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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1

       2황자로부터 교수 역할을 맡게 되긴 했지만, 사실 나는 제사보다 제삿밥에 관심이 많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도, 학생들이랑 TRPG를 할 생각으로 가득하단 이야기였다.

       

       그래서 오히려 첫 수업이 중요했다.

       

       『환상 마법 대응』은 필수 과목이라서 학생들이 싫어도 들어야 하지만, 선택 과목으로 만들 『이세계 탐험 (사실 TRPG)』은 신청제니까. 필수 과목에서 기깔난 모습을 보여줘야 『이세계 탐험』 강의로 학생들이 몰려들지 않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이세계 체험 한 바퀴를 싹 돌려버리고 싶었지만⋯⋯.

       

       하지만 무리다. 능력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나는 우화에 도달하지 못한 남자. 청춘과 향상심으로 불타는 아카데미생 전원에게 환상 마법을 걸어버리는 것은 마력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듣자 하니 벌써 우화를 뚫은 학생도 있다던데, 1대1로 파고들면 몰라도, 1대 다수에서 디테일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면 아카데미생 전원이 시뮬레이션 마법진에 무저항으로 누워주든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능력이 안 된다면 연출로 승부해야 할 터. 

       

       그것이 아카데미를 거닐고 있는 이유였다. 첫 수업을 가성비 좋게 성공시키기 위한 소재가, 아카데미 어딘가에는 있으리라 믿으며. 

       

       아카데미는 생각보다 볼 게 많았다.

       

       강의시설 구역은 교수들의 강의를 위한 각종 설비가 위치하는 곳이다.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봐야 하는 높다란 탑이나, 커다란 킹룡 골렘 같은 게 있었다. 내 시뮬레이션 2호기도 이 구역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나는 내 팔에 매달려 팔짱을 낀 핑발레즈를 바라보며 물어봤다.

       

       “뭐 없을까.”

       

       “뭐가 말입니까?”

       

       “첫 수업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디어 있어?”

       

       핑발레즈는 주먹을 쥐어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1대1로 학생과 싸우시죠. 거들먹거리는 녀석 한 명을 집어서, 내 옷깃에 상처 하나라도 내면 최고 성적을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다 지면?”

       

       “사표 쓰시면 됩니다.”

       

       졌을 때의 리스크가 높긴 하지만, 생각해 볼 만한 방법이었다. 금적금왕이라, 학생들의 우두머리 격 녀석을 사냥하면, 그 아랫급의 녀석들은 알아서 나를 존중해 주지 않겠는가.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보답으로 따봉을 날려줬더니, 핑발레즈가 몸을 기대어 왔다. 수박이 팔뚝에 부드럽게 눌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쪽으로 몸무게 싣지 마, 닿잖아.”

       

       “뭐가 말입니까?”

       

       뭐가 그리 잘못됐냐는 눈으로 올려다보길래, 시선을 피했다.

       

       

       요새 핑발레즈가 좀 미친 것 같았다. 아카데미에 들어서고 나서부터 뭔가, 조금씩, 예전과는 다른 행동을 보였다. 땅에 마검을 몰래 묻을 때도, 장난이라기에는 상당히 강력한 어필이 아니었던가.

       

       오팬무 정도야 아침 인사로 해오고 있었지만, 어필은 좀 다르지 않은가.

       

       내가 뭐⋯⋯. 핑발레즈의 목숨을 구해줬다든지, 연구비로 목걸이를 사줬다든지, 그랬으면 얘가 날 좋아하나 하고 착각이라도 한 번 해보겠는데. 그렇고 그런 이벤트는 하나도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요새 좀 가깝지 않냐?”

       

       “제가 아무리 매력적인 여성이라지만, 너무 의식하시는 거 아닙니까?”

       

       “진짜 가깝다니까.”

       

       “예, 손만 잡아도 결혼까지 생각하는 타입이시군요. 아이는 두 명으로 괜찮으십니까?”

