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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그럼 그렇죠.”

         

       클라이스의 얼굴 색이 단번에 밝아졌다. 그녀는 한껏 의기양양해진 목소리로 메리가에게 속삭였다.

         

       “제 건 저것보다 훨씬 경량화가 되어있어요.”

         

       갑작스러운 클라이스의 태도 변화에 메리가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저런 커다란 장비를 어떻게 전선까지 끌고 가서 써먹어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네? 메리?”

         

       설마, 조울증이라도 생긴 건가? 잠깐이지만 그리 생각할 정도로 클라이스의 대사는 조금 전까지와 괴리감이 심했다.

         

       “…….”

         

       일단은 더 지켜보기로 하자.

          

       발표를 청강하러 온 사람들의 눈동자는 대부분 붉은 빛으로 반짝였다. 플레어가 화계마도에 속한다는 걸 감안하면 이는 당연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의 마도사들이 아예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검은색 홍채를 지닌 사람의 수가 붉은색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흑색이나 짙은 회색으로 대표되는 눈동자, 그런 눈동자를 가졌다는 것은 지계마도를 다스리는 정령에게 축복받았음을 의미했다. 즉 검은색 눈동자를 한 마도사들은 모두 지계를 다룰 줄 아는 이들이었다.

         

       그런 지계마도사들이 다른 학회도 아니고, 플레어를 시연하는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했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계마도 장비를 활용한 플레어 스크롤의 구축과 격발법에 대한 연구]

         

       그야 그렇다. 플레어를 격발하도록 만드는 핵심 장비를 지계마도사들이 만들었으니까. 

         

       이른바 화계마도와 지계마도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전문용어로는 ‘혼성마도’라고 불리는 분야였다.

         

       학계에서 혼성마도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건 불과 20년 전의 이야기였다. 그마저도 기초 이론 연구가 대부분이었고,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지라 외부에서의 지원도 미비한 수준에 그쳤다. 투입된 돈이 적었으니, 당연히 연구 성과도 미진했다. 그나마 틸레트 아카데미에서 몇몇 마도사들이 곁다리로 연구하고 있던 분야가 바로 이 혼성마도였다.

         

       그런데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뜻밖의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플레어를 개발하는데 화계마도와 지계마도가 동시에 쓰였고, 이는 기존의 플레어 연구를 하던 하스펠트 가문 뿐만 아니라, 크리스탈의 제작과 변형을 연구하던 응집물질마도 전공자들에게도 희소식으로 다가왔다. 

         

       “모두 모이셨나요?”

         

       교단 위로 올라선 금안족 소녀는 지우개를 한 손에 쥔 채 칠판을 슥슥 문질러댔다. 칠판엔 아무것도 쓰여 있질 않았다. 손이 심심해서 버릇처럼 한 행동으로 보였다.

       

       

       클라이스에게는 그 모습이 퍽이나 우스웠다. 끽해봐야 1학년이 교수 흉내를 내다니. 오히려 그런 에테르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요… 그래봤자 학부생이잖아요. 얼마나 잘 만들었겠어요?”

         

       금안족 소녀 곁에는 또 다른 두 소녀가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굳어있었다. 그중 한 명은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느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에테르를 제외한 나머지 두 소녀는 이런 학회에 참석하는 일이 처음이었는지 어깨가 경직된 채였다. 시력이 좋은 사람은 그 둘이 미세하게 호흡을 고르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에테르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발표 자료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그 얼굴에선 여유가 철철 묻어나왔다. 마치 몇 번이고 이런 일을 경험해봤다는 듯한 태도. 

         

       “다들 오신 것 같네요. 그럼….”

         

       4분의 2박자로 교단 위를 어슬렁거리던 에테르는 나긋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쯤에서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

         

       

       목을 가다듬은 소녀가 대화의 맥을 형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초였다.

