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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밤 일은…어때?”

     

    “………..”

     

    네르도 아르윈의 의문은 이해할 수 있었다.

     

    관련이 없는 네르조차도 베르그에게 아르윈을 안을거냐 물었으니까.

     

    그때 베르그는 아르윈이 거부하면 안지 않겠다는 대답을 해주었었다.

     

     

    그때는 분명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는데…아르윈의 의문에 또 심장이 떨린다.

     

    이마저도 남편된 사람이 다른 여자를 안는다는 그 객관적인 사실에 느껴지는 불쾌감일까.

     

    형식적인 틀 자체만 두고 보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네르는 대답 대신 처진 시선으로 아르윈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아까 전 희미했던 아르윈의 걱정의 모습은 크기를 키워, 그 표정에 온전히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자 네르는 꿈에서 깨는 것처럼 깨달음을 느꼈다.

     

    스스로의 감정에 의문을 품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르윈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첫날밤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르윈도 인족에 대한 소문을 모를 리가 없다. 세상 경험은 없지만, 지식은 그 누구보다 많이 쌓았을 그녀다.

     

    그렇기에 외려 더 잘못된 인식이 축적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인족에 대한 팽배한 인식이 잘못된것인지는 네르조차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인족이라고는 베르그만 경험해봤으니까.

     

    그는 자신에게 단 한번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아르윈이 억지로라도 걱정을 털어내려는 듯, 실소를 흘리며 속삭였다.

     

    “…원숭이 수인이라는 말처럼… 그렇게 난폭해…?”

     

    리자드맨을 도마뱀 수인, 용인족을 용 수인, 늑인족을 늑대 수인, 묘인족을 토끼 수인으로 낮춰부르듯, 인족을 멸시할때는 그들을 원숭이 수인이라 불렀다.

     

     

    어른스러웠던 아르윈 분위기 속에서 순박한 소녀같은 모습이 포착된다.

     

    그 마음이 어떤지 너무도 잘 아는 네르로서는 그녀의 걱정을 덜어줘야겠다는 마음이 솟았다.

     

     

    그렇기에 입을 벌렸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워낙에 베르그와의 진정한 관계는 모두에게 비밀로 해왔다.

     

    사이 좋은척 연기하고 있다는 걸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네르의 가족조차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네르는 베르그의 배려속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이 사실을 과연 그녀에게 알려도 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

     

    하지만 네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두려운 마음을 숨기며 창 밖을 바라보는 아르윈을 가만 둘 수가 없었다.

     

    솔직한 친구가 되기로 했으니 더욱 그런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쯤은.

     

    “…”

     

    …이기적인 마음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단…자신도 베르그의 부인일때만큼은, 베르그가 아르윈을 안지 않았으면 했다.

     

    자신이 그의 곁을 떠난 뒤라면 또 모르겠다.

     

    이런 마음의 원인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으나 마음만큼은 점차 확실해지는 것 같았다.

     

    아마 부부의 연이라는 형식적인 관계가 이토록 그녀를 흔들고 있는걸지도 몰랐다.

     

    ‘오늘도 꼬리 예뻐.’

     

    네르는 머릿속으로 울려오는 베르그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그리고, 의도를 담은 조언을 건넸다.

     

     

    “…베르그는…인족 중에서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에요.”

     

    아르윈은 네르를 바라보지 않으며 또 말한다.

     

    “지금은 대화의 문제가 아닌걸? 결국 관계는 가져야-”

     

    “-아니요?”

     

    네르는 아르윈의 말을 끊었다.

     

    이걸 아르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싫다고 하면 베르그도 이해해줄 거에요.”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맴돈다.

     

    네르는 자신이 내뱉은 발언이 꽤나 충격적일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만큼 베르그의 배려는 특별한 것이었다.

     

    “…싫다고 하면 관계를 맺지 않을 수가 있다고?”

     

    네르는 이전의 말을 확인하는 아르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르윈이 다시 묻자, 네르는 그저 아르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르윈도 점차 네르의 말을 이해해가는 듯 했다.

     

    “…설마 너도 아직 관계를 갖지 않았어?”

