는데요?”

       “로엔 생도는 무슨 볼일이 있다며 사라지더군. 뭐 원래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녀석이니 놔두면 된다. 그리고 조교? 그 녀석은 연회 즐길 시간이 어디 있어. 보고서 작성해야 하는데.”

       “무슨 보고서요?”

       “학장한테 건네야 하는 보고서.”

       “그, 그거 원래 교관님이 적으셔야 하는 게….”

       “내가 왜? 조교가 있는데?”

       “…….”

         

       …가만 보면 그들 중 가장 고생하고 불쌍한 사람은 데미안 폴렛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시답지 않은 생각을 공통적으로 떠올리려 할 때.

         

       “모두, 고생 많았다.”

         

       -……….

         

       갑작스러운, 그리고 생뚱맞은 발언에 검술학부 모두가 눈을 끔뻑거렸다.

         

       “내가 고생했다고 하는 건 마냥 곰돌이들만 말하는 게 아니다.”

       “웅나한이라고 안 하시는 겁니까?”

       “테디베어라 부르는 수가 있다.”

       “그, 그냥 곰돌이가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식들, 머리만 굵어져선.”

         

       시답지 않은 농담과 함께 풀어진 분위기 속.

       그는 생도들 전원과 정성스레 눈을 마주했다.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일단 병아리들.”

       “네, 네에?!”

       “너희도 고생이 많았다. 항상 줄넘기 열심히 하는 것도 좋고, 꾀부리지 않았던 면도 좋았다. 뭣보다 너희가 곰돌이들 교양 과제나 다른 강의 과제를 정리해서 준 것을 안다. 너희의 꼼꼼함과 섬세함에 감사한다.”

       “그, 그게, 그건 그냥….”

         

       별것도 아니었다는 듯.

       그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해본 것이라며 횡설수설하는 그녀들이었으나, 이한은 묵묵히.

         

       “곰돌이들, 당장 대가리 90도로 숙이면서 인사해라. 너희 성적 챙겨주신 기특한 분들이다.”

         

       -악!

         

       본능적으로 명령에 따르며 그들은 즉각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보였다.

       허나 명령을 받아서만이 아니라, 진심 어린 감사함이 있기에 그들의 감사에는 장난이 없었다.

         

       오늘 있던 승리의 핵심은 마냥 그들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기에.

         

       보이지 않는 응원과 도움이 있었음이다.

         

       “으으음-!”

         

       여전히 부끄러워 하는 소녀들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쑥스러움을 숨겼다.

       마냥 도도한 귀족 영애들인 줄로만 알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애들은 역시 아니었다.

         

       “그리고 도련님 녀석들아. 너희도 잘했다. 듣자 하니, 곰돌이들 비아냥거리는 놈들 손봐줬다면서.”

       “…그저 검술학부가 모욕당하는 게 불쾌해서 그랬습니다. 저들 또한 검술학부 소속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잘했다는 거다. 처음 만났을 땐, 마냥 재수 없는 도련님들이었는데, 이제 보니 착한 도련님들이었구먼.”

       “칭찬하실 거면 제발 그놈의 도련님 소리부터 없애주시죠.”

       “아직은 안 돼.”

       “으으음….”

       “아하하!”

         

       앓는 그들이었으나, 반대로 곰돌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설마 자신들을 위해 화를 내줬을지 몰랐으니까.

       나름 감동마저 받은 그들이었고, 시선을 받은 이들은 쑥스러운지 시선을 돌렸다.

         

       전우애.

         

       이한이란 험난한 절벽을 두고 같이 고생하는 그들이기에 느끼는 신뢰 어린 끈끈함.

       고생하며 친해진다는 게 딱 이런 말일 거다.

         

       비록 대놓고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분명히 그들에겐 신분을 초월한 우정 비스름한 게 생긴 것일 터.

         

       약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곰돌이들.”

         

       “…….”

         

       그들을 호명하는 이한이었고, 그들은 이미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었다.

       대체 무슨 말로….

         

       “-잘했다는 말은 안 하마. 솔직히 운이 좋아 이긴 거니까.”

         

       “…….”

         

       …그들은 어느새 눈물이 쏙 들어갔고, 다른 의미로 가슴이 출렁였다.

         

       섭섭함이란 종류의 출렁임이었다.

         

       “교관님….”

       “섭섭해 하지 마. 칭찬은 이미 다른 사람들한테 많이 들었을 거 아니야? 그럼 한 명은 쓴 소리를 해줘야지.”

