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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경보! 경보! 현재 시내를 돌아다니는 괴수가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신속히 인근 대피소로 피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반신만 남은 천사의 사체가 아스팔트 도로를 뚫고 지상에 나타난 순간.

       

       평화로웠던 영등포 거리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었다.

       

       도로는 마비됐고 길을 지나던 사람들은 자동차까지 버린 채 주변 지하철이나 대피소를 향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등포에 위치한 헌터 협회 지부에서는 곧장 엄청난 병력의 헌터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출동하는 게 보였다.

       

       “우리가 너무 오바했나?”

       “아니요. 오히려 이 정도 해두지 않으면 그 ‘잠실의 괴수’라는 괴수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리더가 그랬잖아요.”

       

       헌터들과 중무장한 경찰 병력들로 꽉꽉 들이차기 시작한 사거리.

       

       그런 도로를 높은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한눈에 봐도 지나온 세월이 느껴지는 검은 슈트를 착용한 노장이었다.

       

       눈가에는 슬슬 바꿔야 될 것 같은 반쯤 부러진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그의 허리춤에는 도신이 전부 검게 칠해진 칠흑의 검에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

       

       

       

       그녀는 양쪽 양갈레 머리에 파란 리본을 낀 여자였다.

       

       탁한 흰색 머리카락에 선홍빛 무감각한 눈을 가졌으며 복장은 바로 옆의 노인과 같은 검은색 슈트였다.

       

       “리버린, 그래서 이다음 작전은 무엇이냐?”

       “네. 보시는 대로 잠실의 괴수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이런 식으로 소란을 피우는 거예요.”

       “저 죽다 만 시체로만 말이냐?”

       

       노인은 턱짓으로 자신들의 뒤쪽에 물끄러미 서 있는 하반신.

       

       정확히는 리버린이라 불린 푸른 리본 여성의 손가락 끝과 마력 실과 연결된 죽은 천사의 하반신을 보며 물었고.

       

       “나는 뭐 할 게 없는 게냐?”

       

       아직 현역이라는 듯 뚜둑뚜둑 몸을 푸는 노인이었으나.

       

       “폴. 리더가 언제나 주의했잖아요.”

       “끄응…”

       “우리 ‘괴인단’은 언제나 그림자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언제나처럼 주의를 주는 리버린.

       

       “폴까지 여기서 날뛰게 됐다간 사실상 한국에 괴인단이 출현했다는 걸 알리는 꼴이 될 거예요.”

       “하긴, 이곳은 ‘헌터선진국’이기도 하니까. 주의해서 나쁠 건 없겠지.”

       

       그 말을 들으며 노인 폴은 경솔했다는 듯 이내 몸에서 힘을 풀었다.

       

       “그러면 슬슬 저 시체로 또다시 날뛸 겐가. 리버린?”

       “아니요. 그러기에는 경비가 너무 삼엄해졌어요. 여기서는 일단 물러나도록 해요.”

       “알겠네. 그럼 난 내 원래 역할대로 그대를 호위하도록 하겠네.”

       

       그렇게 옥상 난간에서 다른 고층 건물의 옥상으로 도약하며 리버린과 폴은 점점 영등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허나, 그러는 한편으로.

       

       “……”

       

       리버린은 조금 전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물체의 틈 사이로 들어가 지하 연구동의 냉각소까지 다다른 자신의 실 중. 

       

       하반신만 남았다지만 무려 국가재앙급 괴수를 움직이려다 끊긴 검지의 실오라기에서 순간 위화감을 느꼈지만.

       

       ‘누군가 내 실을 건드린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착각이겠지?’

       

       자신의 실은 미국의 단 7명 밖에 없는 국가권력급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준의 미세한 마력 실이었기에.

       

       이런 작은 나라에서 자신의 실이 들통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이내 걱정을 잊고 다시 빌딩 사이를 차분히 날아다녔다.

       

       

       ***

       

       

       “이게 보여?”

       “이건… 실이야?”

       “석규 씨도 보이세요?”

       “저요? 어, 글쎄요… 뭔가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안보이는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그런 리버린의 생각과는 달리 이진아는 그녀의 끊긴 마력 실을 현재 증거로서 보관 중이었다.