       

       “셋이 좋지 않나. 세션할 때 둘은 살짝 모자란 감이 있어서.”

       

       점점 이상한데.

       

       받아넘기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 착각이라기에는 유혹의 강도가 세지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명확한 지표도 있다. 나는 슬슬 금단의 성욕 억제 2중첩을 걸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주문이 깨질락 말락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받아넘기고는 있지만, 이러다가는 우리 사이가 어색해지고 말 거다.

       

       짧다면 짧은 교제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근거가 없는데. 

       

       진지하게 무언가, 마법의 영향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좀 이상하긴 했다. 내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한 정신계 마법이, 정신 방벽이 편집증적으로 단단한 핑발레즈의 방어를 뚫고 한다는 게, 성욕 증진이면 좀, 말이 안 되지 않나?

       

       심지어 핑발레즈는 레즈잖아.

       

       이대로 친구를 잃어야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마음이 참 심란할 때, 핑발레즈가 내 옆구리를 검지로 쿡쿡 찌르더니 작게 속삭였다.

       

       “미친 마법사님, 잠시 귀를.”

       

       “핥지 마.”

       

       “제가 미쳤습니까?”

       

       나는 불안에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도, 진지한 얘기였다. 핑발레즈의 숨소리 섞인 속삭임이 조곤조곤 들려왔다.

       

       “미행이 붙었습니다. 세 명이나.”

       

       “아카데미 신임 교수한테 왜 미행이 붙어.”

       

       어이가 없어서 웃는 내게, 핑발레즈가 덤덤하게 팩트를 박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희가 야밤에 한 일 중에서, 한 건이라도 걸렸으면 미행이 따라붙는 게 맞습니다.”

       

       “그거 네 가슴이 아니라, 내 가슴에 얹고 생각하라는 말 맞지⋯⋯?”

       

       “미쳤냐고요.”

       

       “으억.”

       

       옆구리를 주먹으로 한 대 맞았다. 나는 조금 억울해졌다. 누가 먼저 시작한 건데⋯⋯!

       

       아무튼, 미행이라.

       

       어떤 게 걸렸는지는 모르겠다. 마검을 파묻은 게 걸렸을까, 천마신공을 해안가 동굴에 숨겨둔 게 걸렸을까, 몰래 던전을 간단하게나마 만들어 둔 게 걸렸을까. 대체 어느 쪽이지. 목격자가 있었나?

       

       주관적으로 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한 일들은 수상한 게 맞았다. 그 부분을 부정할 정도로 머리가 망가져 있지는 않았다. 내가 어이없어한 이유는, 들킨 게 너무 빨라서였다. 

       

       나름대로 숨어서 한다고 한 건데.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냐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떳떳했다. 마검은 가짜고, 천마신공은 AI가 만든 진짜긴 한데 위험한 건 아니고, 던전도 생명을 위협하는 함정은 없었다.

       

       유일하게 걱정거리가 있다면, 마검이 어쩌면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싶다. 여신교는 마검에 정말 예민하다고 들었다. 사람 영혼을 잡아다가 집어넣어 만드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마검은 가짜지만, 인공지능이 어쩌구 환상 마법이 저쩌구를 여신교 측에 증명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터. 그래서 진작에 유나에게 논문 작성을 부탁한 참이었다. 

       

       왜 직접 안 쓰고 마탑주에게 부탁했느냐? 네임밸류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마법사가 증명하는 것과, 공신력 넘치는 대마법사가 증명하는 건 파워가 다르다.

       

       아마 며칠 있으면 메이드 인 마탑주의 따끈따끈한 논문이 아카데미로 배송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2황자에게도 허락을 맡았다. 이러저러해서 마검으로 흑마법사를 낚겠다는 작전 계획서를 핑발레즈를 통해서 전달한 참이다. 통신구로는 오케이 사인이 이미 떨어졌고, 정식 명령서도 논문이 배송될 즈음 같이 올 거다.