         

       “화계마도사 여러분은 플레어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인트로덕션을 간단히 하자면, 플레어는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화계마도입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최상급 마도와는 격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어서, 현재 절멸급 마수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지목받고 있습니다.”

         

       그런 얘기는 아무래도 좋았다.

         

       플레어를 고안하고 개발하던 공작 가문의 적자로 태어난 클라이스에게 있어, 에테르가 하는 말은 어릴 적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전래동화만도 못한 것이었다.

         

       이런 자잘한 도입부보다는, 에테르가 얼마나 강력한 플레어를 만들었는지가 중요했다.

         

       저 발명이 사실은 허우대만 가득하고, 알맹이는 없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쓴 논문이 휴짓조각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었기에.

       

       질 나쁜 소원인 줄 알면서도, 클라이스는 내심 기도했다.

         

       에테르의 프레젠테이션에 클라이스가 참석한 이유도 그런 의도에서였다. 여기서 큰 허점을 찾아 짚어낸다면, 클라이스의 승리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기서 막아야만 했다.

         

       “……뭐.”

         

       그런 생각이라도 읽혔는지, 에테르가 클라이스를 향해 날선 눈초리를 보내왔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바로 실험 결과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에테르가 짝, 하고 손뼉을 치자 로테와 프레이가 부리나케 움직였다. 낑낑거리며 수레를 끌던 프레이는 실리카 덩어리를 만져 이동시켰다. 부웅, 하고 하늘을 난 재료들은 마수의 장갑에 쌀가루가 반죽되듯 들러붙었다.

         

       “…이건, 연성술?”

       “연성진도 없이 이만한 결정을 변형했다고?”

         

       그 외에도 가져온 재료를 하나로 모은 프레이가 그 재료들을 장갑에 하나씩 덧대고 압축했다. 안 그래도 견고해보였던 장갑이 더욱 더 단단해졌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저 철괴가 플레어로 파괴할 표적입니다. 원자재는 가르강튀아라는 마수의 전면장갑입니다.”

       “가르강튀아? 재앙급에 속한 그 가르강튀아 말인가?”

       “네, 가르강튀아는 인류가 파괴한 가장 단단한 마수로 기록되어있죠. 저걸 더 단단하게 만든 뒤 한 번에 부술 예정입니다.”

         

       클라이스가 코웃음을 쳤다.

         

       한 번에 파괴한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제아무리 플레어라 할 지라도 두세 번은 연속해서 맞춰야 할 거다.

         

       “저희도 오늘 바로 준비하는 거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이 점은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실험이 준비되는 동안 이론을 설명드리려고 하는데… 혹시 마소와 에너지가 서로 교환 가능하다는 원리를 알고 계신가요?”

         

       질문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내젓거나.

         

       오직 클라이스만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마소-에너지 교환성 정리.’

         

       클라이스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정리는 클라이스가 얼마 전 심사를 맡아 통과한 논문이었다.

         

       그 정리에서 영감을 얻지 못했더라면 클라이스는 플레어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논문의 저자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꼭 만나서 차라도 한 잔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사람들은 플레어가 강한 출력을 내는 마법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죠.”

         

       잠깐. 잠깐만.

         

       위화감을 느낀 클라이스의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전신에서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플레어를 구성하는 이론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화계마도를 구성하는 원소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계마도의 원소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면, 그 반발로 일정량의 마소가 에너지로 치환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진동수를 지닌 파동이 발생하고…….”

         

       설마.

         

       아니겠지? 아니어야 한다.

         

       “그 마력파가 결맞게 되면 플레어가 형성됩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마소 결손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혹시 그 정리를 담은 논문을 지금 가지고 계시는지요?”

       “네. 미리 몇 부를 인쇄해서 가져왔습니다.”

         

       몇몇 참석자가 손을 들었다. 교단으로 올라온 에테르는 그들에게 자신이 들고 온 논문을 한 부씩 나눠주었다. 학부 1학년생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한 준비성이었다.

