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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두꺼운 직물로 짜서 세운 임시 거처를 전막이라 한다.

       전막의 입구천을 헤치며 사내가 들어왔다.

         

       “대장님. 팔십 칠 번 후보지가.”

       “오, 다불리. 다 팠냐? 나왔어?”

         

       간이 침대에 누워 코를 파던 대장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다불리가 유감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대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씨발! 이거 장보도 순 사이비 아냐! 여덟 달을 땅만 처파는데 왜! 나오는 게 없어!”

         

       장보도. 보물이 묻힌 지도, 보물지도다.

         

       “그래도 내일이면 팔십 팔 팔십 구 구십 번 후보지도 완료될 겁니다. 딱 백개까지만 파고 복귀하시죠. 그럼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애미. 옘병.”

         

       대장이 욕을 내뱉으며 발라당 드러누웠다.

         

       그때였다.

         

       “대장!”

         

       또 다른 수하 하나가 헐레벌떡 전막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급한 기색을 보고서도 대장은 그저 시큰둥할 뿐이었다.

         

       “뭔 일인데?”

         

       “대정문 놈들이 전부 몰려왔슴다!”

         

       “뭐야, 왕손만 그 새끼. 다 불었나? 에라이. 이래서 정파 새끼들은 믿을 수가 없어. 신의가 없다니깐, 신의가.”

         

       그러자 다불리가 정정해주었다.

         

       “섭심공을 익혔는데 배신했겠습니까? 처신이 잘못되어 들켰을 겁니다.”

         

       귀한 흑심까지 주며 섭심공을 전수해 준 이유가 무엇이던가.

       어차피 들키면 무림 공적이다.

       그러니 이후 왕손만이 대정문을 차지하면 아예 문파 전체가 넘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거나 그거나. 지가 잘못해서 들켰다? 능력이 모자라서 배신한거지. 하여간. 후. 읏차.”

         

       대장이 땅을 디디고 일어서 수하를 보았다.

         

       “대정문 놈들이 몰려온다고? 몇이나 돼?”

         

       “대충 쉰 명쯤? 될 것 같슴다.”

         

       “쉰 명이라. 흠. 다불리, 대정문 전력이 어떻게 된다고 그랬지?”

         

       “절정 초기가 둘에, 일류가 일곱입니다.”

         

       “하. 겨우?”

         

       대장이 입술을 핥았다.

         

       “아주 죽을 자리를 찾는구만.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싹 몰살을 시키면.”

         

       “대장님. 저희 임무는……”

         

       “아오! 에이씨.”

         

       대장이 다불리의 말을 끊었다.

         

       “나도 알거든? 근데 들켜버렸네? 싹 몰살시키고 빠져야지 어째. 아주 우리가 보물 찾고 있다고 소문이라도 낼까? 아니잖아? 어째? 우리는 최선을 다한 거지. 흠……. 보자…….”

         

       대장이 턱을 쓰다듬었다.

         

       “일단 파던 데만 마무리 해 봐. 그래도 파던 데는 마저 파 봐야지. 인부 놈들도 싹 묻어버릴 준비 하고.”

         

       “지시대로 따르겠습니다.”

         

       다불리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대장이 그를 붙잡았다.

         

       “잠깐. 왕손만이 걔도 처리해야 하잖아. 다불리, 네가 처리하고 따로 복귀해라. 놈들이 싹 몰려왔으면 집은 비었겠지. 마무리 작업은 딴 놈 시켜.”

         

       “알겠습니다, 대장님.”

         

       다불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후에 전막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대장이 남은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진파랑대 전원 집합시켜. 땅 파는 거 마무리할 놈들만 빼고. 오랜만에 사람 좀 썰자.”

         

         

       —-

         

         

       수별산은 강호에 널린 흔한 산들 중 하나다.

       산세가 그리 험한 것도 아니고, 수려한 광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근처에 관도가 있어 굳이 들를 이유가 없으니 가끔 약초꾼들이 망태기 매고 오르는 이외에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

         

       왕손만의 자백으로 실종자가 끌려간 장소이기도 했다.