       

       그리고 맨 처음으로 그걸 보여준 건 당연히 한국에서 자신과 같은 국가권력급으로 통하는 소피아네 부부였다.

       

       “우와, 그나저나 진짜 잘 만들었네! 바로 눈앞에서가 아니면 못 볼 정도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는 지금 만지고 있는데도 솔직히 실의 감촉보다는 제 손가락 감촉만 더 느껴집니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롤링과 이석규.

       

       어느덧 수리가 되어 다시 돌아온 단독주택에서 그들은 부엌에 마주 앉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저나 마력 실이 있었다는 건…”

       “그래. 범인은 마리오네트 헌터. 줄여서 ‘인형 술사’야.”

       “…! 하지만 인형 술사라면 굉장히 희귀한 직업의 헌터가 아닙니까. 한국에는 아예 없는 걸로 아는데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현재 한국의 모든 공항과 협력해 최근 한 달 동안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을 조사 중이에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수확이 없어 이진아는 쯧하고 혀를 찼다.

       

       

       마리오네트 헌터.

       

       

       인형 술사라는 이명으로도 불리는 그들은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마력 실로 무엇이든 조종하는 게 가능한 헌터 직업이었다.

       

       

       “하지만 인형 술사가 갑자기 왜 이런 짓을 하는데? 목적이 뭔지는 밝혀졌어?”

       “아니, 오히려 내가 더 알고 싶어.”

       

       

       희귀도로 따지자면 비스트 헌터 다음으로 보기 힘들다 일컬어지는 존재.

       

       

       덕분에 어느 나라 어느 지부를 막론하고 그 희소성 덕에 특별대우를 받는 헌터 직업이 또 마리오네트 헌터였다.

       

       

       그런데 그런 인형술사가 굳이 인생 하드모드를 키면서까지 헌터 협회… 그것도 한국 지부에 이러한 테러를 일으킨 이유가 대체 뭘까?

       

       혹시 한국에 원한이라도 깊은 인형 술사가 따로 있던 걸까.

       

       “대한민국 범죄자 리스트라도 따로 체크해야 되나…”

       

       이번만큼은 진짜로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이진아의 얼굴에 약간 근심이 올라오던 그때.

       

       

       “그 범인 말입니다만. 제가 추적해도 되겠습니까?”

       “여보?”

       “석규 씨?” 

       

       자신만만하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석규.

       

       하지만 ‘탐정 헌터’도 아니고 그와 전혀 상관이 없는 비스트 헌터인 이석규의 말은 별로 신뢰성이…

       

       “아, 잘못 말했네요.”

       “…?”

       “이번 임무 저희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저.”

       “희?”

       

       없는 듯했지만.

       

       2층으로 올라가 잠시 후 별이 무려 네 개나 달린 군복을 입고 돌아온 이석규.

       

       그런데 그의 한쪽 팔뚝에는 웬 ‘헌병’이라 써진 완장이 붙여져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놈이라도 탈영병이나 국가에 해를 끼치는 자라면 반드시 잡는데 특화된 놈들이 있어서요.”

       “여보. 당신 설마…”

       “응, 그 설마야.”

       

       아무리 봐도 지금은 국가비상사태 바로 직전으로 보였으니까!

       

       “현병대를 출동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석규는 자신만만하게 엄지를 척 올리며 기대하라는 듯이 식탁의 두 여인을 향해 껄껄 웃어댔다.

       

       

       ***

       

       

       익숙지 않은 천장.

       

       개미가 전신을 걸어 다니는 듯한 기분 나쁜 감각을 느끼며 약간의 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여긴…?”

       

       일어서려고 하자 특히 오른쪽 팔부터 시작해서 전신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상을 찌푸린 채로 힘들게 고개만 돌려 주변을 둘러보자.

       

       “병실… 인가?”

       

       각종 최신식 의료기구가 설비된 병실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병실 VIP룸이라는 걸까.

       

       하긴, 우리 부모님이라면 그 정도 재력쯤은 아무것도 아니실 테니까.