         

       클라이스와 메리가,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에테르는 두 사람에게 다가와 논문 한 부를 주고 떠났다.

         

       “슬슬 실험 준비가 끝난 모양이네요.”

         

       에테르가 꺼낸 것은 일자 형태의 마법진이 그려진 대형 스크롤이었다.

         

       그 스크롤의 모습을 보고 클라이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자형 마법진이라니, 지금 장난해요?”

         

       모든 마법진은 원형이 기본이다. 스크롤학개론에서 배우는 기초 중의 기초다. 그걸 무시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메리,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으음, 글쎄.”

       “저게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어요.”

         

       클라이스의 작은 항변에도 불구하고 에테르는 들은 체 하지 않았다. 아니, 실험에 집중하느라 못 들었다.

         

       “플레어는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마법입니다. 하지만 몇 차례 개조를 한 결과, 이제는 마력초 한 개비 분량의 마력만을 들이고도 격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클라이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마력량이 뛰어난 자신조차도 마력초를 열댓 개비 씩이나 피우며 겨우 한 발을 쏴냈는데, 겨우 한 개비 분량으로 발사한다고?

         

       이건 분명한 오점이었다. 제대로 된 출력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약점을 잡아냈다고 생각한 클라이스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제 질의응답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당장 실험이 실패한다면 더 좋고.

         

       “물론 플레어의 효율이 높진 않습니다. 이 앞으로 두 단계에 걸친 과정을 걸쳐야 플레어가 쓸만한 출력을 보일 거예요. 말로 설명하면 복잡하기도 하고, 프레젠테이션이 지루해지겠죠? 그러니 자세한 건 생략하고…….”

         

       달깍.

         

       1.5미터가량 되는 철제 레일의 한쪽 끝에 스크롤을 장치하고, 그 안쪽에 마력을 흘려 넣는다.

         

       “격발까지는 30초 정도가 걸립니다. 큰 소리가 날 테니 그 전에 귀를 막고 기다려 주세요.”

         

       정적은 시간과 함께 흐른다. 강의실의 모두가 플레어의 제대로 된 발사 장면을 두 눈으로 담으려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경외할 준비를 마쳤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쉬운 점이나 질문할 점을 메모지에 적었다.

         

       메리가는 그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녀는 에테르가 준 이론 관련 논문을 한 장씩 넘겨보며 무언의 탄성을 내질렀다.

         

       “야, 이거 물건이네.”

       “……이리 줘 봐요.”

         

       호기심이 동한 클라이스가 논문을 낚아챘다. 맞잡은 종이 너머로 미세한 떨림이 오갔다.

         

       [제목 : 마소와 마력 에너지는 서로 교환 가능한가?]

         

       확실하다. 클라이스가 심사한 뒤 ‘문제없음’ 도장까지 찍은 그 논문이었다.

         

       이럴 수가 없는데.

         

       심박수가 점차 빨라졌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한 감각을 진정시키려고 심호흡을 해 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논문을 제외한 나머지 배경이 시야에서 흐릿해져만 간다.

         

       논문 맨 앞장의 최상단에는 7포인트 수준의 작은 글씨로 적힌 필기체가 있었다. 저자명을 적어놓은 칸이었다. 클라이스가 심사할 땐 익명성을 근거로 비워져 있던, 그런 칸.

         

       이제 감사해야 할 사람의 이름을….

         

       [제1저자 : 에테르]

       [공저 없음.]

         

       콰앙─!!!

         

       플레어가 격발되었다.

         

       한 줄기 빛무리가 가르강튀아의 장갑을 두 동강으로 내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귀에서 ‘삐이이─’ 하는 이명이 들려왔다. 굉음은 강의실 벽면을 타고 반사되어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 굉음이 지속되는 동안, 누군가가 책상을 강하게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플레어가 발생시킨 소음에 비교하면 작은 소리였는지라, 그 음의 존재를 알아챈 사람은 메리가 헤를라인 교수가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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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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