         

       대정문의 구출대가 산의 초입, 들과 산세의 경계 쯤에 닿았을 때였다.

         

       한 사내가 당당히 서서 구출대를 막았다.

       산발한 머리에 개기름 흐르는 지저분한 얼굴이지만, 눈깔 하나만은 아주 흉흉히 빛났다.

         

       “대정문이냐? 오래 기다렸잖냐.”

         

       문주가 호법장로를 슬쩍 바라보았다.

       문주가 직접 외치기는 좀 그렇기 때문에.

         

       호법장로가 내기를 담아 소리쳤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나?”

         

       사내가 사납게 씩 웃었다.

         

       “이 어르신의 성함은 염사래달이다.”

         

       “아안량 염사래달!”

         

       호법장로가 경악하며 외쳤다.

       그에 화답하듯 대정문도의 술렁임이 커졌다.

         

       청이 옆에 있던 팽대산에게 물었다.

         

       “염사래달? 이름이 뭐 저래. 성이 염? 염사?”

         

       “염이다.”

         

       “그럼 이름이 사래달이야?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사람 이름이…….”

         

       “서장 쪽에서 쓰는 이름이다. 그런데……. 아니다. 네 무식이 하루이틀이 아니었으니.”

         

       “알면 배우면 그만이지. 그래서, 유명한 인물인가? 쎈 놈이야?”

         

       “아안량 염사래달. 알려진 경지는 절정 후기. 어쩐지, 전부 마교 놈들의 수작이었나.”

         

       아안량 염사래달.

       안량의 화신이라는 미묘한 별호만큼 미묘한 실력을 가진 마두였다.

         

       다만 염사래달의 이름이 유명한 이유는, 본신의 무력 때문은 아니었다.

       마교 외전각 휘하 전투단 전진파랑대의 대장으로 유명한 마두였다.

         

       그 저돌적인 돌격이 안량과 같다고 해서 붙은 별호가 아안량이었다.

         

       “마교? 그 나쁜 놈들 모여산다는?”

         

       “그래.”

         

       그때였다.

       내내 없는 척하던 임무창이 그제야 그 역겨운 꼴을 드러냈다.

         

       [전조, (알 수 없음) 번째 위기]

       [당신은 마교의 특작부대를 마주했다.]

       임무 수행을 위한 행동

       선업)전진파랑대를 무찌르기

       악업)마교로 전향해 전진파랑대에 합류하기

       천살성)전원 살해

       [이 선택은 천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번엔 또 전조 임무였다.

       아니, 끝판왕을 벌써 만났는데 전조는 개뿔.

       청이 쇳소리를 냈다.

         

       “에이씨. 이봐, 산. 지금 앵속을 씹어도 효과가 들기는 좀 늦었겠지?”

         

       “저번에도 말했지만. 부작용이 보통이 아니니 어지간해서 참으라고 했을 텐데.”

         

       “난 괜찮은데……”

         

       청은 술을 좋아한다.

       출도 이전에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독주를 마구 들이킬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독주를 물 대신 마실 수도 있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청에게 술은 그냥 기분 좋아지는 음료다.

       아무리 폭음을 해도 적당히 기분좋은 취기가 도는 수준에서 유지가 된다.

       그런가 하면, 출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숙취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체질 선택 때문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었다.

       시혈독인.

       뭔가 먹어서 긍정적인 효과는 적용이 되고, 부정적인 효과는 전부 무효화가 되는 식으로.

         

       앵속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면 술병으로 앓아눕는 수준의 부작용이 따른다고 단단히 경고를 들었는데, 아직까지도 그런 기미조차 없었다.

       청에게 앵속은 그냥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약에 불과했다.

         

       공략글, 또 당신이네요. 꼭 만나고 싶습니다.

         

       청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모르는 사람에게 감사를 올렸다.

         

       “근데 절정 후기라며? 왜 혼자 당당해? 무슨 초절정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

         

       “혼자 다니는 놈이 아니다. 바로 저렇게.”