       “…….”

         

       …역시 항상 예측을 벗어나는 사람답다.

         

       남들이 다 박수갈채를 줄 때, 꾸중을 주니까.

         

       허나, 이한은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다른 이들을 대했던 것처럼.

         

       “너희가 이긴 이유는 오직 주문쟁이들이 방심했기 때문이다. 주문쟁이가 차근차근 조심스레 싸웠으면 너희가 무조건 졌겠지. 3분만 넘겼어도 너희 체력이 다 해서 자멸했을 테니까.”

       “그건….”

       “반박할 사람 있나?”

       “…….”

         

       …없다.

         

       사실이었으니까.

         

       저 말대로 그들이 실전에서 전력으로 싸울 수 있는 시간은 3분이 한계, …아니다. 자세히 떠올리니, 전투 당시 2분을 넘어가던 순간 미치는 줄 알았다.

       경을, 기술을 실전에서 펼친다는 건 생각보다 더욱 험난하고 지독한 경험이었기에.

         

       만약 마법사들이 조금만 더 냉정하게.

       그러니까 막바지에 보인 자잘한 주문들이 처음부터 그들의 기동력을 묶거나, 그도 아니면 화력을 분산시키는 영리한 전법을 선보였다면?

         

       그랬다면 그들은 처참하게 패배했으리라.

         

       손 쓸 틈도 없이 볼품없게.

         

       이러한 점을 이한은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상대의 방심이 있었고, 너희가 상대방보다 두 명이 더 많았기에 생긴 의외성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운이 따랐다. 그러니 난 너희를 칭찬해줄 수 없다. 못한 건 못한 거니까.”

         

       “예에….”

         

       그들은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만 해도 무수한 군중에게 꽃다발을 받으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지만, 그들을 가르친 사람이 저토록 엄격히 말하니 허파에 들어간 바람이 빠져나간다.

       단점을 하나씩 짚어주자 보이는 오늘의 실수들.

       그리고 아찔했던 순간들이 뇌리를 스쳐가니 그제야 안색이 창백해지는 바.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그러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건 좋았다.”

         

       -!!?

         

       “군중 앞에서 도망가지 않았고, 불덩어리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았고, 마지막에 졌다 싶을 때도 포기하는 녀석은 없었다. 난 설사 오늘 너희가 졌더라도 만족했을 거다. 적어도 내 ‘제자’가 동료를 버리고 가는 겁쟁이는 아니었다는 건 기쁜 일이니까. 그러니 잘했다. 시합은 형편없었어도 너희의 기백은 분명 칭찬 받아 마땅한 거니까.”

         

       투욱.

         

       이한은 오늘 시합에 나갔던 이들의 왼쪽 가슴에 주먹을 툭툭 치며 지나갔다.

         

       콩.

         

       레비 폴트는 가슴이 아닌 머리만 살짝 터치해주는 세심함을 보이며.

         

       “열심히 했다. 이것만은 인정하마.”

         

       -…….

         

       그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저들의 교관을 보았다.

       각자 가슴과 머리를 매만지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느꼈다.

       그래, 교관은 그들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심장과 머리를 두들긴다. 용병식 격려군.”

       “무슨 격려입니까?”

       “머리와 심장을 전쟁터에서 무사히 지키고 돌아온 용병에게 해주는 격려지. 초보 용병들에게 자주 해주는 칭찬이지만.”

       “그렇군요.”

         

       한 번씩 과거 경력이 의심되는 교관다운 격려다웠다.

         

       “다른 녀석들도 들어라, 내가 말한 것처럼 경은 만능 같은 게 아니야. 그러니 내가 가르친 걸 부러워하지 말고, 너희가 가진 걸 아껴라. 너희가 익힌 게 저 녀석들이 익힌 것보다 더 안정적이고 우수한 것들이니.”

         

       도련님들.

       귀족 생도들은 축하는 해주지만, 어딘지 씁쓸함이 남아 있던 그들은 이한의 말에 움찔거렸다.

       여전히 불칸에 가지 못한 후회를 가슴에 두고 있던 그들이었으며, 오늘의 전투를 보고 가슴이 쓰라렸으니.

         

       그리고 교관은 이미 그들의 이러한 쓰라림을 알아채고 있던 모양.

         

       “아쉬워하지 마라. 너흰 아직 젊고, 나랑 함께할 시간이 길어. 그동안 제대로 단련시켜주마.”

       “…교관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무서운데 말입니다.”

       “죽지는 않아, 죽지는.”

