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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52. 검은 송곳니 구호소(4)

       

       

       어쩌면, 제왕의 격에는 뭔가 숨겨진 능력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자기 동료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발언의 설득력을 엄청나게 올려주는 능력 같은 거.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된다.

       

       ‘다들 날 너무 잘 따른다니까.’

       

       검은 송곳니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구하러 가자.

       그리 말했는데, 아무도 나에게 이유를 물어보지 않는다.

       

       왜 검은 송곳니 이름을 사칭하는 거냐고 질문하는 이는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들 ‘올 게 왔구나’ 하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역시, 내가 동료 복 하나 좋다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따라주는 동료가 이렇게나 많다니. 아마 나만큼 인복이 좋은 사람도 드물 거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흐뭇하게 웃다가, 고개를 돌려 아이들의 상황을 확인했다.

       

       “다들 잘 따라오고 있지?”

       

       내 말에 군기가 바짝 든 답변이 돌아온다.

       빠르게 인원수를 체크해보니 딱 맞았다.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하느라 좀 거친 길로 가야 했는데. 다행히 낙오자는 없다.

       

       훈련의 성과가 있었는지, 가파른 산을 넘어가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팔팔해 보였다.

       

       저택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루비아 씨를 제외한 모두가 나의 지도에 따라 일제히 행군하고 있는 상황.

       

       수십 명의 인원이 나를 따르는 모습을 보니 뭔가 감회가 새롭다.

       

       특히나 그 복장 탓에 기분이 더 오묘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의 유니폼이 되어버린 검은 로브.

       

       거기에 더해서 아셀이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흔쾌히 창고를 오픈해줬을 때 받아온 여분의 인식 저해 가면까지.

       

       동물 가면을 쓰고, 검은 후드를 입은 정체불명의 집단.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검은 송곳니의 모습.

       어쩌면 진짜 검은 송곳니보다 우리가 더 검은 송곳니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지금 하려는 일도 선동 영상으로 제국과 성황청을 공격해서, 루비아 씨에게 시선이 쏠리는 걸 막는 거였으니까.

       

       검은 송곳니의 두 적을 적대하는 행위다.

       

       ‘난 진짜 검은 송곳니 단장한테 절이라도 받아야 한다니까.’

       

       전부 어쩌다 보니 상황이 들어맞아서 도왔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가장 열성적으로 검은 송곳니를 지원하고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는데, 얼굴 한 번 안 비추는 검은 송곳니 단장이 인색하다고 느껴질 지경.

       

       ‘이쯤 되면 밥 한 번은 사주는 게 사람의 예의인데 말이지.’

       

       나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다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짚는다.

       

       토지를 타고, 마력을 계속해 넓게, 더 넓게 퍼트린다.

       

       지형지물.

       나무와 수풀.

       그 위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형태.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그리고… 더 멀리까지 기운을 퍼트리자,

       느껴지기 시작했다.

       

       온갖 쓰레기와 잡동사니, 판자로 만든 허름한 집, 구석에 널려 있는 시체와 그것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

       

       ‘찾았다.’

       

       빈민가.

       우리의 목적지가 바로 이 앞에 있었다.

       

       자연스레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검은 송곳니의 이름으로 구호소를 운영할 시간이었다.

       

       *****

       

       “이 좆같은 애새끼가…….”

       

       그런 말과 함께, 잔뜩 인상을 찌푸린 남자가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주먹에서 뚝 뚝, 하고 검붉은 액체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까 맞았을 때 소녀가 토한 피였다.

       

       허나, 이런 상황에서도 소녀와 저 남자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잠시 시선을 향했다가, 이내 무표정하게 제 발걸음을 재촉할 뿐.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여기는 빈민가였으니까.

       

       그 누구도 남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물러터진 사람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제 목숨만 건사하기에도 바쁜데 대체 왜 남에게 신경쓴단 말인가.

       

       심지어 이건 꽤나 흔한 일이었다.

       소매치기 소녀가 도중에 붙잡히는 바람에 죽도록 쳐맞는다.

       

       이런 건 이곳에서는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남자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리고, 복부를 걷어차고, 넘어진 그녀의 팔을 짓뭉갠다.

       

       끔찍한 고통이 전해져온다.

       허나, 소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전에도 몇 번 겪었으니까. 그나마 이쪽이 덜 맞고 끝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씨발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남자는 괜히 기분만 잡쳤다며 퉤, 하고 침을 뱉고는 그녀를 떠났다.

