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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블랙우드 영지 경비대에서 한 차례 작은 소란을 일으키고, 며칠 후.

         

        다행히도 내가 영지 경비대에서 신입 병사 세 명과 임시 대련을 했다는 이야기가 저택 안까지 퍼지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현재 저택 내에서 그 사건에 대해 알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부집사장과 에단, 그리고 해럴드와 나를 포함하여 기껏해야 네 명이었으니.

         

        바꿔 말하면 이 네 사람만 굳이 떠들고 다니지 않으면 소문이 날 가능성 자체가 없긴 하지.

         

        디트마이어야 원래 입이 무거운 놈이니까 상관없었고.

         

        해럴드나 에단도 굳이 사용인이 저택 밖에서 친 난리를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이유는 없겠지.

         

        즉, 나만 가만히 있으면 그날 있었던 일이 저택 안에 퍼지는 것은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굳이 내가 떠벌리고 다닐 이유는 없지. 무슨 관종도 아니고.’

         

         

        굳이 다른 사람의 불필요한 시선을 끌어봤자 귀찮은 일만 생길 테니 내가 떠들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영지 경비대 측에서도 신입 병사가 세 명이나 일개 메이드에게 패배했다는 건 영 좋지 못한 소문일 테니 굳이 경비대 밖으로 퍼트릴 일은 없겠지.

         

        바꿔 말하면, 나는 아무런 리스크 없이 5레벨에서 6레벨로 올리는 걸 성공했다는 뜻이었으니.

         

        덕분에 요즘의 나는 여러 의미로 정말 최고조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바로 고대하고 고대했던 마나 블래스트를 드디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사용할 수 있게 된 것과 사용해도 된다는 것은 아예 의미 자체가 달랐으니 앞으로도 내 가슴 속에만 숨겨두는 필살기가 되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만약의 상황에서 뒤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 자체는 든든해지기 마련이었으니까.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된 이후로도 회사에 출근하는 직장인이 된 기분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정말이지 마나 블래스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의 내 세상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새로운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마나 블래스트를 사용할 수 없던 때의 나만 하더라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을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마나 블래스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로 더는 내 미래가 두렵지 않았으니까.

         

        내가 누구? 마나 블래스트 사용자.

         

         

        “좋은 아침, 메이드.”

         

        “네, 도련님도 좋은 아침이에요! 간밤엔 잘 주무셨나요?”

         

        “…메, 메이드…?”

         

         

        예전에는 아침에 마주하는 혐단의 얼굴만 봐도 불쾌해졌었지만, 마나 블래스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딱히 기분이 나빠지지도 않았고.

         

         

        “릴리스 양, 주인님으로부터의 호출입니다.”

         

        “네, 디트마이어 콜린 에버크로프트 부집사장님! 지금 가보겠습니다!”

         

        “…릴리스 양…?”

         

         

        매번 꼴 받는 소식만 몰고 오는 디트마이어의 이름도 이제는 까먹지 않고 꼬박꼬박 외울 수 있게 되었고.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

         

         

        그리고, 이 블랙우드 가문의 최종 보스인 해럴드가 집무실에 나를 호출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는 당당하게 생기를 잃지 않고….

         

         

        “릴리스, 영지 경비대에서 작은 소란을 일으켰던 것 같더군.”

         

        “……죄송합니다.”

         

         

        …아니, 이건 취소. 역시 해럴드는 무섭다.

         

        요 며칠 사이 날아갈 듯 기뻤던 기분을 단번에 짜게 식도록 도와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블랙우드 영지 영주의 호출이었으니.

         

        3층의 개인 집무실에서 독대하는 해럴드가 영지 경비대 건을 들먹이자마자 나는 곧바로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내뱉었다.

         

         

        …하긴, 아무런 위험성 없이 얻을 수 있는 레벨 업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당시에는 경험치에 눈이 멀어 앞뒤 안 가리고 이상한 핑계를 대며 몸을 들이밀었지만, 생각해 보니 이것만큼 눈에 띄는 병신짓이 없었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에단의 의견을 묵살하고 내가 억지로 한 개인행동이었으니 당연히 대부분은 내가 저지른 죄였고.

         

        해럴드가 그 부분을 언급하며 나를 추궁하는 순간 나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내가 누구? 해럴드 말 한마디에 언제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평민 빚 메이드….

         

         

        “딱히 자네에게 사죄를 요구하려고 부른 것은 아니네. 듣자 하니 그쪽의 병사가 먼저 자네에게 실례를 저질렀다고 하더군.”

         

        “…에단 도련님의 정무 자리에서 제 개인적인 행동으로 도련님께 폐를 끼치고 말았으니 차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됐네. 이제 에단도 자기 앞가림은 할 나이이니 전속 메이드인 자네가 한 행동을 굳이 내가 나무랄 필요는 없지.”

         

        “……?”

         

         

        뭐야, 해럴드 얘 왜 이래?

         

        명백하게 에단이랑 함께 나간 영지 순찰에서 내 개인행동으로 일을 그르쳤는데 이걸 추궁을 안 하고 넘어간다고?

         

        너 해럴드 맞냐? 가죽 벗기면 다른 사람 튀어나오는 거 아냐?

         

         

        ‘…하긴, 생각해 보면 요즘 묘하게 이상해지긴 했어.’

         

         

        예전에는 에단과 관련된 일이면 무조건 감싸고 돌면서 앞뒤 안 가리고 제 아들밖에 생각 안 하는 녀석이었는데.