       

       논문과 명령서를 둘 다 받으면, 그때 아카데미에 마검이 묻힌 장소를 표시한 보물 지도를 뿌릴 생각이었다. 

       

       그땐 설령 아카데미의 성녀가 마검을 들고 따지러 와도 능히 방어해 낼 수가 있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일도 없을 것이고.

       

       그러니 미행은 가볍게 정면돌파를 하도록 하자. 어떤 혐의건, 당신이 이걸 숨겼느냐고 따지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며칠만 시간을 끌면 문제가 없다. 평범한 학생이라면 교수의 권위로 버팅길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미행해 오는 이들 중에서 되게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야, 핑발레즈야. 저것 좀 봐봐.”

       

       “오.”

       

       우리들은 나란히 감탄했다. 신앙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복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가슴골이 다 드러나는 데다가, 입을 때에는 뭐 어떻게 입는 거지 싶을 정도로 피부에 딱 달라붙어 조이고, 배꼽 라인까지 옆트임을 쭉 그어버린 사제복 비슷한 무언가.

       

       검은 레이스 팬티까지 목격하고 나면, 내면에서 기립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핑발레즈는 감탄의 의미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성녀님이십니다.”

       

       “뭐?”

       

       “예, 놀랍게도 성녀님이십니다. 자유로운 복장으로 유명하시다더니, 명불허전이군요⋯⋯.”

       

       “혹시 앞에 붙은 성자가 다른 글자를 쓰니?”

       

       성녀가 위험한 복장을 입는 건 이세계에서도 통용되는 질서란 말인가. 정신없이 감상하던 도중, 나와 핑발레즈는 성녀의 허리춤에 매달린 마검을 동시에 목격하고는 침묵에 빠졌다.

       

       우리가 야밤에 정성스레 묻은 마검이 맞았다.

       

       “⋯⋯⋯⋯.”

       

       “⋯⋯⋯⋯.”

       

       지금은 논문도 명령서도 없는데.

       

       그새를 못 참고 핑발레즈가 꼽을 줬다.

       

       “그러게, 명령서 오면 묻지 그랬습니까?”

       

       “명령서가 올 즈음이면 아카데미가 개학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러면 야밤에 학생들이 얼마나 돌아다닐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사람 없을 때 숨기려면 미리 숨기는 게 맞았어!”

       

       “그런데 들켰잖습니까.”

       

       “아니, 아카데미 성녀는 일 안 하기로 유명하다며! 건물 밖으로 한 발짝도 잘 안 나오려고 하는 집순이라며! 누가 땅에 묻힌 마검을 파서, 성녀한테 가져다 바치기라도 했다는 소리냐⋯⋯?!”

       

       혹시나 모른다. 성녀의 동선이 우연히 우리와 겹칠 뿐이고, 다른 곳에 용무가 있을 수도 있잖나. 그래서 은근슬쩍 코너링을 돌았더니, 성녀는 우리를 향해서 직진했다. 우리한테 볼 일이 있는 게 맞았다.

       

       “튀자.”

       

       “튑시다.”

       

       잠적하자. 이대로 여신교 건물 지하실로 끌려갈 수는 없다. 우리가 마검을 제조하고 은닉했다는 물증은 없을 것이다. 중세에 CCTV가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설령 있더라도, 논문과 명령서만 도착한다면 가드할 수 있다. 며칠만 버티면 된다. 시간을 끄는 거다.

       

       핑발레즈에게 냅다 업혔다. 내 부족한 기동력을 보완하는 합체 모드였다. 내가 이상행동을 보이자, 미행해 오던 세 사람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챈 듯 각자가 기민한 반응을 보였다.

       

       핑발레즈가 질주를 시작했다. 미행하던 세 사람도 달렸다. 아까까지는 따로따로 노는 듯싶더니, 포위망을 좁혀오는 무빙이 서로 합의가 된 것 같았다. 녀석들도 성녀와 한패인가⋯⋯! 

       

       살아야 한다. 나는 환상 마법을 뿌렸다.

       

       “『환상 늪지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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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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