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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EP.51

     

   이곳에 있는 모두는 삶의 터전을 잃고 탑에 들어온 존재들이다.

     

   세상의 멸망, 목숨을 걸고 그 멸망을 버텨 이곳에 도달한 생존자들.

   그리고 그런 극적인 시간을 보낸 그들에게는 각자 타인은 잘 알지 못할 사연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이런 미친 물고기 새끼들이!”

   “저 새끼가 버나드를 찔렀어!”

     

   하지만 그런 구구절절한 사연도 살아 있을 때나 떠들며 공감할 수 있다.

   아직은 아니지만 서서히 식어가는 반송장 한 구를 보니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허무하게 갈 수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바닥은 이미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는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틈새를 노려 어인 중 하나가 창을 쑤셔 박은 모양이었다.

     

   “네놈들이 먼저 선을 넘었다.”

   “‘선’을 넘기는 씨발, 개소리 마! 실수였어! 심지어 그냥 넘어졌지 다치지도 않았잖아!”

     

   가장 앞선 푸른 어인의 말에 버나드라고 불린 남자를 부축하던 남자가 소리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푸른 어인은 자신의 뒤를 힐끗거린 뒤, 단호한 어조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어인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네?”

   “하명하십시오.”

   “……무슨 명을 말씀이십니까?”

     

   어린 어인의 말에 앞장선 푸른 어인이 ‘쯧’하고 혀를 차고는 등에 있던 창을 꺼내 들었다.

     

   “징벌.”

     

   그 모습을 본 십수 명의 어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 무기를 들었다.

   당장이라도 혈전이 벌어질 듯한 살벌한 분위기. 십자가 문양이 그려진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들 또한 질린다는 듯 검을 뽑아 든다.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달려들기 위해 으르렁거리는 순간,

   판타지스러운 갑옷의 무리들 사이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함께 그를 보좌하는 적색 갑옷을 입은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성녀님!”

     

   그곳에 모여 있던 기사들이 입을 모아 외치며 여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성녀라 불린 여인. 그녀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뒤로한 채, 자신의 옆에 있던 적색 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랜든.”

   “하명하십시오.”

     

   성녀의 말에 모든 판타지 무리들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춘다. 그리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적색 기사에게 말했다.

     

   “잠시만 이 앞을 지켜주세요. 저들이 선공을 해온다면 베어도 좋습니다.”

   “충!”

     

   그녀가 뒤를 돌아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버나드라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손에서 하얀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버나드는 이내 혈색이 돌아오며 숨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숨은 붙었습니다. 간단한 회복만 했으니 데리고 가서 요양시키도록 하세요.”

     

   성녀의 말에 버나드를 부축하던 남자가 그를 옮긴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어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적의가 없는 눈빛.

   하지만 성녀의 표정에는 안일함이나 빈틈 따위는 없었고 오로지 권위와 기개가 가득해 보였다.

     

   “우와……”

     

   그리고 내 옆에서 가만히 사태를 주시하던 한가민이 그녀를 보며 감탄한다.

     

   나도 이번에는 조금 놀랐다.

   물론 한가민처럼 성녀의 카리스마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그녀의 능력에 대한 감탄이었지만 말이다.

     

   괴물들이나 좀비도 보고 판타지스러운 마법이나 무림의 무공도 봤지만 게임에나 나올 법한 성직자의 ‘힐’을 본 건 처음이라 그런 것 같았다.

     

   “신성국의 대표 실비아 에린입니다.”

   “크리티아스의 청린이다.”

     

   성녀와 어인들의 대표격으로 보이는 푸른 어인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청린이라는 어인의 태도가 탐탁지 않았던지 적색 기사가 움찔거렸고 그를 본 성녀는 잠시 그를 제지한 뒤,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페널티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신 건가요?”

     

   도우미에게 들었던 3층의 규칙.

   경쟁전이 시작되기 전에 대기실에서 문제를 일으킨 좌표는 이어질 경쟁전 한 경기를 참가할 수 없게 된다.

     

   “들었지.”