     

    “…”

     

    네르는 멈춰 있다 고개를 끄덕인다.

     

     

    “…거짓말. 부단장은 인족이잖아?”

     

    아르윈은 그럴수록 의문을 표한다.

     

    네르는 아르윈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의문을 이해했다.

     

     

    베르그만큼 잘생긴 인족이, 또 그만큼 성공적인 위치에 있는 인족이 그러기란 쉽지 않을거다.

     

    이미 스탁핀에만 해도 그를 사모하던 여자들이 많지 않았던가.

     

    다 베르그의 차가움에 떨어져나갔지만, 그게 얼마나 특이한 일인지는 네르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베르그는 인족 중에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서로 좋아하게 될 때까지는…베르그가 기다려주겠다고…”

     

    “…서로 좋아할때까지라.”

     

    아르윈이 그 말을 곱씹었다.

     

     

    “근데 그건 어떻게 해?”

     

    “…?”

     

    “…발정기.”

     

    “아…! 그!”

     

    “그 부단장, 네 발정기가 올때까지 아닌척 기다리고 있는거 아니야?”

     

    네르는 열이 확 오르는걸 느끼며, 아르윈이 모르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저…절제할 수 있는 거에요….! 여태 힘들지도 않았고…!”

     

    “…그런거야?”

     

    “외려 인족은 매일이 발정기라하는데, 그거에 비하면…”

     

    아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다행이지만.”

     

    그리고는 옅은 실소를 다시금 흘렸다.

     

    “하지만 부단장이라는 사람도 꽤나 머리에 꽃밭이 가득하네.”

     

    “…”

     

    “억지로 엮인 관계가 어떻게 사랑으로 발전한다는 소리인지. 평민이 귀족과 연이 닿아 신나기라도 한건가.”

     

    “…”

     

    “끝내 좋아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때는 돌변하면?”

     

    “일단은…기다려준다고 했어요.”

     

    네르는 변명처럼 그 말을 반복했다.

     

    아르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언젠가 들어봤던 것 같은 익숙한 말을 내뱉는다.

     

    “…난 부단장을 사랑하지 못해.”

     

    네르도 한때 생각했던 말이었다.

     

     

    아르윈은 이어 말했다.

     

    “생각해봐. 고작 60년 사는 단명종을 내가 어떻게…”

     

    그리고는 곧장 네르에게 사과했다.

     

    “…미안. 그런 의미가 아니라…”

     

    100년의 수명을 가지지 못한건 네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르윈이 무슨 의미로 그 말을 했는지 아는만큼,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결국 종족의 차이에서 오는 줄일 수 없는 간극이었다.

     

     

    굳이 엘프와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늑인족과 인간만해도 이미 다른게 너무도 많았다.

     

    그러니 더더욱 아르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아르윈은 네르의 기분이 그리 상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말을 이어갔다.

     

     

    “나에게 있어 부단장은 큰 의미가 없어. 내 꿈은…그 이후에 있어.”

     

    네르가 솔직하게 말해서였을까. 아르윈도 점차 제 속에 있는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170년간 이곳에서 고통받았어. 나는 이제 나를 위해 살고 싶어. 넓은 세상을…구경하면서. 이 혼인생활은 내 행복 이전의 마지막 건널목이야.”

     

    “…”

     

     

    침묵하는 네르는 아르윈의 말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째서인지 한달 전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잊고 있던 그녀의 임무들도 떠오른다.

     

    베르그를 벗어나야겠다, 벗어나야겠다 속삭였을뿐. 그를 위한 준비는 조금도 하지 않았었다.

     

     

    그 사실이 문득 떠오른다.

     

     

    그 와중에 아르윈이 말했다.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저번에도 말했지만…원해서 혼인을 한게 아니잖아.”

     

    네르는 그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 틀림 없는 사실이었으니.

     

    “…네.”

     

    “늑인족은 단 한명만을 사랑하잖아. 사랑해서 부단장과 이어진게 아니잖아.”

     

    “…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아르윈이 침묵한다.

     

    이내 기억을 쥐어짜내듯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가 말했다.

     

    “…네 할머니에게 들은 무언가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6년 전에도 한번 말했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일까.”