       

       아무리 맞아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그녀가 꺼림칙했던 모양.

       

       그렇게 그녀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온몸이 욱신거린다. 몸을 움직이면 끔찍한 통증이 밀려온다. 허나 소녀는 그런 것 따위 신경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틀비틀, 거리를 걸어간다.

       엉망진창이 된 소녀가 혼자 거리를 걷고 있다는 상황.

       

       허나, 당연하게도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없다. 그런 그녀에게 신경쓰는 사람도 없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괴상하게도.

       오늘따라 수상한 이들이 자주 보이긴 했다.

       

       검은 로브를 입은 어린아이 몇 명이 이상한 헛소리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병자를 무료로 치료해준다든가,

       음식을 무료로 나누어주겠다든가.

       

       하지만. 소녀는 그런 수상한 이들에게 속아넘어갈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여긴 빈민가니까.

       남에게 빼앗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누굴 돕겠다느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달라느니.

       

       진심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소녀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왔다.

       

       무너지기 직전의 판잣집.

       그 안으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보인다. 

       

       “다녀왔어.”

       

       소녀가 그리 이야기했다.

       

       하지만 어서 오라는 인사 따윈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올 리가 없었다.

       

       마력중독 말기.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자기 몸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까.

       

       두 달 전부터 더 이상 혼자 걸을 수 없게 되었고.

       한 달 전부터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병이 정신까지 건드린 건지.

       뭘 물어도 침묵할 뿐이었으니까.

       

       “엄마, 나 많이 힘들어.”

       

       그렇게 말해 봤자 예전처럼 상냥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시체나 다름없는, 이젠 어머니라고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를 멍하니 응시할 뿐.

       

       “나… 진짜, 진짜 많이 힘들어.”

       

       눈앞이 흐려진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전까지는 괜찮았다.

       아무리 시궁창 같은 삶이라도, 함께라면 해쳐 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살아가도 인생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한없이, 한없이 추락하기만 할 뿐이다.

       

       어머니는, 그녀를 위해서 보호장구도 없이 마력석을 채굴하는 일을 하다가 병을 얻었다.

       

       병은 악화되기만 한다.

       그녀 혼자서 어머니의 병수발을 들며, 어머니의 인생까지 책임지는 것은 버겁기만 하다.

       

       음식을 입에 댄 게 얼마 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만, 살기 위해서는 내일도 어떻게든 발버둥쳐야 한다.

       

       괴롭다.

       너무 괴로운데.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미안해. 나, 나 진짜 나쁜 딸인가 봐.”

       

       떨리는 목소리로 소녀가 그리 이야기했다.

       

       언제나 그녀는 어머니한테 의지하기만 했다. 괜한 투정을 부리면서 어머니를 귀찮게 했다. 

       

       그래 놓고서, 정작 그녀가 어머니를 책임져야 할 지금은 그것이 괴로워서 버틸 수가 없다.

       

       역겹게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힘들다고.

       그냥,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다고.

       

       “미안해…. 미안해…….”

       

       그녀는 그런 말과 함께 품에서 유리조각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살아갈 자신이 없다.

       이 빈민가에서도 악착같이 자기 아이를 키운 그녀처럼 굳세질 수가 없었다.

       

       아직도 온몸이 욱신거린다.

       그 아저씨가 짓뭉갠 왼쪽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은 무리다.

       

       그러니까.

       

       “용서해줘. 제발…….”

       

       그런 말을 한다.

       그런 말을 하면서, 어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얄궂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그 눈빛을 마주볼 때마다 마음이 약해진다.

       

       모든 게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언젠가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이 밀려온다.

       

       그래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목숨을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무리다.

       

       사는 건 괴롭기만 하다.

       인생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해도.

       아무리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아도.

       

       도망치고 싶다,

       그런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결국, 그녀가 손목을 그으려던 순간이었다.

       

       “……따라오길 잘했네.”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순식간에 그녀의 손에서 유리조각을 빼앗아갔다.

       

       눈앞에는… 그때 본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하얀 머리의 소년.

       늑대 가면 뒤로 파란색 눈동자가 보인다.

       

       “아까는 못 들었던 거 같으니까 다시 한 번 물어볼게. 너,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추하게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가 손을 내민다.

       

       뭐, 사실 싫다고 해도 억지로 도와줄 거라는, 그런 괴상한 말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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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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