   “그런데도 사람을 창으로 찌른 건가요?”

   “네놈들이 먼저 시작한 일이다.”

     

   청린이 흉흉한 살기를 뿜으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저들 중 가장 강한 어인. 내가 그와 싸워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수준이 다른 어인들에 비해 압도적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스캉!

     

   옆에 있던 적색 기사가 성녀를 향한 살기가 참기 힘들었던지 거칠게 검을 뽑아냈다.

   푸른 어인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을 실력자. 하지만 상황을 본 성녀는 그저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이을 뿐이었다.

     

   “랜든.”

   “……”

   “검을 거두세요. 우리는 싸우려는 게 아닙니다.”

     

   그녀의 말에 적색 기사가 청린을 노려보며 검을 거둔다.

     

   “왜 버나드를 공격하셨는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우리의 왕을 건드린 대가다.”

     

   청린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뒤에 있는 작은 왕을 가리켰다.

   아무런 상처도 없는 멀끔한 모습. 하지만 그의 모습에 청린이 더욱 화가 났다고 느낀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기사 중 한 명이 버나드와 나름 친한 사이였던지 화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고의도 아니고 실수로 좀 부딪친 게 뭐가 문제야! 고작 그런 일로 다짜고짜 사람을 찔러?!”

   “……고작?”

     

   기사의 말에 청린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조금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흉흉한 살기.

   마력을 담은 살기가 서서히 흘러나오자 함부로 입을 놀렸던 기사는 맹수를 만난 피식자마냥 굳은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저희 기사가 말실수를 했군요. 미안합니다.”

   “성녀님!”

   “경들도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여러분들도 제가 다른 사람과 충돌했다면 비슷한 반응을 하셨지 않았겠습니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성녀가 사람들을 제지했다.

     

   “청린이라고 했나요? 당신의 충성심을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명백히 시작은 저희 측의 실수였고 대응이 과했다는 생각은 있지만 버나드도 무사하니 이번만큼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단호한 어조에 주위를 압박하던 살기가 거두어진다.

   상황이 이쯤 되니 청린도 더 이상의 대치는 의미가 없다 여겼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린 어인.

   금테의 띠를 머리에 두른 어린 왕은 그런 청린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왕이시여, 명을 내리십시오.”

   “……무슨 명을…”

   “……젠장.”

   

   푸른 어인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며 어버버거리는 어린 어인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떠났다.

   왕이 어쩌고 떠들며 상대와 죽일 듯이 대치한 것과는 상반되는 행동.

   그들의 속사정까지 우리가 알 방도는 없었기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

     

   띠링.

     

   [지금부터 경쟁전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경쟁전은 ‘개인전’입니다.]

     

   토끼가 말한 첫 번째 경쟁전.

   하지만 녀석의 말처럼 시합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경쟁전의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첫 시합은 연습 판이라 죽을 일은 없다고 했었죠?”

   “말은 그렇긴 했는데 또 모르지 않겠습니까.”

     

   남궁천호의 물음에 박조철이 자신의 검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요괴와 신선이 있던 선협 세계관을 2층의 주 무대로 받았던 남궁천호와 괴물이 쏟아지는 헌터물의 세계에서 살아 돌아온 박조철.

     

   “개인전이라지만 들어가서 만나게 된다면 팀을 이뤄도 괜찮겠죠?”

   “뭔가 조건이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게 유리하긴 하겠네요!”

     

   판타지 세계에 가서 시간을 보냈던 서세영과 한가민까지.

     

   우리는 우리가 배정받은 수련관에 모여 떠오르는 다음 알림을 기다렸다.

     

   [개인전의 참가를 원하신다면 1분 이내로 ‘참가한다.’라고 말하십시오.]

   [1분이 지나면 난입은 불가합니다.]

     

   “참가한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경쟁전의 무대로 갈 수 있도록 입을 열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위에 떠오르는 각자의 포탈들.

     

   [입장까지 남은 시간 : 00:00:59]

     

   그리고 나는 검을 고쳐 잡은 후, 곧장 포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웅. 우웅.