       “이걸 웃어야 하는지 원….”

         

       농담인 것 같은데 전혀 농담 같지 않은 발언.

       그래도 듣고 있자면 위로가 되는 게 미성숙한 젊음의 심리란 것이리라.

         

       “너희 셋도 마찬가지다. 투기법이랑 경을 동시에 익혔다고 해서 무조건 강해지는 건 아니야. 하나가 더해져서 강해지긴커녕, 이도저도 안 돼서 마이너스가 되는 수가 있다. 그러니 너희는 경을 그냥 보조 바퀴 같은 수단으로 생각해라. 큰 의미를 두지 마.”

       “저희도 잔소리 받는 대상입니까?”

       “너희도 내 제자니까.”

       “…….”

       “그럼 이제 악담은 끝이다. 모두 연회를 재밌게 즐겨라. 그리고 쉬어라. 3일 동안 휴일을 줄 테니. 당분간 출석을 안 해도 좋다.”

       “…….”

       “농담 아니니까 좀 믿어, 이것들아.”

         

       -와아아!

         

       기쁨 어린 환호성.

         

       허나, 이것이 휴가를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인지, 아니면 그가 그들에게 건넨 인정에 대한 기쁨인지는.

         

         

       ─아마, 그들만이 알지 않을까 싶었다.

         

         

         

         

         

         

         

         

       “…자식들.”

         

       그의 말이 기폭제라도 된 듯, 단숨에 긴장감을 털어낸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연회를 즐겼다.

       또한 미어캣처럼 뭉쳐 있던 그들이 흩어지자, 타 학부의 사람들이 서서히 접근하며 제자 놈들에게 말을 걸기까지 했다.

         

       예상이지만, 고슴도치의 가시마냥 뭉쳐 있던 것들이 개개인으로 흩어지자 이제야 좀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됐나 보다.

         

       ‘하긴,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어울릴까.’

         

       저 심정이 이해가 간다.

       연회란 원래는 잘 어울리기 힘든 타 학부간의 소통구가 되기도 하는 바.

       검술학부 녀석들과 연을 트고 싶은 이들에게도 기회란 뜻이다.

         

       ‘곰순이 녀석, 고생하겠구먼.’

         

       병아리 1호에서 곰순이가 된 레비 폴트는 뭇 남성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하긴, 제법 귀여운 녀석이니, 인기가 많을 법도 하다.

       수작 부리는 녀석들이 많은 것도 이상할 건 없고.

         

       물론.

         

       ‘건드렸다간 전치 3개월일 텐데….’

         

       곰은 수컷이건 암컷이건 상관없이 건드려선 안 된다.

       특히 저가 키운 곰들은 사람을 반으로 찢을 수는 없어도 허리는 반으로 접을 수 있으니.

         

       부디 개수작 부리다가, 허리가 접히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길 바라며 그는….

         

       “응? 교관님 어디 가세요?”

       “난 잠시 볼일이 있어서.”

       “좀 있으면 왕녀님도 오시는데요?”

       “그러니까 더더욱 가야지.”

       “??”

       “마음껏 즐겨라 아이린 생도. 너한테 관심 있는 놈들도 많은 듯하니.”

       “에이, 관심 없어요. 저런 애들이랑 어떻게 어울리라고.”

       “너도 애다만.”

       “아!”

       “…….”

         

       …어설픈 빙의자 녀석 같으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이한은 자리를 벗어났고, 아이린은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린아, 뭘 그렇게 봐? 상완이두근을 보는 거야? 아니면 등배근?]

         

       “내가 너 같은 변태인 줄 알아? …크흠, 조, 조금 보긴 했어도 의도한 건 아니다, 뭐.”

         

       [역시 우리 아린이! 뭘 좀 알아, 후후!]

         

       “에이, 진짜! 그런 거 아니라고!”

         

       아이린 윈들러는 얼굴을 붉히며 유령에게 일갈했고, 이를 보며 그녀에게 다가오던 남성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꼬이려다, 마법사의 광증이 독이 든 장미보다 위험함을 떠올리며 목숨이 아까운 것이리라.

         

       본의 아니게 다가오는 수컷 무리를 물리친 독이 든 장미 아이린 윈들러는 유령 소녀에게.

         

       “그냥, 내 착각인지 모르겠는데, 교관님의 눈이….”

         

       [눈이?]

         

       “좀, 웃고 있는 것 같으셔서.”

         

       […응?]

         

       웃고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유령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아이린 윈들러도 저가 느끼는 이상함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지 어깨를 으쓱였다.