         

       산세를 헤치며 까만 옷차림을 한 놈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봐, 대정문주. 겨우 절정에 턱걸이한 애송이라고? 그리고 하나 더 있다고. 그 옆에 붙은 늙은이인가? 너희 둘은 특별히 나 혼자 상대해 주마. 어때?”

         

       왕개육과 호법장로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함께 늙어가며 문파를 키워온 친구였다.

       이미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알았다.

         

       저거, 모르는 것 같은데?

       저거, 모르는 것 같죠?

         

       청과 창빈의 경지가 절정 후기였다.

       팽대산이 중기에, 남궁신재가 초기에 있었다.

         

       “너희 늙은 놈 둘이 최선을 다해 날 쓰러뜨려야 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너네 그 연약한 식구들이 계속 죽어갈 테니까.”

         

       왕개육과 호법장로가 청 일행과 눈을 마주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일부러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도를 뽑아들며 외쳤다.

         

       “저 악적은 기 호법과 내가 직접 상대하겠다! 나머지는 저 사악한 마교 놈들을 격살하라!”

         

       염사래달은 둘이서 맡고 있을 테니, 나머지 놈들을 처치해 달라는 함의였다.

         

       “크하핫! 그렇게 나와야지! 와라! 늙은 놈들!”

         

       염사래달이 상황도 모르고 호탕하게 웃었다.

       염사래달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비극적인 정파의 몰락이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제 문도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자신 하나를 막아내기에도 급급한 늙은이 둘.

       계속해서 정파 놈들의 피와 비명이 터지고, 어쩔 줄 모르는 늙은이들이 점점 절망과 자책에 휩싸이는.

       그때의 일그러진 표정!

       마침내 늙은이 둘만 남았을 때, 제압해 조롱하며 가지고 놀아야지.

       그 비통한 반응을 즐길 것이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 하나는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손자가 강조하기를 지피지기라 했다.

       이는 손자 이전과 이후, 손자가 존재한 세상과 존재하지 않는 어떤 세상이라도, 그 모두를 통틀어 모든 전략의 기본이었다.

         

       적을 모르면, 맞아야 한다.

       무식은 처맞아서 배우는 법이었다.

         

       “가자! 마교의 말종들을 멸하고 중원의 정의를 세우리라!”

         

       왕개육이 외치며 앞장을 서니, 그 뒤를 함성이 따랐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

         

         

       청은 신났다.

         

       와! 합법 살육! 공짜 살인! 무한 리필!

            

       당연히 국법은 살인을 금했다.

       하지만 관무불가침!

       무림인들끼리 죽이는 건 상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은근히 반겼다.

         

       그러니 합법 살육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달리는 청을 적이 막아 세웠다.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소녀가 만만해 보였음이라.

         

       검을 뻗어 부딪치는 순간, 칼날을 파고드는 소녀의 검을 보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마침내 칼날이 잘려나갔다. 반사적으로 내민 왼손의 손가락이 위로부터 하나씩 차례로 떨어져나간다.

       그리고 나선 콱. 끔찍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청이 칼끝의 감촉을 즐겼다.

         

       명치 아래 보드라운 가죽을 뚫고 복막을 헤쳐 위장의 탄력 있는 위벽에 닿았다.

       그때 살짝 경력을 발하니 위장이 쩍 벌어지며 안에 든 위액이 몸통 안에 쏟아졌다.

         

       검날이 빠져나왔을 때는 명치 아래 앙증맞은 창상, 찔린 상처만이 남았다.

       그러나 자신의 위액으로 속이 녹아나는 경험은 아주 짜릿할 것이다.

         

       산 채로 내장이 녹아나는 고통은 사람이 감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전진파랑대원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로 바닥을 구르며 경련했다.

         

       히히, 아픈가 보다.

         

       청이 히죽히죽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보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50화를 축하해 주실줄은 몰랐읍니다…

    제 모자라지 않은 소설을 사랑해 주셔서 항상 감사드리고, 더욱 감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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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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