     

   시야가 차단되며 느껴지는 기묘한 이질감. 몇 번 느꼈던 감각이지만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변이 고요하다는 것을 느낀 내가 조심스레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숲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흐음……”

     

   주변에 다른 사람이 함께 떨어진 것 같지는 않다.

   아무런 소음이 없는 고요한 숲. 하지만 무림에 있는 동안 이런 침묵 속에서 수련을 해왔기에 나에게는 오히려 익숙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띠링.

     

   [경쟁전 임무가 도착합니다.]

     

   —

   『개인전 – 보물찾기』

     

   주제 : 이벤트

   난이도 : 이벤트

     

   설명 : 첫 번째 경쟁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은 성좌들의 능력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든 섬입니다. 숲, 사막, 설산, 화산 등 다양한 구역이 작게 설계되어 있으며 지역 어딘가에는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는 보물이 있습니다. 5개 이상의 보물을 모아 탈출하십시오. (단, 보물은 상대에게 빼앗을 수 있습니다.)

     

   임무 : 보물을 5개 이상 찾아서 3층으로 귀환

   제한 : 첫 번째 경쟁전에 참가한 자.

     

   보상 : 보물이 많을수록 좋은 보상을 얻게 됩니다.

   실패 페널티 : 하위 20% 이하의 성적을 기록한 참가자는 능력치 일부를 잃습니다.

     

   ※ 해당 임무에서는 사망 시, 상처가 치유되며 경기장 밖으로 추방됩니다.

   —

     

   아아, 이런 거구나.

     

   사망 시, 경기장 밖으로 추방된다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토끼가 말한 죽을 일이 없다는 말. 하지만 능력치의 손실은 죽음만큼은 절대 아니었지만 확실히 치명적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많은 인원을 쑤셔 박으려고 한 거군.’

     

   쉽게 말해 인해전술.

     

   3층의 상황을 봤을 때, 플레이어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 그들을 담당한 도우미가 어떤 특혜를 받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 목숨을 장난처럼 여기던 그놈들이 플레이어들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고 도움을 주겠다며 선뜻 나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놈들은 플레이어들에게 첫 경쟁전은 사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애초에 다섯 개의 경쟁전 중에서 하나도 참석하지 않으면 3층의 페널티로 사망을 하게 되니, 이걸 참가하지 않을 플레이어는 없을 테니까.

     

   ‘이기면 서로 이득. 죽으면 우리만 손해.’

     

   도우미로서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뭐, 하여튼.’

     

   지금 중요한 건 보물찾기를 진행하는 것.

   앞으로 10초 후면 모든 참가자가 진입을 마칠 것이고 시합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충분히 바빠질 것이다.

     

   [10초 후 참가 신청이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그때.

     

   우웅. 우웅.

     

   나의 바로 옆에 새로운 포탈이 하나 생성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타인과의 만남. 나와 같은 좌표인 사람들은 동시에 참가를 신청했기에 이제 와서 옆에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다.

     

   스릉.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칼을 뽑아 들었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잠시 임시 동맹을 맺어도 괜찮겠지만 처음 3층에 왔을 때, 본 흑마법사나 사이코패스 같은 놈이 옆에 나타나면 그것만큼 난감한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시작부터 싸우고 싶지는 않은데.’

     

   첫 번째 경쟁전의 지역은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넓다.

   그리고 사막이나 설산 같은 이동이 까다로운 지역도 있다고 하니 체력의 안배가 필수가 되는 임무인 것.

     

   하지만.

     

   찹.

     

   포탈 안에서 발을 떼는 소리가 여느 사람의 발소리와는 느낌이 달랐다.

   지면에 완전히 밀착되며 작은 공기 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어어?”

     

   그리고 이어지는 어벙한 사운드.

   왜소한 체격에 귀 뒤로 아가미가 독특한 외모.

     

   포탈을 통해 나타난 녀석은 유감스럽게도 어인들의 왕이라 불리는 금테 장식이 인상 깊은 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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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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