         

        요즘에는 왠지 모르게 에단에게 약간 엄해진 것 같다고나 할까.

         

        얼마 전부터 느닷없이 에단의 훈련량을 늘린 것도 그렇고.

         

        심지어 요즘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외부 교사가 들어와서 여러 교양을 가르치는 모습이었으니.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해럴드 자체가 오냐아빠에서 조금씩 엄한 아빠로 바뀌는 듯한 모양새이긴 했다.

         

        요즘 쟤가 하는 짓을 보면 정말로 에단을 블랙우드 영지 후계자로 기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게 어떤 연유로 바뀌게 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 때문에 뭔가가 바뀐 건가?’

         

         

        사실 가장 유력한 가능성이긴 했다.

         

        일단 내 시야에 닿는 범위 안에서 기존의 스토리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고.

         

        아무래도 일개 메이드치고는 이런저런 별짓을 다 하고 다닌 게 엄연한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문제는 딱히 내가 해럴드한테는 뭔가 직접 지랄을 한 기억이 거의 없어서 그렇지.

         

        아마 내 행동이 이 해럴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건 아닐 테고, 간접적인 무언가가 이 오냐아빠의 태도를 바꿨을 가능성이 컸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타나시아의 목걸이를 보고 다시 마음을 굳게 먹었다던가, 뭐 그런 이유겠지.’

         

         

        딱히 내 행동 자체를 보고 저 해럴드가 무언가를 깨닫거나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렇고말고.

         

        애초에 이 해럴드라는 놈은 자기 아들 말이 아닌 다른 사람 말을 들을 만한 인간도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릿속으로 한 차례 추측과 상상을 마무리 짓고 있을 무렵.

         

        갑자기 해럴드는 내 눈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묻기 시작했다.

         

         

        “릴리스.”

         

        “네.”

         

        “내가 자네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요즘 에단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한 번 물어보기 위함이네.”

         

        “…네?”

         

        “요즘 에단의 태도가 이전보다 부쩍 좋아진 것 같아서 말이지. 공교롭게도 자네가 에단의 전속 메이드가 된 시기와 거의 일치하더군.”

         

        “…그렇습니까?”

         

        “혹시, 짐작이 가는 사건이라도 있나?”

         

        “…….”

         

         

        짐작이 가는 사건….

         

        짐작이 가는 사건이면, 아마….

         

         

         

        ‘니 애비한테 이렇게 일러바쳐라. 네 전속 메이드인 릴리스가 단독으로 꼴 받아서 너를 죽이려 했다고.’

         

        ‘니 밥은 그냥 니가 다 처먹고. 그리고 제발 밥 처먹을 때 드럽게 입으로 베어 물고 손으로 문지르고 쩝쩝대지 좀 마라. 진짜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으니까.’

         

        ‘제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사람은 저에게 똥침 같은 걸 찌르고는 바로 앞에서 비웃는 성추행범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남자 중에 최악이에요.’

         

         

         

        …존나 많은데?

         

        그리고 하나같이 입 밖으로 내거는 순간 내 모가지가 효수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사건들이었다.

         

        새삼 생각해 보니 여러 의미로 용하기는 했다. 대체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지.

         

        만약 에단이 지금까지 나에게 당했던 지랄 중 하나만 해럴드에게 일러바쳤더라도 틀림없이 뒤진 목숨이었을 텐데.

         

         

        ‘이걸 고마워해야 해 말아야 해.’

         

         

        내 모가지가 안 날아가게 살려준 것을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어쨌든 욕 처먹을 원인 제공을 한 놈이니까 그대로 욕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그렇게 자연스레 연상된 다른 고민이 머릿속을 잠시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간 사이.

         

        해럴드는 느닷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랬군. 역시 자네가 원인이었군.”

         

        “아, 아니요, 주인님. 저는 딱히 도련님에게 무언가를 한 적은….”

         

        “됐네. 자네와 에단 사이의 일을 굳이 공공연하게 밝힐 필요까지는 없네. 어쨌든 자네가 모셔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아들이니까.”

         

         

        잠시 할 말을 생각하느라 멈추었던 내 침묵을 다른 의미의 대답으로 알아들은 건지 해럴드는 손을 저으며 내 변명을 무마했고.

         

        얼떨결에 대답을 안 하고 넘어가게 된 나는 잠시 혼란스러운 감각을 느꼈다.

         

         

        ‘넘어간 건가?’

         

         

        …뭐, 굳이 깊게 캐묻지 않으면 내가 환영할 일이었다. 자세한 내막을 물어보면 쫄리는 건 아무래도 내 쪽이었으니까.

         

        에단 본인은 나와 있었던 일 자체를 해럴드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으니 어떻게든 넘어가더라도.

         

        해럴드 본인이 나와 에단 사이에 있었던 일을 그냥 넘어갈 가능성은 희박했다.

         

        뒤지기 싫으면 모가지 위에 있는 거 간수나 잘해야지. 어차피 2년만 버티면 에단의 전속 메이드 자리도 내려놓을 수 있을 테고.

         

        딱 2년만 더 참자. 2년만….

         

         

        “자네와 에단이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군.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아, 네.”

         

        “그래, 그럼 이만 들어가 보도록.”

         

        “네, 들어가 보겠습니다, 주인님.”

         

         

        다행히 해럴드가 이야기를 깊게 캐묻지 않은 덕에 그날의 대화는 별 탈 없이 자연스레 흘러갔고.

         

        그렇게 또, 일 년의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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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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