       

       ‘쿠루미 공주님은 어떻게 됐지? 그리고 쓰러지기 직전에 체란 씨를 봤던 것도 같은데…’

       

       뭘 알고 싶어도 손가락 하나 꿈쩍 못하는 상태.

       

       벌써 며칠을 잠들었는지조차 병실에 아무도 없어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하다못해 누구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바로 그때.

       

       똑. 똑.

       

       “…?”

       

       소피아일까.

       

       하긴 소피아라면 늘 내 옆에 붙어 다녀도 이상하지 않은 이미지였으니까.

       

       애초에 병실 VIP룸은 허락된 손님들만 병문안이 가능한 특수한 병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분명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찾아왔을 거라 생각하며.

       

       드르륵.

       

       “소피아…”

       

       그중 소피아가 떠올라 일단 이름을 불러보려고 했는데.

       

       “흐음. 깨어있었네.”

       

       활짝 웃고 있던 내 입술이 한순간에 다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친구, 미안한데 몇 가지 좀 물어봐도 될까? 딱히 잡아먹을 생각은 없고 궁금한 게 좀 있어서 찾아온 것뿐이야.”

       

       병실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여성.

       

       검은색 코트 안쪽으로는 노출도가 심한 브래지어만 착용하고 있었으며 나풀거리는 검은색 머리카락 사이로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물끄러미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여성을 알았다.

       

       그녀의 이름은 카타리나 볼릿.

       

       원작 <헌터즈 블러드>의 공식 빌런 조직인 괴인단의 리더이면서 ‘알고 보면 착한 사람’ 클리셰의 대표 격 악역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원래라면 중후반쯤에야 얼굴을 비추는 인물인데.

       

       괴인단 루트를 타게 되면 자연스레 주인공의 스승으로 등극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같이 웃고, 싸우며, 서로의 등을 맞댔던 화면 너머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빼어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히로인 자리에는 오르지 못한 비운의 여자 조연이었기에 나는 특히나 더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아직 초반이니까 ‘괴수증’이 제대로 도지기 전이겠지?’

       

       카타리나 볼릿.

       

       스토리가 후반부에 치달을수록 점점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더니 끝내는 죽음보다도 못한 원작의 보스몬 중 한 명이 됐던 여자.

       

       나는 물끄러미 민망한 부위를 피해 카타리나를 살펴봤다.

       

       기다란 괴인단 특유의 코트 때문인지 팔 쪽은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분위기로 보아 아직까지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그러는 한편.

       

       “…저기.”

       “아, 네?”

       “그렇게 노골적으로 살펴봤으면 이제 그 값으로 내 질문에 대답해 줘야 되겠어.”

       

       내 시선을 그런 식으로 느꼈던 걸까…

       

       근데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노골적으로 본 게 맞았으니까.

       

        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물어보세요…”

       “그래, 그럼 물어볼게.”

       

       원작에서도 한참 후에야 등장했을 괴인단의 리더. 

       

       그런 그녀가 원작을 파괴하면서까지 한국에 불법 입국해 묻고 싶은 질문이 대체 뭘까.

       

       내심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자.

       

       “내가 말이야. 지금 ‘잠실의 괴수’라는 걸 찾고 있거든?”

       “잠실의… 괴수요?”

       “응. 그래서 지금 목격자들을 하나같이 다 찾아다니다가 그 괴수가 출현한 놀이공원의 여파로 부상을 입은 너한테까지 도달한 거야.”

       “아, 예…”

       

       괴인단이 잠실의 괴수에 흥미를 가진다?

       

       원작에서도 전혀 없던 일에 나 또한 흥미를 가지며 일단 계속 들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말인데, 너 잠깐 누나랑 같이 좀 가자.”

       “……네?”

       “너 지금부터 납치된 거야.”

       

       대뜸 말을 하다 말고 내 앞으로 걸어와 누워 있던 병실 침대를 붙잡은 카타리나 씨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너 지금 납치된 거야.
    다음화는 06월 26일 07시 업데이트 됩니다.


           


I Became a Catastrophic Monster Instead of a National Power

I Became a Catastrophic Monster Instead of a National Power

Status: Ongoing Author:
I was transported into a hunter genre game. Not as a national power, but as a catastrophic 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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