     

     

    네르도 15살 때의 기억이라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르윈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유추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만 바라보며 버티던 그녀였기에, 처음 생긴 아르윈이라는 지인에게 털어놨을지도 모르는 꿈이었을 거다.

     

     

    “…기억하시네요. 착각이 아니에요. 할머니의…예언이 있었어요.”

     

    “예언?”

     

    “제 운명의 상대가 있다는 예언이요.”

     

    네르는 오랜 시간 간직한 그 예언을 다시 상기했다. 최근 들어 잠시 잊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 상대를 놓치면 후회할거라고. 제가 그보다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언제나…제 편이 되어줄거라고.”

     

    아르윈이 건조히 묻는다.

     

    “그 상대가 부단장-”

     

    “-상대는 귀족일거라 했어요.”

     

    “…”

     

     

    네르는 어쩌면 이 말을 하며, 아르윈에게 한 사실을 일러두고 싶었던걸지도 모른다.

     

    자신이 언젠가는 그 상대를 찾으러 떠날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되면 아르윈은 베르그와 남겨질 것이다.

     

    이렇게라도 말해놓지 않으면 이후에 아르윈이 혼자 남겨지는게 싫어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예언의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거야?”

     

    아르윈이 물었다.

     

    하지만 네르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요.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요. 하지만…”

     

    “…”

     

    “그저 두려울 뿐이에요. 놓치면 후회한다고 할머니가 말씀해주셨으니까.”

     

    아르윈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네 할머니면…메이벨?”

     

    “네. 할머니 맞아요.”

     

    “유명했지. 점술사로. 메이벨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겠네.”

     

    “…”

     

    “하지만 이미 혼인을 했잖아?”

     

    아르윈이 정곡을 찔렀다.

     

    “…그렇죠.”

     

    네르도 그 이상의 계획은 숨겨둔다.

     

     

    하지만 아르윈은 네르가 예상하지 못한,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내뱉었다.

     

    “…너도 이 혼인 생활이 일찍 끝나면 좋겠구나.”

     

    “…?”

     

    아르윈은 큰 숨을 들이쉰 뒤, 그에 준하는 한숨을 내쉰다.

     

     

    잠시 의미 없는 침묵이 맴돈다.

     

     

    네르는 아르윈을 따라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느새 뜨기 시작한 달을 보며 머리가 복잡해진다.

     

     

    “…대화 즐거웠어 네르. 너를 보다 알게 된 것 같아 기뻐.”

     

    아르윈은 이내 대화를 마무리한다.

     

    “시간이 늦어지네. 너도 쉬어야겠다.”

     

     

    네르도 시간이 어둑해지는만큼 아르윈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배웅한다.

     

    “네. 긴 하루였네요. 쉬세요.”

     

    찝찝함만이 남는 어색한 끝맺음으로 둘은 인사를 나눈다.

     

    그럼에도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것만 같아 더욱 끈끈해진 감이 있었다.

     

    그게 동료애인지, 혹은 또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홀로 남은 네르는 달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매일같이 달에게 말을 걸었는데, 최근은 드물게 대화했다.

     

    “…너도 달을 보고 있지?”

     

    그녀가 문득 물었다.

     

     

    그리고는 끝내 마음을 먹는다.

     

    네르는 엘프 시종들을 불러 한가지를 부탁했다.

     

    “…혹시 무언가를 적을 수 있는 용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

     

     

    나는 모두가 잠잠해진 엘프 마을의 거리에 홀로 나와있었다.

     

    세계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목구멍 너머로 넘긴다.

     

    오랜 추억을 이곳에 와서야 정리할 수 있게 되는 듯 하다.

     

    ‘네가 세계수를 봐야하는데, 벨!’

     

    어린 시절의 순진한 추억이라 그럴까.

     

    더 놓아주기가 힘든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여기까지 와서야 하나씩 마음을 놓아주는 나도 참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늘에 높이 걸린 달을 바라보았다.

     

    보름달이 다 되어가는 밝은 달을.

     

    “…하.”

     

    그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요새는 달을 보면 네르가 생각난다.

     

     

    그러니 그녀나 보러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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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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