         

       단지 그녀가 느낀 이상함을 풀이해내자면.

         

       ‘너무 즐거워 보이셔서, 반대로 무섭다고 할까?’

         

       그녀가 생각하고도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라며, 그녀는 멋쩍게 웃고 말았다.

         

       * * *

         

       다그닥! 다그닥!

         

       왕도의 어느 텅 빈 거리를 가로지르며 은밀한 곳까지 말을 타고 이동하는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이동 속도는 느릿함이 없었고, 어느 순간 그들은 깊숙하기 그지없는 왕도의 치외법권까지 들어갔다.

         

       기생나락(寄生奈落)

         

       하층민 중에서도 막장 인생들이 모여 산다는 거리.

         

       몇 번이나 왕도에서 없애려 했지만, 그때마다 바퀴벌레나 기생충처럼 잘 숨어 다니며, 어느 순간 다시금 나타나는지라 나락은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없는 왕도의 숨은 어둠이었다.

         

       왕도를 마치 자기 숙주처럼 삼으며 기생하는 모습에서 기생 거리란 이름이 붙었고, 한 번 들어가면 다신 나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득한 절벽의 나락과도 같으니.

         

       어느 정도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으나, 위험성만큼은 진짜이기에 일부러 찾아서 들어가는 이들은 분명 어마어마한 범죄자인 경우밖에 없다.

       한데 그러한 거리를 말을 탄 이들이, 그것도 제법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이들이 자의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여 이상하다.

         

       나락의 그 어떤 범죄자도 그들을 막지 않았으며,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으니까.

       마치 오늘만큼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집밖으로 안 나오려는 듯.

         

       “후우, 후우! 여, 여기까지 왔으면 됐겠죠?”

       “그래, 이제 좀 안심해도 될 테지.”

       “그런데 말이야. 굳이 이렇게 다급히 도망갈 필요가 있는 거야? 우리가 괜히 설레발치는 것 같은데….”

       “바보 같은 소리! 왕녀가 있다는 건 그 미친 이단심문관이 근처에 있다는 거다! 그자라면 분명 우리의 수상함을 눈치챌 텐데, 어떻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도망가는 게 답이야.”

       “으음.”

         

       이단심문관 존 레이 알버트.

       그의 이름이 나오자 그들은 몸이 오소소 떨렸다.

       그의 기록을 보고서로만 접했음에도 이들은 몸을 떨었다.

       

       그 기록은 읽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두려웠기에.

         

       만약 그들의 존재가 들켰다면 바로 십자가를 든 그가 찾아오리라.

       공포스러운 죽음을 두른 초인이.

         

       “후우, 그래도 다행이야. 예정과 달라졌지만, 우리는 이렇게 무사히 도망왔으니까.”

       “나락이 설마 도움이 될 줄은….”

       “나락이 도움이 된 게 아니야, [조직]이 있으니 우리에게 힘이 된 것이지, 그러니 절대로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조직이라, 그 조직 이름이 혹시 뭔지 물어봐도 될까 친구들?”

         

       섬뜩!

         

       “…….”

         

       뚜벅뚜벅, 가볍게 걸어오는 발걸음.

         

       마치 산책로를 걷는 듯한 사내는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고, 그들은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왜…. 왜, 그가 여기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기에.

         

       허나, 사내는 도리어 섭섭하다는 듯 웃었다.

         

       “친구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까, 안 그렇습니까, 한스 교관님?”

         

       “…….”

         

       “하하, 교관님 웃으시죠. 왜 그렇게 정색하고 계십니까.”

         

       “…터, 터틀 경….”

         

       그가, 야금학부 교관 한스가 떨리는 음성으로 사내의,

         

       이한의 성을 부르며 떨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찾았는지 이해가 안 가나 보네?”

         

       이한은 장난스럽게 땅바닥을 툭툭 쳤다.

       그러나 장난스러운 그의 몸짓과 달리 옆구리에 찬 롱소드가 유난히 서늘했으며.

         

       “뭐,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야. 그냥 내가 냄새를 잘 맡거든.”

         

       쿠웅.

         

       “특히 내가, 주문쟁이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거든, 그것도…!”

         

       쿠우웅.

         

       “─너희 같은 ‘악취’ 풍기는 주문쟁이면 더더욱.”

         

       그의 손에 들린 손도끼가 불온한 흉포함을 내뿜었다.

         

         

       사람이길 포기한 ‘짐승’들을 사냥하기 위하여.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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